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ill Make You a King as a Possessor RAW novel - Chapter (178)
빙의자가 왕으로 만들어 드립니다-178화(178/275)
“……허.”
죽었다. 심장이 뜯길 것 같은 고통과 함께 의식이 끊겼다.
레이먼은 이 고통이 분명 죽음 때문이리라 생각했다.
1학년 때, 오닉스에게 명치를 걷어차인 일이 있었는데 그때도 정말 죽는 것 아닐까 싶었다. 그때보다 배가 넘게 아픈 걸로 봐서는 분명 죽은 게 틀림없었다. 게다가 시스템이 말한 조건도 다 채우지 못하지 않았는가.
하지만 만약 죽은 게 맞다면 눈앞에 시퍼렇게 떠 있는 이 시스템창은 대체 뭘까.
아니, 애초에 죽었다면 지금 헛기침을 할 수 있을 리도 없지.
“큼큼. 뭐지, 잘 나오는데.”
레이먼은 어둠 속에서 다시 한번 헛기침을 크게 뱉었다.
대체 뭐가 어떻게 된 일이지?
***
[ 메이커 포인트를 통해 과거로 돌아갑니다. ]“메이커 포인트라길래 그냥 포인트 같은 건 줄 알았는데.”
세이브 포인트 같은 거였나.
보통, 게임에는 유저들이 자신의 행적을 세이브할 수 있는 지점을 게임사로부터 제공받고는 한다. 잘못된 플레이로 캐릭터가 죽었거나 죽을 위기에 처했을 때 해당 위기가 일어나기 전에 저장해둔 분기점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게임의 일이었다.
현실에서 그런 세이브 포인트가 있었다면 누구나 아무렇게나 살았겠지.
레이먼은 다시 한번 시스템창을 읽어내렸다.
[ 메이커 포인트를 통해 과거로 돌아갑니다. ] [ 해당 분기점은 킹메이커가 직접 택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 [ 분기점 선정을 위해 잠시 대기해주시기 바랍니다. ]대정령의 목소리도 들리지 않고 시스템창 외에 보이는 것도 없으니, 유추할 수 있는 것도 없다. 레이먼이 볼 수 있는 거라곤 자기 멋대로 문자를 출력해내는 시스템창뿐이었다.
[ 분기점을 선정하는 동안, 죽음으로 인한 보상을 지급합니다. ] [ 보상 : 아드리안의 일기장 일부 ]“뭐야.”
아드리안의 일기장? 내 게 아니라?
[ 아드리안의 일기장의 페이지 중 무작위로 한 페이지를 볼 수 있습니다. ] [ 스턴력 466년 X월 X일 ]바로 작년의 일이다.
레이먼은 시스템 창에서 튀어나온 일기장의 한 페이지를 읽어내렸다.
그곳에 담긴 일기는 전부 2개였다.
[ 우리 가문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서머셋 전하에게 붙을 수밖에 없다. 제국은 우리를 견제하고 있고, 바텔바흐에게 도움을 얻을 수 있는 사람은 그 사람뿐이다. 형님은 이 소식을 알고 있을까? 머릿속 목소리가 서머셋 전하를 도울 수밖에 없다고 끊임없이 속삭인다. 형님이 예전으로 돌아가지 않기 위해, 그리고 스플린 가가 멸문하지 않기 위해. ]“아드리안이… 서머셋에게.”
아직 무슨 말인지 완벽히 이해할 수는 없었다.
그럼 해야 할 일은 하나다.
훗날 이해할 수 있도록 글자 하나마저도 전부 외워버리는 것.
먼저 자리한 일기를 머릿속에 꼼꼼히 저장한 뒤, 그 아래에 적힌 일기를 마저 읽어내렸다.
[ 스턴력 466년 X월 X일 ] [ 형님께 찾아가 볼까. 침묵의 계약을 어기는 한이 있더라도…. 아니, 서머셋 전하가 그걸 가만히 내버려 둘 리가 없다. 이미 모든 게 진행 중이다. 제국이 우리를 견제하고 있는 상황에서 영법을 사용하는 바텔바흐의 영법사들까지 끌어들인다면 다른 사람이 그를 이길 수 있을 리가 없으니까. ] [ 일기장을 모두 읽었습니다. ] [ 페이지가 소멸합니다. ]아드리안의 일기를 읽은 뒤 레이먼은 확신했다.
서머셋이 아드리안에게 무언가 얘기했고 둘은 침묵의 계약을 했다.
침묵의 계약이란 양쪽이 모두 동의해야 걸 수 있는 마법으로 정해둔 비밀을 어기는 즉시, 그 사람에게서 가장 소중한 무언가를 앗아가는 계약이다.
“대체 아드리안이 왜 서머셋에게 붙은 거지?”
일기를 읽고 나니 되레 머릿속이 더 복잡해졌다.
그전에도 서머셋이 몇 번이나 아드리안에게 접근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거기서 끝이다. 그게 아드리안의 마음을 흔든 적은 없었는데.
그때, 시스템 창이 깜빡였다.
[ 분기점 선정이 완료되었습니다. ] [ 메이커 포인트는 다시 사용하는 것이 불가능합니다. ] [ 다음 죽음에서 해당 포인트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잠깐! 하나만, 하나만 더 질문해도 되겠어?”
[ 질문하십쇼. ]“다른 영혼들에게도 이런 기회가 주어졌나?”
일기장에 이런 내용은 없었어. 다들 한 번 죽으면 그대로 끝이었다. 한 영혼이 실패한 이후에는 다른 영혼이 들어오는 걸로, 회귀가 아닌 빙의로 삶이 이어졌다는 뜻이다.
[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주어지지 않았다고?
“그럼 왜 나한테만 주어진 거지? 특별한 이유가 있는 건가?”
[ 그렇군요. 설명이 부족했습니다. ] [ 레이먼 반 스플린에 당신의 영혼이 되돌아온 것이 올바른 질서이기 때문입니다. ] [ 흐트러졌던 질서에 대한 보상입니다. ] [ 우주는 질서를 중시합니다. ]되돌아왔다고?
[ 메이커 포인트가 특성창에서 사라집니다. ] [ 분기점으로 이동합니다. ] [ 마지막 기회를 유용하게 사용하시길 바랍니다. ]“잠깐, 지금 이게 무슨 말인지 설명은-!”
레이먼이 손을 뻗었다. 하지만 자신이 손을 뻗은 것을 확인할 새도 없이 시스템창이 사라졌고 그대로 세상이 새하얗게 변했다.
***
“……이게, 대체.”
돌아왔다.
익숙한 침대, 익숙한 방의 구조와 익숙한 책상.
졸업하고 잊고 있었지만, 이곳이 어디인지 레이먼은 금방 눈치챌 수 있었다.
그는 곧장 책상 위 달력을 살폈다.
책상 위에 올려둔 달력은 스턴력 463년의 가을을 가리키고 있었다.
레이먼이 졸업하기 바로 전 해.
겨울 방학을 앞둔 포레스튼의 5학년생으로 다시 돌아온 것이다.
달력을 손에 집어 든 레이먼이 중얼거렸다.
“왜 하필 지금이지?”
분명 사망의 분기점으로 될 시점으로 돌아간다고 했다.
그렇다면 분명 이 사망을 바꿀 수 있는 시기로 날 돌려보냈을 것이다. 입학하기 전이 아니라 5학년인 지금이라면 분명 아카데미에서 만났을 학생들을 대부분 만났던 시점이다. 그렇다면 이전까지의 행동은 미래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는 건가?
‘아니, 틀려. 영향을 미치지 않은 게 아니라 내가 원하는 미래로 가는 방향에서 벗어나지 않았다는 걸 의미한다.’
레이먼이 자리에 앉아 서랍을 열었다.
“역시 아직 있나.”
앞선 레이먼들이 사용한 일기장이 자리에 있었다. 레이먼은 일기장을 다시 읽었으나 그가 마지막으로 읽었을 때와 변한 부분은 없었다.
“도움이 안 되는 건 여전하군.”
레이먼이 턱을 괸 채 일기장을 노려보았다. 이렇게 계속 노려보다 보면 무언가 떠오르지 않을까? 시간이 흐를수록 글자가 떠오른 것처럼 말이야. 자, 얼른 떠올라라! 자!
…….
[ 놀라울 정도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군. ]“아모르 님?”
[ 그래, 레이먼. 나다. ]아모르는 팔짱을 낀 채 레이먼을 못마땅한 얼굴로 내려다보았다.
[ 어떻게 된 건지 설명을 해라. ]“뭘 설명을 합니까?”
내가 회귀했다는 걸 아모르도 알고 있는 건가?
생각해 보니 내가 죽으면 대정령과의 계약이 바로 끝나는 건지 알아본 적이 없어.
골똘히 고민하기 시작한 레이먼의 이마를 아모르가 손가락으로 툭툭 건드렸다.
그는 여전히 언짢은 얼굴이었고, 완두콩 빛깔의 초록색 머리카락이 그의 어깨 위에서 흘러내리고 있었다.
[ 계약이 끊겼다. 너는 죽었고, 나는 다시 정령계로 돌아갔지. 그런데 돌아왔다. 분명 왕실의 정규 마법사가 된 것까지는 기억이 나는데 말이야. 이상하게 네가 죽은 이유가 기억이 나질 않아. 게다가 지금 시간대는… 네가 아직 학생이지 않으냐. 마치 모든 게 꿈같구나. 감히 대정령에게 이런 마법을 걸 수 있는 자가 있으리라고는 생각해본 적이 없지만 말이다. ]“아모르 님은 기억하고 계시네요…. 대체 왜….”
아모르가 고개를 비딱하게 기울였다.
[ 뭘 기억해? 나도 기억이 안 난다니까. ]“아뇨.”
레이먼이 고개를 저었다.
“기억하고 계십니다.”
왜 기억하고 있지?
과거로 돌아오면서 사라진 미래가 아닌가?
아니면, 시스템의 힘이 대정령한테는 미치지 못한 건가?
만약 그렇다면….
레이먼의 머리가 빠르게 돌아갔다. 그리고 한 가지 가설이 세워졌지만, 레이먼은 부러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았다. 혹여 그 가설이 틀렸을 때, 실망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 레이먼? 말이 없구나. ]아모르의 추궁에 레이먼이 한숨을 쉬곤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도 내 편이 하나라도 더 있는 게 우선이다.
“예. 죽은 게 맞습니다. 그리고 과거로 돌아온 것도 맞아요. 다만 제가 시간을 돌린 건 아닙니다. 그…게.”
레이먼의 이야기를 가만히 듣고 있던 아모르가 손가락을 탁 튕겼다.
그의 머리 색을 닮은 초록 알갱이들이 레이먼의 손등 위에서 톡톡 터졌다.
얼마 있지 않아 레이먼은 손의 떨림이 점차 잦아드는 것을 느꼈고, 누군가 멱살을 쥐고 있는 것처럼 답답하던 목 주변이 살짝 풀리는 것을 알 수 있었다.
[ 긴장하고 있길래, 좀 도와줬다. 네게 시간을 주겠다. 천천히 모든 걸 설명하거라. ]***
아모르는 놀라울 정도로 평온한 얼굴로 레이먼이 하는 이야기를 전부 들었고, ‘시스템이란 것이 간악하다.’라는 말과 함께 자신이 알고 있던 사실도 이야기해주었다.
그가 가장 먼저 이야기한 것은 레이먼의 영혼에 대한 이야기였다.
레이먼이 되물었다.
“특이하다뇨?”
아모르가 레이먼의 심장을 가리켰다.
[ 네 말대로라면 너는 이곳 세상 사람이 아니지. 하지만 이상하게 네 영혼의 일부는 너의 신체와 연결되어 있다. 마치 딱 맞는 퍼즐 한 조각처럼 말이야. 아니, 오히려 네가 원래 살던 곳이 정말 네 세계가 맞는 것인지 묻고 싶구나. ]“그건 또 무슨 소립니까?”
아모르가 다리를 꼰 채 손가락을 빙글 돌렸다.
[ 영혼은 돌고 돈다. 그것을 어떤 세계의 종교에서는 윤회라고 부르지. ]“예. 그런데요?”
[ 돌고 도는 건 우주의 흐름이다. 하지만 거기에 인간의 삿된 힘이 끼어들 수 있다. 예를 들어, 죽지 않은 자가 제 목적을 위해 타인의 영혼을 자신의 세계로 끌어들일 수 있는 것이지. ]“…….”
목적을 위해. 타인의 영혼을. 다른 세계로.
머리가 아프다.
[ 뭐, 일단. 그게 중요한 것은 아닌 듯싶구나. 결국 시스템인가 하는 그 삿된 힘의 주인은 너를 이 시간대로 데려온 거 아니냐. ]“그렇죠. 그렇다면 분명 지금부터 바꿀 수 있는 게 있을 겁니다. …지금부터.”
레이먼은 찬찬히 5학년 때 있었던 일을 상기시켰다.
그의 인생은 늘 바빴지만 사실상 졸업반만큼 한가했던 시절도 없었다. 밀리포레는 다른 학생에게 부장을 맡겼고 애써 시험공부를 할 필요도 없었고, 기껏 한 것이야 왕성에서 미리 마법사로서의 기반을 다진 것뿐이었다.
그러고 보니 그때 매너스와 잠시 대화를 나눈 적도 있지 않나?
1년을 회상하던 레이먼이 중얼거렸다.
“그게 단데…”
그 외에 뭔가 더 중요한 게-.
“아.”
기억났다. 5학년의 겨울 방학.
“왜 그걸 잊고 있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