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ill Make You a King as a Possessor RAW novel - Chapter (139)
빙의자가 왕으로 만들어 드립니다-139화(139/275)
레이먼이 고개를 갸웃했다.
“개소리?”
[ 무어라!??! ]“그러니까 개소리-.”
[ 너도 그렇게 생각하면서! 왜 나한테만 그러느냐! ]레이먼의 단호한 말투에 아모르가 허공에서 발버둥을 쳤다. 떼쓰는 유치원생 같은 태도에 레이먼이 일기장을 탁 덮었다. 그는 짧게 한숨을 쉰 뒤 말했다.
“그거야 어디까지나 제 망상일 때의 이야기지, 그걸 남한테 들으니 진짜 개소리 같긴 합니다. 하지만 아모르 님이 그런 말을 했다는 건 이유가 있다는 소리인데. 그 이유가 뭡니까?”
근거도 없이 개소리를 지껄인 것일 수도 있겠지만 이번만큼은 그렇게 느껴지지 않았다. 발버둥 치던 아모르가 코를 킁- 먹은 뒤, 말했다.
[ 네 몸이 그렇게 말해주고 있으니까. ]“몸이요? 제 몸이 왜요?”
[ 몸 안에 희미하지만 다른 영혼의 마력이 남아 있다. 너, 다른 이의 마력을 몸으로 받아들이거나 주입당한 적이 있느냐. ]“제 기억으로는 없네요. 제가 이 몸에 들어오기 전 레이먼의 기억에도 없습니다.”
[ 그거다. ]“예? 어… 그러니까 정령님 말씀은 남이 넣은 게 아니라면 제 몸에 다른 이의 흔적이 남은 이유가… 다른 영혼이 몸을 거쳐 갔다는 증거라는 소리입니까?”
아모르가 고개를 끄덕였다.
“흠.”
듣고 보니 영 허무맹랑한 소리는 아니었다. 무엇보다 이 일기장과 저 이야기의 내용을 짜 맞추면 앞뒤가 들어맞는다. 애초부터 작성자가 한 사람이 아니었기에 시점이 뒤죽박죽인 것이다. 그리고 서로 다른 레이먼들은 모두 모종의 이유로 비슷한 시간대를 경험했다. 비슷한 시간대라고 하면 포레스튼 입학시험을 치르기 전부터 시작해 일기장의 마지막까지다.
레이먼이 다시 일기장을 펼쳤다.
마탑에 다녀온 이후, 읽을 수 있게 된 일기장 마지막 장의 한 문장.
[ 결국 왕을 만들 수는 없었다. ]즉, 이 일기장을 쓴 레이먼 역시 왕을 만들어야 했다는 소리다. 그게 내 앞에 뜬 빌어먹을 시스템 때문인지 혹은 다른 이유 때문인지는 알 수 없지만.
쿠우웅-!! 그때였다.
잠시 생각에 잠겨있던 레이먼의 옆으로 무언가 빠르게 날아와 바닥에 박혔다. 자욱하게 퍼진 흙먼지 때문에 무엇인지 제대로 볼 수 없었으나 단순한 힘이 아닌 건 분명했다.
‘영법사의 습격인가!’
설마 현 왕의 병을 낫게 한 게 유타라는 사실을 알고-!
레이먼이 급하게 벤치에서 일어났다. 흙먼지가 점차 가라앉자 보이는 건 바닥에 널브러진 아드리안이었다.
“아드리안?”
“레이먼, 네 동생 생각보다 강하잖아?”
검집에 날이 무딘 검을 집어넣으며 유타가 걸어왔다. 아무래도 대련의 승자가 정해진 모양이었다. 유타가 활짝 웃는 얼굴로 레이먼이 앉아 있던 벤치 옆자리에 앉은 채, 쓰러진 아드리안을 가리켰다.
“혹시 아드리안도 따로 검술을 익힌 적이 있어? 너랑 연습한 게 다라고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검을 잘 다뤄서 말이야.”
잘 다루는 애를 저렇게 날려 먹어?
레이먼이 답했다.
“가문에서도, 학교에서도 배웠지. 쟤 나름 유망주야. 크리스 선배도 데려가고 싶어 하는데…저 덩치를 어떻게 저렇게 날린 거냐?”
“실력으로.”
유타가 싱긋 웃었다.
예전에는 검술 실력이 나랑 엇비슷했는데 언제부터인가 검술만큼은 레이먼도 유타를 건드릴 수 없게 되었다.
멀리서 두 사람의 대련을 지켜보던 오닉스도 어느새 다가와 뒤편 벤치에 드러누웠다.
“그 정도 실력이면 차라리 마법 기사단에 들어가는 게 낫지 않아?”
그 말에 유타는 ‘어차피 왕족은 전쟁이 나면 무조건 전쟁에 참전해야 해. 그렇다면 굳이 기사단에 들어가 행정 일을 소홀히 할 필요는 없지.’라고 대꾸했다.
레이먼도 이에 어느 정도 동의했다.
‘확실히 기사단에 들어가면 왕실에서 세력을 만들기가 어렵지.’
무력을 사용하는 단체답게 눈에 보이는 공을 세우긴 쉽다. 국경 지대 근처 소규모 전쟁에서 승리하거나, 종종 등장하는 마물들 중 이름난 놈을 해치우기만 해도 왕국민들의 지지와 세력은 자연스레 따라오니까. 하지만 그만큼 왕실에 머물기는 쉽지 않다. 게다가 왕족은 자원하기만 하면 언제든 마물을 쓰러뜨릴 기회가 생기니 굳이 기사단에 들어갈 필요가 없는 것이다.
비슷한 이유로 매너스 역시 왕실 행정 마법사로 왕성에 머무는 거였고.
흙먼지 더미 속에서 일어난 아드리안이 어느새 다시 유타 앞에 섰다. 거의 울 것 같은 얼굴이었다.
‘나한테 졌을 때는 저런 표정을 짓지는 않았던 것 같은데.’
“다시 부탁드립니다.”
“어떤 거? 대련?”
“예. 부탁드립니다.”
이번엔 아드리안이 정중히 고개를 숙였다. 애초에 이런 부탁을 거절할 성격이 아니었던 유타는 활짝 웃으며 흔쾌히 제안을 받아들였다.
“강해진다는 건 좋은 거지.”
“감사합니다.”
아드리안은 다시 유타를 따라나섰고, 두 사람은 벤치 앞에 마련된 훈련장 원 안에 다시 마주 섰다. 유타가 검집에서 검을 뽑았고 아드리안은 검의 손잡이를 양손으로 꽉 쥐었다.
유타는 곧바로 대련을 시작하는 대신 아드리안에게 짧은 질문을 던졌다.
“아드리안, 너는 나중에 얼마나 강해지고 싶어?”
“할 수 있는 최대한입니다.”
“왜?”
“왜냐고 물으시는 이유를 모르겠습니다. 스플린 가문은 원래부터 마법 명가였습니다. 그 가문에서 태어나 재능을 인정받았으니 갈고닦는 겁니다.”
검을 쥔 아드리안의 손에 힘이 빠졌다. 그는 유타가 그와 잠시 대화를 나누고 싶어 한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아드리안은 자신이 강해지고 싶은 이유에 대해 깊이 생각해본 적은 없었다. 강한 가문에서 태어났고, 강했다. 그러니 타고난 재능을 갈고닦는 건 당연한 이치였다.
“그게 다야? 형을 따라잡고 싶다거나 하진 않았어?”
“형님은…….”
아드리안이 벤치에 앉아 오닉스와 뭔가 대화를 나누고 있는 레이먼을 곁눈질했다. 무슨 대화를 하는지 들리지는 않았지만 분명 자신이 이해하기도 어려운 마법 지식이나 새로운 개념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을 것이었다.
‘찬장 속에 내 간식 네가 처먹었지.’
‘아니야.’
‘솔직하게 말하면 용서해줌.’
‘정확히 말하면 찬장 속 유리병 안에 담긴 초코칩 쿠키를 몇 개 주워 먹은 거지.’
‘이 망할 놈이!!’
두 사람의 대화가 전혀 들리지 않는 아드리안은 그렇게 착각을 한 채 다시 고개를 돌렸다.
“물론 형님을 따라잡기 위해 노력할 겁니다. 그렇게 하고 있고요. 하지만 정말 따라잡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재능을 타고난 자신과 형님은 달랐다. 이런 가문에서 태어나 전혀 재능이 없는 삶을 살아가는 건 어떤 기분일까. 아드리안은 그의 기분을 평생 모를 것이다. 하지만 만약 자신이 그랬다면 아드리안은 분명 절망에 빠져 아무것도 시도하지 못했을 것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하지만 형님은 그러지 않았다.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해냈고 지금에선 자신이 차마 닿을 수도 없을 정도로 높이 올라섰다. 겉으로는 도와주는 척, 사실 장남을 무시하고 부끄러워했던 아버지로부터도 인정받았다.
“재능이 없어도 노력하는 사람을 따라잡을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게 형님과 저의 차이점입니다.”
“흠… 그래? 그럼 아드리안, 네 검이 날 이길 수 없는 이유를 알려줄까?”
유타가 싱긋 웃었다.
“강한 게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거야.”
“그게 무슨 뜻인가요?”
“훈련하면 강해진다. 연습하면 강해진다. 노력하면 강해진다. 이런 마음으로 훈련을 하는 자는 그 이상 강해지지 못해.”
“…….”
“그리고 그 정도 실력으로 네 형, 레이먼은 지킬 수 없어. 네가 보호를 받겠지.”
유타의 검이 다시 검집으로 돌아갔다.
“나는 레이먼을 더 높은 곳에 데려갈 거야. 그 길이 순탄치는 않을 거고. 목숨을 위협도 받겠지. 그러니 네가 강해져라, 아드리안. 연습하고 훈련해서 강해지는 게 아니라 어떤 수단을 써서라도 강해져.”
“…….”
영법사가 현 왕을 건드렸다.
이 상황이 의미하는 바는 아주 컸다.
왕실 내부에 반역자가 존재한다는 뜻이었으며, 왕좌를 노리는 사람들 간의 암묵적인 전쟁이 이미 선포되었다는 뜻이다. 그가 포레스튼을 졸업하고 왕성에 들어갈 때쯤이면 이미 상황은 마무리 단계에 들어섰거나 지금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가 되었을 가능성이 컸다.
가능하면 천천히 모든 일을 진행하고 싶었지만 이젠 그럴 수 없게 되었다.
빛의 대정령과 계약까지 마친 이상 유타에게 더 이상 거리낄 것은 없었다. 그는 더욱 앞으로 나설 것이며 누군가의 표적이 될 것이고 그건 제 옆에 있는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레이먼 역시… 그렇게 될 것이다. 그러니 레이먼을 지킬 수 있을 만큼 강한 사람이 필요했다.
“아드리안. 나는 네 형을 이용하는 거야. 내 사람을 지키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레이먼을 불구덩이까지 데리고 들어가겠지. 필요하다면 나와 목숨을 걸고 싸우길 바랄 거야. 그게 나와 레이먼의 관계다.”
나의 비밀을 알고 있으니 끝까지 데리고 가야지. 그게 불구덩이라 해도.
그러니 자신과 달리 조건 없이 레이먼을 지킬 존재가 필요했다.
유타는 아드리안이 그런 존재가 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니까 넌 네 형을 지킬 수 있을 만큼 강해져야 해. 겨우 이 정도 검에 흙먼지에 둘러싸여선 안 된다는 소리야.”
“……예. 명심하겠습니다.”
“그럼 됐어. 음, 대련은 다음으로 미룰까? 레이먼이랑 오닉스도 이제 슬슬 자리에서 일어날 것 같아서 말이지.”
유타가 레이먼과 오닉스가 한창 서로의 목을 조르고 있는 꼴을 가리켰고 깜짝 놀란 아드리안이 “네!!” 우렁차게 대답을 날린 뒤, 레이먼을 구하기 위해 달려갔다.
“형님!!!!”
“쿠키!!! 내 쿠키를!!”
“켁켁-!!!”
***
중간고사 결과가 나왔다. 레이먼은 어차피 바뀌지 않을 제 등수에는 별다른 흥미가 없었고 리 삼인방이 어떤 결과를 받았을지가 가장 궁금했다. 중간 성적 발표가 끝나고 학생들이 휴게실에 모여 시끄럽게 떠드는 시간. 판리, 말리, 수리가 모두 사색이 된 얼굴로 요란한 소음을 내며 휴게실에 도착했다.
“레!”
“이!”
“먼!”
“몇 등이야?”
레이먼은 당장 본론부터 꺼냈고, 리 삼인방은 말없이 성적표를 레이먼에게 들이밀었다. 중간 성적 같은 경우는 과목별 등수만 나왔기 때문에 총 등수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과목별 등수를 평균 내면 대충 몇 등에 있는지는 알 수 있었고, 놀랍지 않게도 리 삼인방 모두 10등 안에 들어 있었다.
‘그놈의 저주가 세 명 성적을 망쳐놨었네. 뭐, 지들 자업자득이지.’
“잘했네.”
“레이먼, 네 덕분이야!!”
“유타도!!”
“정말 고마워!!”
그들은 레이먼의 목을 붙들고 징징 짜기 시작했다. 덕분에 레이먼은 귀청이 떨어져 나갈 것 같았다. 세 명이 모두 10등 안에 들어간 덕분에 기존 8, 9, 10등이 뒤로 밀려났고 그 세 명 모두 휴게실에서 고래고래 고함을 치기 시작했으며 리 삼인방에 와 시비를 거는 지경에 이르렀다. 삼인방은 그들의 시비를 곧이곧대로 받아들였고 자신을 가르쳐준 게 레이먼과 유타라고 정직하게 실토했다.
그리고 그날 이후, 포레스튼에는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4학년 레이먼 반 스플린은 자기 공부도 잘하지만! 시험을 족집게로 가르치는 1타 강사다!’
그리고 그 소문은 널리 퍼지고 퍼져 자식을 포레스튼에 입학시키고 싶어 하는 사교계의 부인들에게도 전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