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ill Make You a King as a Possessor RAW novel - Chapter (180)
빙의자가 왕으로 만들어 드립니다-180화(180/275)
“형님. 어디로 가시는 겁니까?”
“휴게실은 보는 눈이 너무 많아. 어차피 수업 빠진다며?”
“예. 다 아는 내용이라 듣지 않아도 괜찮을 겁니다.”
또 저 표정.
레이먼은 헤실헤실 멍청하게 웃는 제 동생의 얼굴을 한 번 바라보곤 고개를 홱 돌렸다.
돌아온 현실을 마주할 때면 자신이 겪은 일이 전부 꿈처럼 느껴졌다.
‘사실 메이커 포인트니 뭐니 전부 꿈이고, 이쪽이 진짜 아니야? 이런 동생이 어떻게 그런 결정을 내리는 거야?’
레이먼은 생활관 자신의 방으로 아드리안을 데려왔다.
아드리안은 숨을 헐떡이지도 않았는데 오느라 지친 건 도리어 레이먼 쪽이었다.
괜히 잰걸음으로 왔나 싶었다.
아드리안은 제 형님이 숨을 다 고를 때까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문 앞에 선 채 기다렸다. 앉으라는 말을 기다리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는데, 레이먼은 퍼뜩 그걸 눈치채고 손가락으로 의자를 가리켰다.
“앉아.”
“감사합니다.”
5학년이 머무는 생활관의 1인실은 다른 학년보다 크고 깔끔했다.
손님을 두세 명 데려와도 꽉 차지 않는 크기의 방은 귀족 자제가 쓰기엔 아쉬운 부분들도 있었으나 기숙사라고 생각하면 이보다 더 좋을 수 없었다.
“무슨 일이 있으십니까? 표정이 좋지 않으십니다. 혹 아버님이 또 무슨 말씀을-.”
“아버님은 아무 상관없어.”
드륵-.
레이먼이 의자를 끌어 아드리안과 마주 앉았다.
눈을 말똥말똥 뜬 동생이 있었다.
동생.
이곳에 와서 처음 생긴 나의 가족.
그 가족이 나를 배신할 거라는 상상은 하고 싶지 않았다.
사실 메이커 포인트가 사용되기 전의 미래 역시 막을 수 있었을 것이다.
일기장의 말을 무시하지 않았더라면 말이다.
‘나도 많이 바뀐 건가.’
유태하 시절의 나였다면…일기장으로부터 ‘동생을 죽여라’라는 말을 봤다면 곧장 죽였겠지. 하지만 그럴 수 없었다.
“…형님?”
아드리안의 눈동자가 보였다. 저 눈동자마저 거짓일까?
레이먼은 아드리안을 믿고 싶었다.
“형님? 오늘따라 정말 이상하십니다. 정말 몸이 안 좋은 건 아니지요?”
“아드리안, 최근에 나한테 비밀로 하고 있는 일이 있지 않나?”
“예? 제가 형님께요?”
아드리안이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레이먼은 그냥 넘어가지 않았다.
그래, 나에게 비밀로 하고 있는 일 말이다- 라는 나긋한 목소리와 함께 레이먼의 푸른 눈동자가 자신의 동생을 응시했다.
“제가 형님께 무엇을 비밀로 하겠습니까. 특별히 비밀로 한 일은 없습니다.”
“네가 말하지 않으면 니콜에게 물을 텐데도?”
“니콜도 모를 겁니다.”
“니콜이 뭘 몰라?”
“제가 비밀로 하고 있는 게 없으니 모른다는 뜻입니다. 니콜에게 여쭤보셔도 저는 괜찮습니다.”
“…….”
“하아.”
겨울 방학 직전으로 돌아온 건, 분명 이때부터 막을 수 있는 무언가가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게 아니었나? 아드리안이 아니라 챈들러 아이작의 저주 때문에 지금 이 시점으로 돌아온 건가?
“음.”
아드리안이 왼쪽 볼을 손가락으로 긁으며 말했다.
“비밀은 아니지만, 형님께 말하지 않은 게 있긴 합니다.”
나한테 말하지 않은 것?
두근대는 심장을 애써 진정시킨 뒤, 레이먼이 담담하게 물었다. 혹시나 흐트러진 모습을 보이면 아드리안이 나오려던 말을 집어삼킬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게 뭔데.”
“두 가지입니다만. 아마 형님이 궁금하신 게 그중 하나인 것 같습니다.”
“첫 번째는?”
“친구가 많이 없습니다.”
“친구…?”
“예.”
“네가 친구가 없어?”
“예.”
“왜?”
“글쎄요. 형님께 도움이 되는 이를 선별해 그중에 인성이 바르고 집안이 괜찮은 아이로 고르다 보니 그런 것 같습니다.”
“왜?”
아드리안이 친구가 없다고?
레이먼은 일기장에 있던 아드리안의 묘사에 대해 복기했다.
여러 레이먼이 겪은 아드리안의 세부적인 묘사는 조금씩 다르긴 했다.
하지만 아드리안이 레이먼과 점점 멀어지긴 했어도 교우 관계에서 별다른 이상이 있다는 이야긴 읽은 적이 없었다.
아니… 정말 없었던 건가? 오히려 다른 레이먼이 그런 쪽으로 물어보지 않은 게 아닌가?
일기장은 순전히 레이먼 반 스플린의 시점에서 적힌 기록.
아드리안에 대해 온전히 진실만 담겨 있는 건 아닐 터였다.
한편, 당황한 레이먼과 달리 아드리안은 흔들림 없었다.
“괜찮은 아이들이니 수는 적어도 괜찮을 것 같긴 합니다. …형님?”
“아드리안, 그 친구… 아니, 친구들이긴 한 거지?”
“예. 친구‘들’입니다.”
“그래, 그 애들 이름 한번 읊어봐.”
“모르실 것 같긴 합니다만, 세블턴 가의 제러트와 신흥 귀족 페테르의 차남 셔터입니다.”
세블턴과 페테르.
두 가문의 자제들이라면 알고 있었다.
두 가문이 유명하기 때문에 알고 있는 건 아니다.
레이먼이 두 가문의 아이들을 알고 있는 이유는 그들이 1왕자가 죽은 그 전쟁 바로 직후에 일어난 전쟁에서.
‘전사하니까.’
***
전쟁 이후 심약해진 상태에서 자신의 유일한 친구들까지 사망한다면 아드리안이 의지할 곳은… 거의 없었을 것이다.
‘그게 영향을 미친 걸지도 몰라.’
일기장 속 레이먼들은 이 친구들의 이름을 몰랐을 거다. 아마 알았다면 일기장에 분명 적혀 있었겠지.
레이먼은 두 사람의 이름을 다시 한번 머릿속에 쑤셔 넣은 뒤, 말을 이었다.
“네 친구들이 누군지 기억해둘게. 그럼 두 번째. 내가 진짜 궁금해할 것 같다는 그 이야기는 뭐야?”
“별건 아닙니다. 다만, 형님께서 해주신 조언을 어긴 거여서…말씀드리기 좀 어려웠습니다.”
내가 한 말?
“설마…서머셋 선배가 너한테 접근했어?”
“예. 만난 적은 별로 없지만 주기적으로 편지를 보내고 계십니다. 제 방에 가면 모아둔 편지가 있을 겁니다.”
“내용은?”
“읽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이라 정확히는 모르지만 대부분 졸업 후에 관한 이야기였습니다. 제가 피데스 클래스에 있다 보니 졸업 후에는 왕실 마법사가 될 거라 생각하신 모양입니다. 실제로도 그럴 생각이긴 하지만… 그게 서머셋 전하를 모신다는 뜻은 아니니까요. 말씀드리지 못해 죄송합니다. 비밀은 아니었지만 형님께 말할 만한 내용도 아닌 것 같아 입을 다물고 있었습니다.”
아드리안에게 주기적으로 편지를 보낸 건…알지 못했다.
기껏해야 몇 번 마주친 게 다라고 생각했는데.
레이먼은 관자놀이 쪽이 욱신거리는 걸 느꼈다. 눈치 특성으로 확인해보아도 아드리안이 자신에게 거짓을 말하고 있는 것 같지는 않았다.
즉, 이 시점의 아드리안은 정말 순수하게 자신에게 해를 끼칠까 싶어 말하지 않은 것이다.
“아드리안, 앞으로는 편지가 오면 나에게 전달해라. 그래도 상관없지?”
“네, 어차피 잘 읽지도 않았으니까요.”
“답장한 적은?”
“두세 번 있습니다. 대부분 정중한 거절의 뜻이었고요.”
“잘했어.”
레이먼의 ‘잘했어’라는 한마디에 아드리안의 어깨가 움찔 떨렸다.
‘형님께서 칭찬을-.’
아드리안에게 칭찬해주는 사람은 많았다. 그는 어릴 적부터 스플린 가의 기대주였고 아버지의 자랑이었으며 어머니의 소중한 아들이었기 때문이다.
그들의 칭찬은 분명 좋았다. 그러나 아드리안을 씁쓸하게 만들기도 했다.
그들의 입에서 나온 칭찬은 날 적부터 자신이 갖고 있던 ‘재능’에 관한 것이 대부분이었기 때문이다.
‘아드리안 도련님, 훌륭하십니다. 역시 마법사가 될 재목은 다르시군요.’
‘레이먼 도련님과는 다르게-.’
‘장남이 차남보다 못한 경우가 종종 있긴 하지요.’
아드리안은 형님과 자신을 비교할 때마다 퍽 슬퍼지곤 했는데, 그 이유는 자신보다 형이 훨씬 더 칭찬받을 가치가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는 재능이 없음에도 노력을 멈추지 않았다.
어린 시절 아드리안은 그게 얼마나 괴로운지 몰랐다. 하지만 만약 자신이 7일 중 7일을 공부했는데도 마법 하나 쓸 줄 모른다면 좋아하는 음식을 전부 토해낼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런 레이먼에게 인정받고 싶었다.
‘진짜 노력하는 사람한테 칭찬받으면 기분이 좋을 거야! 하지만… 그런 날은 오지 않겠지. 형님은 날 미워하니까.’
그런 생각을 갖고 살았는데.
아드리안은 묘한 감정을 느꼈다.
형님이 포레스튼에 입학한 뒤로는 그래도 형님과 많은 대화를 나눴다고 생각했는데. 오늘은 왜 이상한 감동이 이는 건지 그조차 설명하기 어려웠다.
아드리안이 굳은 얼굴로 레이먼을 응시하는 사이, 레이먼은 레이먼대로 불길했다.
‘뭐야, 칭찬해줬잖아. 애 표정이 왜 이래? 이게 아닌가?’
그러나 레이먼은 자신이 했던 말을 철회하거나 되돌릴 수 없었고, 아드리안이 이해해주길 바라야 했다.
‘유타에 대한 이야기는 추후에 해도 되겠지.’
어차피 아직 왕위 다툼이 수면 위로 떠오르진 않았다. 서머셋이 물 밑에서 어떤 작업을 치고 있는지는 몰랐지만 레이먼이 이를 직접 막을 수도 없는 상황.
‘나중에 매너스 선배한테 편지라도 하면 되겠지.’
함께 과거로 돌아온 것은 아니었으나 지금쯤이라면 매너스도 뭔가 이상한 걸 눈치채고 있을 테니까.
“아드리안.”
“네, 형님.”
아드리안의 굳은 얼굴을 뒤로하고 레이먼은 할 말을 하기로 했다.
“너, 방학 때 할 일 있어?”
“이번 겨울 방학을 말씀하시는 거라면 딱히 없습니다.”
“그럼 나랑 같이 어디 좀 가자.”
“네. 알겠습니다.”
“어딘지는 안 물어보니?”
목적지를 말하지도 않았는데. 레이먼이 고개를 기울이자 아드리안이 희미하게 입꼬리를 올려 웃었다.
“형님이 옳으시니까요.”
“그래…. 이제 그만 가봐. 다음 수업까지 빠지면 안 되니까.”
“네, 알겠습니다.”
레이먼의 말에 군말 없이 일어난 아드리안은 짧은 인사를 남긴 뒤, 방을 나섰다.
떠나는 뒷모습과 닫힌 문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레이먼이 작게 중얼거렸다.
‘도저히 믿을 수가 없어.’
***
이전과 마찬가지로 마차를 타고 도착한 유타, 오닉스, 레이먼, 아드리안 일행은 아이작 가의 본성과 떨어진 곳에서 내렸다. 그리고 이번에는 유리페와 마리아 스웨인을 마주치지 않도록 좀 더 일찍 출발해 아이작 가의 영지에 도착했다.
“피곤해….”
오닉스가 곧 토할 것 같은 표정으로 마차 문을 벌컥 열고 내렸다. 그 뒤로 유타가 따라 내렸다. 유타는 가장 먼저 마차가 선 곳을 둘러보았다.
아이작 가의 본성은 높은 고도의 외진 곳에 있었기에 숲길 쪽에 마차를 대지 않으면 걸어 올라가기 어려웠다. 그 사실을 알고 있음에도, 레이먼이 내린 곳은 본성보다는 마을에 가까운 위치였다.
“레이먼, 왜 이쪽에 내린 거야?”
“아이작 가 영지 마을에서 볼일이 좀 있어.”
“무슨 볼일?”
나중에 안게트가 부탁하는 일이지만 미리 처리하고 본성에 가는 편이 좀 더 마음 편히 챈들러 선배를 꼬실 수 있겠지.
“동상을 부술 거야.”
“뭐……?”
“중앙에 있는 커다란 동상 하나. 부술 거라고.”
“그걸 네 마음대로-.”
“왜 안 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