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ill Make You a King as a Possessor RAW novel - Chapter (154)
빙의자가 왕으로 만들어 드립니다-154화(154/275)
다음 날, 유타는 다시 동상으로 향했다. 안게트가 필사적으로 그를 가로막았지만, 유타 곁으로 빛의 대정령 이그니스가 모습을 드러내자 더 이상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정령을 모르는 이가 보더라도 그가 인간이 아니라는 것쯤은 짐작할 수 있으리라. 인간이 아닌, 인간의 형체를 따라 하는 이질적인 존재.
유타의 설명이 없었다면 누군가는 그를 주스테 신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법했다.
안게트가 작게 중얼거렸다.
“이분이 대정령님….”
챈들러 역시 졸린 눈을 비비고 이그니스를 바라보았다. 저 정령이 정말 세상의 모든 저주를 해결할 수 있다는 건가? 챈들러의 의문은 얼마 있지 않아 모두 해소되었다.
이그니스의 손길이 동상 앞에 닿고 그리 긴 시간이 흐르지 않았을 때였다.
입가에 의기양양한 미소를 건 그는 유타에게 무언가 속삭인 뒤 모습을 감췄다. 돌아온 유타는 모든 게 해결됐다는 듯 상쾌한 표정을 지었다. 아직 전에 있던 일의 피로가 채 가시지 않은 창백한 얼굴이었지만 말이다.
“이제 괜찮을 거예요. 그리고 동상에 걸린 건 저주 마법은 아니고 영법이었어요. 아무래도 왕실 측에 알려야 할 것 같은데 괜찮을까요?”
“물론입니다. 하지만 정말 이걸로 끝이라니.”
안게트가 믿을 수 없다는 듯 말꼬리를 흐렸다.
그는 동상 앞에 섰다.
유타의 말대로였다. 저주는 사라졌고 안게트의 몸에 있는 마력은 그대로였다.
그의 말대로, 정말 저주가 풀린 것이다. 그들이 저항은커녕 파악조차 하지 못했던 미증유의 것이 대정령의 손길 한 번에. 안게트는 그 힘을 영지에 잡아두고 싶었다. 그러나 상대는 5왕자. 불가능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는 챈들러를 바라보았다. 챈들러 역시 유타의 그 힘에 관심이 있는 듯했다.
그날 밤, 안게트는 챈들러의 방에 들렀다. 챈들러는 침대에 드러누워 있었다. 마침 허공에 체스판을 띄우고 혼자 체스를 두고 있던 참이었다. 안게트는 건너편 테이블에 앉으며 말했다.
“오랜만에 한 판 어때?”
“질 텐데?”
“혹시 모르지.”
호기롭게 시작한 한 판이었으나 안게트는 처참하게 졌다.
“형님, 예전부터 생각했지만 퀸의 활용법이 잘못됐어.”
“그런가.”
안게트가 말했다.
“챈들러, 오늘 봤지?”
챈들러는 허공의 체스판을 협탁 위로 옮긴 뒤, 안게트를 바라봤다. 느긋한 시선 이동이 챈들러가 안게트와의 대화를 피하고 싶어 한다는 걸 대신 얘기해주었다.
“뭘.”
“모른 척하지 마. 그 아이, 아니 5왕자의 힘을 빌리면 네 저주도 나을 수 있을 거라는 거.”
“형님, 됐어. 이대로도 잘 살아왔잖아.”
“하지만 챈들러-.”
“그런 얘기할 거면 돌아가.”
정말 이대로 돌아가도 되는가.
짧게 고민한 그가 작게 고개를 저었다.
안게트는 챈들러를 흔들 수 있는 건 지금뿐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당사자가 싫다는데 그가 강제로 밀어붙일 수도 없는 일. 한숨을 내쉰 안게트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문고리를 쥔 그가 챈들러를 바라보지 않은 채, 나지막이 읊조렸다.
“잘 생각해봐라. 그분은, 네가 원하면 소원을 들어주실 것 같으니.”
탁-.
문이 닫히고 안게트가 복도 끝으로 사라졌다. 그의 모습이 오른쪽 복도로 완전히 사라지자 어둠 속에 몰래 숨어 있던 푸른 눈동자가 제 모습을 드러냈다.
‘저주?’
***
레이먼이 챈들러의 방 앞을 지나간 건 순전히 우연이었다.
화장실이 너무 급했고, 아이작 가의 성은 크진 않았지만 수수한 장식 때문에 어디가 어디인지 분간이 가지 않았다. 레이먼이 길을 잃은 건 마치 정해진 수순 같았다. 때마침 레이먼이 안쪽 코너를 돌아 나오는 순간, 안게트가 어떤 방에 노크를 하고 들어간 것이다.
‘아모르 님. 정령은 인지 마법에 걸리지 않죠?’
[ 엿들을 거냐? ]‘정보는 많으면 많은 수록 좋다고 했잖아요.’
[ 나와 계약했으니 하급 정령들 모두 네 말을 들을 것이다. ]아모르의 말이 끝나자마자 장난기 많은 하급 정령들이 얼굴들을 빼꼼 내밀었다.
‘방 안에서 어떤 얘기가 오가는지 나한테 말해줄 수 있어?’
킥킥 웃은 정령들이 고개를 힘차게 끄덕이고선 문을 통과해 방 안으로 들어갔다. 방 밖에 남은 정령들은 두 사람이 나누는 대화를 실시간으로 레이먼에게 전달했다.
[ 체스! 체스! 말! 말! C6 이동! 대각선 가! 이동해!]‘그게 다야?’
[ 저주 얘기해! 빛의 대정령님이 해결해줄 수 있대. 챈들러의 저주를 풀 수 있대! 그런데, 챈들러는 그거 싫어해.]챈들러 선배의 저주?
‘그런 말은 들은 적이 없는데.’
[ 나온다! 나온다! 레이먼 숨어! ]정령의 말이 끝나자마자 얼마 뒤 문이 열리고 안게트가 모습을 드러냈다. 코너 뒤로 숨은 레이먼은 다시 방으로 돌아왔다.
“형님, 어딜 그렇게 다녀오셨어요?”
레이먼이 돌아오길 기다렸던 아드리안이 읽고 있던 책을 덮었다. 그는 잠시 나갔다 온 레이먼의 표정이 묘하게 달라진 걸 곧바로 눈치챘다. 화장실에 다녀온 사람의 얼굴이 저렇게 될 정도면….
‘설마 화장실을 못 찾으시고 실례를-.’
니콜에게 들은 적이 있었다. 형님이 입학할 때 딱 한 번 바지에 실수를 했었다고. 사람은 누구나 실수를 하고, 완벽한 형님이라도 단점은 있는 법이니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했는데.
‘아직 고쳐지지 않았나?’
아드리안의 눈길이 자연스레 바지로 향했는데, 다행히 레이먼의 바지는 멀쩡했다. 레이먼은 아드리안이 그런 생각을 갖고 있다는 걸 전혀 눈치채지 못한 채, “길을 잃었어.”라고 대충 답한 뒤, 다시 침대에 누웠다.
‘저주라.’
그럼 챈들러 선배가 저주 마법에 관심을 갖게 된 게 이번이 처음이 아닌 건가?
‘하지만 정말 선배가 저주에 걸렸고 그걸 풀고 싶다면 유타에게 부탁하면 될 텐데, 그걸 원하는 것 같지는 않아.’
일단 알고만 있자.
분명 추후에 도움이 되겠지.
***
저주를 해결한 뒤, 레이먼 일행은 일주일 동안 아이작 가에서 생활했다. 챈들러는 유리페, 마리아, 그리고 유타와 함께 저주에 대해 연구했고, 레이먼은 안게트와 체스를 뒀으며, 그런 두 사람의 경기에서 심판을 봐준 것은 아드리안이었다. 사흘쯤 지나자, 렌스와 니콜도 아이작 가로 넘어왔다.
“레이먼, 체스를 정말 잘 두는구나.”
“그냥저냥 둡니다.”
안게트는 드디어 레이먼 일행이 편해지기 시작했는지 말을 놓았다. 그리고 안게트는 정말로, 농담이 아니라 정말로, 체스에 재능이 없었다. 규칙은 다 알고 있는데 실력은 없다고 해야 할까. 레이먼과 둔 모든 경기에서 안게트는 완패했다. 어느 정도냐면 레이먼이 7살짜리 꼬맹이에게 오목을 두자고 말한 뒤, 처음 오목을 뒀을 때에도 이것보다는 어렵게 이긴 것 같았다.
‘멍청한 사람은 아닌 거 같은데, 유독 체스에만 재능이 없는 건가?’
“안게트 선배님은.”
안게트가 레이먼에게 말을 놓은 뒤부터는 레이먼도 그를 선배라고 불렀다.
레이먼이 말했다.
“왕실에 오실 생각은 없습니까?”
“나는 없어. 영지를 지켜야지. 아버지께서도 많이 아프시고.”
“챈들러 선배도 영지에 계시잖아요.”
“저놈에게 이곳을 물려줄 생각은 없어. 저런 게으름뱅이가 영주가 됐다간 우리 가문은 망할 거야.”
“물론 게으름뱅이에겐 권력을 쥐여줘선 안 되지요. 그럼 챈들러 선배는 왜 영지에 계시는 겁니까?”
체스 말을 치우던 안게트의 손이 멈췄다 다시 움직였다. 그가 말했다.
“그러게. 나도 그게 의문이다. 그건 그렇고 이제 곧 정식 마법사가 될 텐데, 완드는 새로 만들 예정이니?”
완드라…….
그의 질문에 레이먼이 팔찌를 한 번 바라보곤 답했다.
“예, 그래야지요. 많이 낡았으니까요.”
“완드에 쓰일 재료 중 우리 영지에서 나는 좋은 나무가 있으니 나중에 아카데미로 보내줄게. 괜찮으면 쓰도록 해.”
안게트는 챈들러에게서 다른 쪽으로 화제를 돌리는 듯했다. 레이먼은 제 완드를 나무로 만들 생각은 없다며 다시 화제를 챈들러에게로 돌릴까 했으나 그러지 않기로 했다.
받아두면 쓸모가 있을지도 모르고.
“예, 뭐. 그래 주시면 감사하죠.”
정보란 쓰이는 타이밍이 중요한 법. 안게트 역시 입을 다문다는 건 아직 정보를 사용하기엔 그 시기가 이르다는 뜻이었다.
방학이 끝나기 일주일 전.
드디어 아이작 가를 떠나는 날이 밝았다.
안게트가 눈물로 그들을 배웅했고 챈들러는 잠옷을 입은 채 레이먼과 아이들에게 손을 흔들어주었다. 레이먼은 특별히 꽉 끌어안아 주었다. 다들 매우 감동적인 장면이라고 생각했으나 실상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챈들러는 소중한 후배를 꽉 끌어안은 채, 레이먼의 귓가에 ‘이 속삭임은 아이작 가의 영지에서 시작되어, 앞으로 3명의 친구에게 전하지 않으면 아주아주 나쁜 일이 생길 것이다.’라는 말을 속삭였다.
그들은 처음과 마찬가지로 성에서 좀 떨어진 곳에 위치한 장소로 내려갔다.
유리페와 마리아는 다시 스웨인 영지로 돌아갈 예정이었기에 스웨인 가의 문양이 새겨진 다른 마차를 탑승해야 했다. 이미 그 사실을 알고 있던 유리페는 내려가는 길목에서, 유타와 단둘이 짧은 대화를 나누었다.
“유타. 왕실로 돌아갈 거지?”
“네.”
“저주나 고문이 필요하면 말해. 그것만큼은 도울 수 있으니까! 그래서, 어때? 나랑 함께 보낸 시간은 즐거웠어?”
유리페의 밝은 미소는 힘이 있다. 유타는 그녀의 웃음이 자신과 본질적으로 다름을 이해했다. 유타가 옅게 웃으며 답했다.
“그런 누님께선 아이작 가에서의 생활이 어떠셨습니까? 저와 함께한 시간이 누님께도 좋은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유타의 질문에 유리페가 활짝 웃었다.
“당연하지. 게다가, 챈들러 선배가 아주 흥미로웠어. 저주 마법학에 대해 이 정도로 깊게 알고 있는 사람은 흔치 않거든.”
“그런가요.”
“응, 정말 흔치 않아.”
말끝을 흐린 그녀는 마차에 올라타기 직전 유타의 한쪽 손을 붙들었다.
“힘내, 동생. 나중에 놀러 갈게.”
“네, 걱정하지 마세요.”
***
겨우 일주일 남은 방학은 순식간에 지나, 학교를 떠났던 학생들이 모두 다시 포레스튼으로 모였다. 봄을 마주하고 구름 위로 꽃들이 피어났으며 입학식과 5학년의 마지막 학기가 동시에 시작되었다. 어차피 5학년들은 수업이 없었고, 방학 동안 용병단이나 귀족의 개인 선생님으로 취업 활동을 마친 학생들은 떠들고 놀기 바빴다.
물론, 웃고 떠드는 동기들과 달리 진로에 대한 일정이 끝나지 않은 아이들도 있었다.
“너희들, 우리 아직 면접 안 끝났다.”
“떠들 거면 클럽 하우스에서 놀지 말고 휴게실이나 가라고!”
“중얼중얼……, 마탑 규칙 2조…….”
“안녕하십니까, 2번 지원자입니다. 제가 마탑에 들어가고 싶은 이유는 어렸을 때부터 무언가를 만드는 데에 큰 흥미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왕실에 필요한 것은 바로 뛰어난 재능! 바로 저 같은 인재!”
그렇게 양극단으로 갈라졌던 5학년들이 다시 하나로 합쳐지기 시작한 건, 모든 면접이 끝나고 5월이 되었을 때였다.
새하얀 구름 위, 마법으로 만들어진 싱그러운 여름의 정원에서 5학년만 참석할 수 있는 비밀스러운 졸업식 무도회!
학생회에 따라 해마다 바뀌는 주제와 변하지 않는 낭만!
화려한 졸업식 무도회가 그들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온다!! 낭만의 무도회가!!”
“오라!! 사랑이여!!”
그리고 용기를 내지 못한 이들이 무도회의 힘을 빌려 처음으로 마음을 고백하는 날이 바로 ‘졸업식 무도회의 불꽃놀이’ 당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