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ill Make You a King as a Possessor RAW novel - Chapter (172)
빙의자가 왕으로 만들어 드립니다-172화(172/275)
서머셋은 신전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그는 대신 신전 근처에 마련된 공원 벤치로 레이먼을 안내했다. 그는 주변의 기사를 무른 뒤, 레이먼에게 제 옆에 앉으라 손짓했다. 그리고 레이먼은 그 호의를 거절했다.
“곧 유타가 나올 테니 오래 대화를 나눌 생각은 없습니다.”
“레이먼, 어느 순간부터 날 너무 경계하는 것 같은데. 내 착각인가?”
“그렇지 않습니다. 착각입니다.”
레이먼의 답에 서머셋이 피식 웃음을 흘렸다.
“온몸으로 그렇게 말하고 있으면서 무슨.”
“…아닌데요.”
“그래, 네 말이 맞다고 하자. 너와 싸우려고 부른 것도 아니니까. 그래도 아드리안을 다치게 할 생각은 없었어.”
서머셋이 차분히 말했다.
“아카데미 졸업반 학생들을 데려온 건 이번 전쟁이 그리 위험하지 않을 거라 판단했었고, 축복 마법사의 수를 조금이라도 충원하고 싶었던 마음이 컸어. 후방까지 별동대가 올 줄은 몰랐어. 하지만… 전부 변명이지. 모든 경우의 수를 두고 대비를 해야 했어. 미안해.”
미안하다는 말로 될 일인가. 레이먼은 주먹을 꽉 쥐었다. 아드리안에겐 작은 흉터만 남았으나 어떤 정신적 트라우마가 생겼을지 모를 일이다. 게다가, 자신이 자리를 비운 사이 1왕자가 서거했다. 자리를 비운 사이에. 만약 그때….
그때 자신이 아드리안에게 향하지 않았더라면 결과가 바뀌었을까?
1왕자는 살 수 있었을까?
보지 않은 과거와 미래는 알 수 없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아드리안은 살았고 케네스 1왕자는 죽었다. 그뿐이었다.
레이먼은 울렁거리는 감정을 숨기고 말했다.
“왜… 치료소를 계속 지키지 않으셨습니까?”
“치료소를 지킬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야. 결계가 있었고 나 이외에 다른 병사가 없는 것도 아니었으니까. 결정적으로… 방에서 지원 요청이 왔고, 나도 역시 빨리 치고 끝내는 게 이번 전쟁에서 승리하기에 유리할 거라 판단했어. 오판이었지만. 아드리안, 너도 슬프겠지만 나 역시 형님을 잃었어. 비록 오랜 세월을 함께 보낸 형제는 아니지만… 가족이었으니. 너도 이 슬픔을 이해하지?”
서머셋의 눈가 역시 붉었다. 적어도 케네스의 죽음에 눈물 한 방울은 흘렸다는 뜻이리라.
‘서머셋이 배후에 있다고 생각했다. 아닐 수도 있다는 건가?’
“서머셋 왕자 저하께서 페인 왕자님과 친하시지 않습니까.”
“그런데?”
“바텔바흐의 움직임에 대해 사전에 전달받은 바가 없을까 싶어 여쭌 겁니다. 정말 아무것도 모르셨습니까?”
그럴 리 없지. 서머셋이 케네스의 잃은 슬픔을 인정하는 한편, 그가 이번 일의 배후에 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순 없었다. 레이먼의 질문에 서머셋의 눈빛이 변했다. 검붉게 변한 눈동자가 레이먼을 뚫어져라 응시했다. 그는 천천히 벤치에서 일어난 뒤, 레이먼의 어깨 위에 가볍게 손을 얹었다.
“미안해, 레이먼. 하지만 네 질문에 대답할 만큼 내 마음의 여유가 없다는 사실도 알아주면 좋겠구나.”
그렇게 말한 서머셋은 “돌아갈까?”라는 질문과 함께 다시 신전 정문으로 향했다.
‘대화할 때마다 느끼지만 대답하는 방식이 너무 애매해.’
킹메이커 전용 특성을 활용할 수도 없는 대답이었다. 거짓과 진실이 섞인 애매한 대답. 하지만 그 애매모호한 대답 역시 그가 어떤 인물인지 말해주기도 했다.
“레이먼.”
“인사는 다 했어?”
신전 정문에는 마지막 인사를 마치고 나온 유타가 서 있었다.
그는 비슷한 방향에서 먼저 온 서머셋을 마주쳤는지 할 말이 많은 눈으로 레이먼을 바라보며 물었다.
“무슨 대화를 나눈 거야?”
“아드리안 일 때문에.”
“아…. 아드리안은 좀 어때?”
“멀쩡해. 겉으로는.”
“그렇구나.”
“넌 어때.”
레이먼은 유타가 케네스의 죽음에 죄책감을 느끼고 있다고 생각했다. 만약 유타가 케네스 곁에 있었다면 그의 죽음을 막을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영법사의 영법과 이그니스의 축복은 서로 상충하니까. 하지만 이미 지난 일이었다.
그의 죽음은 유타의 잘못이 아니었다.
그리고 유타도 아마 어렴풋이 느끼고 있을 것이다. 이 죽음에는 분명 배후가 있다는 것을.
케네스의 갑옷에 어떤 마법이 걸려 있는지 적군에게 정보를 넘긴 스파이가 분명 있을 것이며, 그 틈을 노려 영법사가 케네스의 몸통을 노리도록 한.
그자를 찾아야 했다. 유타는 이곳에 멈춰 울고 있을 시간이 없었다.
그리고, 케네스는.
‘여동생…. 마지막엔 나를 여동생이라고 불렀어.’
케네스는 알고 있었다. 유타가 숨기고 있는 비밀을.
알면서도 말하지 않은 것이다.
‘언제부터지?’
아마 처음부터.
‘왜 숨겨준 거지?’
그저 동생이니까.
‘왜 나를… 동생으로 인정한 거지?’
가족들 사이에 ‘인정’이 필요한 건 아니니까.
‘오라버니.’
유타는 속으로 한참 속삭였다.
부를 수 없는 그 이름을 속으로 한참을 속삭였다.
***
장례식을 마친 뒤, 왕실 마법사들은 각자 사택으로 돌아가거나 수도에 마련된 가문의 타운 하우스로 돌아갔다.
레이먼도 이번엔 왕실이 아닌 타운 하우스로 향했다.
스플린 가의 타운 하우스는 수도 중심지에 위치한 귀족의 타운 하우스 중에서도 가장 크고 좋은 재료로 만들어진 건물로 통했다.
전쟁이 끝나고 정리할 정보가 많았다.
가벼운 휴식도 필요했기 때문에 레이먼은 전쟁 이후 타운 하우스에 머물며 업무 시간에만 왕성에 출입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카렌은 업무 시간에만 레이먼을 보좌하고, 타운 하우스에서는 가문의 고용인들이 레이먼의 시중을 들었다.
“무슨 일 있으면 불러주십쇼.”
“그래.”
퇴근 후 옷가지를 정리한 레이먼이 의자에 앉아 시스템 창을 켰다. 장례식으로 정신없는 일주일을 보낸 탓에 시스템을 확인하지 못했다.
아직 목숨이 붙어 있는 걸 보니 다행히 전쟁에서 가장 큰 공을 세우라는 임무는 성공한 듯했다.
띠링-
알람 소리와 함께 서재 의자에 반쯤 드러누운 레이먼 앞에 푸른 시스템 창이 떠올랐다.
[ 주어진 임무를 복습합니다. ] [ 곧 있을 바텔바흐 공국과의 전쟁에서 왕 후보 1인과 함께 최대 공적을 세우세요. 공적은 어떤 식으로 쌓아도 괜찮습니다. ] [ 보상 : 메이커 포인트 최대치 ] [ 실패 시 페널티 : 죽음 ] [ 당신의 공적을 측정 중입니다. 공적의 질, 양, 수에 따라 순위가 변동될 수 있습니다. ]‘아, 성공한 게 아니라 아직 측정이 안 된 거였어?’
눈앞에서 여러 숫자가 도르르륵- 소릴 내며 굴러다녔다. 레이먼은 시체처럼 의자에 누워 결과를 기다렸다.
띵-
경쾌한 소리와 함께 ‘1’이라는 숫자가 떠올랐다.
[ 이번 전쟁에서 당신은 왕 후보 유타 스테디움 스턴과 함께 ‘1등’으로 많은 공적을 세웠습니다. ] [ 측정 공적은 다음과 같습니다. ] [ 유타 스테디움 스턴 : 해당 왕 후보는 이번 전쟁에서 가장 많은 수의 적군을 죽였습니다. 동시에 가장 많은 수의 아군을 치료하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전쟁 중 갈피를 잡지 못하는 젊은 마법사들을 통솔하는 역할을 맡았습니다. 이는 이번 전쟁의 승리에서 굉장히 큰 비중을 차지하였습니다. ] [ 레이먼 반 스플린 : 당신은 이번 전쟁에서 가장 많은 수의 영법사를 죽였습니다. 당신이 쓰러뜨린 절대적인 수가 많은 편은 아니었으나 당신이 후방 치료소에 가지 않았다면 학생들은 전원 사망했을 가능성이 높았습니다. 최악의 상황을 회피하는 데에는 당신의 도움이 가장 컸습니다. ]‘…전원 사망.’
제때 막지 않았으면 아드리안도 죽었을 가능성이 있었단 소리군.
[ 임무 성공으로 메이커 포인트 최대치가 지급됩니다. ] [ 축하드립니다. 메이커 포인트 최대치 달성으로 당신에게 메이커 포인트 사용권이 지급됩니다. ]‘메이커 포인트 사용권을 가지면 뭐가 좋은 거지?’
[ 메이커 포인트는 당신의 실수를 만회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아주 중요한 능력입니다. 해당 포인트를 기점으로 당신의 인생이 새로이 시작됩니다. ] [ 시작점은 선택이 불가능합니다. (분기점 중 자동 배정) ]정확히 어떤 때에 쓸모가 있을지 알 수 없는 능력이다.
애초에 되돌리고 싶은 순간을 지정할 수 없는 것만 봐도 그렇다.
‘케네스 왕자가 죽기 전으로 돌아가는 건 가능한가?’
[ 시작점 선택은 불가능합니다. ]‘그럼 전쟁 중으로는?’
[ 시작점 선택은 불가능합니다. ] [ 메이커 포인트 사용권은 사용 조건이 지정되어 있습니다. ] [ 해당 조건이 충족되는 순간 자동으로 사용됩니다. ] [ 그때까지 기다리세요. ]“뭐야….”
조건이 뭔지도 알려주질 않으니. 쯧. 혀를 한 번 찬 레이먼은 서재에 뚫린 커다란 창 너머로 보이는 풍경으로 시선을 돌렸다.
레이먼과 유타가 최대 공적을 세웠다는 건, 왕에게 한 가지 소원을 빌 수 있다는 걸 의미한다. 즉, 유타가 ‘그 소원’을 왕에게 말한다는 것이다.
***
스턴의 현 왕, 라치오날 스테디움 스턴은 1왕자의 장례식에 참여하지 않았다. 정확히 말하면 왕자들이 모두 떠나고 홀로 식장에 들러 오랜 세월 떠나있던 아들의 마지막을 함께했다.
유타 덕분에 원인불명의 저주에서 벗어난 그였다. 유타와 레이먼이 이번 전쟁에서 가장 큰 공을 세운 인물이라는 걸 알았을 때 그는 복잡한 감정에 휩싸였다.
첫째 아들을 잃은 전쟁에서 최대 공적을 세운 가장 어린 아들.
그는 전쟁이 끝나고 2주가 지나서야 유타와 레이먼을 불러냈다.
원래라면 축하연과 함께 진행되어야 할 수여식이지만 1왕자의 죽음이 가져다준 슬픔이 아직 가시지 않은 채였다.
라치오날은 연회를 여는 대신 두 사람을 조용히 불러내 몇몇 고위 귀족만이 지켜보는 앞에서 상을 내리기로 한 것이다.
“이번 전쟁에서 가장 큰 공적을 세운 이들이 바로 이 두 명이다. 두 어린 마법사의 앞길에 내가 무언가 도움이 되고 싶군. 원하는 게 있으면 무엇이든 말해보도록. 먼저, 유타. 원하는 게 있으면 말하거라.”
한쪽 무릎을 꿇은 채 고개를 푹 숙이고 있던 유타의 시선이 왕에게 향했다.
어떤 이는 유타가 왕자궁의 리모델링을 원할 것이라 예상했고, 어떤 이는 왕세자가 정해진 뒤를 위해 비자금을 위한 재화를 원할 것이란 말을 하기도 했다.
또 다른 이는 재화 대신 왕자가 아닌 별도의 작위를 요구하리라 예상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들 모두의 예상은 빗나갔다.
유타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이 왕국의 법도를 단 한 가지 어길 수 있는 권리를 원합니다.”
“그게 무슨 뜻이지?”
“전하의 뜻을 거스를 생각은 없습니다. 반역이나 타인을 해치는 것을 제외하고 제가 이 왕국의 지고한 법도를 단 한 번, 어길 수 있는 권리를 원합니다. 서면으로 계약서도 필요하고요. ”
당황스러운 소원이었다. 소원을 들은 귀족들도 저마다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유타의 소원은 언뜻 보면 별거 아닌 것 같으면서도 무언가 중요하게 보이기도 했다. 적어도 이 자리에서 왜 그가 그런 권리를 원하는지 이해할 수 있는 이는 레이먼뿐이었다.
불확실한 상황 속, 확실한 것은 하나였다.
그게 누구든 단 한 번이라도 왕국의 법도를 어길 수 있다면, 게다가 어떤 이도 그에 대한 딴지를 걸 수 없다면 그 존재는 단연 모든 일의 중심에 설 것이라는 점이다.
“…….”
유타의 요청에 왕은 침묵했다.
모두가 숙연해진 장내에서 마침내 라치오날이 한 손을 들고 답했다.
“5왕자 유타 스테디움 스턴.”
“…….”
“그대의 소원을 허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