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ill Make You a King as a Possessor RAW novel - Chapter (169)
빙의자가 왕으로 만들어 드립니다-169화(169/275)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볼락 클리프의 계곡이 대지 마법으로 사라지고 양 절벽이 맞붙었다. 지금쯤 계곡 사이에 있던 마을은 뭉개져 흔적도 없이 사라졌을 것이다. 격전을 대비해 마을 사람들을 사전에 대피시키지 않았더라면 수백이 넘는 사상자가 한순간에 나왔으리라.
“돌격!”
바텔바흐의 군대가 빠르게 움직였다. 대지 마법을 외우던 마법사들이 순식간에 뒤로 빠졌다. 빠지는 동시에 보병들에게는 방어 마법을 건다.
그러나 스턴 역시 지지 않았다. 애초에 이런 기습을 막기 위해 4인 1조로 편성한 것 아닌가.
“크악-!”
“뒤를 내주지 마라!”
“도망가지 마! 무조건 전진이다! 누가 이 땅의 주인인지 보여라!”
“끄어억.”
서로가 등을 맞대고 절대 뒤를 내어주지 않는 형태. 어느 쪽으로 공격이 들어와도 치명상은 피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모든 공격을 막을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바텔바흐의 군대 역시 민첩했다. 더군다나 바텔바흐에서 온 마법사들은 대부분 전쟁에 능숙한 이들처럼 보였다. 방어 마법은 순식간에 원거리 공격으로 전환되었다. 하늘에서 불과 빛으로 이루어진 창이 쏟아져 내렸다.
마법으로 만들어진 파괴의 창은 전방과 후방을 가리지 않았다. 머리 위로 쏟아지는 공격은 레이먼의 조에게로 금세 가까워졌다.
“으아아-!”
전방을 지키던 일반 기사 중 한 명이 후방까지 넘어와 그대로 고꾸라졌다.
모든 전술이 만능은 아니었기에, 그의 조는 모두 꽤 큰 상처를 입은 채였다. 그들은 쏟아지는 창을 막을 방도가 없었다. 게다가 그들도 알고 있었다. 이번 전쟁에서 스턴이 데려온 마법사들은 공격과 방어에 능숙한 이들이 아니다.
죽는다. 여기서 죽을 거다.
전쟁에 참전한 자의 명예로운 죽음. 이미 각오한 일이다. 그랬었다.
그러니 그 죽음에 후회는 없다. 아니, 없나? 정말 없는 건가?
죽음을 각오했는데도. 두렵다. 무섭다. 죽음의 가치에 대해 고민하게 된다. 죽고 싶지 않다.
“일어나!”
그때였다. 죽음이 난무하는 전장에 어울리지 않는 청명한 목소리가 들렸다. 기사가 고개를 올렸다. 그곳엔 붉은 눈의 청년이 있었다.
쏟아져 내리는 빛의 화살과 불의 창은 그 청년의 머리 위에서 폭죽으로 변해 그대로 터져 사라졌다. 파훼 마법이었다. 빛 때문에 머리 색이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붉은 눈이라면 왕족이다. 1왕자 전하인가? 혹은 4왕자? 아니면 3왕자?
“죽기 싫으면 일어나서 싸우라고!”
“…예, 예!”
후들거리는 다리로 일어나자 그제야 청년의 머리 색이 보였다.
청년의 머리 색은 기사에게 익숙한 왕족의 흑발이 아니었다. 햇빛과 마법의 빛을 모두 반사하는 듯 화려한 은발.
색이 모두 빠져 누군가에게는 놀림의 대상이 될 수도 있겠지만, 이곳 전장에서 누구보다 환하게 빛나는 은발이었다. 낯선 머리 색의 청년이 누구인지 이제야 떠올랐다. 5왕자다.
왕실로부터 버려진… 버려졌다 여겨졌던 5왕자.
“당황하지 말고 자리를 지켜라! 우린 그대로 방어 마법을 펼친다!”
5왕자, 유타가 외쳤다.
“다친 병사들은 치료를 마치는 대로 전열에 복귀하라! 예상보다 바텔바흐의 병력이 적어! 우리가 유리할 수도 있다!”
“예!!”
신입 마법사들를 이끌고 있는 건 다름 아닌 유타였다.
‘무서워 죽겠어. 아! 짜증 난다!’
그녀가 이를 꽉 깨물었다. 유타 역시 죽음이 두려웠다. 죽어도 괜찮다 생각하는 것과 실제로 죽는 건 다른 법이니까. 아직 이루지 못한 게 많았다. 지키고 싶은 게 생겼다. 무엇이 될지는 정하지 못했으나 그 과정에서 함께 하고 싶은 이들도 있었다.
살아갈 목적이 하나가 아니게 되었을 때, 유타는 이 전쟁통에서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다.
“원거리 마법에 능숙한 사람은 뒤로 빠져! 방어 마법을 사용할 거다! 너희들도 바텔바흐에게 본때를 보여줘!”
“예!”
레이먼은 바로 옆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
‘전쟁에서 할 일이 많을 거라 생각했는데. 기우였나.’
심드렁한 얼굴로 전방 기사단 전원에게 마법 방패를 달아준 레이먼의 볼을 아모르가 톡톡 쳤다.
[ 왜. 네가 활약할 순간이 없으니까 아쉬워? ]‘제가 왜요?’
[ 네 주위만 삐약삐약 다니던 꼬맹이가 다 커서 혼자서도 잘하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서럽지, 서러워. ]‘별로요. 그리고 여전히 삐약삐약대고 있는데요, 뭐.’
[ 응? ]‘독심술 하실 줄 아시잖아요. 쟤, 속마음 읽으면 아주 뒤죽박죽일 겁니다.’
난 뭐 특성으로 알아낸 거지만.
바텔바흐는 생각보다 선전했다. 애초에 바텔바흐 쪽 마법사들의 수가 예상보다 많았다. 이 정도 수라면… 보고가 들어오지 않았을 리가 없다.
탁-
레이먼이 손가락을 한 번 튕기자 하늘 위에서 떨어지던 화살들이 일제히 방향을 돌렸다. 슈우웅- 소릴 내며 방향을 튼 화살들이 일제히 바텔바흐의 진영으로 떨어진다.
파훼 마법을 좀 더 발전시켜 마법의 주도권을 빼앗는 마법이었다. 그걸 손가락 한 번 튕기는 걸로 사용할 수 있는 마법사는 이 나이대에 챈들러나 레이먼밖에 없을 테지만. 레이먼은 주문을 외는 데에 생각할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 않았다.
‘바텔바흐의 기습을 페인이 과연 몰랐을까? 바텔바흐에서 페인이 귀빈 대우를 받았다는 건 이미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이다.’
정말 만약 알았다면… 페인은 왜?
페인은 이 기습을 왜 숨긴 거지?
“아, 뒤지게 힘드네! 진짜!! 아오!!”
“오닉스. 참아라. 마탑 가도 똑같이 힘들다.”
“야, 뭘 참아. 참기는. 거기에 잘린 손이 나뒹굴기를 해, 발가락이 발에 채이기를 해? 내 정-신-적 피로가 상당하시다고오오오오오-.”
“……하아.”
……좀 더 뒤로 갈까.
[ 4인 1조라며. ]‘알아요.’
그렇게 아군을 통한 스트레스까지 겹치며 전투가 한참 이어진 때였다.
시간이 흐르자 균형은 깨지기 시작했다. 호기롭게 시작된 기습이었으나 바텔바흐가 안정을 되찾은 스턴을 이길 가능성은 거의 없었다. 무엇보다도 제국의 볼모, 실력을 확신할 수 없는 지휘관 등으로 의심을 사며 선봉장이 된 1왕자 케네스의 마법 실력은 기대 이상이었다. 한쪽 손에 완드를 든 마법사가 말을 타고 전장을 누비는 모습은 본 적도 없었고, 그 외엔 보기도 어려울 듯했다.
그 뒤를 매너스의 기사단이 따랐다. 기사단이 사용하는 검은 마력을 주입할 수 있는 특수 처리가 된 검으로 그들은 힘을 주지 않아도 손쉽게 적의 목을 벨 수 있었다.
밀리던 스턴의 병력이 점차 그들을 압박했고, 레이먼의 생각은 더 복잡해졌다.
페인의 사정과 관계없이 애초에 이 기습의 목적이 불분명했다.
전략에는 모두 이유와 근거가 존재하기 마련이다.
그런데도 바텔바흐의 이번 침략과 기습은 그저 스턴을 놀라게 하기 위한 용도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뭔가 걸려. 애초에 이 기습의 목적이 뭐지? 스턴을 제압하는 건가? 그렇다고 하기에는 기습 병력의 수가 너무 적다. 게다가, 기습을 할 것이었다면 마법사들이 대지 마법으로 시작을 할 필요도 없어. 왜 이 절벽이었지? 왜 이곳으로 유인한 거지? 이곳만의 특별한 무언가가 있나?’
척박한 환경 탓에 병력을 많이 데려오지 못했다. 그게 목적이었나? 하지만 그건 저쪽도 마찬가지잖아.
‘기습의 이유…… 기습. 설마 서머셋이 연관되어 있나?’
서머셋이 무언가를 꾸미고 있다는 건 알고 있었다.
일전에 바텔바흐에서 아티팩트를 훔치기 위해 아카데미로 왔을 때.
매너스가 서머셋을 죽이려 한 이유.
서머셋의 왕위에 대한 욕심과 페인과 그의 관계.
이런 사정을 모두 고려했을 때, 서머셋이 바텔바흐와 모종의 대화를 나누었을 거란 사실도 배제할 수 없다.
이 기습은 서머셋이 유도한 걸 수도 있다.
만약 그렇다면 서머셋이 원하는 건 뭐지?
서머셋은 아카데미 학생들을 일부러 데려왔다. 그들은 후방에 배치되었고 치료가 필요한 이들에게 축복 마법을 걸어준다.
빛의 대정령은 축복 마법을 쓸 줄 아는 마법사를 데려와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이건 단순한 치료 목적이 아닐 거다. 축복 마법은 치료보단 저주를 풀기 위해 쓰이니까.
여기서 유추할 수 있는 건… 영법사.
이 전장에 영법사가 올 것이다. 아니, 이미 있을 수도 있다.
그렇다면 어디로?
이미 잠입해 있다면 영법사는 어디에 있지?
적군에 숨어 있는 건가?
“레이먼? 왜 그래?”
“…….”
“다쳤어? 안색이 너무 창백하잖아.”
“이 기습, 목적이 뭐지?”
“어?”
“기습의 목적 말이야!”
“왜 소리를 질러, 빡대가리야!! 전쟁통에 너도 미쳤냐?”
“오닉스. 너도 시끄럽다.”
서머셋은 뭘 꾸민 거지? 뭘 노리고 있는 거지?
아카데미의 학생들은 스턴의 미래의 전력이다. 그중에서도 축복 마법에 재능이 있는 아이들을 골라 데려왔다.
정말 만약에, 만에 하나. 그들을 모두 죽여 다음을 도모하기 위해 이번 기습이 있는 거라면? 절벽을 하나의 대지로 합친 이유는 기습으로 눈길을 돌리고 후방으로 또 다른 전력을 보내기 위한 거라면.
실제 바텔바흐의 병력이 적은 이유가 별동대를 운영했기 때문이라면?
레이먼의 생각이 불길한 방향으로 흘러가기 시작했다.
눈앞의 전장은 소강상태에 접어들고 있었다. 이렇게 쉽게 끝날 기습이었다면 시작되었을 리도 없다.
“유타. 지금 내가 빠져도 우리가 승리할 거 같아?”
“무슨 일이야.”
“물론 전부 내 생각이야. 아닐 수도 있어. 하지만….”
“후방에는 네 동생이 있으니까.”
아드리안이 서머셋과 있다.
이 상황이 얼마나 많은 것을 의미하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아드리안은 이곳에서, 아니 유태하로 살아갔을 때를 포함한다 해도.
가장 처음 생긴 가족이었다.
“혼자 가도 되겠어?”
“그래.”
레이먼이 손가락을 한 번 더 튕겼다. 심장이 콱 막히는 기분이 들었다. 엘프의 가호 덕분에 마력에 제한은 없었지만 육체에 무리가 가지 않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이 정도는 해놓고 가지 않으면-.
그때, 어디선가 날아온 주먹이 레이먼의 정수리를 세게 콱! 쥐어박았다.
뭐야?
“넌 내 말을 귓등으로 처먹냐? 네 동생한테나 얼른 가라고. 여기서 시간 낭비하지 말고.”
“…그래. 후방에 문제가 생기면 알릴 수 있는 건 너뿐이다.”
“금방 올게.”
4인 1조의 균형이 깨졌다. 레이먼은 자신을 부르는 이들을 가로질러 후방으로 향했다. 순간이동으로 갈 수도 있었다. 하지만 저쪽에 정말 영법사가 있다면 마력을 감지해 자신이 온 걸 눈치챌 수도 있다. 지금은 달리는 게 최선이었다.
[ 붉은 꼬맹아. ]달리던 레이먼의 앞을 아모르가 붙들었다. 아니, 아모르인 줄 알았다. 하지만 아니었다. 유타에게 붙어 있어야 할 이그니스는 왜 또 여기 있는 거지?
“왜 유타를 안 지키고 여기에 있는 겁니까? 얼른 돌아가세요.”
[ 이해가 가지 않는다. ]그가 이번엔 레이먼의 앞을 가로막았다.
[ 왜 네 동생을 구하러 가는 거지? ]“예?”
[ 아모르에게 어느 정도 들었다. ] [ …하하하, 떠들다 보니. 미안, 레이먼. ] [ 걱정 마라. 유타에겐 말하지 않았다. 나도 모든 걸 들은 건 아니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네가 살기 위해선 저 동생이 없어지는 편이 나은 거 아닌가? ]“……뭐?”
[ 그런데 왜 동생을 구하려 하는 거지? ] [ 그 아이가 죽는 편이 네가 살아남기에 유리할 텐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