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ill Make You a King as a Possessor RAW novel - Chapter (167)
빙의자가 왕으로 만들어 드립니다-167화(167/275)
“모예드?”
“-…테리안.”
테리안 반 스플린과 모예드 아이작의 만남은 왕성의 회의장으로 가는 복도의 시작점에서 이뤄졌다. 테리안 반 스플린은 허리를 꼿꼿이 편 채 뒷짐을 진 태도로 제 옆에 선 모예드를 곁눈질했다.
“너도 그 편지를 받았나 보군.”
테리안이 말한 편지는 축제가 끝나고 며칠 뒤, 왕실에서 마법에 능통하며 행정학에도 밝은 몇몇 귀족에게만 발송한 것이었다. 아이작 가의 모예드 백작은 충분히 그럴 실력이 있는 자임을 테리안 역시 알고 있었다.
테리안의 질문에 모예드가 퉁명스레 답했다.
“당연하지. 네가 올 줄은 몰랐지만.”
“이봐, 나 공작이야.”
“포레스튼의 동기는 영원한 동기인 거 알잖나.”
“게다가 내가 올 줄은 몰랐다니. 나야말로 자네가 올 줄은…….”
“알았지?”
흰 장갑을 낀 테리안의 손이 입술 앞을 주먹으로 가볍게 막았다.
테리안이 가벼운 기침과 함께 발걸음을 빨리했다.
“크흠-. 됐네. 그래서, 편지 내용은 읽어 봤나?”
“그래. 상황이 좋지 않게 됐어.”
“좋지 않기는.”
모예드의 답에 테리안이 3초도 안 되는 시간 안에 반응했다.
“자네는 옛날부터 내 말엔 사사건건 시비만 거는군.”
포레스튼 내에서도 알아주는 앙숙이었던 두 남자였다.
나이를 먹어도 그 관계는 변하지 않았다.
“자네 말에만 시비를 터는 게 아니라, 난 모든 말에 시비를 턴다네.”
테리안의 답변에 모예드도 지지 않았다. 대들기 좋아하는 두 아들놈을 둔 아버지, 모예드였다. 말수가 적은 아들들을 둔 테리안보다는 이런 상황에 익숙했다.
모예드가 말했다.
“그걸 인성이 더럽다고 하는 걸세.”
“공작한테 이런 태도를 보이는 백작을 용서해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아량이 넓은 공작이라는 생각이 드네만.”
“친구 좋은 게 뭔가. 공적인 자리에선 존대해줄 테니 참게.”
“우리가 친구였나?”
“동기도 친구지. 그러는 자네야말로 마법 시험에서 내 도움을 많이도 받았으면서 이제 와서 입을 싹 닦는 겐가?”
“……아직 닦지는 않았네.”
“그래, 여전히 입가 주변이 더럽군. 자네 아들들은 누굴 닮아 훌륭히 잘 컸는지 몰라.”
모예드 아이작 역시 레이먼과 아드리안에 대해 잘 알고 있었고, 타인 그것도 모예드의 입에서 두 아들의 이름이 거론되자마자 테리안의 입꼬리가 꿈틀댔다. 제 아들 자랑을 하는 게 이렇게 즐거울 줄이야! 인생의 새로운 즐거움을 찾은 테리안이 무어라 얘기하기도 전에 모예드가 그 입을 틀어막았다.
“나도 아니까 조용히 하게.”
두 사람의 발걸음이 멈췄다.
회의장 문이 열리고 그들을 초대한 이가 눈에 보였다.
***
“아버지가 왕성에 와 계시다는데?”
떠다니는 서류를 커튼처럼 젖힌 레이먼이 소파에 앉아 제 업무를 보는 유타의 맞은편에 앉았다. 떠다니던 서류 중 하나를 집어 들며 유타가 답했다. 그가 잡은 서류는 축제 전, 레이먼이 처리한 양아치 패거리에 대한 후속 처리를 보고하는 문서였다.
“케네스 형님께서 전쟁 문제로 부른다고 했었어. 말 안 해주셨어?”
“네 형이 왜 나한테 따로 연락하겠어? 그보다 전쟁 소식이 왕성에 전해진 건 축제가 끝난 이후 아니야? 빠르시네.”
“빠른 마법편으로 보냈대. 그만큼 급한 사안이긴 하지.”
1왕자 귀환 축제가 열린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공국과의 전쟁 이야기가 왕국 전체에 퍼졌다. 전쟁이라는 단어 자체에서 오는 불안이 마을 곳곳에 퍼졌으나 험악한 분위기가 조성되진 않았다.
1왕자가 돌아온 데다가 그들에게는 대정령과 계약한 마법사가 두 명이나 있었으며, 애당초 공국 자체가 스턴에게 큰 위협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마을에 퍼지는 소문 중에는 ‘공국이 믿고 있는 구석이 있으니 전쟁을 시작한 거다.’라는 이야기도 있었다.
서류를 살피던 유타가 다시 공중에 서류들을 흩뿌린 뒤 말했다.
“이번 전쟁에서 난 공을 세울 거야.”
“알아.”
“누구보다 가장 큰 공을 세울 거다.”
“그래야지.”
왕 후보 중 한 명만 가장 큰 공을 세우면 된다.
하지만 유리페는 전쟁에 참여할지 하지 않을지 불분명했고 매너스는 이번 전쟁에서 참모로 참전하기에 선두에 나설 일이 없었다. 심지어 선두에 설 케네스는 애초에 왕 후보도 아니다. 즉, 내가 죽지 않기 위해 공을 몰아줄 만한 후보로는 유타가 적격이라는 소리다.
생각을 마친 레이먼이 유타를 곁눈질했다.
“당연한 소리를 왜 한 번 더 말한 거야?”
“전쟁에서 가장 큰 공을 세운 자에겐 국왕이 한 가지 상을 내려.”
“그렇지.”
유타가 말했다.
“그때, 나는. ………을 청할 거야.”
놀랐다. 레이먼은 아직 ‘그 결정’을 하기엔 이른 시기라 생각했다.
위험을 무릅쓸 필요는 없었다. 가장 큰 공을 세우고 돌아온 자라면 전쟁 영웅이 될 테고 자연스레 왕위에도 가까워질 테니까. 레이먼의 시선을 의식하면서도 유타는 제 뜻을 굽힐 생각은 없어 보였다. 레이먼이 쏘아붙이듯 말했다.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니지만… 그렇게 했다가는 왕성 내 모든 세력이 널 주목하게 될 거다. 그땐 들킬 수도 있다는 걸 너도 잘 알잖아.”
“알아. 하지만 승부수를 걸 만한 때는 그리 자주 오지 않잖아, 레이먼.”
승부사.
성공을 거둔 자에겐 가장 필요한 기질이다.
하지만 이 기질은 도박꾼과 한 끗 차이다. 찾아온 기회를 어떤 방식으로 활용할지에 따라 승부사와 도박꾼이 갈린다.
승부사는 자신의 실력에 모든 걸 맡기고, 도박꾼은 불확실한 자신의 운에 모든 것을 맡기기 때문이다.
유타, 너는 도박꾼일까 승부사일까. 네가 도박꾼에 가까운 인간이라고 한다면 나는 당장 너를 버려야 한다.
멍청하고 착한 도박꾼은 왕의 자리에 걸맞지 않고, 똑똑한 이들이라면 그 사실을 금방 알아차릴 테니까.
‘허수아비 왕을 세우기 위해 멍청한 도박꾼을 왕위에 올릴 수야 있겠지만.’
복잡하군. 손깍지를 낀 채 허리를 굽히고 이야기를 듣던 레이먼이 고개를 푹 숙였다.
“그래. 네가 원하는 대로 해.”
“고마워, 레이먼.”
“고마워해야지.”
그래, 겨우 공국과의 전쟁이다. 크게 신경이 쓰일 만한 일은 벌어지지 않겠지.
***
회의실 내.
작위가 높은 순서부터 차례대로 앉은 직사각형 테이블의 가장 상석에 앉은 자는 다름 아닌 케네스였다. 회의의 주요 주제는 서신에 적혀 있던 대로 바텔바흐 공국과의 전쟁이었다.
국경에서 소규모 전쟁만을 벌이던 바텔바흐에서 수상한 움직임이 포착된 것이다. 소강상태에 접어든 전쟁터에서 벗어난 병사들이 공국의 대규모 군대에 합류해 그대로 스턴으로 침입하고 있다는 소식이었다.
국경에서 수도까지 오는 데에는 그리 많은 시간이 필요치 않았다. 마법까지 사용한다면 더더욱.
그러나 바텔바흐 공국에는 이 정도로 많은 병사를 한 번에 이동시킬 마법사가 없다. 애초에 제대로 된 아티팩트조차 없는 국가다. 게다가 인질로 잡을 만한 2왕자 페인 역시 스턴으로 돌아온 상태.
심지어 축제가 끝난 후 페인은 제 아내를 바텔바흐에서 빼 온 상태였다.
스턴은 거리낄 게 없는 상황.
게다가 페인의 아내가 한 말도 신경 쓰였다.
– 최근 바텔바흐의 분위기가 바뀌었습니다. 평화를 중시하던 때와 무언가… 무언가 달라요. 바텔바흐는 타국과의 무역을 살아가는 곳입니다. 그런데도 최근에는 기존에 거래하던 상회의 무역도 거의 받지도 않아요. 며칠에 한 번 들어오는 무역선에는 정체 모를 아티팩트만 잔뜩 쌓여있고요.
“분명 바텔바흐는 무언가 믿는 구석이 있는 겁니다. 전하, 이 전쟁에 쉽게 봐선 안 됩니다.”
위의 상황으로 보았을 때, 모예드 아이작의 발언은 지극히 타당했다.
“수도까지 오게 만드는 것도 안 됩니다. 바텔바흐가 오는 길목에 위치한 외곽 마을의 주민들을 모두 대피시키고 수도에 들어오기 전 단숨에 쓸어버려야 합니다.”
그의 말이 맞았다. 수도까지 오게 둔다면 그 피해가 너무 크다. 봐줘서도 안 된다. 이번 전쟁으로 주변국, 그리고 쿠모르 제국과 자신들의 관계가 새로이 정립될 것이다. 즉, 그들은 압도적인 우세로 이겨야 했다.
“대피하는 주민들은… 제 영지에서 받도록 하겠습니다.”
“스플린 공작.”
“저희 영지만큼 풍요롭고 넓은 영지는 스턴 내에서도 손에 꼽습니다. 그나마 주민들이 이동하기 편한 영지가 저희 쪽이니 제가 맡도록 하겠습니다.”
아이작 백작가와 스플린 공작가는 대외적으로 중립의 위치였다. 레이먼 반 스플린이 5왕자와 친밀한 관계임은 자명했으나 애초에 왕위 계승에서 거론조차 된 적 없던 5왕자였으니 왕위 다툼에서 스플린 가는 중립이 맞았다.
그 두 가문이 케네스가 출전하는 전쟁을 지지하고 있다.
명예와 실력, 권력을 모두 갖춘 이들이 말이다.
몇몇 귀족이 불안해하기 시작했다. 이번 전쟁에서 케네스가 눈에 띄는 활약을 한다면 그들의 계획이 틀어질 수도 있었다.
“구, 굳이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겠습니까. 너무 많은 병력을 차출시키는 것도 수도 방어에 좋지 않습니다.”
“맞습니다. 만약 바텔바흐와 제국이 뒤에서 손을 잡았다면 바텔바흐를 잡는 와중에 제국이 수도를 습격할지 모릅니다.”
“케네스 전하께서는 제국에 오래 계셨습니다. 왕성의 전력에 대한 정확한 문서를 다시 올리는 편이 좋을 것 같습니다.”
테리안 반 스플린은 뭘 믿고 나대는지 모를 귀족들의 무리를 시큰둥하게 바라봤다. 아니, 사실 그들이 뭘 믿는지는 알고 있었다. 케네스가 없는 자리에서 최근 세력을 넓히던 그 ‘왕자’의 편에 선 이들일 것이다.
테리안은 케네스가 어떻게 나올지 궁금했다. 테리안은 케네스의 실력 외 그에 대한 구체적인 정보가 그리 많지 않았다.
“할 말은 끝났나?”
“예? 예…….”
“그럼 됐다. 음… 어디 보자.”
케네스가 팔짱을 낀 채 입을 비죽 내밀었다.
애초에 이런 자리를 좋아하는 것도 아닌데. 케네스는 무언가 결정을 내리는 게 가장 싫었다. 왜 하필이면 1왕자로 태어나서 이런 책임을 져야 하는 것인지. 그러나 그들 중 한 명의 말대로 제국에 오래 있었기에 왕국에 대해 모르는 것도 많았다.
검토할 여지가 아예 없는 싹수 노란 의견은 아니지만, 노골적으로 자신을 경계하는 의견이라니.
그때였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소리가 귓가로 울려 퍼진 것은.
[ 내 말이 들리느냐. ]‘응?’
마법이 아니다. 전음 마법과는 전혀 다른… 무언가.
분명 옆에 있다. 그러나 모습이 보이지 않는 것이다.
케네스는 퍼뜩 짐작했다. 이게 바로 정령일 것이리라.
[ 넌 나를 본 적이 있다. ]그리고 케네스가 본 적 있는 정령은 단 하나뿐이었다.
바로 유타가 계약한 빛의 대정령, 이그니스 말이다.
‘다른 이들에게도 대정령님의 목소리가 들립니까?’
[ 네게만 들리고, 네게도 보이지 않는다. ]목소리만 들린다는 뜻이군.
‘그렇군요. 그럼 여긴 어쩐 일이십니까?’
[ 조언을 해주러 왔다. ]‘대정령님의 조언이라면야.’
[ 그럼………. ]제 할 말을 마친 이그니스는 그대로 사라졌고 케네스는 결정을 내렸다.
그의 답변을 기다리는 수많은 신하들을 바라보며 케네스가 입을 열었다.
“공국과의 전쟁은 2주 내로 끝냅니다. 그리고 할 수 있는 가장 많은 마법사를 배치할 겁니다.”
167화.
“다녀오셨어요?”
방으로 돌아온 이그니스를 유타가 반갑게 맞이했다.
[ 별거 아니었다. 너에게 해줬던 조언을 그대로 해준 것뿐이다. ]“고생하셨어요.”
[ 하지만 이해가 가지 않는다. 왜 내 조언을 그 왕자에게도 알려준 거지? 너만 알고 있는 편이 네 목적을 이루기 훨씬 쉬웠을 텐데. ]유타가 레이먼과 대화를 마치고 돌아가던 복도에서 이그니스는 그에게 슬쩍 조언했다.
[ 바텔바흐 공국과의 전쟁에서 최대한 많은 마법사를 데려가라. 축복이나 정화와 관련된 아이들이어야 한다. ]– 왜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
[ 빛은 저주에 민감하다. 그리고 이번 전쟁에서 수많은 저주의 기운이 느껴지는구나. 사상자가 많을지 적을지는 알 수 없으나 무언가 중요한 게… 바뀔 것이다. ]그때의 대화를 떠올리며 유타가 답했다.
“그렇게 말씀하셨잖아요. 마법사의 배치나 수는 제가 정할 수 있는 게 아니니 당연히 결정권을 가진 형님께 알려드려야지요. 그들의 수가 제가 공을 세우는 데 방해되진 않을 겁니다.”
유타가 씨익 웃었다.
하지만 이그니스는 여전히 인간의 사고를 이해할 수 없었다.
[ 나의 계약자여, 너는 같은 목표를 지닌 다른 이들에 비해 한없이 불리하다. 특히나 네가 숨기고 있는 비밀이 그렇다. 그 비밀 탓에 너는 이번 전쟁에서 공적을 쌓으려는 것 아니냐? ]‘맞아요.’
팔짱을 낀 이그니스가 진심으로 안타까운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 그렇다면 1왕자에게 알려선 안 됐다. 저주는 내 힘으로도 충분히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그가 저주를 풀 마법사를 최대한 적게 데려가 수많은 이들을 희생시킨 뒤에 네가 나를 이용해 공적을 쌓는 편이 네게 더 옳은 방법이다. ]“그러네요. 하지만 그래선 분명 제 마음이 편치 않았을 거예요.”
[ 어리구나. ]“어리죠. 죄송해요.”
[ 네 비밀과 목표를 위해 누군가는 희생하고 있을 거다. 그걸 늘 염두에 두고 있어라, 계약자야. ]이그니스는 그 말을 끝으로 사라졌다.
유타 역시 그가 한 말의 의미를 모르는 게 아니었다.
드르륵-
서랍을 열자, 뜯어본 흔적이 있는 봉투가 있었다.
봉투 안에 있는 편지를 꺼내 들었다.
종이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 나는 네 비밀을 알고 있다. ]***
출전 날이었다.
레이먼을 비롯한 왕실 마법사들이 왕성의 뒷문에서 그들을 기다리는 마차로 향했다.
바텔바흐 공국의 군대가 있는 곳은 현재 스턴 왕국의 국경과 수도 중앙에 위치한 변방의 절벽 쪽 마을이었다. 굳이 절벽 길목을 택한 이유는 명백했다. 저주의 길목이라 불리는 절벽을 가로질러 수도로 오는 편이 왕국을 횡단하는 시간을 확실히 줄여주었다.
그리고 그 길목을 택한 것은 바텔바흐가 단순히 마법을 쓸 줄 모르는 기사와 병사만을 데려온 게 아니라는 걸 의미했다.
그들의 수는 어림잡아 2만.
적은 수는 아니었으나 왕국의 상대하기엔 많은 수는 아니었다.
즉, 그들 중 단순한 기사가 아닌 이들이 섞여 있다는 뜻이다.
스턴 왕국의 출전 군대는 3만. 그중 150명 남짓이 마법사였다. 결코 적은 수는 아니었다. 모인 마법사들 대부분이 포레스튼 출신이었고 실력은 증명된 이들이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중 50명이 축복 마법을 주로 사용하는 마법사다. 축복 마법사가 부족한 와중에 50명이나 편성할 수 있었다는 건 분명 케네스의 역할이 컸다.
그런 궁리를 하며 마차에 올라타는 도중이었다. 조금 떨어진 마차에 올라타는 서머셋이 보였다. 하지만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다.
레이먼이 휙 달려가 그의 손목을 낚아챘다.
네가 왜?
네가 왜 여기 있는 거지?
“아드리안! 네가 왜 여기 있는 거냐!”
“형님-!”
레이먼의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케네스가 부른 건가? 아니, 그 사람이라면 부르지 않았을 것이다. 유타의 출전도 반대한 사람이다. 제 동생이라 아꼈던 건가?
포레스튼의 5학년은 성인의 연령이나 학생은 아직 학생이다. 그런 애가 전쟁이라니. 자세히 보니 아드리안 하나가 아니었다. 친한 사이는 아니었지만 학교에서 본 적 있는 후배 몇 명이 보였다.
“아드리안, 말을 해.”
“전쟁에 참가할 졸업반 학생들을 모집했었습니다. 죄송합니다. 전 형님이 이미 알고 계신 줄-.”
“레이먼. 내 탓이야.”
“서머셋 왕자님…….”
“선배라고 부르면 되는데.”
여전히 점잖은, 그리고 마음을 읽을 수 없는 얼굴이다. 웃고 있지 않은 게 그나마 다행이었다.
“왜 제 동생이 여기 있습니까.”
“축복 마법을 쓸 줄 아는 마법사를 최대한 모아야 했다. 우수한 성적을 낸 학생들에게 자원을 받았고.”
“하지만 아직 학생입니다.”
“20살이 넘었다. 포레스튼에서 5학년은 이미 졸업생과 비슷한 대우를 받는다는 건 너도 알고 있잖아. 포레스튼뿐만 아니라 에글린턴에서도 많은 아이들이 자원했어.”
서머셋이 이제 막 출발한 마차를 향해 고갯짓했다.
에글린턴과 포레스튼 모두 공평히 대했다는 뜻이다.
그러나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전쟁은 손에 피를 묻히는 일이다. 당사자만 부끄럽고 힘들고 가슴 아픈 걸로 끝날 일이 아니라는 뜻이다. 결국 자신 때문에 누군가 죽게 되고 그들의 가족이 품게 될 원망을 받아야 한다는 걸 의미했다.
피를 묻힌 이는 그 전으로 되돌아갈 수 없다.
레이먼이 이번 출전을 쉽게 결정할 수 있는 것도 그 이유였다.
아드리안의 손목을 붙잡은 레이먼의 손을 한 번 응시한 서머셋이 말했다.
“그리고 걱정하지 마. 학생들을 희생시킬 생각은 없어. 이 애들은 모두 후방 보호소에서 다친 이들을 치료하는 역할만 하게 될 거다. 그러니 손에 직접 피를 묻힐 일은 없을 거야. 나도 학생회장이었어. 학생들을 아끼는 마음은 똑같아.”
“형님, 걱정하지 마세요.”
어느새 레이먼의 손아귀 힘에서 벗어난 아드리안이 최대한 불쌍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제 몸을 지킬 정도는 됩니다. 후방에서 형님을 돕겠습니다.”
“…….”
…그래. 레이먼은 짧게 답한 뒤, 돌아서 마차에 올라탔다.
그나마 다행이다. 첫 출전이 제국과의 전쟁이었다면 어땠을까.
자신의 동생은 후방이 아니라 전방에서 싸워야 했을지도 모른다.
실력이 얼마나 훌륭하냐의 문제가 아니다.
그가 누군가를 죽일 준비가 되었는지의 문제였다.
그리고 그건… 함께 마차에 올라탄 이에게도 해당되는 말이었다.
“유타.”
“응.”
“표정이 좋지 않은데. 괜찮은 거야?”
“…….”
“늘 실실 웃던 것들이 이러니 나까지 짜증 나네.”
침묵하는 유타와 달리 함께 탄 오닉스는 여전한 말버릇이었다. 이미 어린 시절, 뒷골목에서 이미 양아치 몇 명을 죽여본 적 있다고 고백한 오닉스였다. 전혀 긴장되지 않는 모양새. 네 명이 탄 마차에서 표정이 좋지 않은 이는 테디 베어릴과 유타 스테디움 스턴, 둘뿐이었다.
“아냐, 괜찮아. 레이먼, 너야말로 괜찮겠어? 나도 아드리안이 올 줄은 몰랐어.”
“…그래. 아마 몰래 데려온 거겠지.”
무언가 이상하다.
무언가 잘못되어 가고 있다.
아드리안은 정말 전쟁에 자원한 게 맞는 건가?
자원하기 전에는 왜 나에게 이야기를 하지 않았지?
일전에도 아드리안과 서머셋이 단둘이 이야기하는 걸 본 적이 있었다.
불길했다. 불안은 보통 기우일 때가 많았다.
최악의 상황이 실제로 일어난 적은 거의 없었다. 그러나….
‘아드리안.’
일기장. 아드리안. 그리고 죽음.
세 꼭짓점이 하나의 삼각형을 삐뚤빼뚤하게 그려가는 느낌을 레이먼은 떨칠 수가 없었다.
***
마차는 포탈이 위치한 공터를 향해 달렸다. 길어봤자 10분 남짓한 시간이면 스턴의 마법사들은 후방 처소에 도착할 것이다.
서머셋은 학생들의 통솔자로 포레스튼과 에글린턴 학생들이 타고 있는 마차와 함께 오고 있었다. 그리고 지금 서머셋이 탄 마차에 함께 탄 것은 아드리안뿐이었다.
“아드리안, 그리 심란할 표정 지을 필요 없어.”
“하지만 형님께 미리 말씀을 드리지 않은 것은 명백히 제 잘못입니다.”
미리 말할걸.
형님이라면 좋아할 거라 생각했다. 변한 형님은 언제나 나를 응원해주었으니까.
레이먼은 변했다. 그 차이를 스플린 가에서 가장 확연히 느끼는 사람은 아드리안이었다. 방에 갇혀 책만 읽던 레이먼이 밖으로 나올 때면 아드리안은 늘 말을 걸었으니까.
물론 그 당시, 레이먼은 그런 아드리안을 늘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노려보았다. 종종 말이라도 섞어줄 때면 늘 가시 돋친 말을 퍼부었다.
– 아드리안. 넌 천재야. 너 같은 애가 이 집안에 있으니 내가 이렇게 고생을 하는 거야.
– 더 이상 내게 말을 걸지 마. 네가 이럴수록 난 더 비참해질 뿐이야.
– 또 마법을 성공했구나. 이미 강한 애가 매번 이렇게 노력을 하는지… 나는 이해할 수가 없어.
– 전부 네 탓이야. 분명히 그랬어. …아무리 고생을 해도 나는 결국.
하지만 이젠 아니었다! 이제야 레이먼은 아드리안을 똑바로 봐주고 있었다.
아드리안 역시 아버지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만약 과거의 형처럼 마법에 재능이 없었더라면 아버지는 자신을 형님처럼 무시했으리라. 그래서 아드리안은 레이먼이 좋았다. 어머니처럼 솔직하게 자신을 대해주는 형님이.
그런 형님이 이젠 자신과 말을 섞어준다. 그것도 친절하게.
함께 대련도 해줬고, 걱정도 해주었다.
아드리안은 형님과 대등해지고 싶었고 그에게 도움이 되고 싶었다.
동시에 그가 과거로 돌아가길 바라지 않았다.
그가 생각해낸 해결책은 간단했다.
앞으로 나아갈수록 레이먼은 더 이상 과거로 돌아가지 않을 것이다.
형이 예전의 형으로 돌아가는 건… 정말 싫다.
그건 아드리안에게 있어 가장 큰 두려움이었다.
“아드리안, 내 생각이지만 레이먼은 너를 두려워하는 게 아닐까?”
“…예?”
서머셋이 다리를 꼰 채, 그 위로 깍지 낀 손을 올렸다.
“생각을 해봐. 네가 레이먼을 돕기 위해 전쟁에 자원까지 했는데 형님이 된 자로서 그걸 이렇게 싫어할 이유가 없잖아.”
아드리안이 고개를 저었다.
“형님은 단순히 저를 걱정하시는 겁니다. 저는 아직 학생이고 실전을 경험한 적도 거의 없으니까요.”
“포레스튼 입학 전 레이먼에 대한 소문을 들은 적이 있다. 듣자 하니 레이먼은 정말로 마법에 재능이 없었다고 하는데… 네가 포레스튼에 들어오고 더 뛰어난 마법사가 되는 걸 경계하는 걸 수도 있지.”
“그렇지 않습니다.”
아드리안은 고개를 저었다. 무릎 위에 정갈히 올라간 두 주먹이 그의 고운 심성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서머셋은 알고 있었다. 단단한 돌일수록 한 번 생긴 틈은 치명적인 상처가 되기 쉽다는 것을 말이다.
서머셋이 말했다.
“네가 그렇게 생각한다면 그런 거겠지.”
“…….”
“왕성에는 레이먼의 재능을 시기하고 질투하는 자가 많을 거야. 그러니 네가 얼른 강해져서 그를 도와야겠구나. 내가 잘 도와주겠다. 나도 레이먼을 좋아하거든.”
서머셋이 싱긋 웃었다. 그 미소에는 어떤 악도, 거짓도 없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