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ill Make You a King as a Possessor RAW novel - Chapter (18)
빙의자가 왕으로 만들어 드립니다-18화(18/275)
[ 대리 희생 : 왕 후보와 자신의 위치를 바꿀 수 있습니다. 단, 왕 후보가 눈앞에 있을 시 사용 가능합니다. ]‘대리 희생? 사용해! 사용할 거야!’
[ 대리 희생이 발동합니다. ]레이먼은 1초의 망설임도 없이 대리 희생을 사용했다. 영창도 없이 발동한 1서클의 기초 번개 마법 정도야 충분히 버텨낼 만하다고 생각했다. 그 순간 눈앞이 컴컴해졌다.
‘어?’
되찾은 시야 속에서 조금 전 그가 있던 위치에서 자신을 바라보는 유타가 보였다. 정말로 유타와 자신의 위치가 뒤바뀐 것이다. 번갯불은 이제 레이먼의 몸을 덮쳤다.
‘악.’
속으로 짧은 비명을 내지른 레이먼이 끄으으응- 앓는 소리를 토해내고 가슴을 쥐어짰다.
와. 이렇게 아플 거였다면 차라리 망설일 걸 그랬다. 언제부터 내가 남을 위해 희생하는 사람이었다고.
‘하지만 생각해보면 남을 위한 것도 아니지. 유타가 죽으면 내가 죽을 수도 있었잖아.’
의식을 잃어가는 레이먼에게로 유타와 다른 어른들이 뛰어왔고 그 중엔 니콜도 있었다.
“…련님!”
소리치지 마라. 머리 울린다.
***
‘나 진짜 약하네. 이게 몇 번째 천장이냐….’
그렇게 다시 눈을 뜬 레이먼이 누워있던 곳은 생활관 방 안이었다. 다행히 정신을 잃은 이후, 유타와 자신은 무사히 구출된 모양이었다. 납치범들도 잡혔단다.
레이먼이 눈을 뜨자마자 니콜이 방방 뛰며,
– 그놈들을 잡았어요! 왕족과 공작가의 자제들을 건드렸으니 당연히 죽음으로 갚아야죠!!
라고 했으니 말이다. 아마 그놈들은 왕족을 납치한 대가로 사형은 몰라도 그에 준하는 형벌을 받을 것이다.
“으으.”
레이먼은 무사히 눈을 뜨긴 했지만 전기 마법에 된통 당한 탓에 걸어 다니기는커녕 손끝 하나 움직일 수 없는 신세였다. 억지로 몸을 움직이려 할 때마다 손끝과 발끝이 저릿했다. 보건 선생님 말씀으론 앞으로 일주일은 이럴 거란다.
몸 안에 있는 번개를 빼내기 위해 미역줄기약을 매일 들이마시고 있는데 효과가 있는지는 모르겠다.
똑똑.
– 나야.
“들어와.”
그래도 영 수확이 없는 건 아니었다. 베개를 두 개나 받치고 비스듬히 누워있는 레이먼이 유타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점심시간마다 유타는 자신의 기사 렌스, 그리고 오닉스와 함께 레이먼의 방에 들렸다. 유타가 손에 든 런치 세트 쟁반을 앞으로 내밀며 말했다.
“오늘 디저트는 내가 좋아하는 고구마 타르트야.”
유타의 말에 레이먼이 토하는 시늉을 하며 대꾸했다.
“우웩. 난 구황작물이 싫어.”
“그래도 먹어. 어째 누워만 있는데 애가 더 마르는 것 같냐.”
오닉스가 한마디 거들며 유타의 옆자리에 앉았다. 오닉스는 왜 매번 함께 오는지 모르겠다. 쟤는 날 좋아하지도 않으면서.
수업도 내가 빠지니 훨씬 쾌적하다고 했는데 모든 수업이 끝날 때마다 빠진 진도를 알려주기 위해 방에 들리는 것도 수상했다.
설마 쟤도 유타랑 친해지고 싶은 건가? 아니면 나한테 원하는 게 있나?
“그건 그렇고, 그게 정말이야?”
다람쥐처럼 부푼 양 볼로 레이먼이 유타를 보며 다시 한번 물었다.
“왕족이 널 죽이려고 그 사람들을 고용했다는 거 말이야? 밝혀진 거 맞아?”
“조사관 말로는 그렇지. 납치범들이 거짓말을 하는 걸 수도 있지만 굳이 거짓말로 왕족을 범인으로 삼겠어?”
“그럼 왕족 중에 누구? 그 할배가 뿌린 씨앗이 한둘이야?”
오닉스의 신랄한 비판에 유타가 옅게 웃으며 답했다.
“한둘은 아니긴 한데 남자라고 했어. 왕족 중에 스턴 왕국에 남아 있는 왕자는 나를 제외하곤 둘뿐이거든.”
“1왕자는 유학, 2왕자는 사랑의 도피를 떠났으니 남은 건 3왕자랑 4왕자네. 하지만 그들이 너를 건드릴 이유가 없잖아. 네가 무슨 위협이 된다고.”
아니야?
오닉스의 장점은 지나치게 솔직한 점이고, 단점도 지나치게 솔직한 점이었다. 이번엔 그 성격이 장점으로 작용한 듯했다. 유타는 오닉스의 지적이 마음에 드는 듯 고갤 끄덕였다. 반면, 렌스는 인상을 찌푸렸다.
“맞는 말이야. 그놈들 말을 다 믿을 필요도 없어. 암살에 실패한 뒤 잡혔을 때, 자주 거짓말로 내뱉는 게 같은 왕족이 시켰다- 라는 말이거든.”
유타가 어깰 으쓱했다. 레이먼은 새싹 샐러드를 입 안 한가득 넣어 씹으며 물었다.
“그래서?”
“그래서라니?”
“너는 왕이 될 생각은 아예 없는 거야?”
휘유. 오닉스가 흥미로운 듯 작게 휘파람을 불었다. 휘파람이 레이먼의 방을 가득 채웠다는 건, 그 소리가 이 미묘한 침묵 속 유일한 소리였다는 의미다.
“음.”
유타는 짧게 침음하더니 이내 입술을 옅게 뗐다. 입꼬리에는 장난기가 가득했다. 그러나 눈을 그렇지 않았다. 건조한 냉기가 양념처럼 쳐진 눈매로 그가 답했다.
“그것참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이네.”
레이먼이 어깰 으쓱했다.
“그냥 물어만 본 거지. 왕족이잖아. 누구라도 그럴 욕심이 생기지 않겠어?”
“그런 말을 함부로 했다가 역사 속 왕자들이 모두 목이 날아간 거야, 레이먼.”
“흠, 그것도 일리 있는 말이네. 그냥 물어본 거야. 아파서 정신이 나갔다고 생각해.”
주제를 겉돌던 대화는 점심시간 종료와 동시에 마무리되었다. 이런 무거운 대화엔 끼기 싫다던 오닉스는 결국 종이 치자마자 곧장 방을 나섰다. 유타는 자리에 앉아 무언가를 골똘히 생각하는 듯했다.
레이먼은 고민했다. 유타의 비밀에 대해 물어볼까, 말까. 물어볼까, 말까. 살아온 바에 따르면 이럴 땐 입꾹닫이 답이었다. 하지만 사람이라는 게 정답대로 살진 않지 않은가.
물어보고 싶다. 사실 이미 답은 나와 있었지만. 그래도 본인한테 확인하는 게 제일 속도 편하고 확실하지 않은가.
게다가 내가 그 혹은 그녀의 비밀을 알고 있다면 나를 좀 더 같은 편으로 삼아주지 않을까?
5왕자면 왕위까지 오르게 만드는 건 힘들겠지만, 제대로 눈에 드는 편이 이득이니까.
‘하지만 세상만사 그렇게 좋게 흘러가지도 않지.’
보통 그런 비밀을 알고 있는 인물은 미리 숙청당하기 마련이다. 결국 레이먼은 입꾹닫을 택했다. 굳게 다문 입술을 지켜보던 유타는 다음 수업을 들어갈 생각이 없는지 느릿하게 입을 뗐다.
“혹시, 그때 어떻게 한 거야? 나랑 네 위치가 바뀌었잖아. 1학년 교과 과정에는 그런 마법이 없었는데. 예습이라도 했어?”
“내가 워낙 성실한 타입이라.”
“그럼 두 번째 질문. 그걸 왜 쓴 거야?”
“뭐? 왜 쓰냐니?”
“왜 내가 다치게 내버려 두지 않았느냐는 거야. 너는 내가 왕족이라서 대신 희생할 애는 아니잖아.”
‘딱히 대신 희생한 건 아닌데.’
자신이 전기 마법에 당하는 편이 유타가 죽고 시스템에게 살해당하는 엔딩보다 살 확률이 높아 보였을 뿐이다. 하지만 이렇게 말할 순 없었다.
레이먼은 이 상황에 어떤 말을 해야 할지도 잘 알고 있었다.
“친구가 눈앞에서 죽을 위기에 처했는데 가만히 있어, 그럼? 구할 방법이 있는데?”
“……”
“그리고 유타, 너도 그랬을 거잖아.”
유타처럼 외로운 아이에겐 ‘친구’라는 존재가 생소할 거다. 렌스라는 기사가 친구는 아닐 테니까. 아카데미에 처음 입학한 아이에게 친구는 때론 세상의 전부가 되기도 하니까.
세상은 돈이 전부지만 정보상으로서 돈을 벌기 위해선 우정과 신뢰가 필요했다.
그러니 지금은 유타의 친구가 될 때였다. 누구보다 믿을 수 있는 친구. 필요할 땐 따끔한 충고를 할 수 있으면서도 서로가 목숨보다 중요한 오른팔.
유타는 묘한 눈빛이 되었다. 얼마 뒤, 그가 의자를 요란스럽게 뒤로 끌며 일어나며 말했다.
“여하튼 내가 의심하는 사람은 3왕자야. 함께 아카데미에 다니는 서머셋이라면 그런 식으로 아카데미에서 날 불러내진 않았을 테니까.”
“그럼 거기 혼자 있었던 게 우연이 아니라는 소리야?”
“맞아. 어떤 수상한 사람을 쫓아갔더니 서동이었어.”
“그래.”
“너도 조심해.”
“나도?”
“넌 이제 공식적으로 나 대신 죽으려고 한 헌신적인 동급생이니까.”
그건 또 그렇네. 유타가 떠나고 레이먼은 조용한 비명을 질렀다. 양 주먹을 꽉 쥐고 입술을 앙다물고 베개에 얼굴을 파묻으면서 말이다.
***
3일이 지나자 레이먼은 침대에서 일어나 기프트 클래스 휴게실을 돌아다닐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
오늘은 휴게실에서 책이나 읽을까. 방 안에만 있으니 좀이 쑤셔 미칠 것 같았다.
하암-. 부스스한 머리로 문을 연 레이먼의 눈앞에 익숙한 아저씨가 보였다. 정확히 말하면 아저씨는 아니었고 아저씨처럼 보이는 노안의 선배였다. 마법 격투 클럽에서 대결했던 그 사람. 근데 이 사람이 왜 여기에 있지?
클래스에선 얼굴을 본 적이 없으니 기프트 클래스생도 아닐 텐데.
“그렇게 못 볼 걸 봤다는 얼굴로 서 있지 말라고, 레이먼. 우리 모두 널 걱정해서 온 거니까 말이야.”
“…우리 모두요?”
“우리!”
“모두!”
“왔어!”
“안녕….”
문 앞이 시끄럽다 싶더니 마법격투클럽 학생들이 와서 그런 거였구나.
그런데, 대체 이게 몇 명인 거야? 하나, 둘, 셋…
레이먼은 학생들의 수를 세기 시작했다. 그리고 곧장 포기했다. 레이먼이 물었다.
“몇 명이 온 거예요?”
그들 모두를 휴게실로 안내하며 레이먼이 가볍게 질문했다.
“한두 명은 아닌 것 같아서요.”
“격투 클럽 전부다! 27명이지! 3의 배수는 정말 아름다운 숫자라 우린 언제나 3의 배수를 맞춰 클럽의 수를 꾸린단다.”
“그렇군…요.”
레이먼은 더 이상 질문하지 않았다.
***
“다들 알아서 앉아.”
레이먼은 27명 모두에게 차를 내줄 기력은 없었고 간식을 내줄 생각은 더더욱 없었다. 자신은 환자였다. 아직 저릿한 다리를 간신히 옮겨 소파에 앉은 레이먼이 예의 바르게 말했다.
“차는 안쪽 찬장에 있어요.”
“우리가 알아서 꺼내 마실게. 몸이 많이 안 좋아 보이는데. 괜찮나?”
“휴게실까지 딱 움직일 수 있을 정도예요. 걱정하지 마세요, 선배님.”
레이먼이 가식적으로 웃어 보였다. 격투 클럽의 회장은 안심했다는 듯 고갤 끄덕이더니 찬장 안에서 버터 쿠키 한 박스를 꺼내왔다.
저건…… 오닉스가 아끼는 건데. 뭐, 먹어도 상관없겠지.
와작, 와작. 버터 쿠키는 순식간에 동이 났다. 오닉스한테는 비밀로 해야겠다.
“그건 그렇고 레이먼, 너 정말로 학생회에 들어갔더라?”
“예?”
학생회? 레이먼이 눈을 끔뻑였다.
그러고 보니 납치당하기 전, 뱉은 말이 있긴 했다. 하지만 그건 다른 클럽에 들어가기 싫어서 대충 흘린 말이었는데….
“그렇군. 너는 보지 못했겠구나. 1학년과 2학년 중 학생회의 버틀러가 된 아이들 명단이 나왔어.”
“그 종이, 지금 가지고 계세요?”
“물론이지. 조금 전에 나온 거라 네 시종도 보지 못했을 수도 있겠구나.”
남자는 주머니에서 종이 한 장을 꺼내 내밀었다. 구겨진 종이를 펴자 그 안에 세 명의 이름이 적힌 명단이 나왔다.
레이먼이 학생회에 처음 관심을 가진 이유는 4왕자 서머셋과 유타 때문이었다. 유타가 들어갈만한 클럽은 학생회 정도였고 두 명 모두와 친해질 수 있다면 이득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납치 사건의 배후도 모르는 상황에서, 4왕자가 있는 학생회로 가는 건 위험 부담이 컸다. 어쩌면 서머셋은 이미 레이먼을 적으로 생각하고 있을 수도 있었다.
레이먼이 뻔한 욕지거리를 내뱉으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으악!!”
그리고 고통 섞인 단말마와 함께 다시 소파에 주저앉았다. 다리가 번개에 쏘인 듯 저릿해서 힘을 줄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주저앉은 레이먼이 종이를 꽉 쥔 채 미친 사람처럼 웃음을 흘렸다.
“흐흐흐…흐흐…”
“……레이먼.”
그 광경을 지켜보던 선배는 생각했다.
‘기뻐서 어찌할 바를 모르는 모양이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