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ill Make You a King as a Possessor RAW novel - Chapter (17)
빙의자가 왕으로 만들어 드립니다-17화(17/275)
눈을 떠보니 호화스러운 천장이 보였다.
– 와 같은 기적적인 전개는 없었다.
정신을 차리고 가장 먼저 느낀 건 묵직한 복부 통증이었다. 주위를 둘러봤지만,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빛 한 점 통하지 않는 방에 갇혔네.’
현실을 조금이나마 자각한 레이먼은 잠시 눈을 감았다 떴다. 암흑에 조금 적응되었는지 이번엔 가까운 사물 정도는 시야에 들어왔다. 불행하게도 유타는 보이지 않았다.
‘노린 건 내가 아니라 유타였으니 납치를 그만뒀을 리는 없고. 설마하니 각자 다른 방에 가둔 건가.’
그게 맞지. 레이먼도 헌터 시절, 몇 번 비슷한 일을 겪은 적이 있었다. 그는 돈이 되는 정보들을 잔뜩 가졌던, 정보를 원하는 이들에게 있어서는 보물창고나 다름없었으니까.
– 그냥 빨리 풀어. 아무리 그래봤자 내가 뭘 말해줄 생각이 없다니까?
– 그런 소리 들으려고 납치한 건 아니라서. 어디 보자, 강복동이라는 사람 알지?
– 아 모른다고!!
– 몰라? 4일 전에 통화도 했던데? 정말 모른다고?
– 모른……끄아아아악! 내, 내 바, 발톱이! 으아아악-!
– 멍청하게 꼭 당하고 나서야 분다니까. 남은 것도 뽑기 전에 얼른얼른 말하고 끝냅시다~
정보를 지키기 위해선 무슨 일이든 했으니까. 정보가 곧 힘이 되는 세상에서 온갖 정보를 가졌으니 당연히 납치당하는 일도 잦았다. 그러니 이런 상황에 당황하지도 않았다. 다만, 누군가랑 함께 납치당한 건 처음이었다. 그게 변수라면 변수겠지.
손목을 속박하던 밧줄도 금세 풀어버린 레이먼이 양쪽 뺨을 탁- 쳤다.
‘유타부터 찾아볼까. 설마 죽진 않았겠지.’
레이먼은 일어나기 전 주변에 떨어진 나뭇가지를 부러뜨리곤 잠시 기다렸다. 어떤 움직임도 느껴지지 않았다.
좋아, 주변에 아무도 없군. 이런 경우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감시인을 유타에게만 붙였거나, 버려진 창고에 나를 대충 버리고 갔거나.
후자면 유타를 구하기가 더 어려워진다.
방 안에 있는 건 낡은 나무 상자 몇 개와 굴러다니는 와인병 몇 개 정도였다. 자세히 살피니 코르크 마개를 딴 흔적은 보이지 않았다. 그럼 이 창고, 혹은 방은 누군가 아직 쓰고 있다는 뜻이다. 레이먼은 바닥을 슬금슬금 기어가는 내내 벽을 더듬었다. 빛이 통하진 않아도 문이 있다면 어딘가 그 경첩이나 이음새가 있을 거다.
왼쪽, 왼쪽, 또 왼쪽. 이제 슬슬 나와야 하는데.
레이먼이 우뚝 멈췄다.
손끝으로 실금 같은 틈이 느껴졌다. 이 정도 틈이니 빛도 안 통하지. 더군다나 이 공간이 지하실에 있거나 바깥도 불을 켜두지 않았다면 빛이 통할 리가 없을 것이다.
“완드.”
팔찌에 대고 작게 속삭이자 팔찌 형태의 완드가 제 모양을 되찾았다. 15cm 정도 되는 깔끔한 흑색 완드는 얼핏 보면 지휘봉 같기도 했다. 휘릭. 완드 끝을 작게 돌리자 문에도 작은 구멍이 났다. 레이먼이 그 사이로 눈을 넣었다.
‘있다.’
유타가 있었다. 아직 정신을 차리지 못한 걸 보니 자신과 달리 마비나 기절 마법에 걸렸을 가능성도 있었다. 레이먼은 짧은 시간 모든 경우의 수를 생각해냈다.
지금 당장 자신이 유타를 구하러 밖으로 나설 경우. 지금 당장은 납치범이 보이지 않지만 밖에서 대기 중일 가능성이 있으니 유타를 안전하게 구해낼 수 있을지 보장이 없음.
유타를 깨워서 함께 대적할 경우. 유타나 자신이나 1학년의 실력은 아니었지만 납치범들의 실력을 알 수 없으니 이 역시도 이길 수 있다는 보장이 없다. 게다가 왕족을 납치하는 놈들이 어중이떠중이일 리가 없지 않은가.
그럼 납치범이 올 때까지 기다리는 건? 그것도 현명하지 않다.
제일 현명한 건, 닥치고 기다리는 거다. 유타는 왕족이고, 그에게 충성을 맹세한 기사가 있다. 그놈이라면 지금쯤 제 주인을 찾고 있을 거고 니콜도 분명 날 찾으러 오겠지. 이길 수 있다는 보장이 없다면 버티는 게 백번 현명하다.
레이먼은 이런 상황에서 자신이 어떻게 행동해야 오래 살 수 있는지 이골이 날 정도로 잘 알고 있었다.
‘좀 편하게 살게 해주면 어디가 덧나나?’
기껏 마법 세상에 왔더니 왕권 싸움에 휘말려야 하질 않나, 그 후보를 따라 납치가 되질 않나. 차라리 납치당한 후보자 놈을 구하려 고군분투하는 포지션이 좀 더 낫지 않아?
인생이 이 정도로 막장일 거라면 대충 찍어 먹으면서 살고 싶다.
하아.
레이먼은 결심한 듯 머리를 쓸어 넘겼다. 입술을 앙다물고 집중했다. 일단 작은 구멍에 완드 끝을 집어넣었다. 유타와의 거리는 여기서 대략 2미터. 유타가 정신을 차렸을 때 밧줄만 풀 수 있도록 살짝만 풀어두자.
휘릭. 기초 마법일수록 끝을 정확하게 그려야 한다.
됐다.
드륵. 완드를 구멍에서 빼냈을 때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드디어 희미한 빛이 안으로 새어 들어왔다. 문이 활짝 열리자 흰빛이 쏟아졌다.
아직 날이 밝은 채였다. 납치한 지 그리 오래된 건 아닌 모양이었다. 열린 문 너머로 복면을 쓴 두 남자가 안으로 들어섰다. 바닥에 드러누운 유타를 확인한 남자가 말했다.
“확인까지는 얼마나 남았다고 했지?”
“글쎄. 우리야 뭐 할 일만 하면 되는 거니까.”
“그래. 깨어나진 않겠지?”
“강력한 기절 마법을 썼으니 괜찮을 거다. 안쪽에 같이 납치한 녀석도 확인해봐. 털어보니 공작가 도련님 같던데. 괜히 같이 납치한 거 아니야?”
“그거야 두고 보면 알겠지. 아직 새근새근 자고 있는데? 하긴 귀하게 자라신 몸인데….”
뭐지?
누군가 들어오는 걸 확인하자마자 다시 기절한 척하던 레이먼의 귓가에서 순간 두 남자의 목소리가 사라졌다. 그들은 무언가 발견한 것처럼 숨을 죽였다. 그리고 찾아온 건 꽤 강렬한 고통이었다. 어라라, 절대 들킬 리가 없는데. 쾅-! 레이먼의 머리 위에 있던 나무 상자가 무너져내렸다.
“이봐, 꼬맹아, 기절한 척 그만해라.”
“문 쪽에 난 구멍 네가 한 거지?”
“미리 마법을 쳐두지 않았다면 모르고 넘어갈 뻔했어. 마법을 쓴 흔적이 보이는구나.”
레이먼이 필사적으로 정신을 잃은 척했다. 슬쩍 뜬 두 눈으로는 두 남자의 얼굴을 기억했다. 기억해야 했다. 나중에 어떤 식으로 쓸모가 있을지 모르니까.
두 사람은 쓰러진 레이먼의 배를 툭툭 걷어차며 말했다.
“죽일까?”
“상관없지 않아?”
고민에 빠진 레이먼은 입술을 꽉 물었다.
‘마법을 쓸까? 아냐, 그래봤자 2 대 1로 이길 수는 없다. 차라리 체력이라도 됐으면 도망이라도 쳤을 텐데.’
작은 머리에 여러 생각이 휘몰아쳤다.
두 사람 중에 한 명을 제압하고 유타를 깨우는 거야. 잠깐 한 쪽을 묶어둘 순 있으니까. 그럼 중력 아니면 바람? 혹은 흙? 차라리 머리로 들이박을까? 그 찰나의 순간이었다.
띠링.
[ 왕 후보가 위험에 처했습니다. ] [ 킹메이커 전용 특성 ‘세치 혀’가 추가 오픈됩니다. ] [ 킹메이커 전용 특성 :– 선별
– 예견
– 세치 혀 new! ] [ ‘세치 혀’ 특성의 사용 시, 정신 착란/추가 희생 등의 부작용이 따를 수 있습니다. ]
세치 혀? 부작용?
그러나 레이먼에겐 눈앞에 나타난 특성에 대해 고민할 시간조차 없었다.
쾅-!
대기 마법이었다. 눈에 보이지 않는 공기가 레이먼의 머리를 꿰뚫을 뻔했다. 겨우 아래로 피한 레이먼이 악착같이 상자를 찾아 그 뒤로 숨었다. 지금 그에게 필요한 건 시간이었다. 승리가 아니라 시간 말이다.
확인! 특성 확인!
[ 세치 혀 : 무슨 말을 하든 당신의 말솜씨에 상대방이 감탄하게 됩니다. 심지어 그게 억지 논리라고 해도 말입니다. 이 능력을 통해 당신은 타인의 사이를 이간질할 수도, 뒷소문을 낼 수도 있습니다. 혹은 비밀을 캐낼 수도 있겠죠. ] [ 그러나 세치 혀를 사용 중인 상황을 왕 후보에게 들킨다면 당신에 대한 신뢰도가 떨어지니 주의하세요. 왕 후보와 친밀도가 높을수록 신뢰도는 적게 감소합니다. ]이게 날 위한 특성이라고? 겨우 이게? 하지만 사용할 수 있는 건 뭐든 사용해야 했다.
레이먼이 절박하게 고민하는 사이, 얼굴을 가린 두 남자는 낄낄대며 애 하나를 어떻게 죽일지 떠들어댔다.
“아, 아저씨들!”
[ 세치 혀 특성이 발동합니다. ]“저, 저는 진짜 잘못 납치된 거거든요. 저희 아버지께서 돈이 많으시니까 저만 살려주시면 얼마든지 드릴게요.”
[ 세치 혀 특성이 발동합니다. ] [ 당신의 말이 논리적으로 들리기 시작합니다. ] [ 당신의 말에 신뢰도가 높아집니다. ] [ 동화된 왕 후보가 없어 세치 혀 능력치가 낮아집니다. ] [ 온전한 설득은 불가능합니다. ]“…쟤네 집이 그 정도야?”
“공작이니까 그 정도긴 하지. 이 일 끝나면 수고비가 얼마였지?”
“뭐, 집 한 채 값 아냐?”
레이먼이 다급히 손을 크게 휘저었다.
“저는 성 한 채를 사드릴 수 있거든요! 두 분한테 따로 따로요.”
“어차피 제가 목적은 아니시잖아요!”
“제발 부탁이에요. 제발요! 뭐든 시키는 대로 할게요! 기라면 길게요!”
레이먼의 억울하고 슬픈 목소리가 창고를 가득 채웠다. 남자들은 수군거리기 시작하더니 “정말로? 약속이지?”라고 말했다. 레이먼이 상자 뒤에서 천천히 얼굴을 빼내 고갤 끄덕였다. 그들은 아직 고민하는 듯했다.
그때였다.
남자의 등 뒤에서 뭔가가 꿈틀거리는 게 보였다. 유타가 깨어난 것이다.
레이먼은 조금 전 특성창의 주의 사항을 떠올렸다.
[ 그러나 세치 혀를 사용 중인 상황을 왕 후보에게 들킨다면 당신에 대한 신뢰도가 떨어지니 주의하세요. 왕 후보와 친밀도가 높을수록 신뢰도는 적게 감소합니다. ]아직 유타와 자신의 관계에 친밀도는 그리 높지 않을 터였다.
‘세치 혀 특성을 사용하면 신뢰도가 얼마나 깎일까? 시험해볼까?’
하지만 이 상황에서 굳이 위험을 무릅쓸 필요는 없었다.
레이먼은 지금 이 대화만으로도 두 남자를 온전히 설득했길 기대해야 했다.
유타가 깨어난 걸 눈치채기 전에 빨리. 그럼 저 문으로 향하는 순간, 유타를 데리고 도망이라도 칠 수 있으니까.
“좋아. 네 놈은 살려두도록 하지. 그래도 지금 널 놓아줄 순 없다. 그 정돈 참아.”
쾅-!
“왕자님!”
창고 외벽 하나가 무너져내렸다. 암흑을 만들던 네 면 중 하나가 완전히 무너지자 환한 빛이 안으로 쏟아졌다. 레이먼은 상자 뒤에서 얼른 튀어나와 유타 쪽으로 뛰어갔다. 레이먼은 이 순간 납치범들이 노릴 대상을 알고 있었다.
“제기랄! 이봐! 당장 목표부터 처리해! 죽이진 말고!”
“알았다고!”
거친 몸짓으로 완드를 바짝 쳐든 남자의 끝에서 번개 한 줄기가 내리쳤다. 그 순간, 레이먼은 앞으로 내달렸다. 이성적으로 생각하기도 전에 몸이 먼저 움직였다.
유타는 내 유일한 왕 후보라고!
다른 왕 후보도 모르는 상황에서 얘가 죽으면 나는 어떻게 되는 건데!
그때 또 한 번 레이먼의 눈앞에 상태창이 떠올랐다.
[ 새로운 특성 사용 특전으로 ‘대리 희생’ 특성이 추가 오픈됩니다. ] [ 킹메이커 전용 특성– 선별
– 예견
– 세치 혀 new!
– 대리 희생 new! ] [ 대리 희생 : 왕 후보와 자신의 위치를 바꿀 수 있습니다. 단, 왕 후보가 눈앞에 있을 시 사용 가능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