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ill Make You a King as a Possessor RAW novel - Chapter (155)
빙의자가 왕으로 만들어 드립니다-155화(155/275)
칙칙하게 가라앉은 공기.
설렘과 기대로 가득 찬 포레스튼의 휴게실 한쪽 구석에 둘러앉은 그들의 표정은 먹구름보다 어두웠다. 그들 중 한 명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자, 중요한 행사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그래.”
포레스튼의 졸업식 무도회는 라 디밀레를 제외하고 포레스튼의 모든 학생이, 재학 중 가장 고대하는 행사였다.
이날 있을 무도회에서 염원하던 짝사랑을 이루거나 영원한 사랑을 기약하는 학생들도 있었고, 이제 학생이 아닌 정식 마법사로서 홀로서기를 하기 직전 포레스튼이 학생에게 해줄 수 있는 유일한 행사였기 때문이다.
게다가, 졸업하는 5학년만 참가할 수 있다니. 4년 동안 절대 알 수 없는 그 비밀스러운 파티를 어떻게 동경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물론 마냥 즐거울 것 같은 졸업식 무도회에도 커다란 난관은 존재했다.
바로 파트너였다.
기대감과 활기로 얼굴이 상기된 학생들 사이로는 걱정이 가득한 학생이 몇 있었다.
그중 하나였던 학생2가 함께 고민하던 학생 3을 팔꿈치로 툭 치며 물었다.
“그래서? 너는 누구한테 부탁할 거야?”
“나는 이미 정했어.”
“멍청아, 쟤는 쟈넷이잖아. 그걸 누가 몰라?”
“뭐야, 너네 그걸 어떻게 안 거야?!?”
“네가 그렇게 티를 내고 다녔는데 모르면 바보 아니냐? 근데 쟈넷은 너랑 안 하고 싶어 하는 것 같던데.”
기프트 클래스의 학생 1, 2, 3. 그들은 아직 무도회 파트너를 정하지 못한 상태였다. 그나마 학생3은 이미 쟈넷을 마음에 두고 있었는데 학생1은 그게 불가능할 거라 생각했다.
“쟈넷도 저 줄에 포함된 거 아니야?”
학생1이 구석 쪽 줄을 가리켰다.
휴게실의 구석진 소파에는 기프트 클래스의 3인방이 앉아 있었다.
붉은 머리, 푸른 눈. 늘 냉정한 얼굴에 잘 웃지 않는 스플린 공작가의 공자, 레이먼 반 스플린. 1학년 때에는 키도 작고 체격도 왜소한 편이라 이성으로서 인기가 많은 편이 아니었지만, 학년이 높아질수록 키도 쑥쑥 자라 이제는 누구와 함께 있어도 눈에 띌 정도의 미남이 되어 있었다.
하지만, 그런 미남이 된 레이먼이라 하더라도 그가 이번 무도회에서 인기가 많을 거라고는 그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다.
포레스튼 학생 대부분이 레이먼을 동경하긴 했으나 지나치게 완벽한 데다가 늘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만 곁에 두는 그를 어려워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랬던 예상과 달리, 밀리포레를 이어받은 후배들이 조사한 무도회 파트너 선호도에서 레이먼이 무려 1등을 차지한 것이다!
– 정말 가끔 웃으시는데, 그 얼굴이 정말 최고예요. 영원히 머리에 박아두고 싶을 정도예요. (2학년 피데스 클래스)
– 늘 웃는 남자는 매력이 없다. 꽉 찬 뇌에서 나오는 미소는 아름다울 뿐이다.
(4학년 오디트 클래스)
– 그를 웃게 한다면 그것만으로도 난 5서클 마법을 부린 거라고 생각한다.
(1학년 기프트 클래스)
– 완벽한 분이시니 인기가 많은 건 당연하다. (4학년 피데스 클래스)
– 5년 동안 같은 클래스였지만 한 번도 말을 붙이지 못했어. …그게 더 매력적이야. 무슨 말인지 알지? (5학년 기프트 클래스)
그리고 인터뷰에 걸맞게 레이먼에게 무도회 파트너를 신청하는 이들로 휴게실이 넘쳐났다. 레이먼은 모든 제안을 기쁘게 받았지만 누구에게도 확답을 주지 않았다.
길게 늘어진 파트너 신청 대기열을 본 학생 3이 가슴을 쭉 내밀었다.
“하지만 쟈넷은 레이먼을 좋아한다고 말하지 않았어. 그냥 친구들이랑 같이 서 있는 거 아니야?”
“쯧쯧. 잘 봐.”
학생 1이 손가락을 흔들며 그 옆을 가리켰다.
“쟈넷이 선 줄은 레이먼 쪽이 아니야. 바로 5왕자, 유타 쪽이지.”
“제기랄!”
학생3이 울부짖었다. 유타는 선호도 조사 2등! 심지어 왕족이다.
선호도 조사에서 레이먼이 1등을 차지하긴 했지만, 동화책 속에 나오는 진짜 왕자에 가까운 쪽은 단연코 유타였기에, 만약 쟈넷이 유타를 좋아한다면 학생3에게 승산은 없었다.
물론 레이먼을 좋아했어도 마찬가지였겠지만.
우연의 일치인지 테이블 위에 올려져 있는 밀리포레의 선호도 조사 결과표가 학생3의 눈에 들어왔다.
[ …(중략)…우리 밀리포레 2학년생들은 이번 졸업식 무도회를 기념해 포레스튼의 인기 순위를 조사하는 시간을 가져보았다. (물론 선배들에게는 비밀이다! 이게 발간되는 날 우리는 아마 죽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위대한 포레스튼의 학생들이여, 우리는 두려움에 굴복하지 않는 마법사들 아닌가!)인기 순위는 5위부터 공개할 것이며 아래에는 학생들의 의견을 달아줄 예정이다. 그러나 걱정하지 말도록! 모든 의견은 익명으로 처리되어 올라올 것이다.
3위는 바로 기프트 클래스의 오닉스.
공통의견으로는 무슨 생각을 하는지 도통 알 수 없는 나른한 눈동자와 압도적인 마력량에서 나오는 뛰어난 마법 실력이 있다.
…(중략) 자, 지금까지 3위의 결과를 보았다! 이제부터 1위와 2위가 공개될 차례다. 다들 누가 등장할지는 이미 알고 있을 거라 생각한다.
2위는 바로, 스턴 왕국의 왕자! 유타 스테디움 스턴.
유타를 뽑은 이들의 의견은 모두 동일했다.
그는 매우 친절하며, 잘 웃고 여자의 마음을 잘 알고 있다.
그럼 좀 더 자세한 의견을 알아보고자 진행했던 인터뷰 중 일부를 첨부한다.
– 그의 얼굴과 미소는 잘 어울린다. 늘 상냥한 미소와 함께 다가와 “어디 어려운 부분 없어?”라며 시험 기간 중 의지를 북돋아 주는 행동은 여학생들의 마음을 울리기엔 충분. (5학년 피데스 클래스)
– 그는 여자의 마음을 너무 잘 알고 있다. 여자로 살아본 적이 있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미남은 여자의 마음까지 알 필요 없다. 설레니까. (5학년 기프트 클래스)
– 잘생겼다. (2학년 오디트 클래스)
– 포레스튼 내에서 가장 호불호 없이 잘생겼다. (1학년 피데스 클래스)
– 자신의 평판을 바꾸는 강인함, 대정령의 마음도 사로잡는 실력과 주변 사람을 자신의 편으로 만드는 인품, 마지막으로 조각과도 같은 얼굴까지. 오히려 흠잡을 구석이 없다. 초반에 돌았던 소문은 모두 거짓임이 틀림없다. 누가 그를 버려진 왕자라고 칭하겠는가! (전체 익명 요청) ]
“하아….”
학생3은 밀리포레를 모두 읽은 뒤, 포기한 듯 소파 등받이에 기댔다.
도저히 유타를 이길 엄두가 나지 않았다!
이번 졸업식은 아주 아주 엉망일 것이 분명했고, 남은 학생 1과 2는 절망에 빠진 3을 위로했다.
사실 꼭 학생3을 위한 위로는 아니었다.
학생1과 2는 자신들도 그리 좋은 상황이 아니라는 걸 알고 있었다.
***
“애들이 조사한 거 봤냐?”
“당연히 봤지.”
“어떻게 생각해?”
레이먼은 자신의 소식이 실린 밀리포레를 읽자마자 그대로 찢어 쓰레기통에 버렸다. 유타에 대한 인식이 좋아진 건 훌륭한 성과였으나 자신이 1등을 한 데다가, 그 밑에 적힌 말들은 익숙해질 수가 없었다.
그러나 유타는 그런 레이먼의 반응과는 사뭇 다른 반응을 보였다.
“좋았지. 내 훌륭한 얼굴과 실력이 모두에게 검증받았다는 소리잖아. 게다가, 여자들의 마음을 잘 알고 있다는 칭찬까지 들으니 아주 기분이 좋던걸?”
“이거 꼭 가야 하는 거야?”
“오닉스, 네게 초대장을 주기 위해 용기를 낸 그녀들도 생각해야지.”
“나도 생각해주라. 난 그날 자려고 했단 말이야.”
“레이먼, 너는 어때? 상대는 정했어? 조금 전에 확답을 주는 것 같지는 않던데.”
‘글쎄.’라며 작게 중얼거린 레이먼은 주위를 한 번 스윽 둘러보았다. 조금 전까지 무도회 초대장을 건네던 학생들이 모두 사라지자 구석에 앉은 셋 주위에는 아무도 없었다. 레이먼이 조심스레 다른 화두를 꺼냈다.
“이제 곧 우리는 왕실, 너는 마탑으로 갈 거야. 1왕자가 돌아오면 상황이 어떻게 변할지 모르니 서로 연락은 잘하도록 해. 알았지? 오닉스, 너한테 하는 소리다.”
“알고 있어. 알고 있어.”
“위험할 수도 있다는 소리야. 네가 지금 어떤 생각을 갖든 우리와 친하다는 건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이니까.”
“마탑의 경비를 봐라. 뭐가 위험해?”
맞는 말이지.
“레이먼, 이제 포레스튼에 있는 날도 얼마 안 남았잖아. 즐겁게 보내자.”
그런 느긋한 소리를-! 이라며 반박하고 싶었지만 턱 끝까지 차오른 말을 내뱉지는 못했다. 눈을 보면 알 수 있었다. 유타가 어떤 의지와 생각으로 저 말을 내뱉은 것인지.
유타도 이미 알고 있는 것이다. 왕실에 돌아가는 순간, 오늘처럼 평화로운 고민을 하는 날들은 모두 끝이라는 걸.
결국 레이먼은 한숨을 팩 내쉰 뒤, 답했다.
“그래, 그러자.”
너한테 이겨 먹어서 내가 뭘 하겠냐.
***
무도회 당일.
포레스튼 무도회는 클럽 하우스 전체를 활용해 만들었는데, 춤을 추는 공간은 학생회 건물 옥상으로 정해져 있었다.
푸른 잎이 옥상을 가득 채웠고 저녁 시간에 시작되는 무도회를 밝히는 건 등불이 아닌 빛 마법을 이용한 허공에 퍼진 작은 반짝이들이었다. 그들 모두 웃음을 머금은 채, 계단을 따라 옥상으로 올라왔고 ‘새로운 여름의 기억’이라는 이름으로 주최된 졸업 무도회의 이름에 걸맞은 주변 풍경에 감탄했다.
“하, 춤은 안 춰서 다행이다.”
옥상 위, 마법으로 마련된 학생회용 2층 자리. 오닉스가 난간에 기댄 채 중얼거렸다.
“나머지는 후배들이랑 너희가 할 거지?”
“또 자러 가게?”
“당연.”
“오닉스, 마탑에 가서도 그렇게 잠만 자면 쫓겨날 거야.”
“마음대로 하라지. 난 간다.”
결국 레이먼과 유타, 그리고 오닉스는 전 학생회라는 핑계로 결국 무도회 상대를 고르지 않을 수 있었다. 유타의 뒤를 지키던 렌스는 묘하게 기뻐하는 표정을 지었고 레이먼 옆에 선 니콜은 파티장을 가득 채운 디저트들에 감탄했다.
“니콜.”
“예, 도련님.”
“내가 왕실로 가면 넌 따라올 수 없다는 걸 알고 있지?”
2층에도 마련된 디저트들을 접시 가득 담던 니콜의 손이 느려졌다. 그가 무슨 얘기를 할지 눈치챘기 때문이다.
“아드리안을 잘 봐줘. 아드리안도 나를 따라 왕실로 오게 되면 가문으로 돌아가. 네가 원한다면 네 이름이 걸린 베이커리를 마을에 낼 수 있게 도와줄 거다.”
“그런 말씀 마세요, 도련님. 도련님이 다시 불러주실 때까지 영원히 스플린 가에 남아 있을 거랍니다.”
영원히.
레이먼은 그 단어에 어떻게 답할지 고민하다, 무도회가 시작되는 음악 소리가 들려오자 손에 든 샴페인을 홀짝인 뒤 답했다. 졸업반이 되면 비로소 마실 수 있는 알코올의 쓴맛과 달큰함이 몸 안 가득 퍼졌다.
“그러든가.”
레이먼의 짧은 답변과 함께 계단 난간 아래 모인 포레스튼 5학년들은 모두 기다렸다는 듯 춤을 추기 시작했다. 하늘에선 여름날을 기념하는 푸른 잎들이 내려왔고 바닥에 닿자마자 녹아 사라졌다.
한편, 2층 난간에 기대 빈 칵테일 잔을 흔들던 유타의 곁에 현 학생회 회장, 4학년 단테 튜토가 다가와 섰다. 5학년만 참석 가능한 무도회였으나 학생회장과 부회장은 졸업 축하 인사를 핑계로 무도회에 참석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제 누나 아멜 튜토에 가려져 그리 유명하진 않았지만, 단테 튜토 역시 우수한 학생이었다. 스스로에게 지나칠 정도로 엄격한 그는 테디 베어릴 만큼이나 옷매무새가 단정했고, 제 학년에서는 2등을 차지한 수재였다.
– 유타 님 곁에 있고 싶어서 지원했습니다!
지원 동기부터 레이먼 마음에 쏙 들어 3학년 때 학생회에 들어와 올해 회장을 차지한 단테가 유타의 빈 잔을 꽉 찬 다른 잔으로 바꿔주며 말했다.
“선배님, 졸업 축하드립니다!”
푸른 머리, 푸른 눈의 단테를 곁에 두면 어쩐지 시원한 기분이 들었기에 유타는 단테를 꽤 좋아했다.
“그래. 너도 축하해. 회장 하면 바쁘니까 성적도 잘 챙기고.”
“네!”
“오늘 인사는 준비했어?
졸업 무도회의 하이라이트. 다음 해를 이어갈 학생회장의 선배들을 향한 졸업 축하 인사. 작년에는 유타가 했지만 이번에는 들을 차례였다.
“네, 준비했습니다!”
“잘 들을게.”
“감사합니다. 선배님도 꼭 준비하고 계세요.”
“내가? 뭘?”
“그런 게 있습니다!”
평소의 예의 바른 단테에서 볼 수 없는 미소였다.
시간이 흘러 밤의 무도회는 깊어지고 둥근 달이 무도회 하늘의 중앙을 장식할 때, 학생회장 단테의 졸업 축하 인사가 시작되었다.
“마지막으로 선배님들 진심으로 졸업 축하드립니다! 그리고!”
“…?”
“정말 마지막으로, 3년 동안 학생회장을 하며 저희를 지켜주셨던 유타 선배님의 졸업 인사가 있겠습니다!! 선배님! 오시죠!”
“저놈이-.”
“귀엽네. 나가봐.”
“레이먼.”
“캬, 이번 회장은 마음에 든다.”
오닉스와 레이먼이 유타를 앞으로 밀었고, 결국 유타는 회장의 중심에서 학생들에게 둘러싸였다. 결국 유타는 단념한 듯 한 번 한숨을 크게 내쉬었다.
“알겠다, 알겠어. 자!”
그리고 마지막 추임새와 함께 그가 손에 들고 있던 샴페인 잔을 높게 치켜들자, 파티를 즐기던 학생들도 일제히 손에 든 잔이나 완드를 하늘 높게 치켜들었다.
졸업 무도회의 마지막 순간이었다.
“위대한 포레스튼의 학생 여러분!!”
유타의 목소리가 옥상 가득 울렸다.
“우리는 오늘의 마지막, 그리고 내일의 시작에 서 있습니다.”
“휘우우-!!”
“졸업이다!!”
“급조한 것 치고 말 잘한다!!”
“우리는 보다 나은 마법사가 되기 위해 포레스튼에 입학하였고, 보다 나은 ‘사람’이 되어 이곳을 떠나게 될 것입니다.”
졸업 무도회의 마지막 인사말. 감상에 젖은 이들 중 훌쩍이기 시작한 학생들도 있었다. 대부분 기프트나 오디트였고 피데스는 그런 학생들을 이해가 안 간다는 눈으로 흘깃댔다.
“우리를 지켜주던 친구, 교수님, 아카데미는 사라져 세상에 홀로 남겨지겠지만.”
“…….”
“동시에 우리의 친구, 우리의 교수님, 우리의 아카데미는 늘 우리의 곁에서 우리를 지켜줄 것입니다. 마법은 그런 기적이기 때문에.”
유타의 완드 끝이 빛났다.
[ 도와주지. ]빛의 대정령이 유타의 완드를 함께 붙들었다.
어느새 한밤중의 무도회는 빛으로 가득 찼고 하늘에서 내리는 금빛의 비와 모든 학생들의 눈에 처음으로 보이기 시작한 정령들이 그들 주위를 춤췄다.
그리고 유타가 외쳤다.
“여러분의 새로운 시작을 진심으로 응원합니다!”
그렇게 포레스튼에서의 5년이 모두 끝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