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ill Make You a King as a Possessor RAW novel - Chapter (143)
빙의자가 왕으로 만들어 드립니다-143화(143/275)
이엔은 당황스러웠다.
개소리라니. 그런 상스러운 욕이 지금 포레스튼 아카데미 부동의 수석이라는 자 입에서 나온 건가?
귀족이라고 해서 입이 우아하기만 한 것은 아니었으나 이렇게 대놓고 욕하는 것은 듣도 보도 못한 이엔이었다. 당황한 이엔이 입만 뻐끔거리는 사이, 레이먼은 수첩 페이지를 손가락을 툭툭 치며 시비조로 말했다.
“새로운 마법 수식이 있는 페이지가 어디냐고.”
“일부가 아니라 전체입니다. 그 전체가 제가 생각한 수식들입니다.”
“전체가?”
“예.”
수첩을 본 과외 선생들의 수는 족히 다섯은 넘었다. 그중 누구도 수첩을 보고 이런 반응을 보인 적이 없었다.
타칭 천재 이엔은 순식간에 기가 죽었다. 죽을 수밖에 없었다. 여태껏 이엔을 이렇게 다룬 사람은 없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포레스튼에서 악명 높은 클레임마저도!
‘클레임은 이걸 보고 뭐라 한 적이 없나?’
하지만 어이가 없는 건 레이먼도 마찬가지였다.
포레스튼에서 마법 수식으로는 가장 유명한 데다가 관련 연구의 1저자로 가장 많이 이름을 올린 게 클레임이었다. 만약 클레임이 이 수첩을 봤다면 레이먼보다 더한 욕을 했으리라. 레이먼이 미간을 손가락을 꾹꾹 누르며 재차 질문했다.
“전체란 말이지?”
“네. 뭔가 이상합니까? 하지만 이 수첩을 보고 인정한 마법사 선생님들은 한두 명이 아니에요. 문제가 있다면 이미 제가 알고 있을 겁니다.”
이엔도 답답한지 가슴을 퍽퍽 쳤다.
“왜 그랬지? 딱 보면 답이 나오는데? 네가 클레임의 자식이라 봐준 건가?”
아니지. 클레임이라면 거품 물고 쓰러지는 선배들도 꽤 있었으니 오히려 더 못되게 대해야 정상 아닌가?
“나름 기특해서 그냥 내버려둔 건가. 하긴 14살이 이 정도면 천재라고 불릴 만은 하지.”
“아까부터 계속 뭘 말씀하고 싶으신 건지 모르겠어요.”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수첩에 적힌 것 중 새로운 수식은 하나도 없어.”
“예?”
“기존의 수식에서 변형한 건 칭찬할 만해. 14살이 할 만한 생각도 아니고, 14살이 할 수 있는 정리도 아니야. 그러니 다른 마법사분들은 널 천재라고 얘기해준 모양인데 이 정도로는 클레임 교수님을 놀라게 하긴 어려울걸.”
클레임이라는 이름에 이엔의 어깨가 움찔거렸다.
“뭐 때문에 네 아버지한테 그 정도로 경쟁의식을 가진 건지는 모르겠다만, 여하튼 이걸로는 안 돼.”
“구체적인 예시를 들어주세요. 변형한 것만으로도 새로운 수식이라는 이야기를 들은 논문도 꽤 있는 걸로 압니다.”
“변형으로 인정받은 경우? 당연히 있어. 획기적인 무언가를 발견했을 때는 그렇지. 하지만 여기에 그런 건 없잖아. 예를 들어 파이어 애로우에 추적마법을 거는 이 수식. 이 수식 자체는 네가 개발한 게 맞지만 이건 이미 라이트닝 애로우에 쓰이고 있는 마법이야.”
교류회 때 리트리가 사용한 마법이기도 하지.
“파이어 애로우에 추적마법을 거는 경우엔 여기 보이는 것처럼 3개의 직선이 더 필요하다. 라이트닝의 경우 2개의 직선에 한 개의 곡선이지만. 이런 발견을 한 거까지는 좋아. 하지만 전혀 새로울 게 없다는 소리야.”
“그건 초반에 제가 쓴 거라-.”
“제일 뒷장이 가장 가관이야. 공간 이동 마법을 문이 아니라 가방에 집어넣는 이거. 너는 정말 이게 새롭다고 생각해서 넣어둔 거냐? 아니면 있어 보이려고 넣어둔 거야?”
“…….”
“이 정도로 고민하는 건 내 친구인 오닉스도 할 수 있어.”
걔가 좀 천재긴 하지만.
“유타도 가능할 거고.”
걔도 천재긴 해.
“내 동생 아드리안도 14살에 이 정도는 했어.”
걔도 천재지.
“졸업한 마리아나 유리페 선배도 특정 마법 한정으로 가능할 것 같고. 오, 일하기 싫다고 자기 영지로 돌아간 챈들러 선배도 쉽게 가능하겠지. 네 수준이 딱 그 정도라는 거다. 14살에 이 정도면 어마어마하게 훌륭하긴 하지만 네가 나를 무시할 정도로 천재는 아니란 소리야.”
어찌 됐든 이엔이 천재 중 하나인 것은 분명함에도 불구하고 레이먼이 이 정도로 그에게 뼈 아픈 충고를 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첫 번째로 태도였다.
다른 마법사들을 깔보는 것 정도야 상관없었다. 내가 아니니까.
그런데 나를 눈앞에 두고도 그런 눈빛으로 바라봐?
아드리안도 그런 식으로 자신을 본 적이 없었다. 이엔보다 천재인 아드리안도 말이다.
두 번째는 확실한 인상을 심어줘야 했기 때문이다.
이엔에게서 점수를 따고 클레임에게 빚을 만들어놓기 위해선 이엔이 확실히 레이먼을 따라야 할 필요가 있었다. 그 때문에라도 레이먼은 이엔에게 압도적인 실력을 보여줘야 했다.
“깃펜 갖고 와봐.”
“…….”
이엔은 대답 대신 멀리 있던 깃펜을 가져왔다. 레이먼은 건네받은 깃펜을 슥슥 움직여 수첩의 빈 페이지게 무언가 적기 시작했다.
‘수정하고 있는 건가?’
이엔은 자신의 마법 수식에 고칠 부분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무엇을 고치고 있는지 궁금했지만 자존심이 그를 가로막았고 이엔은 애써 수첩에서 눈을 돌렸다.
5분이 흘렀다. 이엔은 그동안 한마디도 하지 않고 자리에 서 있었고 레이먼 역시 수첩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마침내 팔락이던 종이가 멈추고 깃펜의 펜촉도 점 하나와 함께 종이에서 떨어졌다.
“와서 봐.”
“…….”
이게 대체.
가볍게 수첩을 집어 든 이엔의 손에 조금씩 힘이 들어가기 시작했다.
믿을 수 없는 광경이 수첩에 있었기 때문이다.
틀린 수식 혹은 부족한 수식을 수정하는 건 훌륭한 마법사라면 어렵지 않다. 이엔이 원하는 선생님도 그 정도 수준의 선생님이었다. 아버지를 놀라게 할 정도면 되니까. 하지만 눈앞의 이 사람은 이 짧은 시간에 난생처음 보는 수식을 만들어냈다.
입을 떡 벌린 이엔의 그다음은 ‘의심’이었다.
자신은 아직 14살. 근처 도서관, 아버지의 서재, 마을에 있는 서점의 마법 관련 서적을 모두 봤다고 해도 아직 모르는 마법이 무궁무진할 터. 그러니 레이먼이 어딘가에 존재하는 수식을 새로 만든 척 써둬도 자신을 모를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래! 그게 아니면 이렇게 빨리!’
“내가 만든 거 맞아. 지금 만든 건 아니지만.”
“…아.”
이런 건 진짜 처음 봐.
이엔의 눈이 반짝였다.
“사실 그거 지난 학기에 과제로 낸 거야. 클레임 교수님이 봤던 수식이지.”
“아버지가요?”
이엔의 눈이 반짝였다. 레이먼이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났다. 그리고 이엔의 손에서 수첩을 빼앗은 뒤, 말했다.
“내가 몇 점을 받았을 거 같아?”
“아버지가 점수를 잘 주는 편은 아닌 걸로 알고 있어요.”
멜리아랑 달리 이엔은 클레임의 평판을 어느 정도 아는 모양이었다. 이엔의 말대로 클레임은 답은 정해두고 하는 채점이 아닌 개인적 주관에 의해 채점하는, 예를 들어 레포트 같은 과제에서 더욱 성적에 인색했다.
“1등 했어.”
“….”
“코멘트도 있더라.”
– 짜증 나는 놈.
“나만큼 우수한 학생은 못 봤대.”
“…….”
“그러니까 날 뛰어넘으면 네가 클레임 교수님의 제일 우수한 학생이 된다는 뜻이지.”
그 말에 이엔의 귀가 쫑긋 섰다.
‘이 사람이 아버지가 제일 아끼는 학생.’
레이먼은 이엔이 왜 클레임을 피하는지 대충 알 것 같았다. 아주 옛날 유태하였던 시절, 그는 자신이 가장 존경하던 헌터를 매번 피해 다닌 적이 있었는데, 그에게 자신의 부족한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엔은 그런 감정이 극대화된 모양이었다. 사춘기의 청소년이 이 정도의 반항이라면 아주 착한 편이지.
‘이제 채찍 대신 당근을 줘 볼까.’
“이엔.”
속이 상했는지, 아니면 생각이 많아졌는지 이엔은 입을 비죽 내민 채 답이 없었다. 레이먼은 그런 이엔의 손에 다시 수첩을 쥐여주곤 한쪽 손은 그의 어깨 위에 올렸다. 그제야 이엔의 눈이 천천히 레이먼의 눈을 마주 봤다.
“못되게 말해서 미안하지만 넌 내가 본 14살 중에 가장 우수한 재능을 지녔어. 물론 나보단 아니지만.”
“…….”
“나보다 우수한 과외 선생님은 많겠지만 아카데미에서 클레임 교수님이 어떤 점을 중요시하고 어떤 부분에 점수를 잘 주는지 제일 잘 아는 건 나일 거야. 게다가 너도 그 소문 들었지?”
이엔은 어떤 소문을 말하는지 이미 알고 있었다. 그의 집에 방문하는 부인들이 ‘포레스튼의 족집게 4학년 선생’의 소문에 대해 말하는 걸 귀에 딱지가 앉을 정도로 들었기 때문이다.
“나한테 배우면 네 아버지한테 칭찬을 들을 수 있을걸?”
“…….”
“칭찬 정도가 아니라 엄청나게 놀랄 거야.”
이엔이 침을 꼴깍 삼켰다.
사실 이엔이 이렇게까지 클레임을 피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바로 클레임이 자신의 서재에서 하는 말을 우연히 들었기 때문이다. 누구에게 하는 말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통신구를 통해 누군가와 대화를 하고 있는 건 틀림없었다. 그리고 대화의 주제는 이엔에 대한 것이었는데 통신구 속 남자는 이엔에 대해 질문했고 클레임은 이렇게 답했다.
– 욕심 없습니다. 건강히만 자라주면 됩니다.
– 그래도 이엔은 똑똑하지 않습니까? 부인들 사이에서 유명하던데요. 제 아내도 오늘 이엔에 대해 칭찬을 하더군요.
– ……그렇지는 않습니다. 아직 많이 부족하죠.
이 말이 이엔의 마음에 불을 지핀 것이다.
자신이 얼마나 노력하는지 알면서!
마음속에 켜진 작은 불씨는 어느새 제 아버지에 대한 분노로 번졌다. 그 이후부터 이엔은 방 안에 틀어박힌 채 홀로 공부에 몰두했고, 점차 아버지와 멀어져 갔으며 어느 순간부터 그와 함께 하는 시간이 어색하게만 느껴졌다. 아버지와 대화하고 싶지 않은 건 아니었지만 어쩐지 입이 벌어지지 않았고 그럴 때마다 이엔은 자신의 수첩을 펼쳐 마법 수식을 끄적였다. 아버지가 이 수첩을 보고 자신을 인정하는 날이 온다면! 그땐 자연스럽게 말을 걸 수 있을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어때? 나한테 정말 제대로 배워볼래? 네가 원한다면 일주일에 한 번이 아니라 두 번은 올 수 있거든.”
하지만 지금까지 집에 온 선생들은 자신을 칭찬하기 바빴지, 부족한 점에 대해선 얘기해주지 않았다.
그러나 이 사람은 다르다!
불타는 머리카락과 대조되는 푸른 눈동자가 이엔을 응시했다. 묘하게 올라간 입꼬리가 기분이 나빴지만 이엔은 그에게 동조할 수밖에 없었다.
자신의 상황을 바꿔줄 수 있는 사람이 이 사람밖에 없어 보였다.
“정말, 아버지를 큰코다치게 할 수 있는 거죠?”
“물론이지. 그리고 나도 사실, 교수님을 그렇게 좋아하지 않아.”
이엔은 잠시 고민하는 얼굴로 입술을 잘근 씹은 뒤, 결심한 듯 고개를 치켜들었다.
“그럼……좋아요!”
***
이엔은 수업을 두 번으로 늘리고 싶다고 리사에게 전했고 그녀는 흔쾌히 이에 동의했다. 이에 리사가 다시 이 일을 클레임에게 전달하자 그 또한 군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자식이라면 클레임도 부드러운 아빠가 되는 모양이었다.
그렇게 레이먼은 클레임과 함께하는 흙의 날과 더불어 그가 집에 오지 않는 물의 날에도 수업을 가게 되었다.
그리고 상황은 이엔이 예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흘러갔다.
물의 날. 처음으로 제대로 시작한 수업에서 이엔은 낯선 이를 발견했기 때문이다.
갈색 머리, 각진 턱에 미소가 시원시원한 미남이 그의 방에 있었다.
“레이먼 선생…님? 이분은 누구세요?”
레이먼은 별거 아니라는 듯 환하게 웃으며 그를 가리켰다.
“챈들러 아이작 선배님이야. 내가 아는 사람 중 가장 게으르고 가장 똑똑하지. 선배도 인사하세요.”
챈들러 아이작도 별일 아니라는 듯 한가로운 얼굴로 한 손에는 오렌지 주스를 든 채 손을 흔들었다.
“안녕-, 재능 있는 꼬마야!”
“채, 챈들러 아이작 선배요?”
“이제 우리 둘이 너를 가르칠 거야.”
“……세상에.”
이엔은 챈들러가 누군지 이미 알고 있었기에 놀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런 이엔에게 레이먼이 다시 한번 믿을 수 없는 말을 꺼냈다.
“그리고 넌 내 겨울방학이 오기 전에 네 아버지한테 칭찬을 들을 거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