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ill Make You a King as a Possessor RAW novel - Chapter (16)
빙의자가 왕으로 만들어 드립니다-16화(16/275)
“그러니까, 레이먼 너는 학생회에 들고 싶다는 거지?”
“흥미는 있습니다.”
“음… 하지만 레이먼, 안타깝게도 학생회는 2학년부터 들어올 수 있단다. 1학년은… 학생회의 버틀러는 될 수 있겠구나. 1학년이 버틀러가 된 적은 역사상 한 번도 없었지만 말이야.”
학생회 클럽 하우스 내부는 건물에서부터 알 수 있듯이 정말로 컸고, 쭉 뻗은 복도 앞에는 거대한 문이 있었는데 양 문을 열면 곧바로 학생회장실이 있었다. 서머셋은 레이먼을 데리고 곧장 제 방으로 향했고 직접 홍차를 우려줬다.
그가 입은 교복은 일반 학생과 똑같았으며 그리 각 잡혀 있지 않았고 얘기를 나누다 보니 그 자체의 성격도 고압적이거나 왕족의 분위기가 풍긴다기보다는 조금 더 소탈한 쪽에 가까웠다.
“…버틀러라면 시종이요?”
레이먼이 물었다.
“학생회에 들어가려면 다른 학생들의 따까리가 되어야 한다는 뜻인 거죠?”
서머셋이 순진한 눈빛으로 되물었다.
“따까리가 뭐지?”
따까리를 모르나?
레이먼이 심드렁하게 대꾸했다.
“뭐… 심부름꾼 같은 거죠. 기사들의 종자처럼요.”
서머셋의 입꼬리가 은은하게 올라갔다.
“네가 생각하는 단순한 종자나 심부름꾼보다는 지위가 높을 거야. 버틀러와 선배의 관계는 서로의 사견을 자유로이 나눌 수도 있어야 하고 서로의 비밀을 온전히 지켜주는 사이가 되어야 하거든. 기사의 맹세까지는 아니어도 버틀러의 맹세 서약도 따로 있고 말이야. 그래서 2학년부터 될 수 있는 거야. 기본적인 신뢰 정도는 쌓아둔 상태여야 하니까.”
서머셋이 부드럽게 웃으며 찻잔을 들었다. 잔 너머로 보이는 그의 눈빛은 ‘네가 버틀러를 할 성격은 아닌 것 같은데?’라고 말하는 듯했다.
그러나 그건 정답이 아니었다. 이 세상에서 가장 따까리 짓을 잘할 놈을 고르라 한다면 레이먼은 망설임 없이 자신을 고를 것이다. 레이먼의 따까리 이상형은 전생의 자신이었다.
하고 싶은 일과 잘하는 일이 동의어가 아닌 것처럼 전생의 레이먼은 따까리 짓을 싫어했지만 그 일을 잘하기도 했다.
생각해보니 억울하군. 기껏 빙의해서 받은 재능이 고작 따까리 짓에 좋은 빠른 눈치와 그럴듯한 거짓말을 치는 것뿐이라니.
속마음을 숨긴 레이먼이 간단히 질문했다.
“서머셋 님도 그러셨나요?”
“그래, 나도 버틀러였던 시절이 있었지.”
“누구의?”
“전 학생회장. 우리 형님.”
“오. 그것참.”
“재밌지?”
레이먼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네요.”
서머셋이 피식 웃었다.
“솔직해서 좋구나. 어찌 됐든 레이먼 너도 그럼 누군가의 버틀러가 되기를 희망하는 거니? 만약 희망한다면 로비에 있는 우편함에 네 이름과 성격, 희망하는 선배 이름을 적고 가면 돼. 그럼 우리가 성적이나 성격을 고려해서 뽑는 거란다.”
“가문은 보지 않나 봐요?”
서머셋이 어깨를 으쓱했다. 품위가 떨어진다 생각이라도 한 걸까. 답은 하지 않았다.
‘본다는 소리네.’
레이먼은 알겠다며 자리에서 일어났고 서머셋 역시 그를 잡진 않았다.
‘버틀러 신청은 다음이 낫겠어.’
그렇게 생각하고 문고리를 잡은 순간, 레이먼은 지금 이 타이밍이 ‘그’ 질문을 할 기회라고 생각했다. 만약 분위기가 거지같이 변한다면 그대로 튀면 되니까. 레이먼이 슬쩍 고갤 돌렸다.
“저기, 서머셋 님. 하나만 질문해도 되나요?”
“그러렴.”
“그 예언 클럽의 클럽장은 누군가요?”
서머셋이 의외라는 듯 눈을 동그랗게 떴다.
“내가 그 예언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묻는 게 아니라?”
“그 감상도 클럽장이 누군지에 따라 달라질 것 같아서요.”
그 답에 서머셋은 여태까지 중 가장 크고 곱게 웃었다. 그는 정말이지 한참이나 웃었다. 문고리를 쥔 레이먼의 다리가 저릴 정도로 말이다. 레이먼의 두 다리가 떨어져 나갈 때쯤, 서머셋이 눈물을 닦으며 말했다.
“그렇구나. 그럼 말해줘야지. 클럽장의 이름은 콜로만 아르파드야.”
***
학생회 건물과 클럽 하우스 지대를 빠져나온 레이먼은 곧장 휴게실로 돌아왔다. 레이먼은 멍하니 침대에 드러누워 앞으로의 일에 대해 생각했다.
“너 상태가 왜 그러냐?”
우물우물. 오닉스가 직사각형으로 된 검은 젤리를 질겅거리며 레이먼을 향해 물었다.
“뭐가?”
“어디서 개구리 뒷다리라도 콧구멍에 쑤셔지다 온 얼굴이잖아. 그렇다고 원래 얼굴이 낫다는 건 아니야. 평소엔 앞다리니까.”
“오닉스, 넌 또 왜 시비야? 그러는 너야말로 내 방을 왜 네 방처럼 쓰고 있는 건데.”
레이먼의 맞은편 소파에 드러누운 채 오닉스가 말했다.
“왜냐니. 내 방의 벽을 네 집사가 뚫어버렸으니 보수 전까지, 네 방은 내 방이나 다름없다고. 이 정도는 보상해줘야지.”
“뭐?”
레이먼이 재빠르게 고갤 돌려 니콜을 바라보았다.
니콜은 어쩔 수 없었다는 듯 찢어진 셔츠 팔뚝을 펄럭였다.
“도련님, 죄송해요. 봐주세요. 근성장을 하다 그만.”
“방이 두 배가 돼서 나쁘진 않네. 그나저나 니콜, 네가 만든 초코 젤리 정말 맛있다.”
오닉스가 갈색 직사각형 젤리를 치켜들며 진심으로 감탄했다. 니콜도 기분 좋은 듯 배시시 웃으며 답했다.
“헤헤, 작은 도련님도 좋아하시던 간식이에요. 이번에 본가에 다녀오면서 잔뜩 만들어왔답니다. 레이먼 도련님도 좀 드세요. 비실비실한 몸에 연비까지 안 좋으니 이런 걸 드셔야지요.”
레이먼이 이마를 짚었다. 니콜이야 그렇다 치고 오닉스 쟤는 원래 저런 놈이었나? 묘하게 말수가 늘지 않았어?
“둘 다 좀 닥쳐봐.”
“아까 전부터 아르 뭐시기 중얼거리던데. 그건 뭔 얘기야?”
오닉스의 추궁에 레이먼은 조금 전 클럽 하우스에서 들은 이야길 그대로 전해주었다.
오닉스의 얼굴은 머리 색을 똑 닮은 보랏빛이 되었다가 마지막엔 창백한 상아색이 되었다. 그 타이밍은 명백히 ‘예언 클럽의 클럽장이 아르파드 가문이라더라.’라는 말을 들었을 때였다.
“아르파드…?”
“그래, 아르파드.”
니콜이 입술 위에 손가락을 얹으며 속삭이듯 입을 열었다.
“아르파드 가문이라면 백작 가문 중에서도 제일 조용한 가문 아닌가요? 일할 때도 아르파드 가문에 대한 건 들어본 적이 거의 없는 것 같아요.”
“그래, 니콜. 네가 알고 있는 건 그게 다겠지. 하지만 여기서 생활하면서 애들이 말하는 걸 들은 결과.”
레이먼 대신 오닉스가 이어 답했다.
“아르파드만큼 끔찍한 귀족은 없어.”
오닉스가 몸을 파르르 떨었다.
포레스튼 아카데미 학생들은 멍청하긴 했지만 소문은 빨랐다. 특히나 귀족들 사이의 스캔들이나 뒷소문에 대해 말이 많았는데 부모들의 제지가 없다 보니 더욱 많은 말이 나돌곤 했다. 그중에서도 가장 많은 분량을 차지하는 건 단연코 아르파드 가문이었다.
“아르파드 가문에게 미움을 사는 자, 사는 게 더 이상 사는 게 아닌 것이 되리라.”
최대한 오싹한 분위기를 연출하며 오닉스가 손가락을 흔들었다.
“아르파드 가문은 저주 마법에 특화된 가문이야. 근데 이 저주라는 게 말 그대로 ‘특화’라는 거지 가장 강한 건 아니거든. 즉, 매일매일 소소한 저주에 걸린다는 거야.”
니콜이 물었다.
“예를 들면요?”
“점심시간에 좋아하는 메뉴를 다시는 먹을 수 없게 된다거나. 시험 때는 이상한 복통에 시달려 평소 성적의 반의반도 안 되는 성적을 받는다거나, 복도를 걷다가 우연히 내가 발을 뻗는 장소만 판자가 썩어있어서 그대로 넘어져 지하까지 뚫고 들어가 발목뼈가 부러진다거나 하는 그런 거.”
이번엔 니콜이 양 볼을 누르며 절규했다. 그건 너무 끔찍하잖아요! 오닉스가 동의하듯 고갤 끄덕였다.
그가 말했다.
“그리고 아르파드 가문은 구 귀족파 중에서도 왕족이랑 제일 친밀한 가문이야. 그런 놈이 서머셋이 죽을 수도 있다고 말한 건 의미가 크지. 정작 본인은 별로 신경 쓰지 않는 것처럼 보였지만.”
그래서? 어떡할 거야? 오닉스가 눈빛으로 질문했다. 오닉스는 어쩌면 레이먼이 서머셋을 도울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가 유타를 알게 모르게 돕고 있다는 것 또한 이미 눈치챈 오닉스였다. 하지만 그런 소년의 기대와 달리 레이먼은 그럴 생각 따윈 한 치도 없었다.
“4왕자 주변에 호위가 몇 명인데. 내가 왜 나서?”
“몇 명인데.”
“몰라. 많겠지.”
오.
“하긴.”
***
다음날 생활관 로비가 떠들썩했다. 클럽 하우스의 클럽장들이 모두 모여 회의를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이 개미 떼처럼 몰린 이유는 모두 레이먼 반 스플린 때문이었다.
“진정해. 레이먼의 몸은 하나야. 우리 예쁜 후배가 선택한 곳으로 보내줘야 하지 않겠어?”
“차라리 교칙을 개정하는 건 어때? 한 사람이 클럽을 5개… 아니, 10개 정도는 들 수 있도록 말이야!”
“그거 아주 좋은 생각인걸?!”
주말이면 다들 방에 처박혀 있어라, 제발.
자타공인 포레스튼 아카데미의 엘리트들이 로비에 모여들자 저학년들은 득달같이 그들에게 달려들어 질문을 던지고 있었고, 레이먼은 로비 초입에 들어서자마자 펼쳐진 광경에 기함을 토했다.
‘이런 젠장맞을. 진작에 빠져나갔어야 하는데.’
일단 그는 이곳에 섞여들어선 안 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미 인파에 말려들었다. 레이먼은 그대로 둥글게 둘러앉은 클럽장들 사이로 떨어졌다.
“레이먼!”
“어서 와!”
“널 기다리고 있었어!”
“어제 어느 클럽에 들어갈지 정하지 않았잖아.”
“음, 그게.”
어떡하지. 별처럼 빛나는 눈들이 하나같이 레이먼을 바라보고 있었다. 레이먼은 볼을 긁적이다 묘수를 생각해냈다!
“죄송해요. 어제 서머셋 님이 저한테 학생회를 제의해주셔서요.”
“뭐…? 그 서머셋이 먼저?”
“끄응. 서머셋이 건드렸다면야-.”
“하지만 아직 1학년이잖아. 버틀러도-.”
“그래도 특별 케이스라는 게 있으니까.”
“게다가……”
다들 서로의 눈치를 보며 침을 꿀꺽 삼켰다.
4왕자가 침 바른 1학년생을 괜히 빼앗았다간.
클럽장들의 머릿속에 어떤 불길한 상상이 스쳐 지나갔다. 그 틈을 타 레이먼은 생활관 클래스를 벗어났다. 주말이니 마음 편하게 일기장을 보려고 했는데 말이야. 레이먼은 품속의 일기장을 끌어안은 채, 학습관으로 향했다. 주말에 학습관에서 공부하는 미친놈은 없겠지.
탁탁탁. 끼익.
학습관 2층으로 가자.
그쪽은 신입생들 수업이 있는 곳이니까 더더욱 사람이 없을 거야.
“……어라?”
그러나 레이먼의 기대와 달리 학습관 서동 2층에는 사람이 있었다.
문제는 그 사람이 학생으로 보기엔 체격이 지나치게 컸다. 그는 검은 케이프를 몸에 두른 채 얼굴을 가리고 있었으며 한 손에는 유타가 들려 있었다. 이게 가장 큰 문제였다.
‘쟤가 왜 저기 있어?’
유타는 이미 몇 대 맞은 채였다. 고운 얼굴의 한쪽 볼은 퉁퉁 부어 있었다. 신발 한 짝이 벗겨진 건 덤이었다. 이마에선 피가 뚝뚝 흘러내렸다. 옷을 벗기지 않아서 그렇지 벗겨 놓고 보면 성한 구석이라곤 한 군데도 없을 것이다.
“당신, 뭐…!”
레이먼이 다급하게 팔찌를 낀 손을 높게 치켜들었을 땐 이미 그도 정신을 잃은 뒤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