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ill Make You a King as a Possessor RAW novel - Chapter (179)
빙의자가 왕으로 만들어 드립니다-179화(179/275)
5학년 겨울 방학. 레이먼은 다른 일행과 함께 챈들러 아이작의 집으로 향했다.
그리고 그곳에서 유타가 영법이 깃든 동상의 저주를 풀었고, 챈들러 아이작마저도 풀지 못한 모종의 저주가 있었음을 기억해냈다.
[ 체스! 체스! 말! 말! C6 이동! 대각선 가! 이동해!] [ 저주 얘기해! 빛의 대정령님이 해결해줄 수 있대. 챈들러의 저주를 풀 수 있대! 그런데, 챈들러는 그거 싫어해.]하지만 아이작 선배가 어떤 저주에 걸렸는지는 알지 못해.
만약 그게 챈들러 선배가 왕성에 오지 못하게 막고 있고, 챈들러 선배가 왕성에 돌아와 유타의 편이 되어준다면 무언가 바뀔 수도 있지.
‘게다가 그 조각에 걸린 영법. 지금까지 알게 된 걸로 봤을 때는 그것도 서머셋의 계략이겠지. 만약 그 동상의 영법이 풀리지 않고 쭉 이어졌다면 아이작 가의 영지민들 모두 영지를 떠났을지도 모른다.’
일단 첫 번째 바꿀 과거.
‘챈들러 아이작의 저주를 푼다.’
그렇게 결심한 레이먼은 곧장 휴게실로 향했다.
***
졸업반 학생들은 수업이 없었기 때문에 대부분 생활관의 자기 방이나 휴게실에서 면접을 준비하거나 친구들과 잡담을 나누기도 했다.
탁탁탁-
계단을 넘나들며 휴게실로 향한 레이먼은 묘한 두근거림을 느꼈다.
‘왜지?’
포레스튼 아카데미는 그저 아카데미일 뿐이다. 그렇게 입학하기 싫었던 그 장소. 하지만 포레스튼에서만큼은 실없는 농담을 온종일 해도 괜찮았다.
– 오늘 수업 없대!
– 거짓말!
– 오늘 수업 째고 완드 재료 상점에 갈 사람? 오늘 수도에 있는 상점이 대폭 할인한대.
– 그거 들었어? 초초 교수님이 짝사랑하는 사람이 에글린턴의 교수님이래!
‘그런 게 그리웠던 건가.’
평화가 가득한 아카데미 휴게실의 양 문을 벌컥 열자마자, 그리운 오렌지빛 조명이 레이먼을 덮쳤다.
“오, 그러니까 네 말은!”
“완드를 어떻게 책으로 만들어?”
“왜 못 해? 넌 1학년 때 조각상으로 만들었잖아!”
….
들어서자마자 쏟아지는 실없는 대화들의 향연에 레이먼은 정신이 아득해졌다.
그는 서둘러 자리에 있을 유타와 일행을 찾았다.
아직 회귀한 첫날.
정신은 없었지만, 첫 단추를 잘 꿰는 것이 중요했다.
“찾았다.”
유타는 휴게실 소파에서 다른 학생들과 함께 차를 마시고 있었다. 오닉스와 테디가 보이지 않는 걸로 봐선 두 사람은 아직 생활관 방에 있는 모양이었다.
“그럼….”
유타를 향해 발을 내딛는 순간, 레이먼의 시야에 까맣게 잊고 있던 한 소녀가 들어왔다.
그녀는 유타가 앉아 있는 소파에서 대각선 방향으로 3m 정도 떨어진 자리에 있었다.
남색 머리카락에 콧잔등 위에 잔뜩 박힌 주근깨와 동그란 안경을 낀 소녀.
말이 많은 편이 아니라 눈에 띄진 않았지만, 종종 특이한 말을 하는 아이였던 걸로 기억했다.
그러나 레이먼이 지금 이 시점에서, 그녀를 기억하게 된 이유는 그게 아니었다.
그녀의 이름은 제린.
졸업 후 왕성에서 행정 마법사가 아닌 치료 마법사로 일하게 된 유일한 마법사였다. 제린은 1왕자가 전쟁에서 서거한 이후, 다른 전쟁에도 참가해 전방의 치료 마법사로 일하다 결국 사망했다.
“좋아. 그렇다면 승부다!”
“누가 할 소리!”
휴게실 중앙에서 시끄럽게 떠들던 학생들의 대화는 어느새 다른 실없는 대화로 넘어가며 사그라들었다. 레이먼은 그녀에게 다가가기 전, 유타에게 먼저 가 예정보다 일찍 겨울 방학 일정에 대해 공유했다.
“아이작 가문에 가자.”
“아이작 가문에?”
사전에 협의가 없었던 통보 비슷한 레이먼의 말에 순간 유타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갑자기 아이작 가에는 왜 가는 거야? 설마 네가 챈들러 선배가 그리워서? 결국 레이먼은 ‘그래, 사실 선배가 그리워. 그리고 챈들러 선배가 놀러오라고 편지도 보냈어.’ 라고 이야기 했고 유타는 ‘네가 그렇다면야.’라고 답하며 승낙했다.
‘혹시나 했지만 역시.’
유타는 회귀했다는 사실을 기억하지 못하는 건가.
레이먼의 가설.
어쩌면 대정령과 계약한 이는 기억을 잃지 않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유타의 상태를 보면 그건 아닌 모양이었다.
‘어쩔 수 없지.’
어쨌든 돌아온 이상, 할 수 있는 일은 모두 해야 했다. 레이먼은 유타와 대화를 끝낸 뒤, 제린에게 말을 걸었다. 회귀 전에는 말도 걸어본 적 없는 학생이었다.
“제린. 너는 방학에 뭘 할지 정했어?”
제린은 엄청나게 당황한 눈치였다. 쓰고 있던 안경이 콧잔등에서 그대로 주르르 미끄러져 내려왔다.
“세상에, 네가 지금 나에게 말을 건 거야?”
“그런데?”
“세상에. 오늘 세상이 뒤집히는 게 아닐까.”
“같은 클래스 친구랑 대화하는 게 그 정도 일은 아니지 않나?”
“레이먼, 넌 우리 포레스튼의 유명인이잖아. 그런 유명인이 말을 걸면 누구나 놀라지.”
내가 그런 이미지였나?
그래도 에글린턴과 경쟁할 때 다른 애들과 대화를 꽤 나눈 것 같은데.
‘생각해 보면 그때 이후론 그러지 않았던 것 같기도 하고. …설마 이런 걸 아드리안이 보고 배운 건 아니겠지. 제린과 대화만 끝나면 아드리안에게 가봐야겠어.’
“그래, 무슨 일이야?”
“방학 때 뭘 하려나 해서. 무릎 위 책을 보아하니 왕실 공부를 하려고? 왕성 마법사가 될 건가?”
“치료 마법이 특기니까 그 분야를 살리려면 왕성에 들어가는 편이 좋지. 행정 마법사보다 자리는 안 나지만 왕성에는 치료 마법만 사용하는 마법사도 있으니까.”
“그래? 의외네?”
“의외?”
제린이 눈을 반짝였다.
“왜 그렇게 생각해?”
“난 네가 왕성이 아니라 치료소를 열고 싶어 할 거라고 생각했어.”
“치료소…?”
스턴 왕국에도 물론 치료소는 많았다. 마법사가 개업한 치료소의 숫자가 적을 뿐이지.
만약 그녀가 수도나 그녀의 영지에 직접 치료소를 개업한다면 그녀가 바텔바흐의 전쟁에 개입하게 될 일도 없을 것이며 평화로운 일생을 보낼 수 있을 것이다.
게다가, 그는 제린이 전쟁터에서 흘리듯 한 말을 기억하고 있었다.
– 왕성에서는 치료 마법을 원하는 만큼 쓸 일이 없어.
그렇게 썩힐 거라면 한 사람당 돈을 좀 적게 벌더라도 치료소를 개업하는 편이 그녀에게 더 좋겠지.
레이먼이 자연스레 말을 이었다.
“네가 치료소를 열면 치료 마법을 접하기 어려웠던 사람들도 치료 마법을 접할 기회를 얻을 수 있을 테고, 넌 원하는 만큼 치료 마법을 쓸 수 있을 테니까. 넌 치료 마법을 경험을 더 쌓고 싶은 거잖아? 왕성에는 그럴 기회가 많지 않고.”
치료 마법은 사용하면 사용할수록 그 실력이 늘 수밖에 없다.
더 많은 상처를 보고, 더 많은 사용법을 익힐 수 있으니까.
회귀 전 제린이 치료 마법에 완벽히 숙달하는 시점은 1왕자가 죽은 이후다.
1왕자의 죽음 이후 늘어난 전쟁으로 인해 치료 마법사의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만약 그 시기를 앞당길 수 있다면 어떻게 될까? 성장한 그녀의 치료 마법은 그녀를 짧은 기간이지만 성녀라고 불리게까지 했으니 어쩌면 죽을 운명인 사람을 살릴 수 있을지도 모르지.
‘이번 생에 1왕자가 죽는 게 나을지 아닐지는 모르지만, 보험은 여럿 두는 편이 좋지.’
“흠.”
레이먼의 조언에 제린은 진심으로 치료소 개업에 대해 고민하는 듯했다.
“뭐, 네가 원하는 대로 해야지. 하지만 치료소를 개업하게 되면 그때 공짜로 한 번은 치료해줘.”
“내가 왜?”
“내가 아니었으면 치료소를 개업할 생각을 안 했을 테니까?”
“아닐 수도 있잖아.”
“그래, 그럴 수도 있지.”
레이먼은 ‘응원할게.’라는 말을 남기고는 생활관의 휴게실을 떠났다.
소파에 남은 제린이 레이먼의 뒷모습을 보곤 중얼거렸다.
“진짜 이상한 애야.”
***
레이먼이 휴게실을 지나 향한 곳은 교육관이었다.
수업이 없는 5학년과 달리 4학년은 한창 수업이 진행되고 있을 시간대였다.
아드리안의 시간표는 대충 꿰고 있던 레이먼은 곧장 교육관의 동쪽 끝에 자리한 강의실로 향했다.
동쪽 끝 강의실은 복도용 창문 외에 햇빛이 들어오는 창문이 없는 대신 서늘한 편이라 마법 물약용 재료를 보관하기에 용이했기에 마법 물약 강의는 주로 동쪽 끝에서 이뤄졌다. 복도 창문으로 고개를 빼꼼 내민 레이먼은 아드리안을 찾았다.
아드리안은 맨 앞줄에 앉아 집중한 얼굴로 수업을 듣고 있었다.
그 모습은 레이먼이 아는 동생의 모습 그대로였다.
성실히 수업을 듣는 포레스튼의 훌륭한 모범생.
그런데.
‘이런 애가… 날 배신한다고?’
아무리 생각해도 믿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배신이라 하기에도 어폐가 있었다.
분명 아드리안은 나와 가문이 살 수 있는 길은 서머셋을 돕는 것뿐이라고 생각하는 듯했고, 그 과정에서 서머셋과 침묵의 계약 역시 맺었으니까. 세뇌의 가능성이 짙긴 했지만 아직 확신할 수는 없는 노릇이고….
‘일단 그 침묵의 계약이라는 걸 한 시점이 언젠지를 알아야 해.’
당장 세뇌보다 중요한 것은 계약 쪽이었다.
분명 그 계약이 아드리안의 결정에 뭔가 영향을 끼쳤을 것이다.
그전까지 아드리안은 전혀 그런 낌새를 보이지 않았다.
‘아니면 나를 잘 속인 건가.’
어디서부터 의심해야 하는지 도통 알 수가 없으니.
***
종이 울리고 강의실에서 학생들이 하나둘씩 나오기 시작했다. 강의실 앞에서 동생을 기다리는 붉은 머리 유명 인사를 보곤 몇몇 후배들이 우렁차게 인사했다.
“아, 안녕하십니까! 레이먼 반 스플린 선배님!”
“어…… 안녕.”
뭐라고 답해줘야 하지? 단순히 동생을 보러 온 레이먼이 살짝 굳은 채 손을 흔들었다.
‘쿨, 쿨, 쿨하시다!’
그런 레이먼의 인사에 후배들의 얼굴이 붉어졌다. 이 정도 관심은 스플린 가의 레이먼 선배님께는 당연한 거구나!
어느새 옹기종기 모여든 후배들이 레이먼의 주위를 감쌌다.
“조, 조, 존경하고 있습니다!”
“저, 저도요!”
“어디로 가실지는 결정하셨나요!?”
쏠리는 시선에 당황하는 사이, 레이먼의 이름을 들은 아드리안이 쏜살같이 문 앞으로 달려와 제 형에게 인사했다.
“형님!”
“아드리안.”
“어쩐 일이세요? 졸업반 일정 때문에 많이 바쁘신 줄 알았는데.”
레이먼의 등장에 잔뜩 흥분한 아드리안의 눈동자는 맑은 푸른색이었다.
아드리안이 등장하자마자 레이먼을 둘러싸고 있던 학생들이 흩어졌고, 레이먼은 그제야 숨통이 좀 트이는 듯했다.
“형님?”
“아. 너한테 물어볼 게 있어서 왔어.”
“그러시면 휴게실로 갈까요?”
“너, 다음 강의는?”
“형님이 오셨으니 불참하면 됩니다.”
“……?”
모범생이라고 생각한 건 취소해야겠다고 생각한 레이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