I Will Make You a King as a Possessor RAW novel - Chapter (138)
빙의자가 왕으로 만들어 드립니다-138화(138/275)
‘이해가 안 가서 다시 묻겠습니다. 정말 저주가 걸려있는 게 맞나요?’
[ 그래. 대단한 건 아니지만… 정말 걸려있구나. ]‘어쩌다가….’
[ 그건 나도 모르지. ]예상치도 못한 소식에 레이먼이 눈을 크게 뜨고 리 삼인방을 내려다보았다. 나란히 앉아 머리를 감싼 이들은 끙끙 앓는 소릴 내며 책을 읽고 있었는데, 이 꼬락서니가 전부 저주 때문이라고 생각을 하니 조금 불쌍하기도 했다.
‘정확히 어떤 저주예요?’
[ 어려운 저주는 아니다. 망각 안개 저주야. ]망각 안개 저주라면 1학년 때 기초 과정에서 배우는 저주 마법 중 하나이다. 마법 주문만 외우면 누구나 걸 수 있고, 누구나 풀 수 있는 쉬운 마법이다. 이 저주에 걸리면 아무리 책을 읽어도 안개가 낀 것처럼 흐릿하게만 기억에 남고 떠올리면 떠올릴수록 뿌옇게 흐려지게 된다. 망각 안개 저주는 기본 중의 기본인 만큼 저주에 걸린다 하더라도 보통은 한 달도 안 가 마법이 사라지게 되는데 이 삼인방의 머리에는 여전히 그 저주가 걸려있다는 거다.
‘대체 왜 걸렸지?’
말리, 판리, 수리가 망각 마법에 걸릴 이유가 있나?
위협이 될 만한 애들은 아닌 것 같은데.
“야. 너희들.”
“응?”
“응?”
“응?”
저들을 부르는 까칠한 음성에 세 아이가 동시에 레이먼을 바라봤다.
“너네 쓸 줄 아는 마법은 있어?”
“우리?”
“있기야 하지.”
“1학년 때 배운 마법들은 좀 쓸 줄 알아.”
“…혹시 망각 마법도 쓸 줄 아냐?”
“오, 그건 당연하지! 그건 기본 중의 기본이잖아. 망각 안개 마법은 우리가 자주 시험해보는 마법 중 하나지.”
“서로한테 사용한 적은?”
“에이, 이미 바보인 놈한테 써서 뭐 하게. 그 마법을 쓰는 걸 본 적은 있지만 서로에게 건 적은 없다고.”
이거군.
“그러니까 마법을 쓰는 걸 본 적은 있다는 소리지?”
“그렇지?”
그때, 저주에 걸린 거다. 망각 안개 저주를 세 명이 동시에 보여주면서 서로가 서로에게 저주를 거는 끔찍한 상황이 벌어진 거겠지. 저주 마법이 무서운 점은 그게 티가 나지 않는다면 그 사람이 저주에 걸렸는지 걸리지 않았는지 구분할 방법이 없다는 거다. 저 세 사람이 서로에게 저주를 걸었단 걸 아는 다른 학생이 없더라면 이 세 명은 그냥 멍청한 삼인방으로 알려질 수밖에 없었겠지.
“최근엔 서로에게 마법을 보여준 적이 없나?”
“최근에는 그냥 쓸 줄 아는 마법 몇 개만?”
“망각 안개 마법과 공중 부양 마법을 서로에게 보여줬지. 우리가 그 두 개만큼은 잘하거든!”
둘 다 1학년 극초반에 배우는 마법들이다. 게다가 공중 부양은 망각 마법보다 전에 배웠으니 기억하고 있던 거겠지.
“그래. 알겠다.”
레이먼은 그렇게 말하곤 뒤를 돌았다. 달라붙는 사람들을 전부 해결했는지 어느새 뒤에서 대화를 듣고 있던 유타가 먼저 나서서 속삭였다.
“도와줄까? 저주 푸는 거.”
“부탁할게. 이그니스 님의 마법이면 금방이지?”
[ 금방이 아니라 몇 초다. 손가락만 한 번 까딱하면 풀릴 간단한 저주니까. 이런 걸로 몇 년이나 멍청이로 살아왔다는 게 정말 멍청이들 같구나. 쯧. ]‘잘 부탁드립니다.’
책에 얼굴을 파묻은 삼인방 곁에 이그니스가 섰다. 그들 모두 이그니스를 눈치채지 못했고, 그의 정화 마법이 찬란한 빗줄기가 되어 머리 위로 떨어지는 순간에도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는 듯했다.
다 끝났다- 라며 돌아오는 이그니스에게 눈짓으로 감사 인사를 전한 뒤, 레이먼은 삼인방 앞에 섰다.
“바보들아.”
“바보라고 하지 마!”
“바보는 맞잖아.”
“우리가 바보인지 아직 아무도 모르는 일이야. 평생 바보로 살 건 아니잖아.”
“너 어쩐지 똑똑해진 것 같은데.”
판리의 말을 듣던 수리가 말했다.
“어쩐지 말하는 게 논리적이야.”
“그런가?”
그때, 책에서 눈을 떼지 않고 있던 말리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얘들아, 나 조금 전에 읽은 책이 전부 이해가 가는데? 세상에. 레이먼의 수업이 효과가 있었던 거야.”
“정말이야, 말리? 잠깐 나도 한번…… 진짜야! 나도 뭔가 머릿속에 책 내용이 쏙쏙 박히는데!?”
몇 시간 뒤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삼인방은 생각보다 머리가 좋았다. 아니, 생각보다 훨씬 더. 그들은 읽는 족족 책 내용을 스펀지처럼 흡수했고, 이후 물어오는 질문들은 기본 개념이 아닌 응용 과정이었다. 물론 그 질문들 가운데 레이먼을 애먹게 하거나 그가 모르는 내용은 단 하나도 없었지만 말이다.
이후, 그들은 중간고사 전날까지 레이먼에게 시달렸다. 아무리 망각 저주가 사라졌다고는 하지만 그동안 쌓아온 지식이 없는 것도 사실이었다. 레이먼은 그들에게 전략 과목을 하나씩 알려주었고, 그들은 그 과목들을 모두 맞힐 각오로 시험을 준비했다. 완벽한 시험용 괴물이 되어 등장한 리 삼인방의 모습에 중간고사 당일 피데스 클래스의 학생들은 그들 곁을 슬금슬금 피해 다녔다.
리 삼인방이 레이먼에게 개인 과외를 받았다는 사실이, 그리고 그의 과외가 마치 흑마법처럼 대단한 부작용을 가져온다는 소문이 이미 포레스튼에 파다하게 퍼져있었기 때문이다. 그 과외가 뭔지는 정확히 알 수는 없었지만 다크서클이 입가까지 내려와 있는 몰골을 본 학생들은 일단 리 삼인방에게서 떨어져 있어야겠다고 여긴 모양이다.
총 3일간 치러진 중간고사가 끝난 날, 리 삼인방은 그대로 쓰러져 잠이 들었다. 하지만 정작 세 사람의 수업을 모두 진행한 레이먼은 그렇지 않았다. 그건 유타 역시 마찬가지였다. 유타는 시험이 끝난 당일, 렌스와 검술 훈련을 하겠다며 훈련장으로 떠났다. 레이먼은 그 뒤를 따라갔고 아모르 역시 레이먼의 곁을 지켰다.
“너도 검술 연습을 할 거야, 레이먼?”
“아니. 난 됐어. 몸 쓰는 건 질색이야.”
딱히 그 또한 검술 훈련을 하겠다고 따라나선 것은 아니었다. 땀 흘리는 것도 싫고.
레이먼은 곧 이곳에 올 아드리안과 니콜을 기다리겠다며 벤치에 앉아 들고 온 책을 펼쳤다. 하지만 정작 그가 읽으려는 것은 가져온 책이 아니었다. 책 안쪽에는 그보다 좀 더 사이즈가 작은 다이어리가 있었다. 바로 일기장이었다.
[ 그 일기장은 왜 들고 나온 거냐? ]인간체로 변한 아모르가 레이먼 옆에 앉아 물었다.
‘또 읽을 수 있는 게 없나 해서요. 마탑에 들른 이후 읽을 수 있는 부분이 많아졌으니까요.’
일기장은 분명 도움이 됐다. 의문스러운 점은 많았지만 말이다. 레이먼은 또다시 일기장을 펼쳐 읽어내렸다. 한 번 읽으면 거의 다 기억할 수 있는 레이먼도 이 일기장만큼은 여러 번 읽어도 금세 까먹었다. 그러니 일기장의 내용이 이미 변했다 하더라도 알아차리지 못하는 경우도 있었다. 아니, 있었을 것이다.
‘이 일기…… 아무리 봐도 한 사람이 쓴 게 아니야.’
처음 일기장을 읽었을 때는 분명 한 명이 썼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같은 날, 같은 사건이 다른 시점으로 쓰여 있다거나 한 사람에 대한 감상이 여러 번 반복되거나 혹은 심하게 달라지는 경우가 빈번히 보였다. 마치… 다른 사람이 쓴 것처럼 말이다.
정보란 서로 관련 없어 보이는 날것들이 모여 가공된 조각의 결합이다. 하나의 정보로는 그 사건이 진실인지 거짓인지, 존재했는지 존재하지 않았는지 가려낼 수 없다. 하지만 그 조각들이 한 가지 사건을 가리키거나 한 가지 사건을 가리키지 않는다면 그제야 무언가 깨달을 수 있는 거다. 조각의 결합이 완전하지 않아도, 완전해도 결국 무언가를 알려주긴 한다는 소리다.
그리고 이 일기장은 조각에서 조각의 결합이 되어가는 중이었다.
‘보통 다른 사람 몸에 빙의하거나 환생하는 경우 그 본체의 영혼이 사라진 이후지. 하지만 만약……이 몸에 거쳐 간 영혼이 하나가 아니라면? 나 이외에 ‘레이먼 반 스플린’의 몸을 가졌던 영혼이 여럿 존재했다면 어떻게 되는 거지? 그리고 그 영혼들이 모두 같은 시간선을 경험했다면?’
말도 안 되는 가정이긴 했다.
하지만 애초에 자신이 평행세계의 제 몸에 들어왔다는 것부터 말이 되지 않았다. 그러니 이 가설도 완전히 불가능한 건 아니었다.
‘하지만 조각이 부족해. 일기장의 문장만으로는 모든 걸 확신할 수는 없다.’
레이먼이 일기장을 덮었다. 쓰고 있던 안경을 벗어 주머니에 넣는 순간 익숙한 목소리가 그를 불렀다.
“형님.”
“아드리안, 언제부터 거기 서 있었어?”
“금방 도착했습니다. <왕실 역사학>을 읽고 계셨습니까? 이미 다 읽으셨던 책 아닌가요?”
“…아. 그렇지. 오랜만에 심심해서 꺼내 봤어.”
“우리 도련님이 복습을 하신다고요? 오, 도련님. 거짓말하지 마세요. 사실 책이 아니라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죠?”
니콜의 과장된 손동작과 말투를 오랜만에 보니 얄밉지 않고 정겹기까지 했다.
“니콜, 엎드려뻗쳐라.”
“진짜로요?”
“어.”
니콜이 바닥에 대가리를 박고 있는 사이, 아드리안은 레이먼의 옆자리에 앉아 조잘조잘 떠들어대기 시작했다. 일기장대로라면 지금쯤 아드리안과 레이먼의 사이는 틀어져야 했다. 수업도 빠지고 레이먼에게 말을 걸지도 않아야 하는데. 지금 아드리안을 보면 그런 순간은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였다.
“그래서 이번 중간고사도 1등을 유지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잘했네.”
“네! 형님의 이름에 누를 끼치지 않도록 노력 중입니다.”
“내 이름?”
“형님은 입학 후 단 한 번도 1등을 놓친 적이 없으시니까요.”
음. 그렇긴 하지.
‘처음 보는 지식들이지만 머리도 잘 들어왔고.’
전생에 헌터로 생활할 때도 한 번 보고 이해한 건 다 기억했지만 모든 기억은 일단 ‘이해’가 전제였다. 즉, 이해하지 못한 지식은 머릿속에 들어오지 않는다는 뜻이다. 그런 의미에서 만약 마법이나 마력, 서클이라는 요소들 역시 내가 이해하지 못했다면 기억을 할 수 없었다는 뜻인데…….
‘어떻게 이해했지?’
분명 이곳에서 처음으로 접한 지식들이었건만 별다른 노력을 하지 않아도 이해하는 데 큰 어려움이 없었다.
“아드리안도 왔구나!”
갑작스레 드는 고민에 심각해질 때쯤, 때마침 대련을 끝낸 유타가 아드리안에게 다가왔다.
“아드리안, 너 검술 수업도 듣는다지?”
“네. 왕실에 들어가는 건 정했지만 기사단으로 할지, 행정으로 할지 잘 모르겠어서요.”
“그렇다면 렌스랑 대련을 해보겠어? 네 검술 실력도 대단하다고 들었는데.”
“음…….”
“그래, 아드리안. 한번 해봐.”
레이먼까지 한 마디 덧붙이고 나서야 아드리안은 어쩔 수 없다는 듯 일어섰다.
“아드리안이 네 기사를 이길 수도 있어, 유타.”
레이먼의 도발 섞인 발언을 듣고 나선 아드리안 역시 기합이 들어갔는지 눈빛이 빛나기 시작했다. 아드리안과 렌스가 서로 마주 보는 사이 얌전했던 아모르가 레이먼 곁에 다시 슬쩍 다가와 속삭였다.
레이먼의 생각을 엿듣고 있던 아모르가 슬쩍 웃으며 일기장을 가리켰다. 무언가 감추고 있는 눈치였다.
[ 네 속이 아주 시끄럽더구나. ]‘생각할 게 많아서요.’
[ 내가 재밌는 거 하나 알려줄까, 레이먼? ]‘재미없으면 정령님도 저놈처럼 엎드려뻗쳐 하실래요?’
[ 대정령한테 못 하는 말이 없구나. 계약자야. ]‘농담입니다, 농담.’
레이먼이 어깨를 으쓱했다.
‘농담도 못 해요?’
[ 쯧쯧쯧. 고약한 계약자로다. 심보가 그렇게 고약하니 진실을 알려주기 싫구나. ]‘진실이요?’
레이먼의 눈이 번쩍 뜨였다.
그러자 아모르도 즐거워졌는지 새하얀 이를 드러내 보인 그가 웃으며 말했다.
[ 네 생각대로 일기장을 쓴 이들은 모두 다른 레이먼이란 뜻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