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ill Make You a King as a Possessor RAW novel - Chapter (162)
빙의자가 왕으로 만들어 드립니다-162화(162/275)
“뭘 멀뚱히 구경만 하고 서 있어? 들어와서 앉아.”
“앉을 구석이 보이질 않아서요.”
“응? 여기 있잖아.”
매너스의 방은 좋게 말하면 학구열이 넘치는 방이었고 나쁘게 말하면 죽은 책들이 잔뜩 모인 쓰레기장 같았다. 시체처럼 드러누운 책들이 한두 권이 아니라 수백 권은 되어 보였고 구겨진 종이 하며 무언가 쓰다 만 보고서들이 어지럽게 바닥을 장식하고 있었다.
레이먼은 종이들의 시쳇더미들 사이를 겨우 지나 그나마 깨끗한 소파에 앉았다.
“시종인들이 방에 들어오지는 않는 모양입니다.”
“내 방에는 절대 들어오지 말라고 하거든.”
“이유가 있습니까?”
“이유? 아. 하하하하. 그렇지, 이유가 있지.”
레이먼은 절대 방이 더럽다는 말은 하지 않았지만 대충 눈빛만 봐도 ‘이 정도로 더러우니 남들을 못 부르는 거 아닙니까?’라는 뉘앙스가 느껴졌다. 눈치 빠른 매너스도 레이먼의 눈빛을 읽었는지 대충 너털웃음을 짓고는 그의 맞은편 소파에 앉았다. 시종인이 들어올 수 없다 말한 그는 차 대신 테이블 아래 있던 쿠키 박스를 꺼내 테이블 위에 올려두었다.
“나름대로 질서가 있는 방이야. 어디에 무슨 책이 있는지 다 아니까. 그걸 시종인들이 건드리면 나중에 내가 찾기 어렵잖아.”
“책장에 꽂아두면 편하지 않겠어요?”
“그건 사람 냄새가 안 나잖아.”
“사람 냄새요. 그렇군요.”
이러다 쓰레기장 냄새가 나지 않을까요.
“무슨 생각해? 설마 쓰레기장 냄새가 난다고 생각한 건 아니지?”
어떻게 알았지?
“별생각 안 했습니다.”
매너스는 그래? 라는 답과 함께 송곳니를 보이며 씩 웃은 뒤에, 화제를 돌렸다.
“그나저나 왕성 생활은 어때? 이제 슬슬 업무도 받아 제대로 된 일을 할 때 아닌가? 일찍 들어온 만큼 일찍 일을 시키는 걸로 알고 있는데.”
“일을 받은 게 하나 있습니다. 조만간 마을로 가봐야 해요.”
“어떤 일인데? 동네 양아치 처리?”
“…어떻게 아셨습니까?”
매너스가 웃으며 답했다.
“처음 온 애들한테 시키는 일이 그거거든. 마을로 가긴 귀찮고 괜히 엮여봤자 좋은 일도 없으니까. 나도 했었어. 질서를 되찾는 일이었으니 꽤 괜찮기도 했고.”
“그렇군요. 마을 질서를 되찾기 전에 자기 방 질서나 잘-.”
“응?”
“아닙니다.”
“너는 날 편하게 대해서 좋아. 여하튼, 네가 겨우 그 일 때문에 나를 찾아왔을 리 없고. 흠.”
그가 살짝 기운 자세로 팔걸이에 기댄 채, 레이먼을 바라보았다. 팔걸이를 톡톡 치며 무언가 생각하던 매너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1왕자 형님 때문인가? 형님은 이제 막 스웨인 영지 근처를 돌고 있겠군.”
원래라면 국경을 넘자마자 이동 마법으로 곧장 수도에 왔을 테지만 1왕자는 이동 마법을 거부했다. 자신이 쿠모르 제국에 있는 동안 변한 스턴 왕국을 눈에 담고 싶다는 이유로 왕국 외곽부터 천천히 영지들을 순회하며 수도로 돌아오고 있기 때문이다. 덕분에 오닉스의 폭죽 작업량은 늘었고 레이먼이 마을로 가는 시기가 뒤로 밀렸다.
귀환식 직전에 양아치를 소탕해야 1왕자가 더욱 깨끗한 수도의 거리를 볼 것이라 위에서 판단했기 때문이다.
“형님도 일정을 지키면 좋을 텐데 말이야. 왕국을 한 바퀴 돌고 수도로 돌아올 줄은 몰랐거든.”
그가 넉살 좋게 웃으며 어깨를 으쓱했다.
레이먼이 물었다.
“1왕자님에게서 온 편지가 또 있습니까?”
“당연하지. 돌아오기 직전까지도 형님은 내게 서신을 꼬박꼬박 보냈거든. 보겠어?”
일전에도 봤던 그 징징대는 편지들 말인가?
레이먼이 고개를 끄덕이자, 매너스는 서랍에서 편지 뭉텅이를 하나 꺼내왔다.
얼핏 보기에도 두께가 상당했다.
꼬박꼬박 보낸다고 하더니 정말 무슨 일이 생길 때마다 한 통씩 보내는 게 틀림없다.
레이먼은 1왕자의 외모를 전혀 알지 못했지만 대충 어떻게 생겼는지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을 것만 같았다.
편지의 내용은 전에 읽었던 것과 비슷했다.
“내용이 참….”
“귀엽지 않아?”
“네, 귀엽네요.”
이건 형님이라기보다… 징징거리면서 하소연하는 동생 같지 않나?
말 안 듣는 철부지 같기도 하고.
레이먼은 솔직한 감상을 내뱉는 대신 편지를 조용히 테이블 위에 되돌려 두었다.
“일전에 1왕자 형님이 좋은 분이라고 하셨고, 에글린턴 운영도 형님께 맡긴다고 하셨죠? 아직도 유효합니까?”
“그래. 형님이 싫다 해도 맡길 예정이다.”
매너스가 씨익 웃었다.
매너스와 서머셋의 유일한 공통점이 있다면 웃는 얼굴 뒤로 어떤 생각을 하는지 제대로 드러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나마 인간적인 매너스가 좀 더 표정 변화가 다양했다. 하지만 그도 중요한 일에는 절대 제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편이었다.
“저도 저번에 말한 적 있지만, 이 편지만 봐서는 1왕자님이 도통 어떤 분인지 짐작할 수 없어서요. 마법 능력은 출중하십니까?”
“출중하지.”
“검술은요?”
“그저 그래. 검술은 내가 이길 거다.”
“아랫사람들은 어떻게 대합니까?”
“쩔쩔매지.”
“쩔쩔맨다고요?”
평생 왕족으로 살았을 사람이?
레이먼이 얼굴을 구기자 매너스는 이 상황이 재밌다는 듯 쿡쿡 웃음을 흘렸다. 넓은 등을 책장에 기대 선 매너스가 손에 든 편지를 팔랑였다.
“이런 편지를 쓴 사람이 어떻게 쩔쩔매나 궁금한 건가?”
“예.”
“독특해, 형님은. 1왕자만 아니었다면 더 좋았을 사람이야. 형님은… 널 보면 좋아할 수도 있겠어.”
레이먼이 물었다.
“이유가 있습니까?”
“그 사람은 유타도 좋아했거든.”
지금과는 동떨어진 평판을 갖고 있던 그 시절의 5왕자를 1왕자가 좋아했다는 이야기는….
레이먼 역시 처음 들어보는 이야기였다.
‘1왕자를 쓸 수 있을지 없을지는 직접 만나고 결정해야 되나.’
***
일주일이 흘렀다. 1왕자의 수도 귀환까지 하루가 남은 시점, 레이먼은 동네 양아치들을 소탕하기 위해 수도의 골목골목을 돌아다녔다.
“일렬로 서라.‘
“….”
“대답.”
“네!”
“네!!”
“네!”
양아치 소탕 일은 생각보다 훨씬 간단했다.
악명 높은 양아치들이라고 들었는데도 마법 한 번이면 대충 마무리 지을 수 있을 정도였다.
조금 귀찮은 게 있었다면 딱 하나.
양아치들 주제에 이놈들이 쓸 줄 아는 마법이 있었는데 바로 속도를 올려주는 1서클 기본 마법이었다. 마법사라면 금세 잡을 수 있는 실력이었지만 마법을 쓸 줄 모르는 일반 경비대들이 쩔쩔매는 이유는 알 것도 같았다.
“다들 나쁜 짓은 이제 안 할 거지?”
“예! 물론입니다!”
“그래? 그럼 마지막으로 너희들이 뭐 하고 다녔는지만 확인하자.”
“예? 아… 그게, 그… 저희 진짜 이제 안 할 건데요.”
전기 마법 하나에 정신이 번쩍 차려진 양아치들은 잔뜩 겁먹은 얼굴로 눈길을 주고받았다. 버려진 나무 상자에 한 다리를 걸치고 앉은 레이먼의 인상이 오히려 그들보다 더 양아치처럼 보이기도 했다.
레이먼은 주머니에서 종이를 꺼내 이놈들의 악행을 읽기 시작했다.
“어디 보자~. 도둑질에 폭행, 애들한테 소매치기까지 시켰어? 너희들은 마법 한 번으로는 안 되겠다. 엎드려뻗쳐.”
“네!”
“좀 있으면 경비대가 올 거다. 그때까지 엎드려뻗쳐로 대기.”
엎드려뻗쳐로 힘을 뺀 뒤 팔 벌려 뛰기, 그다음으로 개구리 뜀박질까지 시킬 쯤이 되어서야 경비대가 도착했다.
“레이먼 마법사님!”
“아, 네.”
“오늘 정말 몇 건을 해주시는 건지. 바로 앞 다른 골목에서 잡힌 놈들도 가두고 오느라 늦었습니다! 이놈들이 마지막이니 마을에서 좀 쉬셔도 괜찮고 왕성으로 돌아가셔도 괜찮습니다!”
경비대들은 진심으로 레이먼이 존경스러웠다.
그동안 얼마나 많은 마법사들이 이곳을 오갔던가!
그들 대부분은 맡은 골목만 대충 처리하고 떠났는데, 레이먼만큼은 달랐다.
역시!
5왕자님과 함께 세상을 바꾸기 위해 노력하는 훌륭한 공자님이라고 들었는데 틀린 소문이 아니었던 것이다.
“알겠습니다. 그럼 수고하세요.”
정령 가루처럼 반짝이는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경비대들에게 대충 인사한 레이먼은 얼른 골목을 떠났다.
***
포레스튼은 수도 상공에 있었지만 정작 학생들이 수도로 내려올 일은 적었다. 때문에 레이먼이 수도 마을의 중심, 디움을 유유자적 걸어 다니는 것 역시 이번이 처음이었다.
여태껏 돌아다녔던 외곽 마을과는 달리 잘 정돈된 길거리와 그리 낡지 않은 사람들의 의복, 그리고 적당한 과채류의 가격까지. 평범한 인생을 꾸려나가기에 적당한 마을이었다. 레이먼은 디움 마을에서 가장 유명한 제과점 ‘에케크’ 앞에 섰다.
니콜이 왕성까지 따라오진 못했지만, 식당에 있는 디저트 메뉴를 볼 때면 자기도 왕성 디저트를 배 터질 만큼 먹고 싶다던 그가 종종 떠올랐기 때문이다.
‘정이 쌓일 만큼 오래 곁에 두긴 했지.’
더 오랜 시간을 살았던 빙의 전, 유태하로 살아갔을 적에도 곁에 그렇게 오래 누군가를 둔 적 없었다.
‘사서 보내줄까?’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디저트를 받고 팔짝팔짝 뛰어다닐 니콜의 모습도 눈에 선했다.
– 도련님! 이게 대체 무슨 일입니까! 오, 세상에. 이 케이크는 고구마와 감자를 이용해 만든 신제품이잖아요! 알려드린 적도 없는데… 어떻게 아시고.
‘아드리안 것까지 몇 개 사서 보내줘야겠어.’
딸랑-
분홍빛 간판의 에케크의 내부 인테리어는 간판처럼 따뜻한 색으로 가득했다. 눈을 어지럽히지 않는 적당한 채도의 분홍빛과 그에 어울리는 흰색과 노란색의 조화가 유리장 안에 진열된 디저트를 더욱 탐스럽게 만들었다.
레이먼이 디저트를 고르는 사이 먼저 계산하고 있던 사내의 불쌍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것도, 저것도 먹고 싶은데…….”
“…….”
“아니야. 이렇게 먹으면 분명 건강에 좋지 않겠지. 인생이 너무 고달프다. 이 가게는 케이크가 왜 이렇게 많은 거야?”
어디서 많이 들어본 징징대는 소린데.
‘우연인가? 하긴, 이 정도로 고민하는 사람이 한둘도 아니고.’
“쿠모르는 디저트류가 많지 않았는데. 내가 없는 사이 스턴의 디저트가 너무 발전해버렸어. 하아.”
‘쿠모르…?’
순간 레이먼의 눈길이 확 돌아갔다. 그때, 사내도 레이먼을 보고 있었는지 사내의 눈도 레이먼의 푸른 눈과 맞닿았다. 머리 전체를 감싸는 후드를 쓰고 있었기에 머리 색은 보이지 않았지만, 사내의 눈은 분명 붉은색이었다.
“설마 1왕자….”
“거기 동생. 혹시 어떤 케이크가 제일 맛있는지 정해줄 수 있겠어?”
“예?”
“내가 이런 걸 잘 못 정하거든.”
1왕자… 설마 아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