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ill Make You a King as a Possessor RAW novel - Chapter (170)
빙의자가 왕으로 만들어 드립니다-170화(170/275)
[ 내 말이 틀렸나? ]아니, 이그니스의 말은 지극히 이성적이며 논리적이었다.
유태하였다면 절대 아드리안을 구하러 간다는 멍청한 선택지를 고르지 않을 것이다. 애초에 후방까지 가지도 않았을 것이다.
[ 빛의 대정령으로서 말하지. 저주의 기운은 저 뒤편에서 강하게 느껴지는 게 맞다. 그 소식을 내 계약자에게 말하지 않은 까닭은 내가 가진 정보가 쓸모 있지 않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왜 그렇게 생각하세요?”
[ 후방의 전력이 너희들의 승리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축복 마법사는 저기 저 어린 영혼들보다 네가 있는 쪽에 더 많으니 저주를 몰아내는 데에도 무리는 없다. 불필요한 희생을 늘린다고 생각했지만 나의 계약자와 친밀한 네겐 이득이라고 생각해서 말하지 않았다. ]이그니스는 도리어 레이먼을 한심하게 흘겨보았다. 그의 눈에는 일말의 죄책감도 보이지 않았다. 놀라울 정도로 그는 인간이 아니었다.
신과 비슷한 권능을 지닌 대정령이 저따위라면 신이 어떤 생각으로 이 세상을 보고 있는지 알 것만 같았다.
정의의 신이라는 주스테 신이 여태 아무것도 하지 않을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 붉은 머리야. 가지 마라. 그편이 네 인생에는 득이 될 거다. ]“제 인생은 제가 알아서 합니다. 그리고 전 후회하는 인생을 살고 싶진 않고요.”
[ 구하는 일이 되레 널 후회하게 만들지도 모르는데? ]“그건 후회가 아니라 책임이라고 부르는 거겠죠. 그 정도로 나이를 먹고도 어휘 선택이 구리시네요.”
[ 이 멍청한 인간이-. ]“뭐라고 말해도 전 갑니다. 유타에게도 얼른 알려주는 편이 좋을 겁니다. 말하지 않으면 그쪽을 경멸하는 건 제가 아니라 유타 쪽이 더 심할 거 같거든요.”
이그니스를 뒤로한 채 레이먼은 후방으로 향했다.
후방의 막사는 뛰어서 10분이면 도착할 수 있을 정도의 거리였다. 그 이상 벌어졌다간 치료소로서의 기능조차 퇴색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레이먼은 서둘러야 했다.
별동대를 보냈다면 이미 도착했을 시간이다.
그나마 믿을 구석은 기습 직전에 쳐둔 마법 결계였다.
치료소를 비롯한 막사들의 존재와 마력을 주변으로부터 완전히 차단시켜 시야를 왜곡시킨다. 즉, 결계의 위치를 알지 못하는 자들은 치료소를 찾을 수 없는 것이다.
‘그래, 아직 괜찮을 거다.’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쿵쿵대는 소리가 진동처럼 고막을 흔들어 깨웠다.
짜증 치밀어 올라 미칠 것 같기도 했다.
어느 정도로 분노가 올라온 것인지, 화를 어느 정도로 내야 할지 레이먼은 감도 오지 않았다.
여하튼 그는 달렸다. 달려서 확인해야 했다.
그들의 안전을, 동생의 안전을 시야에 담아야만 했다.
결계가 있는 곳에 거의 도착했을 때였다.
결계가 정상적으로 작동되고 있다면 그들의 처소는 레이먼의 눈에도 보이지 않아야 맞았다.
“연기…….”
즉, 저 검은 연기가 레이먼의 눈에 보여선 안 됐다.
“……아드리안!”
손목 팔찌가 칠흑색 완드로 변했다. 손에 쥔 완드를 휘두르자 그 끝에서 검은 번개가 내리쳤다. 번개는 치료소를 급습한 이들의 머리 위로 내리쳤다. 까맣게 탄 시체는 그대로 잿가루가 되어 하늘로 번졌다.
그러나 그들의 수는 그게 전부가 아니었다.
숫자는 30명 남짓. 30명이라면 들키지 않고 충분히 이동할 수 있는 숫자였다.
이 정도 숫자에 학생들이 쉽게 당할 리가 없었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결계는 파괴되었고 처소는 반파되었다. 그 속엔 상처 입고 쓰러진 학생들이 넘쳐났다. 연기가 시야를 방해해 모든 게 제대로 보이진 않았다.
평범한 마법사라면 이 상황이 가능할 리 없었다.
그러나 저 30명 모두가 영법사라면?
그들이 내뿜는 불길한 기운이 이미 그들의 정체를 말해주고 있는 듯했다.
살아남은 몇몇 학생들이 번개가 내리친 방향을 바라보았다.
“살려주세요!!”
“살, 살려-!”
“끄아아악, 너무 아파.”
“흐윽, 흑, 엄마.”
화가 치밀어 올랐다. 자신의 멍청함에 대한 분노였다.
현장에서 서머셋은 보이지 않았다. 학생들을 내버려 둔 채 어디론가 사라진 것이다.
어째서 미리 알아차리지 못한 거지?
힌트는 충분했다.
이그니스가 저주에 대해 경고했고, 축복 마법사들을 쓸어 왔다.
그리고 꿰맞추기라도 한 것처럼 서머셋이 필요도 없는 학생들을 전쟁터에 끌고 왔다. 학생들을 아껴주는 척 후방 처소에 몰아넣었다.
매너스의 은혜를 입은 에글린턴과 현 왕실에 대해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우수한 마법 실력을 지닌 새싹들이 전부 후방에 있었던 것이다. 제아무리 훌륭한 과실을 맺을 예정일지라도 여물지 않은 새싹은 여전히 새싹일 뿐이다.
“……….”
완드를 쥔 손에 힘이 들어갔다. 서클 대신 레이먼의 몸속 마력을 운용하는 장기는 심장이었다.
끝을 모르는 마력이 레이먼의 온몸을 휘저었다.
그가 완드를 높게 치켜들었다.
화려한 불꽃이 하늘을 장식했다.
불꽃으로 이루어진 붉은 화살의 주변을 금빛 가루들이 둘러쌌다.
축복 마법과 불꽃이 뒤섞인 화살이 일제히 검은 마력을 노렸다.
당황한 영법사들의 완드 끝에서 검은 결계가 뿜어져 나왔다.
“더럽다.”
쾅- 쾅- 쾅- 쾅-!
수백 개가 넘는 빛의 화살이 영법사들의 몸을 꿰뚫었다.
동시에 레이먼의 몸속이 불타올랐다. 몸에서 끓어오른 용암이 목울대로 터져 나왔다. 정작 토해낸 건 용암이 아닌 붉은 피였지만.
후들거리는 다리로 앞을 향해 걸었다. 살아남은 몇몇 영법사들이 보였다.
화악-
레이먼이 손을 뻗자 살아남은 두 명이 자석처럼 끌려 왔다.
“끄억-!”
“………바텔바흐에서 왜, 왜 이딴 짓을 벌인 거지?”
“…….”
“말하지 않는다면-.”
“검은 태양이 떠오른다!”
“검은 태양은 영원하리라!!!”
순간이었다.
콱-!
입 안 무언가를 씹은 그들의 모든 구멍에서 검은 액체가 터져 나오고 검은 불꽃이 그들의 몸을 휘감았다. 저주 마법을 걸어둔 약을 혀 뒤에 숨겨둔 모양이었다. 곧바로 입을 벌렸지만 이미 늦었다. 죽은 이들의 몸이 뽑은 잡초처럼 축 늘어졌다.
“제기랄.”
일부러 둘은 살려둔 거였는데.
들고 있던 시체를 바닥에 내팽개쳤다. 그리고 곧장 치료소 방향으로 향했다. 다행히 학생들 중 사망자는 없어 보였다. 레이먼 역시 다리가 후들거렸다. 하지만 아드리안을 찾아야 했다.
설마 이곳에서 죽지는 않았겠지?
아니다.
만약 여기서 죽을 운명이었다면 분명 일기장에는 다른 내용이 쓰여 있었겠지.
‘하지만 일기장에 기록된 이번 전쟁에서… 학생들이 따라온 적은 없었다. 애초에 시기도 너무 일러.’
무언가 바뀌었다.
레이먼의 행동으로 인해 흑막의 행동이 급해진 것이다.
잔해를 치워가며 아드리안을 찾았다. 무너진 텐트를 다시 세우기도 했다. 혹여 아드리안을 깔려 있을까 걱정돼서였다.
그러다 신발, 케이프, 손수건 같은 물건이 보인다면 심장이 덜컹 내려앉기도 했다.
혹시나, 이곳에 깔려, 그대로.
“혀, 형님?”
“……아드리안!”
잔해를 뒤적이던 레이먼의 등 뒤로 찾고 있던 목소리가 들렸다.
홱 고갤 돌리자 아드리안이 그곳에 있었다. 레이먼은 곧장 그에게 달려갔다.
“형님이 왜 여기까지 오신 겁니까?”
“그게 중요한 게 아니야. 내가 오지 않았다면 어떻게 하려고 도움을 요청하지 않았지? 아드리안, 지금 네 팔에서 피가 흐르고 있다고.”
“괜찮습니다.”
팔뿐이 아니었다. 소년의 몸 곳곳에 영법사로 인한 상처가 보였다.
일전에 레이먼이 얼굴에 입었던 상처처럼 영법사의 영법에 의해 직접적으로 난 상처는 검게 썩어 갈 것이다.
어서 축복 마법으로 치료해야만 했다.
이 어린 마법사들의 축복이 아니라 더 강력한 것으로.
‘이그니스 님, 아직 옆에 계신 거 압니다.] [ ………어떻게 알았지? ]
‘이그니스 님이 계시지 않으면 이 주변에 하급 빛의 정령들이 이렇게 많을 리가 없으니까요. 치료해주세요. 대정령님의 권능이면 금방이지 않습니까. 유타도 이곳에 있었다면 그걸 원했을 겁니다.’
[ …내게 명령을 내릴 수 있는 건 계약자뿐이다. ]‘그럼 유타한테 말하고 오세요. 결과는 똑같을 겁니다.’
[ 그런 표정으로 대정령을 협박하는 건 아마 너뿐일 거다. ]이그니스가 탁 소릴 내며 지상으로 내려왔다.
‘제 표정이 어떤지 전 모릅니다.’
[ 보고 있으면 저주에 걸릴 거 같으니 날 보지 마라. ]이그니스가 손가락을 작게 튕기자마자 땅 위로 빛 알갱이들이 뿜어져 나왔다.
알갱이들은 다친 이들의 몸에 흡수되었다. 상처가 낫는 건 한순간이었다.
영법사들의 상처가 무서운 까닭은 단순히 피부를 썩게 만들기 때문이 아니었다.
조금이라도 유약한 정신을 가진 채 그들에게 상처를 입었다면 그 순간부터 무언가 틀어지기 시작한다. 그들의 욕심과 질투, 분노를 부추기는 소리가 들리기 때문이다.
하지만 치료했으니 괜찮을 것이다.
아드리안의 상처도 마찬가지였다.
그의 몸에 난 상처도 거의 옅어졌다.
작게 남은 흉터만 그의 다친 과거를 증명했다.
“왜 말을 하지 않았어. 충분히 마법으로 내게 말을 걸 수 있었잖아.”
아드리안의 한쪽 귀에 있는 피어싱은 레이먼이 그의 작년 생일에 준 선물이었다. 레이먼이 어디에 있든, 무엇을 하든 아주 약간의 마력만 주입해도 그에게 말을 걸 수 있는 아티팩트. 오직 아드리안만을 위해 레이먼이 직접 만든 아티팩트였다.
한데 어째서일까. 오늘만 해도 분명 쓸 기회가 있었을 텐데도, 아드리안은 쓰지 않았다.
제기랄! 이럴 거면 다른 걸 줬을 거다! 위치 추적 마법을 걸어뒀지만 무슨 이유에서인지 먹통이었고! 차라리 새 걸로 바꿔준다고 할까? 그편이 나을까?
머릿속이 복잡했다.
“형님은 전장에서 바쁘시니까요. 제가 방해를 할 수가-.”
“가족이 죽으면 무슨 의미가 있어!”
“…….”
“전쟁에 나선 이들 모두 고국에 있는 이들을 위해 싸운다는 걸 너도 잘 알 텐데, 아드리안.”
“죄송합니다. 제가 생각이 짧았어요.”
“하아.”
흐트러진 머리카락을 쓸어 넘기며 레이먼이 말했다.
“널 다그치려 했던 건 아니다. 이제 아픈 곳은?”
“형님이 와주셔서 괜찮습니다.”
“그럼 됐어. ……서머셋 왕자님께선 어디에 계시지? 너희랑 같이 후방에 있어야 하잖아.”
“전쟁이 시작되고 전방에서 호출이 있으셨습니다. 기습 때문에 앞으로 나섰고 이후에 별동대가 왔어요.”
서머셋이 떠난 이후에 별동대가….
“그래.”
의심스럽긴 해도 이 정도 정황으로는 확신할 수 없다. 알고 있지만 불길한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 건 왜일까.
레이먼은 다른 학생들을 모두 모으고 결계까지 다시 친 뒤 그곳을 떠났다.
혹시 몰라 아모르를 후방에 남겨두었다.
이번엔 마법으로 순간이동을 통해 금세 그들이 있던 곳으로 도착할 수 있었다.
레이먼이 도착했을 땐, 이미 바텔바흐의 군대가 퇴각한 후였다.
승리의 깃발이 하늘 위로 높게 펼쳐져 있었다. 승리한 것이다. 예상했던 대로.
그러나 아군의 표정이 밝지 않았다. 어떤 이는 울고 있었다.
게다가 유타의 모습도 보이지 않았다.
“오닉스, 유타는? 무슨 일이야?”
“……돌아가셨어.”
“뭐?”
“…………이 돌아가셨다고.”
무언가 잘못되어가고 있다는 신호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