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ill Make You a King as a Possessor RAW novel - Chapter (166)
빙의자가 왕으로 만들어 드립니다-166화(166/275)
수도 마을 펌블은 소여 스트릿을 비롯해 다양한 스트릿으로 나뉘어 있었다.
대개 상가와 맛집이 밀집한 소여 스트릿이 이번 귀환 축제에서도 가장 사람들이 몰리는 공간이었다.
마탑에서 준비한 폭죽이 가장 잘 보이는 공간도 소여 스트릿이었다.
하지만 레이먼이 ‘그’를 따라 들어온 골목은 소여 스트릿 쪽이 아니었다.
구불구불한 골목길 사이사이에는 여러 가지 골동품 가게들이 즐비했다.
길 가다 벽돌을 잘못 짚기라도 하면 미지의 아티팩트 가게로 휩쓸려 갈 수도 있는 골목으로 유명한 하피 스트릿이었다.
하피 스트릿도 평소 사람이 없는 골목은 아니었지만, 오늘은 축제 때문인지 사람이 거의 보이지 않았다.
레이먼은 그를 따라 점점 더 어두운 골목으로 들어섰다.
혹시나 해서 시간을 확인해보았지만 역시나 아직 약속 시간까지 1시간은 남아 있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왜 벌써…?
“어.”
놓쳤다. 그 순간, 레이먼의 시야에 있던 ‘그’가 그대로 사라졌다.
타닥타닥-.
“어디로 사라진 거지?”
결국 레이먼은 익숙한 붉은 머리를 찾으려 그가 사라진 위치 바로 옆 가게들을 하나씩 열어 보았지만 그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고, 대신 불쾌하게 웃고 있는 점술사 양반들만이 레이먼을 반겨줄 뿐이었다.
***
골목에서 나온 레이먼은 유타 일행과 헤어졌던 소여 스트릿 쪽으로 다시 향했다.
평소에도 쾌활한 기운이 가득한 소여 스트릿이었지만 축제 당일은 역시나 활기찼다.
하늘 위론 무지개색 폭죽이 터지며 꽃가루를 날렸고 뛰어다니는 아이들을 피하느라 소리를 지르는 광경마저 축제다웠다.
몇몇 마법사들이 개구쟁이 꼬맹이들을 혼내기 위해 빗자루에 태운 채 그대로 축제를 벗어나는 모습도 볼 수 있었다.
여름방학이 끝나고 왕성으로 왔던 동기 마법사들 몇몇도 보였다.
그들은 레이먼을 발견하자마자 반갑게 인사했다.
다들 축제로 들떠 있었다.
다른 친구들과 짧은 인사를 나누며 소여 스트릿의 상회들이 줄지어 늘어선 길목에 도착하자마자 근처에 있는 유타와 일행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들은 그 짧은 시간 동안 뭔가… 많은 걸 즐긴 듯했다.
희한한 가면을 착용한 유타가 손을 흔들어 그를 반겼다.
한쪽 손에는 레이먼이 보지 못한 짐들이 가득했다.
“레이먼, 한참 찾았어.”
“한참 찾은 몰골이 아닌 거 같은데……. 대체 내가 없는 동안 무슨 일이 있던 거야?”
유타뿐만 아니라 오닉스도, 믿었던 테디도, 더욱더 믿었던 렌스의 상태도 처참했다.
그들의 몰골은… 5살짜리 꼬맹이가 놀이공원에 처음 와 부모님에게 갖은 떼를 다 쓴 모습과 꽤나 비슷했다.
차이가 있다면 그들은 20살이 넘은 성인이었다는 점과 그들을 혼내줄 부모님이 동행하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그 모자랑 안경은 대체 뭐고.”
레이먼의 질문에 유타가 활짝 웃었다.
“오, 레이먼! 네가 물어봐 주길 기다렸어. 지금 내가 쓰고 있는 가면이 뭔지 알아?”
“뭔데.”
“웃는 얼굴 가면이라는 거야. 이 가면을 쓰고 있으면 보고 있는 사람이 웃게 된다고 하더라. 우리 학교 졸업생들이 만든 마법 상회에서 팔길래 한번 사봤어. 그리고 이건 리리파족의 사탕 가게에서 산 공갈 사탕. 안쪽이 텅 비어 있지만 입에 넣고 녹여 먹다 보면 원하는 맛으로 변한다고 하더라.”
유타가 다른 물건을 소개하기 위해 가방을 뒤적이는 틈에 오닉스가 끼어들었다.
“이거 봐.”
“…이건 또 뭔데.”
“푸른 보석이 박힌 깃펜.”
유타에 비해 무난한 상품이었다. 그러나 축제 시즌.
분명 이 깃펜의 가격도 평소보다 높게 측정되었을 가능성이 높았다.
오는 길에 있는 몇몇 가게들은 실제로 평소보다 가격이 좀 더 오른 채였다.
그걸 알 만한 놈이 지금 이걸 산 건가?
“어른이 좋아하게 생겼냐?”
“…….”
“왜 대답이 없어.”
“아니…. 네 입에서 예의 바른 표현이 나오는 게 신기해서.”
“욕지거리 듣기 전에 말해봐.”
“네가 말하는 어른이 누군데? 그게 누군지가 중요할 거 같은데.”
“말 못 해.”
레이먼은 오닉스가 누굴 위한 깃펜을 산 건지 눈치챘지만, 굳이 티를 내고 싶지 않았다.
난처해하는 모습의 오닉스를 좀 더 골려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레이먼이 그게 누군지 모르면 알 수 없다는 투로 계속해서 중얼대자 결국 오닉스는 레이먼의 정강이를 세게 걷어찬 뒤 말해주었다.
“마탑주! 마탑주 줄 거다!”
“아, 그래?”
“너 이 새끼, 알고 있었지.”
“아니, 몰랐는데?”
“X랄 마. 그래서?”
“그래서 뭐.”
“좋아할 거 같냐고.”
“정중하게 물어봐야지.”
“좋아할 거 같으시냐고.”
“나한테 존대해야지.”
“됐다. 너한테 물어본 내 잘못이지.”
결국 참지 못한 오닉스가 고개를 홱 돌려버렸다.
뒤돌아 깃펜을 다시 이리저리 살피는 오닉스에게 레이먼이 말했다.
“네가 주는 거면 다 좋아하실걸.”
최근에 만나 뵌 적은 없지만 적어도 만나 뵀을 때마다 오닉스를 챙기려고 하셨던 건 분명했으니까.
그의 말에 “헛소리하지 마라.”라고 답한 오닉스였지만 희미하게 올라가는 입꼬리를 레이먼은 확인했다.
한편 테디 베어릴이 산 건 다른 애들에 비하면 평범했다.
그는 세탁 마법을 쓰지 않고도 옷을 깔끔하게 만들어준다는 비누와 단추를 달 때 쓰는 바늘 중에서도 특히 비싼, 드워프족이 직접 만든 바늘을 구입했다.
여하튼, 레이먼을 뺀 모두가 축제를 즐기는 건 분명했다.
사랑의 하급 정령이 중간중간 카렌과 아모르의 소식을 전해주었는데, 그들 역시 제대로 축제를 즐기는 모양이었다.
[ 잠시 후, 케네스 스테디움 스턴 1왕자 님의 귀환 행진이 시작됩니다. 펌블의 중앙 스트릿에서 시작해 이곳 소여 스트릿을 마지막으로 오실 예정이니 축제를 즐기시는 여러분들은 행진을 위한 준비에 적극적으로 동참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하늘을 나는 종이비행기들을 통해 행진 안내가 퍼졌다.
주위 사람들은 환호했고 아이들 역시 제 부모들에게 행진에 관해 질문하느라 바빴다.
모두가 환호하는 사이 레이먼은 아드리안과의 약속을 위해 소여 스트릿의 중앙 광장으로 향했다.
아드리안은 분수대 근처에 니콜과 함께 얌전히 앉아 있었고, 레이먼을 아드리안보다 먼저 발견한 니콜이 쓰고 있던 모자를 벗어 크게 휘저은 뒤, 환하게 웃었다.
“레이먼 도련님! 아드리안 도련님, 레이먼 도련님이세요!”
“형님!”
레이먼 역시 손 인사를 건네며 아드리안에게 향했다.
이제 자신이 아드리안에게 질문할 차례였다.
조금 전, 왜 약속 시간보다 이르게 도착해 사람들이 없는 으슥한 골목길 안쪽으로 향했는지 말이다.
***
가게 앞에 밧줄들이 쳐지고, 그 앞으로 기사들이 자리를 지켰다.
행진 시작이 임박했음을 알리는 신호였다.
“축제는 즐겁니?”
“예. 나쁘지 않습니다.”
분수대를 지나 몇몇 가게들을 구경하며 걷던 레이먼과 아드리안도 행진이 시작하는 부근에 자리 잡았다. 니콜은 오랜만에 렌스를 만나러 오겠다며 자리를 뜬 참이었다.
질문을 한다면 지금이 기회였다.
“아드리안, 축제에는 언제쯤 온 거야? 축제 구경은 좀 했어?”
“아……. 얼마 안 됐습니다. 약속 시간에 맞춰서 도착했습니다.”
거짓말이다.
“그래?”
“네.”
“아직 제대로 구경하지 못했단 소리지?”
“…….”
아직 텅 빈 행진용 거리를 바라보며 레이먼이 다시 질문했다.
“아드리안, 축제에는 언제쯤 온 거야.”
“…….”
“거짓말은 하지 않는 편이 좋을 거다.”
아드리안을 의심하고 싶진 않았다. 비록 친동생은 아니었지만 레이먼에게 가장 처음 약을 건넨 착한 아이였고, 모나지 않고 잘 큰 아이였다.
그런 아이를 일기장과 시스템 때문에 의심해야 할 상황이 올 때마다 레이먼은 커다란 죄책감을 느꼈다.
그러나 오늘, 레이먼이 골목에서 본 이는 분명 그의 동생 아드리안이 맞았다.
급하게 어딘가로 향하는 모습. 어디로 가고 있던 걸까.
그곳에서 누구를 만나려고 한 걸까.
“아드리안, 나는 너를 믿고 싶어.”
레이먼은 차마 아드리안을 마주 보지 못했다. 이상한 감정이었다.
그에게는 가족이 있어 본 적이 없었다.
그러니 이번 생이 그에게 있어 가족이 생긴 첫 경험이었다.
그러나 가족이 어떤 존재인지 들어본 적은 있었다.
다양한 가족의 형태가 있었고 가족에 대한 다양한 의견이 있었다.
믿을 만한 가족도 있었지만 단지 피로 이어진 게 전부인 가족도 있었다.
우린 어느 쪽일까.
“사실은…….”
아드리안의 답변을 채 듣기도 전, 1왕자의 행진이 소여 스트릿 입구에 도착했다는 나팔 소리가 축제의 하늘 위로 울려 퍼졌다.
마법사들이 준비한 폭죽들 중 화려한 색을 뽐내는 꽃가루 폭죽들이 펑펑 소릴 내며 터졌다.
흩날리는 종이 꽃가루 틈새, 화려한 풍경 사이로 레이먼이 익히 알고 있는 얼굴이 보였다.
기사들에 둘러싸인 채 행진하는 1왕자였다.
행진 틈에서 유일하게 말을 탄 1왕자는 기사가 든 장창의 끝보다 더 높은 위치에 있었다.
수십 명이 넘는 기사, 그리고 그를 지키는 몇몇 마법사들이 케네스의 뒤를 따랐다.
말 안장 위에 앉아 손을 흔드는 1왕자 케네스의 얼굴은 레이먼이 알고 있던 징징이의 얼굴이 아니었다.
지금 그는 굳이 따지자면 다른 왕자들이나 왕녀와 사뭇 결이 다른, 온순한 양 같은 얼굴이었다.
그를 맞이하는 주민들이 환호했고 케네스는 양쪽을 번갈아 바라보며 인사했다.
환호 사이로 아드리안의 말이 묻혔고, 레이먼은 답변을 다시 들어야 했다.
“아드리-.”
고개를 내린 레이먼의 눈에 상자가 하나 보였다. 리본 끈이 매인 귀여운 상자였다.
“이게 뭐…지?”
“사실…… 니콜에게 부탁해 형님을 만나기 전 다른 스트릿의 가게에 잠시 들렀습니다. 형님께 선물을 드리고 싶었어요.”
“나한테? 나는 딱히-.”
“케이크도 정말 맛있었고, 형님이 없었다면 제가 포레스튼에서 이렇게 잘 적응하지 못했을 겁니다.”
하, 한 번 열어보세요. 마지막 말과 함께 제 손에 쥐어진 선물을 레이먼이 물끄러미 내려다보았다.
레이먼은 “어, 어-그래.”라며 오닉스가 마탑주를 상대할 때만큼 어색하게 답변한 뒤, 상자의 끈을 풀었다. 두 형제의 머리 색을 닮은 붉은 끈이었다.
“이건….”
“별거 아니긴 한데….”
아드리안이 선물한 건 깃펜이었다.
레이먼은 이미 깃펜을 몇 개나 가지고 있었고, 깃펜은 흔히 주고받는 선물 종류 중 하나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아드리안이 생각 없이 선물을 고르진 않았을 테지.
깃펜에 새겨진 이니셜만 봐도 알 수 있었다.
R.V.S.가 필기체로 정갈히 쓰인 이니셜 마크는 분명 축제가 시작되기 한참 전부터 오늘을 위해 준비한 선물이리라.
“특별한 선물을 드리고 싶었는데 가장 많이 사용할 만한 걸 선물로 드리는 게 형님이 더 좋아하실 것 같아서요.”
아드리안이 쑥스럽게 웃었고 저 멀리서 니콜이 렌스와 유타 일행을 데리고 돌아오는 게 보였다.
축제와 화려함과 시끌벅적함, 그 평화로운 분위기가 괜히 레이먼의 눈시울을 붉혔다.
축제를 즐기는 게 어떤 감정인지 알지 못했다. 라 디밀레에는 공적을 쌓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었고.
학생회가 된 이후에는 즐긴다기보단 일하기 바빴으니까.
레이먼은 깃펜을 다시 보며 피식 웃었다.
상자 뚜껑을 다시 덮으며 레이먼이 말했다.
“고마워. 내가 받은 것 중 최고의 선물이다, 아드리안.”
“ -. ………네, 감사해요.”
아드리안이 무언가 더 말을 하는 듯했지만, 폭죽과 함성에 가려 제대로 들리지 않았다.
축제의 오후가 그렇게 마무리되어 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