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ill Make You a King as a Possessor RAW novel - Chapter (145)
빙의자가 왕으로 만들어 드립니다-145화(145/275)
이엔은 사랑을 모르던 남자 클레임과 사랑을 거부하던 여자 리사가 만나 낳은 첫사랑의 결실이었다.
10대의 클레임은 무뚝뚝한 남자였다.
10대의 리사는 밝고 쾌활한 여자였다.
클레임이 리사를 만난 건 포레스튼 4학년, 마법에 재능이 없어 포레스튼에 입학하지 못한 자작 가문 영애의 생일파티에서였다.
‘리사라고 했나.’
클레임은 친구 없이 혼자 구석에 서서 그날의 주인공을 보고 있었다.
얼굴보다 먼저 그에게 다가온 건 목소리였다.
먼지 하나 끼지 않은 하늘과 같이 청량한 목소리와 정확한 발음.
하지만 이것이 호감으로 다가온 것은 아니었다.
‘시끄럽군.’
멀리 떨어져 있었음에도 그녀의 웃음소리와 맞장구가 클레임의 귀까지 들려올 정도였으니 말이다.
‘얼굴은 비췄으니 이제 그만 가봐도 되겠지.’
그렇게 파티의 중후반, 클레임이 돌아가기 위해 몰래 정원으로 나온 시간.
두 사람이 마주쳤다.
“뭐 해요?”
“…돌아가려고 합니다.”
“왜요?”
“이곳에는 더 이상 제가 할 일이 없으니까요.”
“오, 할 일이 왜 없어요. 나와 함께 춤을 출 수도 있잖아요!”
“예?”
생각지도 못한 말에 그의 입에서 튀어나온 것은 당황스러움이 잔뜩 어린 반문이었다.
클레임은 태어나서 자신에게 춤을 권하는 막무가내의 또래 여자아이를 본 적이 없었다. 때문에 이럴 때 어떤 반응을 보이고 어떤 식으로 거절해야 하는지도 알지 못했다. 포레스튼의 수업 시간의 토론에서 단 한 번도 진 적 없던 클레임이라고는 아무도 생각하지 못할 반응이었다. 그렇게, 리사의 손에 이끌려 회장의 가운데에 서게 된 클레임은 곧 그녀와 함께 발을 맞추었다. 춤은 교양수업으로만 배웠을 뿐이지만, 한 번 배운 건 절대 잊지 않는 클레임은 능숙하게 그녀를 리드했다.
“춤을 잘 추지 못할 줄 알았어요.”
“배우면 다 됩니다.”
“그래요? 난 잘 안 되던데.”
“연습이 부족한 겁니다.”
“이름이 뭐예요?”
“…그냥 클레임이라고 부르시면 됩니다.”
“클레임, 클레임은 친구가 없죠?”
“……예?”
“말투가 그런 느낌이에요. 포레스튼에서는 어떤 마법을 배우나요? 변신 마법? 투명 마법? 빗자루를 타거나 마차를 날게 하는 주문을 외우기도 하나요? 포레스튼에는 비밀의 지하실이 있다고 하던데 그게 진짜인가요?”
리사의 질문은 끝이 없었고 내용도 없었다. 평소의 클레임이라면 무시했을 질문들인데도 그는 어쩐지 저주라도 걸린 것처럼 그녀의 말에 집중했고 모든 질문을 기억해 차례대로 차분히 답해주었다. 클레임의 답변이 끝나는 동시에 마지막 춤 선곡이 끝나고 두 사람이 마주 섰다.
“나는 리사 클리앙이에요.”
“알고 있습니다. 초대장에서 봤으니까요.”
“우리 또 볼 수 있을까요?”
“생일파티에 또 초대해주시면 볼 수 있겠죠.”
“그럼 제가 초대할게요. 파티 말고.”
리사가 활짝 웃었고, 클레임은 다음 날 저녁 곧바로 그녀의 초대장을 받았다. 이번 티타임 파티의 초대 손님은 자신뿐인 듯했다. 그렇게 두 사람은 가까워졌고 운명처럼 사랑에 빠졌다. 훗날 클레임이 리사에게 자신을 초대한 이유를 물었을 때 리사는 이렇게 답했다.
‘당신이 내가 한 질문에 모두 답을 했잖아. 난 그게 좋았어.’
그렇게 사랑에 빠진 클레임은 리사와 함께 있을 때만큼은 평소와 다르게 행동했다. 클레임을 알던 사람이 길거리에서 그를 본다면 ‘내가 잘못 봤나?’라며 눈을 비비고 그 자리에서 도망쳤을 것이다. 그만큼 클레임은 리사만 보면 여름철 녹아내린 얼음 같은 얼굴을 하고 있었고 그녀의 말을 거역하지 못했다. 그런 두 사람 사이에서 태어난 장남이 이엔이었다. 클레임은 처음 이엔을 품에 안았을 때를 기억했다.
리사는 침대에 누운 채 그를 올려다보았고, 클레임은 자신을 닮은 아들과 자신이 사랑하는 여인을 바라보았다.
– 이엔.
– 이엔. 우리 아들. 이엔.
사랑하는 두 사람이 낳아 창조한 첫 생명.
클레임에게 있어 생명보다 소중한 존재의 두 번째 탄생을 알리는 순간이었다.
그런 이엔이 어느 순간부터 그를 멀리한 것은 클레임의 마음을 고통스럽게 했다.
‘클레임, 너무 걱정하지 말아요. 당신이 14살 때 쓴 논문을 이엔이 본 모양이에요. 그 뒤로 저렇게 당신을 멀리한답니다. 알다시피 이엔이 당신을 닮아 똑똑하잖아요. 당신처럼 훌륭해지지 못하면 당신이 자신을 사랑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한답니다.’
‘나는 아니라고 대답해주었는데도 그런 건가?’
‘생각은 쉽게 변하지 않으니까요. 잘못된 생각이 확신이 되는 때가 있죠. 그것도 10대 소년이라면요. 조금만 참아주세요.’
클레임은 부단히 노력했지만 거리는 가까워지지 않았고 결국 집에서 자신이 모습을 감춰줘야 할 지경까지 이르렀다. 그래도 가끔 집에 방문하는 날이면 최대한 이엔에게 칭찬해주기 위해 애썼는데, 레이먼을 만난 뒤에는 아예 방에서 나오지 않는 날이 늘어나 그마저도 어려웠다.
한데 아들과의 거리감에 슬퍼하던, 그런 클레임의 눈앞에 이엔이 나타난 것이다.
왜?
“이엔, 여긴 어떻게 알고 찾아온 거지?”
클레임은 이엔이 1등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그가 생각한 1등의 가장 적은 나이는 기껏해야 18살이었고, 14살인 이엔은 작은 가능성의 후보조차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엔이 이곳에 온 건 단순히 자신을 찾아온 것이리라 그는 생각했다.
“여기서 만날 사람이 있으니 조금 이따 다시 오도록 해라. 옆방에서 기다리면 시종인이 쿠키를 내올-.”
“아니에요, 저 맞아요.”
“그게… 무슨 뜻이지?”
“1등이요. 제가 그 1등이에요.”
***
소파에 앉아 차를 마시는 클레임의 다리가 달달 떨렸다. 레이먼이 대체 뭘 어떻게 했길래 이엔이 1등을 한 거지? 레포트를 대신 써준 건가? 아니지. 이엔은 자존심이 센 아이니 그런 레포트로 1등을 할 생각조차 하지 않는 아이야. 그럼 정말 이엔이 그 글을 쓴 건가?
“이엔. 정말 네가 그…걸 쓴 게 맞다는 뜻이냐.”
“네. 제가 썼어요. 아버지가 심사위원이라는 것도 알고 있었고요.”
“……….”
클레임은 어떤 말을 해야 할지 한참을 고민했다. 그동안 이엔과 대화한 시간이 너무 없어 아들과 둘만의 시간이 괜히 어색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번 일을 통해 클레임은 적어도 이엔이 자신보다는 용감한 남자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피하기 급급했던 자신과 달리 이엔은 정말로 자신에게 인정받기 위해 이런 레포트를 만들어 온 것이니까. 클레임은 결심한 듯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의 손에는 이엔이 쓴 레포트가 들려 있었다.
그는 레포트를 다시 이엔에게 건네며 아들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잘했다.”
“…….”
“나보다 뛰어난 14살이 너일 줄은 몰랐구나.”
이엔은 눈에 핑하고 눈물이 돌았다. 이번에는 단순히 칭찬만 받은 게 아니라 결과까지 냈기 때문에 그는 자신을 믿을 수 있었다.
“1등은 마탑에 원하는 아티팩트를 신청할 수 있지. 레포트로 제출한 아티팩트 개발을 부탁할 수도 있고 다른 걸 제안할 수도 있는데 어떻게 할지는 네 선택이다.”
이엔은 똘망똘망한 눈동자로 클레임을 바라보았다.
이엔의 답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
다른 아티팩트를 생각해보지 않은 건 아니지만 아버지한테 인정받은 아티팩트는 이것 하나뿐이니까.
“제 선택은 당연히 이번 레포트예요…!”
“그래. 이엔.”
“…….”
“내 아들은 아주 훌륭하구나.”
이엔은 뿌듯했다. 드디어 아버지의 인정을 받았어! 내 힘으로 말이야!
그는 클레임이 이 정도로 웃는 얼굴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분명 자신의 아들이 천재임을 자랑스러워하는 것이리라. 앞으로도 이런 성과를 내는 것은 쉽지 않을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이엔은 잘해 낼 자신이 있었다. 아니, 잘해 내야만 했다. 아버지에게 다시 칭찬받기 위해서라도….
그때, 클레임이 무릎을 굽혀 아들의 양손을 쥐고 그와 눈을 맞추었다. 클레임은 여전히 부드러운 미소로 웃고 있었다.
“넌 이미 훌륭하다, 이엔. 네가 열심히 노력하는 것도 알고 있었지. 이엔, 넌 이미 어린 나보다 훨씬 나은 아이야.‘
“네!”
“하지만 이엔, 난 네가 훌륭하기 때문에 사랑하는 게 아니야. 네가 똑똑하다면 그런 네게 맞는 길을 응원할 거다. 네가 다른 길을 원한다면 그 길 역시 응원할 거다. 넌 내 아들이라는 것만으로도 이미 내겐 지킬 가치가 있는 아이야.”
이엔은 당황스러웠다,
나를 포기하겠다는 건가?
내가 1등을 했는데도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걸까?
이엔의 목소리가 떨렸다.
“어… 혹시 제가 기대에 미치지 못했, 나요?”
“이미 차고 넘쳤어. 내가 가르칠 것도 없어 보이는구나.”
“그럼 왜 그런 말을-.”
“아빠는 네가 공부하지 않는 시간에 내 눈치를 보는 것보다 너와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서 그래.”
“…….”
“아빠랑 좀 더 시간을 보내주지 않겠니, 우리 천재 아들? 이제 네 곁으로 돌아가고 싶은데.”
이엔의 눈에 눈물이 핑 돌았다.
이엔은 노력했고, 인정을 받았고 원했던 성과를 얻었다. 이엔은 텅 빈 마음이 1등을 하고 인정을 받으면 채워질 것이라 여겼다. 그러나 정말 이엔을 울게 만든 건 1등이 아니라 아버지가 자신과 대화하고 싶어 했다는 사실이었다. 이엔은 어쩌면 그 시간이 진짜 자신이 원하던 것일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울음을 참기 위해 입술을 꽉 깨물고 이엔이 고개를 끄덕였다.
“저도 아빠랑.”
“…….”
“얘기하고 싶어요. 더 많이요. 훨씬 많이요…….”
“그래, 이엔. 다시 한번 1등 축하한다. 아주 훌륭했어.”
이엔은 클레임과 함께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서 함께 있던 레이먼과 챈들러에게 이엔의 1등 소식을 들은 리사와 멜리아는 축하 파티를 준비하고 있었다.
“다녀왔-.”
펑-!
폭죽 마법이 하늘을 장식하고 알록달록한 환영 색종이가 눈앞에서 떨어졌다. 이엔의 입이 놀라 떡 벌어지고 클레임도 놀란 얼굴로 리사를 바라보았다. 리사는 환한 얼굴로 이엔의 손을 붙잡고 활짝 웃으며 둥글게 돌았다.
“이엔-! 1등을 정말로 축하한단다! 선생님께 들었어!”
“축하해, 이엔.”
레이먼이 부드럽게 웃어주었고 챈들러는 왜 내 저택에 저놈이-? 라는 얼굴로 자신을 노려보는 클레임에게 천연덕스럽게 인사했다. 대강 챈들러와 레이먼에게 마법을 함께 배웠다는 이엔의 이야기를 듣고 나서야 클레임은 성질머리를 죽일 수 있었고 여섯 사람은 한 테이블에서 축하 파티를 즐겼다.
파티가 끝난 뒤, 클레임은 일주일 뒤에는 다시 집으로 돌아올 것이라는 약속을 하며 레이먼과 함께 포레스튼으로 향했다. 창고에서 튀어나온 둘은 불이 꺼진 교무실을 함께 잠그고 나왔다.
큼큼.
“수고했다.”
헛기침을 두어 번 한 클레임이 레이먼을 곁눈질했다.
그는 이번만큼은 저 천방지축 사고뭉치 천재가 자신에게 도움이 되었다는 걸 인정해야 했다. 자신도 어찌하지 못한 이엔의 문제를 말끔히 해결해주었기 때문이다.
“말로만요?”
“……?”
“과외비는 주셔야죠.”
레이먼이 방실 웃으며 손을 모아 내밀었다. 클레임은 어이가 없다는 얼굴로 헛웃음을 치다 결국 레이먼의 말이 맞다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이미 훌륭한 소양을 갖추고 있긴 했지만 14살짜리 아이가 대회에서 1등을 할 수 있을 정도로 실력을 갖추게 만드는 건 당연히 힘든 일이라는 걸, 교육자인 클레임은 알고 있었다.
“얼마면 되지?”
“에이, 돈은 많아서 필요 없습니다. 대신… 원하는 물건이 있는데요. 이번 일로 클레임 교수님께서 얻으신 것보다 훨씬 훠얼씬 가치가 적고 약소하고 작은 물건입니다.”
“뭐지.”
왜 이렇게 밑밥을 까는 거지?
클레임이 미감을 찌푸렸고 레이먼은 더욱 환한 표정으로 웃었다.
“창고에 깃펜이 하나 있는데.”
“….”
“그걸 갖고 싶습니다.”
“깃펜이라면?”
“창고에서 아무도 안 쓰는 유령 들린 깃펜 말입니다.”
“그건……매우 희귀한 아티팩트다.”
“네. 그래서 그거요.”
“매우 희귀한-.”
“네, 그거요.”
“너는…….”
“네, 그거요.”
아, 그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