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ill Make You a King as a Possessor RAW novel - Chapter (14)
빙의자가 왕으로 만들어 드립니다-14화(14/275)
‘근데 걔, 분명히 빡쳤었지.’
아무리 생각해도 빡쳤어. 복도를 가로지르며 레이먼은 생각했다.
조금 전 식당. 맞은편에 앉아 있던 레이먼의 귓가에 거짓 간파 특성이 발동되었다는 음성이 들렸다.
[ 눈치로 거짓 간파 특성을 발동합니다. ] [ 유타 스테디움 스턴은 다비 다윗의 조언에 분노합니다. ] [ – 유타 스테디움 스턴의 속마음 – 멍청한새끼멍청한새끼멍청한새끼저런놈이작위를잇게된다면이나라는패망하겠어최악이야저런놈이어째서나와같은클래스를쓰고있는거지? ]이 상황에서 눈치도 생각도 있는 놈이라면… 딱 한 가지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게다가, 이미 받은 힌트도 있었다. 그 힌트와 지금 상황을 꿰맞춘다면……
레이먼이 복도에 멈춰 섰다. 이 정보를 이용해서 어떤 스탠스를 취할지 잘 생각해야 한다.
애초에 유타 자신이 대외적으로 이를 드러내지 않은 것은 ‘그’ 비밀을 알리지 않고 싶어 한다는 걸 의미했다. 그러니 여태 비밀이겠지.
게다가 이 비밀은 치명적이다. 알려지는 순간 왕위 쟁탈 경쟁에서 밀려나는 수준이 아니라 참가조차 불가능하게 되니까. 버려진 자식이라는 소문이나 적자가 아니라는 것과 같은 부차적인 문제와는 질적으로 다르다.
‘옹졸하고 고루하기 짝이 없는 제도에 귀속된 왕국이니.’
그러나 제도는 제도. 노선은 갈아타는 편이 좋으려나.
고민되는 마음에 다시 한번 상태창을 살펴보자,
[ 왕 후보 선별 완료 ] [ 왕 후보 :1. ???
2. ??? ] [ [예견] 유타 스테디움 스턴은 가장 ‘왕에 필요한’ 자질을 가지고 있다. ]
아직 유타가 나만의 왕 후보로 선별된 것도 아니고, 왕 후보들은 포레스튼에 그 애 말고도 여러 명을 고를 수 있는 것 같으니. 차라리 왕족 중에서도 왕의 자질을 갖춘 선배를 노리는 게 편하려나.
‘그래, 그게 현명하지.’
하지만 그렇게 쉽게 갈아타기엔 ‘예견’이 알려준 정보가 마음에 걸렸다. 왕에 필요한 자질을 가진 왕 후보가 자신의 입맛대로 고를 수 있을 만큼 많을 거라고 단정 지을 수도 없다. 차라리 왕 후보를 최대한 채울 수 있는 만큼 채우고 그중에 한 명을 왕으로 만드는 게 편할 수도 있다. 저 슬롯이 한 칸이 아니라는 것 자체가 일종의 힌트가 되니까.
‘…그건 그렇고 그게 비밀일 줄은 생각도 못 했네.’
하지만 말이 안 되진 않았다. 이런 왕위 계승 제도라면 당연히 이런 상황이 만들어질 수밖에 없으니까. 불합리한 제도 아래 인간이 가만히 숨어 살기만 했더라면 발전 따윈 없었을 테니. 후. 좋아. 알겠어. 자자, 할 수 있어 레이먼. 넌 이런 상황에서 몇 번이나 살아남은 놈이잖아.
찰싹찰싹. 양 볼을 몇 번이나 때린 레이먼이 그제야 눈앞의 흰색 문을 노크했다. 안에서 ‘들어와’라는 부드러운 목소리가 들렸다.
***
“다비 다윗을 어떻게 생각해?”
“다비 다윗?”
유타의 생활관 방. 자신의 방과 그리 다르지 않은 방의 원형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레이먼과 유타가 마주 보고 앉아 있었다. 테이블 위에는 통밀 비스킷과 홍차가 준비되어 있었다. 그가 준비한 찻잔에 손가락을 건 채 레이먼이 고개를 옆으로 기울이며 답했다.
“돈이 많은… 멍청이?”
“푸핫.”
“왜?”
“왜 그렇게 생각하는데?”
“음. 식견은 짧은데 말이 많으니 그런 놈을 멍청하다는 말 외에 표현할 수 있는 길이 달리 없으니까.”
“레이먼은 참 옳은 말만 하는구나.”
“내가 옳은 말만 한다고?”
“응.”
“…그건 아니지만, 그놈이 멍청한 건 누구나 알 수 있는 사실이지. 네 앞에서 왕위 계승이니 재능 차이니 그런 말을 늘어놓았잖아.”
그 말에 유타가 눈을 가느스름하게 치떴다.
“그게 왜?”
“왜냐니.”
레이먼이 별일 아니라는 듯 미소를 머금고 어깨를 으쓱였다.
“상식적으로 버려진 자식이라고 소문난 왕족 앞에서 그런 말을 하는 게 너는 괜찮다고 생각해? 그 상황에서 네게 그런 말을 한다는 건 대놓고 빌붙겠다는 의미랑 마찬가지라고. 불쾌할 뿐이야.”
레이먼의 말에 무슨 의미냐는 듯 의아한 표정이었던 유타가 동의했다.
“하긴.”
“아마 다른 왕자들과는 친해질 연결고리가 보이지 않으니 네게 매달리는 거겠지. 너무 눈에 보이잖아. 그러니 멍청한 거야.”
“그렇구나.”
“그런데 하나만 물어도 되나?”
유타가 고갤 끄덕였다.
“네가 버려진 자식이라는 소문 말이야? 그거 왜 난 거야?”
레이먼은 이 소문에 위화감을 느끼고 있었다. 애초에 유타가 왕족이라는 건 그의 성씨만 알아도 바로 드러나는 비밀이었다. 게다가 올해 입학한 왕족은 유타뿐이었다. 그러니 그가 버려진 왕자로 특정 지어지는 건 피할 수 없는 상황. 하지만 이상하지 않은가.
이 소문을 알고 있는 그 누구도 성씨까지 유지한 채, 별궁에 사는 그가 어째서 버려진 왕자로 소문이 파다한지 알지 못한다.
그저 그의 어머니가 황후가 아니라는 점이 근원지일 거라 유추할 뿐이다. 그러나 레이먼은 그게 버려진 자식이 될 이유로는 부족하다고 여겼다.
“네가 황후마마의 아들이 아니라는 건 모두가 알고 있잖아. 설마 그게 네가 버려진 이유라는 건 아니지?”
“그게 이유가 아니라는 근거는?”
“지금 왕도 그러니까. 그런 왕이 널 내치면 자기 정당성에 문제를 삼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아.”
“…넌 역시 옳은 말만 하는구나?”
“아니라니까.”
잠깐의 침묵. 낮은 목소리가 침묵을 깬다.
“버려진 왕자…… 그건 우리 어머니가 낸 소문이야.”
“네 어머니가?”
띠리리링-
“수업 시작종이야. 이제 슬 돌아가야 하지 않아?”
“그러네.”
때마침 울린 수업의 시작을 알리는 종소리가 두 사람의 입을 틀어막았다. 드륵. 레이먼이 의자를 뒤로 빼며 자리에서 먼저 일어났다. 다음 시간은 마법 역사 시간이네. 너한테 도움이 되겠다. 안 그래? 장난이 살짝 섞인 레이먼의 목소리와 냉담한 표정이 어울리진 않았다. 그리 말하며 먼저 등을 돌린 레이먼의 등을 바라보며 유타가 피식 웃음을 흘렸다.
***
마법 역사 수업은 레이먼이 가장 싫어하는 과목이었다. 이미 다 알고 있는 내용을 다시 한번 머리에 꾸역꾸역 집어넣는 시간 자체가 낭비 같았다. 그래서 레이먼은 그 시간마다 홀로 다른 책을 읽거나 완드로 장난을 치곤 했는데, 오늘은 오닉스를 닮은 종이 인형 만들기였다.
‘짜잔, 인형.’
‘……뭐하냐.’
‘종이 오닉스 만들기.’
경멸의 시선이 레이먼에게 향했다. 오닉스의 그런 눈빛에도 불구하고, 레이먼은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속삭였다.
‘……짜잔. 이건 못생긴 오닉스 인형.’
‘……뒤질래?’
오닉스가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레이먼은 하하하- 웃으며 주위를 한 번 둘러보며 말했다.
‘근데 다른 애들, 오늘따라 수업을 안 듣네? 왜 그러지?’
레이먼이야 수업을 듣지 않고도 성적을 잘 받을 자신이 있었다. 그러나 똥과 방귀나 떠들어대는 주변 1학년들은 달랐다. 즉, 이놈들은 공부라는 걸 해야 한다는 소리였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다들 어딘가 상기된 얼굴로 처음 보는 책자에 얼굴을 파묻고 있었다. 대체 뭔데 이러는 거야?
‘오닉스, 뭐 좀 알고 있는 거 있어?’
‘알아도 말 안 해줄 거다.’
‘에이. 짜잔, 이건 오닉스 잘생긴 버전.’
‘……그만.’
‘안 가르쳐주면 계속 만들 거야. 이건 오닉스 노인-.’
레이먼의 책상 위가 오닉스를 닮은 종이 인형으로 가득 찼다. 교수는 다가오고 있었고 오닉스는 제 얼굴을 붉게 물들인 채, 레이먼의 발을 콱 밟으며 책자 하나를 던져줬다.
‘당장 없애!’
‘감사.’
어디 보자. 노란 종이 위에는 검은 잉크로 제목이 정갈하게 인쇄되어 있었다.
<**신학기! 드디어 포레스튼 클럽 하우스 오픈**>
– 신입생 여러분들의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 클럽 소개는 수업이 오후 4시부터 포레스튼 홀에서 진행됩니다
– 청춘은 클럽에서 시작해서 클럽으로 끝났다! 당신들의 형제, 자매, 남매를 이곳에서!
“포레스튼 클럽 하우스…?”
“왜 우리가 마차 타고 올 때 봤던 거. 구름 다이빙 클럽이랑 약초 클럽.”
“아하, 그거.”
하긴 아카데미면 이런 활동도 하겠지. 포레스튼도 일단은 마법 아카데미니까. 하지만 아까 예시로 나온 바보 같은 클럽은 별로 들고 싶은 생각이 없는데.
“클럽 하우스는 뭔데?”
“그 클럽에 들어간 학생들만 이용할 수 있는 하우스잖아. 너… 포레스튼 입학 요강 안 읽어봤냐?”
“어.”
귀찮게 왜 읽어. 오닉스가 질린다는 얼굴로 그를 바라보았다.
“도서관의 서적들이야 의미도 있고 질적으로 괜찮지만 입학 요강 따위를 기억해서 무슨 의미가 있어? 어차피 너 같은 놈들이 옆에서 다 알려주잖아.”
“너 진짜 뒤질래?”
“거기 두 사람!”
귀를 찢을 것 같은 날카로운 목소리가 들렸다. 슬쩍 고개를 들자 두 사람을 노려보는 교수님의 눈빛이 미간 사이에 정통으로 꽂혔다.
느릿느릿 인형을 치우는 레이먼을 오닉스가 노려보며 중얼댔다.
‘너 진짜 죽인다.’
실제로 오닉스는 남은 시간 내내 레이먼의 발등을 밟아댔다. 발등이 퉁퉁 부어오를 지경이었다. 하지만 레이먼은 무통 마법을 발에 걸어뒀기에 실제로 아프진 않았고, 대신 아픈 척 가끔 아아! 소릴 내며 시간을 떼웠다.
수업이 끝날 때쯤에야 오닉스는 레이먼에게 좀 미안했는지 뾰로통하게 입술을 내밀고선 물었다.
“너 안 아파?”
“아파.”
“…그럼 왜 밟히고만 있는 건데.”
“그냥. 얼른 홀이나 가자. 궁금해.”
“하아. 가끔 네 행동을 이해할 수가 없어.”
“가끔?”
“아니. 매일이다, 이 괴짜야.”
오닉스와 레이먼은 사이좋게 중앙 홀에 도착했다. 중앙 홀은 클럽 소개 및 오픈식에 맞춰 꾸며져 있었다. 아치형 지붕 아래 드리운 그림자 밑으로는 제작 관련 클럽의 물건들이 장식되어 있었다. 약물 제조 클럽의 ‘사랑의 묘약’도 전시되어 있었다.
약물통은 비어있었는데, 그 밑에 짧게 – 작년 사건으로 인해 전시 자체 중단, 다만 이런 것도 만든다는 의미로 장식은 해둠- 이라는 부차적인 설명이 적혀 있었다.
홀 내부에는 신입생들이 모여 있었다. 클래스별로 모여 있는 애들도 있었고 몇몇은 원래 알고 지내던 가문들끼리, 몇몇은 평민들끼리 삼삼오오 모여 있기도 했다. 오닉스와 레이먼은 저번에 앉았던 식탁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맞은편에는 유타와 그의 기사가 앉아 있었다.
“어서 와.”
유타가 웃으며 두 사람을 반겼다. 짧게 인사를 나누자마자 클럽 소개가 시작되었다. 제일 먼저 학생회였다. 학생회의 회장은 4학년 4왕자 서머셋이었다.
“….오, 잘생겼네.”
오닉스가 무심코 내뱉은 감탄사에 입을 다물었다. 하지만 레이먼도 이를 부정하진 않았다.
붉은 눈에 잘 어울리는 시원시원한 이목구비. 레이먼이 인정하듯 고갤 끄덕였다.
“뭐, 그렇네.”
유타는 여전히 희미한 미소를 입가에 지닌 채 서머셋의 환영 인사와 학생회에 관한 설명을 잠자코 듣고 있었다.
서머셋 스테디움 스턴의 인사가 끝난 뒤에는 가입 인원수가 많은 클럽부터 줄줄이 소개를 시작했다.
– 우리 구름 다이빙 클럽은 포레스튼 아카데미를 자유롭게 출입하는 걸 허락받은 유일한 클럽이야! 우린 주로 옥상 첨탑에서 구름으로 뛰어내리지! 위험할 수도 있지만 그 스릴을 견뎌낸 학생만이 포레스튼의 용맹한 학생이 될 수 있는 거라고.
– 우린 러브레터 대필 클럽이야. 축복 마법 수업의 우등생들로만 이루어진 클럽이지. 우리 클럽에 들어오는 모든 학생은 전원 연애에 성공했어. 사랑에 목마른 동지들아! 여기서 너희들의 짝을 찾고, 다른 사람들을 위해 큐피드가 되어보는 건 어때?!
– 약물 제조 클럽은 포레스튼 설립 이래 가장 정통성이 있는 클럽으로…
– 우리 게임 클럽은….
다양한 클럽이 지나갔지만 딱히 인상적인 건 없었다. 레이먼은 심드렁한 얼굴로 남은 클럽의 수를 셌다.
‘클럽 자체에 흥미는 없지만…학생회는 들어봄 직해. 무엇보다 내가 서머셋 스테디움 스턴과 이어질 수 있는 기회는 그쪽뿐이잖아.’
스턴 왕족. 4왕자 서머셋 스테디움 스턴.
현왕을 빼다 박은 흑발에 신선한 피처럼 붉은 눈동자. 그 능력을 인정받아 엘리트들이 모인 포레스튼에서도 이례적으로 2학년부터 회장직에 올랐던 서머셋이다. 왕족이니 회장으로 뽑혔다고 할 수 있었으나 여태 포레스튼에 왕족이라도 2학년부터 회장에 올랐던 적은 없었다.
아, 4왕자의 바로 위의 형님인 3왕자는 제외하고. 그쪽도 워낙 대단했으니.
“뭐 들어갈 거야?”
레이먼이 오닉스의 어깨를 툭 치며 물었다.
“딱히. 난 클럽에 흥미 없어.”
“유타 너는?”
“나는 고민 중이야. 학생회도 나쁘지 않은 것 같긴 해. 왕자 대부분 학생회 회장직은 오르고 졸업했으니까.”
하긴. 포레스튼 클럽의 중심은 누가 봐도 학생회였다.
유타의 말에 레이먼 역시 학생회로 마음을 굳힌 채, 마지막 클럽 소개가 시작되었다.
검은 망토를 눌러 쓴 기묘한 분위기의 학생이 단상 위에 올랐다. 쿵, 쿵. 마이크를 두어 번 친 뒤 그는 자신을 ‘예언 클럽’의 클럽장이라 소개했다.
‘예언 클럽?’
그가 더듬더듬 말했다. 병은 아닌 듯했고 그저 무대가 긴장된 모양이었다.
“총 4명의 학생이 활동 중이며 클럽… 홍보 활동으로, 한 가지 예언을 하며 순서를 마치고자 합니다.”
…예언이라.
‘별 이상한 말을 하진 않겠지?’
보통 막장은 이런 모임에서 시작되니까. 레이먼이 헌터 시절에 자주 사용하던 방법이기도 했다. 아무 연관도 없는 놈들을 섭외해서 그럴듯한 조직을 형성한다. 그들을 통해 뒷소문을 만들어 목표를 협박하거나 곤란하게 만드는 거다. 그럼 굳이 직접 나서지 않아도 정황을 자신에게 유리하게 조종할 수 있다.
‘하지만 여긴 그냥 아카데미니까. 그런 일은…’
“서머셋 스테디움 스턴은 같은 왕족의 손에 의해 죽는다.”
…오. 그런 일이 벌어지는구나.
레이먼이 양손으로 얼굴을 쓸어내리며 작게 중얼댔다. 젠장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