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ill Make You a King as a Possessor RAW novel - Chapter (144)
빙의자가 왕으로 만들어 드립니다-144화(144/275)
“여, 여기까지만 쓰면 안 될까요?”
“안 돼.”
“그래, 그래. 레이먼이 안 된다고 하면 안 되는 거야.”
이엔은 죽을 거 같았다. 아니, 이대로 가다간 공부하다가 삶을 마감한 14세라는 문구를 비석에 추가해야 할 판이었다. 그러나 이엔이 그들에게 반항하거나 저항할 수 없었던 건, 챈들러 아이작이 온 첫날 그가 한 말 때문이었다.
‘챈들러 님이 절 가르쳐 주신다면 뭐든 할게요! 정말 뭐든요!’
이엔은 챈들러 아이작을 사랑했다. 사랑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이엔이 유일하게 인정했던 천재였으며, -이젠 레이먼도 추가됐지만- 챈들러 아이작이 어린 시절 냈던 논문들을 읽은 사람이라면 누구든 그에게 사랑에 빠질 수밖에 없으리라! 그런 사람을 데려와 주다니. 챈들러를 데리고 온 레이먼에게도 이엔은 감동을 받았다.
여튼 이런 이유들이 합쳐져 이엔은 이 상황까지 온 것이었다.
“제가 썼던 수식을 왜 전부 제가 복기해야 하나요? 이거 1년 동안 쓴 거라 양도 많은 거 아시잖아요.”
“원래 과거의 자신을 돌아보면서 배우는 법이 있는 거지. 그리고 며칠 안 남았어. ‘저거.’”
챈들러가 벽면에 붙은 포스터를 가리켰다. 그 포스터는 레이먼이 가져온 어떤 대회였는데, 새로운 마법 수식을 추천받는 대회였다. 그 대회에서 1등을 한 사람은 마탑에 원하는 아티팩트를 의뢰할 수 있는 권리를 얻게 되는데 이게 꽤나 엄청난 보상이라 지원하는 사람이 많았다. 그러나 보통 지원하는 사람들은 초임 왕실 마법사나 포레스튼의 졸업생이지 14살짜리 꼬맹이는 없었다.
“원래 레이먼이 지원하려고 한 걸 너한테 양보한다잖아.”
“으윽. 그게 왜 양보예요!”
“내가 나가면 1등일 테고 그렇다면 네가 1등을 차지하지 못할 테니까. 이엔, 다시 수첩 봐라.”
소파에 편하게 앉아 발을 까딱이며 레이먼이 말했다.
“챈들러 선배도 데려왔고, 대회도 양보했으니 넌 거기서 우수한 성과를 거둬야만 해. 말했잖아. 저 대회의 이번 수석 심사위원이 네 아버지, 클레임 교수님이라고.”
그렇다. <놀라운 마법 수식! 놀라운 당신의 미래!> 대회의 수석 심사위원이 클레임이라는 건 아버지에게 인정받고 싶은 사춘기 소년에게는 엄청난 기회였다. 게다가 <놀놀미> 대회는 성별, 나이, 이름을 모두 숨긴 채 참가가 가능했기 때문에 클레임이 제 아들을 알아보지 못하게 하는 것도 가능했다.
“알았어요! 쓸게요!”
결국 할 말이 없어진 이엔은 하루 종일 수첩을 받아썼다.
“중간중간 바뀐 수식 있으면 고쳐놔. 1년이면 바뀐 게 몇 개 있을 거다.”
“자, 꼬맹아. 이쪽을 봐라. 여기. 이건 고치는 게 낫지 않겠어?”
“왜요?”
“그거야 안정성이 떨어지니까. 공격 마법에 안정성이 떨어지는 건 꽤 위험 요소거든. 상대에게 향하던 칼이 나를 겨눈다거나.”
“아하. 그럼 여기서는 방향 특정이라든가 원거리 마법에서 자주 사용하는-.”
챈들러 아이작은 이엔에게 정답을 알려주진 않았지만, 특유의 장난기 많고 부드러운 어조로 조언해주었다.
수업을 마치고 돌아가는 길. 레이먼은 첫날 챈들러에게 말했다.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사실 진짜 오실 줄은 몰랐어요.”
“하하하. 영지에만 있느라 심심했거든. 연구도 오래 쉬었고, 마법도 안 쓴 지 오래되었고.”
“왕실이나 마탑으로 갈 생각은 없으세요?”
“지금은 딱히? 네가 왕실로 가면 또 모르겠다. 그럼 재밌을 거 같거든.”
“그럼 곧이겠네요.”
“예전부터 네 넘치는 자신감을 좋아했지, 내가.”
챈들러는 레이먼이 온 문에 걸린 마법을 간단히 비틀어 자신의 집으로 향했고 레이먼은 포레스튼으로 돌아갔다.
‘마법을 비트는 일은 쉬운 일도 아닌데.’
챈들러 선배는 너무 쉽게 해낸단 말이지.
‘나중에 꼭 왕실로 데려와야겠어.’
***
대회는 포레스튼의 겨울 방학 직전에 있었고 레이먼은 기말시험이 있는 주간에도 이엔에게 찾아와 수업을 해주었다.
“다 했어요.”
기말시험이 끝나갈 무렵, 이엔이 대회에 참가하기 위해 내민 레포트는 챈들러나 레이먼이 보기에도 완벽했다. 새로웠고, 참신했으며, 도전 의식을 불러일으킬 만한 주제. 클레임의 취향에 맞춘 레포트였다. 이엔은 14살치고 천재였고, 20살이 된다 해도 천재라고 불릴 정도의 머리를 지니고 있었다. 만약 챈들러나 아드리안, 레이먼, 유타, 오닉스를 제외하고 가장 똑똑한 사람을 뽑으라고 한다면… 레이먼은 이엔을 뽑을 수도 있을 것 같았다. 마리아나 유리페는 흥미 있는 분야가 아니면 아예 공부하질 않으니 예외라고 치고.
“좋아. 이 정도면 꽤 좋은 성과를 거둘 수도 있겠어.”
“1등을 할 수 있을까요?”
이엔이 기대에 부푼 눈동자로 물었다.
레이먼은 레포트를 한 번 더 뒤적이곤 별거 아니라는 뉘앙스로 답했다.
“아마?”
새로운 마법을 개발하거나 완성하는 건 주로 마탑의 업무이니 왕실에서 이런 쪽에 능통한 사람은 많이 없을 테고. 그 마탑 관계자들은 이 대회에 참석하지 못하니 아마 꽤 좋은 성과를 거둘 것이다.
“나랑 챈들러 선배가 좀 더 수정하면 확실히 1등을 할 수 있을 텐데. 수정해줄까?”
레이먼이 레포트를 가장 첫 장을 툭툭 치며 물었다. 이엔은 잠시 고민하더니 이내 고개를 내저었다.
“아뇨! 제힘으로 인정받을래요. 그리고 이미 많은 도움을 주셨어요. 감사합니다.”
처음 봤을 때의 싸가지는 어디 가고 아주 올곧고 예의 바른 놈만 남았구나.
“그래야지. 좋아, 당장 제출해.”
“좋은 결과가 있기를 바랄게, 이엔.”
“감사합니다!”
레이먼은 할 일을 다해 뿌듯한 얼굴로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이제 어떤 결과가 나오든 그들의 손을 떠났다.
***
“이번 대회 참가자 수가 역대급이라면서요?”
“340명이 넘었답니다! 300명을 넘다니, 이건 기적이에요.”
“아티팩트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은 점점 커지고 있으니까요. 그리고 아마……심사위원 덕이 크지 않을까요?”
대회의 심사위원으로 참가한 마탑의 마법사들이 심사장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그분들에게 새로운 마법을 보여드리고, 이름도 알리면 좋잖아요.”
“익명이지 않나요?”
“상을 받게 되면 한 번은 심사위원을 보러 와야 하니까요. 그리고 특별상도 있어요. 심사위원이 마음에 드는 수식을 쓴 마법사를 따로 불러 티타임을 가지는 부상을 준답니다. 그래서 늘 심사위원 선정에 공을 들이는데 이번에는 클레임 교수랑 마탑주님을 불렀으니 다들 지원한 게 아닐까요?”
“저도 마탑 마법사만 아니었다면 지원했을 텐데.”
연구 시기만 아니면 평화로운 마탑 마법사들.
그들은 옹기종기 모여 대화를 나누었고 활짝 웃는 얼굴로 심사장의 문을 열었다.
그리고 마주했다. 다크서클이 지독하게 내려온 클레임과 마탑주의 얼굴을. 그리고 그들 앞에 놓인 미친 양의 레포트를 말이다.
340명… 아니, 무려 400명에 가까운 이들이 레포트를 보냈다. 레포트의 쪽수는 짧은 건 30페이지부터 긴 건 1,000페이지까지 있었다. 이걸 5명이 일주일 안에 모두 읽고, 이해하고, 가장 우수한 것들만을 선정해야 한다는 소리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밝게 웃던 이들의 얼굴이 잊고 있던 사실을 깨닫고는 창백하게 변했다.
‘제기랄.’
‘어쩐지 선배들이 연차를 준다 해도 안 간다고 하더니.’
어쩐지 시야가 아득해져 왔다.
***
일주일 중 절반이 지났다. 이제 심사위원들의 책상 위에는 상을 줄 만한 레포트들 몇 개만이 놓여 있었다. 마탑주와 클레임은 수상 후보가 된 레포트들을 보며 미간을 잔뜩 찌푸린 상태였다.
‘대체 왜 고민을 하는 거지?’
심사위원으로 처음 참가한 마법사는 그들이 왜 고민을 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단연 눈에 띄는 레포트가 하나 있었기 때문이다. 사실 모두가 그 레포트만 신경 쓰고 있는 게 틀림없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자신이 보기에도 훌륭한 레포트였다. 그렇다면 마탑주님이나 교수님이 보실 때도 그렇다는 게 아닐까?
‘아니면 내가 너무 모르기 때문일 수도 있지. 공부를 좀 더 하고 올 걸 그랬어.’
젊은 마법사가 자신을 자책하는 사이 클레임은 테이블 위 레포트를 집어 들었다. 젊은 마법사가 예의주시하고 있던 레포트였다.
21페이지 정도의 레포트로 다른 참가자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짧은 레포트였다. 그러나 그 안에 들어간 내용은 그렇지 않았다. 필요한 말만, 필요한 곳에 적재적소에 배치했다. 읽는 도중 의문점이 생기는 내용은 바로 다음 페이지에서 그 의문을 해결해주었고, 무엇보다 이런 수식을 처음 봤다는 게 의미가 컸다.
‘축복 마법을 음식에 담아 먹을 수 있도록 하는 수식.’
병든 이를 치료하는 데에는 현재 두 가지 방법이 있다.
첫째, 의원을 불러 약을 먹인다.
둘째, 약으로도 해결할 수 없는 병은 축복 마법 중 치료에 특화된 마법사를 불러 해결한다.
그리고 사람들 대부분은 알고 있었다.
첫 번째 방법보다 두 번째 방법이 더 좋다는 것을.
하지만 하루를 24시간으로 똑같이 살아가는 그들이 모든 병든 이를 찾아갈 수 없다는 것은 명백했다. 당연하게도 인건비가 천정부지로 솟아버린 마법사들을 평민들이 부르는 건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다. 그런데 그런 축복 마법을 작게 담아 먹을 수 있도록 하는 수식이라니.
‘이거라면 이동 문제도, 인건비 문제도 전부 해결할 수 있어.’
약보다 월등히 치료 효과가 좋은 고위 마법사들의 축복이 담긴 음식이 보다 더 많은 사람들에게 퍼질 테고, 그동안 그런 치료를 누리지 못했던 수많은 사람들이 구원받을 수 있겠지.
음식의 보존 기한이 길다면 어디서나 쉽게 그 음식을 구할 수 있도록 마을의 의료원에 비치시켜 두는 것도 가능해질 것이다.
누구나 생각해 볼 법한 방법이었지만, 동시에 누구도 생각해 본 적 없는 방법이자 수식이기도 했다. 클레임 역시 레포트를 읽자마자 자신을 자책할 정도였다. 클레임은 언제나 마법사를 불러 자신의 가족을 치료할 수 있는 입장의 사람이었고 마법사들 대부분이 그와 비슷했다. 그렇기 때문에 생각한 적 없는 거다.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으니까.
자신을 부끄럽게 만들 정도의 통찰력과 어린아이도 먹을 수 있는 작은 초콜릿에 마법을 거는 수식마저 완벽한, 배려심 있는 자의 레포트였다.
‘어떤 사람이 이런 생각을 한 거지?’
자신보다 나이가 많다면 세월에 매몰되지 않은 그의 통찰력과 세심함에 감탄스러웠다.
그리고, 그럴 일은 없겠지만 만약 자신보다 나이가 어리다면 그 천재성과 배려심에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 클레임의 머릿속에 순간 포레스튼의 천방지축 3인방과 그들과 붙어 다니는 테디라는 소년이 떠올랐으나 이내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무리 우수하고 털털하게 지낸다 해도 녀석들은 하나같이 왕족이거나 고위 귀족, 혹은 엘리트 출신이었다. 그조차 생각지 못했던 것을 더 큰 수혜 속에 살아온 녀석들이 떠올린다?
‘설마.’
한편, 클레임이 레포트를 손에 쥐고 놓지 않는 모습을 가만 바라보던 마탑주가 말했다.
“그 레포트가 1등입니까?”
“…예?”
“저는 그 레포트가 1등입니다.”
그러자 다른 마법사들도 일제히 손을 들며 고개까지 끄덕였다. 저도요, 저도요! 라는 기세가 눈빛으로 전해졌다. 클레임도 이에 동의했기 때문에 레포트를 테이블 한가운데에 다시 올려두며 말했다.
“그럼 남은 2, 3등을 고르면 되겠네요. 그리고 특별상까지.”
1등이 정해졌다는 뜻이었다.
***
수상 결과가 발표된 지 일주일이 흘렀다. 1등은 특별상 수상자와 마찬가지로 수석 심사위원을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는데, 올해 1등은 수석 심사위원 둘 중 클레임과 만나길 희망했다고 했다.
클레임은 누구길래 자신을 지명했는지 꽤 궁금했으나 내색하진 않았다. 클레임은 마탑 1층의 응접실에 마련된 공간에서 1등을 기다렸고 얼마 지나지 않아 작은 노크 소리가 들렸다.
“들어오시면 됩니다.”
클레임이 평소처럼 담담한 어조로 답하며 자리에서 일어난 뒤, 들어온 1등을 보고 깜짝 놀라 다리가 풀려 그대로 의자에 주저앉았다.
“안녕하세요.”
“이엔……?”
네가 왜 여기서 나오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