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ill Make You a King as a Possessor RAW novel - Chapter (141)
빙의자가 왕으로 만들어 드립니다-141화(141/275)
“마셔라.”
“…네.”
홍차를 이렇게 무서운 얼굴로 주는 사람은 처음이다. 어색한 자리에서 레이먼은 찻잔을 손에 쥐었다.
‘어색해.’
레이먼이 클레임을 따라 도착한 곳은 다름 아닌 클레임의 본가였다.
포레스튼의 교수 중에선 학생들과 마찬가지로 교직원 숙소에서 지내는 이들이 많았는데,고클레임도 그중 한 명이었다. 그래서인지 학생들은 모두 클레임이 결혼을 하지 않고 혼자 살고 있다고 생각했었다. 그건 레이먼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렇게 작은 아이가 있으면 보통 숙소 생활은 잘 안 하지 않나?
레이먼이 슬쩍 아이 쪽으로 곁눈질했다. 별안간 아이의 똘망한 눈과 마주쳐버린 레이먼은 눈을 피하지 못한 채 아이를 가만 바라보았고 호기심 가득한 아이는 레이먼에게 다시 질문했다.
“아저씨가 학생이에요?”
아저씨라니. 조금 충격적이긴 했지만 레이먼은 별수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 애가 7살 정도면 나는 아저씨가 맞긴 하지.
“응, 너희 아빠가 가르치는 학생이야.”
“우리 아빠 어때요? 거기서도 막 엄청 상냥하고 잘 가르쳐주세요?”
“멜리아, 그건 물을 필요 없어.”
클레임 교수님이 집에서는 좋은 아빠인 모양이군. 대충 상황을 파악할 레이먼이 활짝 웃었다. 그가 말했다.
“당연하지. 우리 포레스튼에서 가장 상냥하고 친절하고 학생들의 말을 잘 들어주시는 데다가 점수까지 후한 교수님을 고르라고 하면 언제나 클레임 교수님이 1등으로 뽑힌단다.”
눈도 깜빡하지 않고 거짓말하는 모습에 클레임은 놀란 표정을 지었다.
“정말요? 우리 아빠가요?”
“그럼! 너희 아빠지!”
레이먼은 이 순간 아이의 동심을 지켜줘야겠다고 생각했을 뿐이지만.
클레임은 몇 번 헛기침을 한 뒤, 멜리아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멜리아, 곧 오빠와 엄마가 돌아올 테니 거실에 가 있겠니? 아빠가 이 아저씨와 할 얘기가 있구나.”
“조금만 더 놀면 안 돼요?”
“멜리아.”
“쳇, 알았어요! 음…… 근데, 아빠!”
“응?”
멜리아는 잠시 레이먼과 클레임을 번갈아 바라본 뒤, 그의 귓가에 대고 무언가 속삭였다. 목소리가 워낙 작아 무슨 말을 하는지는 듣지 못했지만 클레임의 표정이 악령 들린 영화 속 주인공처럼 변한 걸 보면 그리 좋은 말은 아닌 건 분명했다.
“안 돼요?”
“그래. 안 돼.”
“치! 됐어요! 엄마한테 물어봐야지!”
멜리아는 그대로 방을 나섰고 어느새 방에는 클레임과 레이먼 둘만 어색하게 남았다. 레이먼이 물꼬를 트기도 전에 클레임이 짜증 난다는 표정으로 주름진 미간 사이를 꾹꾹 누르며 질문했다.
“여긴 어떻게 온 거지?”
“창고로 왔는데요.”
“그걸 묻는 게 아니지 않나.”
“그게-.”
레이먼은 결국 클레임에게 포레스튼에 돌고 있는 그에 대한 괴담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넌 혹시 내가 위험할까 싶어서 구하기 위해 여기까지 오게 됐다?”
“예.”
“정말 구하려고 한 게 맞나?”
“그렇게 말씀하시면… 사실 요즘 취재거리가 다 떨어져서요. 겸사겸사였죠.”
물론 유령 들린 깃펜이 탐나서 교무실에 몰래 방문했다는 내용을 쏙 빼고.
덧붙인 게 있다면 최근 들은 클레임 교수의 괴담에 찜찜한 부분이 있어 혹시 모를 상황의 경우 그를 ‘구하기’ 위해 이곳에 들어왔다는 것 정도였다.
거짓은 없었지만 그렇다고 바른대로 말한 건 아니었다.
클레임이 의심의 눈초리로 그를 노려보았다.
“그 괴담은 네가 퍼뜨린 거냐?”
레이먼이 극구 부인하는 듯 손을 내저었다.
“설마요. 대충은 알고 있었지만 그런 찌라시를 만들어서 퍼뜨리는 데는 흥미 없습니다. 명색이 밀리포레의 편집장인데요. 그저 얼마 전에 애들한테 들었던 걸 기억해뒀던 것뿐입니다.”
“왜?”
“예?”
“쓸데없는 헛소문을 왜 기억하냔 말이다.”
“음. 제가 머리가 좋아서?”
“쯧.”
“결과적으로 교수님이 유령에 홀리거나 위험에 처한 건 아니라서 다행입니다.”
레이먼이 가짜로 싱긋 웃었다.
“결혼한 건 왜 숨기셨어요?”
“숨긴 적 없다.”
“그런데 왜 아무도 모르죠?”
“아무도 묻지 않았다.”
“아하.”
맞는 말이었다. 저기압에 늘 인상을 찌푸리고 다니는 클레임이 결혼을 한 데다가 알콩달콩 가정을 꾸리고 저렇게 귀여운 딸까지 낳았을 거라고 누가 생각했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저 험악한 얼굴에 이런 딸이 태어났을 거라고는 생각하기 어려울-.
“멜리아는 내 아내를 많이 닮았어.”
“제 생각을 읽으셨어요?”
클레임은 “모두 그렇게 생각하니까.”라고 짧게 말한 뒤, 소파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그만 돌아가라. 여긴 우리 집이고 넌 내가 초대한 손님이 아니다.”
레이먼도 그럴 생각이었다. 여기 더 있어 봤자 클레임이 깃펜을 줄 것 같지도 않았고 그에게 도움이 필요한 것처럼 보이지도 않았다.
“그러고 보니 클레임 교수님은 왜 숙소 생활을 하십니까? 그냥 이쪽에서 사시면 되지 않나요?”
게다가 창고에 포털을 만들 정도면 다른 곳에 따로 장소를 마련하는 게 오가기에도 편할 텐데.
결혼한 교수님들은 대부분 본집에서 생활했다. 수도 근처에 집을 마련해두면 출퇴근 시간도 그리 길지 않았고 홀로 생활하는 외로움 가득한 숙소보다는 가족이 기다리는 집이 훨씬 따뜻했으니까. 하지만 클레임은 정반대였다. 물론, 창고에 그런 문이 있는 걸로 봐선 자주 가족과 왕래하는 것 같은데, 이럴 거면 같이 사는 게 낫지 않나?
“아들이… 나를 닮았어.”
“아들이라면 조금 전에 말한 멜리아의 오빠요? 멜리아보다 나이가 많으면… 10살 정도?”
“14살이야.”
“나이가 꽤 있네요.”
클레임 교수님은 30대 초중반으로 보였는데, 조금 더 나이가 있었나?
“그게 왜요?”
“네 개의 봄이 왔으니 성격이 더러워.”
“……네 개의 봄.”
아, 사춘기.
‘여기는 말을 이상하게 어렵게 한다니까.’
클레임을 닮은 사춘기를 맞이한 중1 아들.
‘그러니까 아들이 성내는 게 무서워서 숙소 생활을 시작했다 이거지?’
생각해 보면 클레임 교수님이 숙소 생활을 한다는 이야기가 퍼진 건 몇 개월 전. 괴담이 본격적으로 퍼진 것 역시 얼마 되지 않은 걸 보아 그전까진 집에서 출퇴근을 하신 게 맞나보네. 그 이후엔 아들이 아빠가 싫다고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대서 포레스튼의 숙소로 도망친 건가?
‘클레임은 단호한 아버지일 줄 알았는데. 그런 건 아닌 모양이네.’
궁금하다.
쩔쩔매는 클레임 교수의 얼굴이 궁금하다.
포레스튼에선 냉동인간처럼 굳은 얼굴로 돌아다니는 클레임 교수의 망가진 얼굴을 볼 수 있는 기회가 눈앞에 있다니!
레이먼은 호기심에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 불길한 기운을 감지했는지 클레임은 레이먼의 등을 밀었다.
“그러니 얼른 돌아가. 우리 가족을 굳이-.”
“어머, 여보. 손님이에요?”
“어머니! 안녕하십니까.”
“레이먼!”
“레이먼이라고요? 그럼 학생이 요즘 화제의 그 학생이군요?”
“화제요?”
솜사탕처럼 부드러운 분홍색을 가득 머금은 길고 탐스러운 머리카락과 푸른 눈동자. 모습을 드러낸 것은 클레임의 낮은 목소리와는 전혀 다른 명랑하고 밝은 목소리의 여성이었다. 그녀는 클레임을 여보라고 불렀는데, 그런 그녀의 뒤로 그녀의 키보다 큰 소년 한 명이 서 있었다. 소년의 다리에는 조금 전 방을 나섰던 멜리아도 함께 매달려 있었다.
“곧 돌아갈 학생이야. 인사하지 않아도 돼.”
“학생이 여기까지 왔는데 왜 벌써 쫓아내요. 저도 묻고 싶은 게 많다구요. 레이먼 학생, 저녁 식사는 했나요? 괜찮으면 우리 집에서 저녁이라도 먹고 가지 않겠어요?”
이미 먹긴 했지만 이 기회를 놓칠 수 없지.
“저야 좋죠.”
레이먼이 생긋 웃었다. 그녀는 그 웃음에 화답하듯 활짝 웃었다.
“그럼 1층으로 함께 가요. 저녁은 늘 1층에서 먹는답니다.”
“리사.”
“클레임, 클레임은 멜리아랑 이엔을 데리고 내려와요. 그리고 이엔의 과외 선생님은 잘랐어요. 실력이 영 좋지 않더라고요.”
“…그래.”
클레임을 된통 혼내는 리사의 곁에서 레이먼은 그가 당하는 기묘한 광경을 모두 지켜보았다. 클레임이 쩔쩔매는 리사는 말하는 모습이 통통 튀고 귀여운 사람이었다. 표정도 굉장히 다채로웠는데, 식사가 한참 무르익을 무렵 그녀는 최근에 학부모들 사이에서 파다하게 퍼진 일타강사에 대한 소문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족집게 선생님이요?”
“네! 그 학생과 함께 조금만 공부해도 성적이 쑥쑥 오른다는 소문이 돌고 있어요! 그 학생이 바로-.”
“저라는 거군요.”
“그렇답니다. 레이먼 학생은 이미 유명했지만 최근에는 더 유명해졌어요.”
리 삼인방이 사교계에 발이 넓다고 하더니 소문이 나는 것도 평소보다 빠르군.
교류회, 아그닐 상회, 영상구 등 레이먼의 이름을 날릴 일들은 많았다. 하지만 대부분 레이먼보다는 5왕자인 유타의 이름이 늘 앞에 나와 있었고 레이먼은 그 보조 격에 불과했다. 그러나 이번 소문만큼은 레이먼의 이름만 널리 퍼진 것이다.
사람들은 5왕자가 훌륭한 인재를 데리고 있다는 데에 감탄하기도 했지만, 동시에 그의 인재인 레이먼에게 제 자식들을 맡기고 싶다는 욕망에 휩싸였다.
마법사를 배출하는 가문 대부분은 포레스튼 입학 전부터 마법에 관한 이론 수업을 시작하는 편이었고 재능이 있다면 1학년 마법도 미리 배웠다. 조기교육을 탄탄히 받은 학생들은 대부분 좋은 성적을 냈고 원하는 자리에 취직할 수 있었는데 그중 대부분은 왕실에 들어가곤 했다.
즉.
‘포레스튼의 성적은 입학 전에 결정된다!’
이 말은 자식들을 조기에 교육시키는 가문들 사이에서 퍼진 암묵적 규칙이었다. 리 삼인방 역시 입학 전 공부를 하고 들어왔지만, 어느 시점을 기점으로 성적이 바닥으로 처박혔다.
덕분에 귀부인들 사이에서 그들은 조기교육마저 이기지 못한 얼간이들이라는 소문이 퍼져있었는데, 그 세 명이 또 한 번 일을 낸 것이다.
‘4학년이 돼서 성적을 그렇게 올리다니! 이게 가능한 일인가요?’
‘제가 들었는데 그 학생들을 가르쳐준 학생이 있다고 하더라구요.’
‘그게 누군데요?’
‘포레스튼 학생들 중 가장 유명한 학생 있잖아요.’
‘5왕자님이요?’
‘그분 말고, 그분과 늘 함께 다니는 붉은 머리 학생이래요.’
‘레이먼 반 스플린! 스플린 공작 가문의 첫째 아들이요!’
클레임 역시 자작가 출신의 마법사. 그는 티는 내지 않았지만 자식들의 성장과 교육에 매우 관심이 많았다. 이엔이 자신을 불편해한다는 사실을 알고 혹시 학업에 방해가 될까 집을 나와 아카데미의 교직원 숙소에서 지낼 정도로 말이다. 리사는 그런 부자의 관계를 다시 붙여주고 싶어 했다.
하지만 이엔은 자신의 마법 실력이 아버지를 마주하기에 부끄럽다는 이유로 클레임을 멀리했기 때문에 마법을 쓸 줄 모르는 리사가 해 줄 수 있는 일은 없었다. 기껏해야 좋은 과외 선생님을 구해주는 정도? 그러나 어느 누구도 이엔을 만족할 만큼 성장시켜주지 못했다.
그런데 그녀의 앞에 나타난 귀인!
바로 소문의 학생, 레이먼 반 스플린!
‘이 아이가 그렇게 잘 가르친다는 거지?’
“뭐 원하시는 거라도 있으세요, 부인?”
“그, 그럴 리가요. 남편의 손님이면 우리 가족 모두의 손님이니까 챙기는 것뿐이랍니다.”
“아뇨, 접시 말이에요.”
“어머! 미안해요, 제가 잠시 착각했네요.”
“아니에요.”
찬장에서 접시를 꺼내는 리사를 도와주며 레이먼이 씨익 웃었다.
[ 눈치 특성이 발동합니다. ] [ 리사 아인의 속마음이 들립니다. ] [ 리사 아인 : 우리 아들을 가르쳐달라고 말하면 분명 거절하겠지? ]제비꽃 그림이 테두리를 화려하게 장식한 접시를 그녀에게 건네며 레이먼이 물었다.
“클레임 교수님은 자식 교육에는 관심이 없으신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