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ill Make You a King as a Possessor RAW novel - Chapter (183)
빙의자가 왕으로 만들어 드립니다-183화(183/275)
“해결, 해주실 수 있다고요?”
안게트의 눈 크기가 2배가 되었다. 레이먼은 그 눈을 보고 이미 다 넘어왔다고 판단했다.
레이먼이 눈꺼풀을 접어 웃었다.
“예. 쉽습니다.”
“쉽다니….”
레이먼이 능청스레 뒷말을 이었다.
“유타 전하께서 빛의 대정령과 계약하셨잖아요? 빛의 대정령의 힘은 세상에 존재하는 온갖 저주를 몰아내는 것입니다. 그러니 챈들러 선배가 그런 흉악한 저주에 걸리셨다면 유타 전하가 계신 이때 치료하는 편이 나을까 싶어 먼저 슬쩍 말을 꺼내 봤는데.”
레이먼도 테이블 위 차를 한 번 들이켰다.
그는 찻잔 속 수면 위에 비친 제 모습을 바라보며 말했다.
“아무 일도 없다 하시니 다행입니다.”
“예? 예…….”
“그렇다면 제 무례를 용서해주시는 건가요?”
귀족 가문의 자제에 대해 함부로 질문한 것은 무례한 일임은 틀림없었다.
그러나 레이먼은 백작보다 신분이 높은 공작가의 장남이었고, 그가 질문을 한 이유 역시 너무나 챈들러를 위한 것이었기 때문에 안게트가 추궁할 거리가 없었다.
안게트의 동공이 심하게 흔들렸다가 다시 안정을 되찾았다.
그는 결국 말하지 않기로 결심한 듯했다.
“무례라니요. 제 동생을 걱정하는 마음에 질문 주신 거 아닙니까. 전혀 무례가 아닙니다. 모처럼 얘기를 나누게 되었는데, 챈들러가 어떤 학생이었는지 여쭤봐도 될까요? 제 동생은 아카데미 얘기를 많이 하지 않았거든요.”
“물론이죠.”
***
대화가 끝나고 안게트는 서둘러 레이먼의 방을 나섰다.
그는 곧장 챈들러의 방으로 향했다. 그의 어깨 위에 붙은 하급 정령을 눈치챌 겨를 따윈 없었다.
‘저주를 풀 수 있다…!’
얼마나 희망적인 소식인가. 저 아이가 20살이 넘도록 풀지 못한 저주였다. 가문에 비밀리에 축복 마법사나 신관을 불러 저주를 풀어보려 했으나 누구도 성공하지 못했는데.
‘인간의 힘이 아니라면 가능할 것이다.’
빛의 대정령. 세상의 모든 저주를 풀 수 있는 그 힘이라면, 동상의 저주 역시 풀어버린 그 힘이라면! 안게트의 눈빛에 희망이 차올랐다.
“챈들러는, 안에 있느냐.”
“작은 도련님이라면 유리페 왕녀님과 함께 서재에 계십니다.”
“아, 그래. 그래… 서재, 서재에 있다고. 그럼 챈들러에게 왕녀님과 담소가 끝나는 대로 내 방으로 오라고 전해라. 아주 긴히 할 이야기가 있다고.”
“예, 알겠습니다.”
유리페 왕녀는 왕족 중에서도 별종으로 유명했다.
저주나 고문 마법만을 유독 좋아하는 특이한 취향 때문인 듯했는데.
안게트는 방으로 가는 길에서 또 다른 희망을 찾아냈다.
‘그동안 챈들러도 포기한 줄 알았다.’
아카데미 졸업 후 영지로 돌아온 챈들러는 아무 일도 하지 않고 말 그대로 빈둥댔다. 더 이상 마법에도 인생에도 흥미가 없다는 듯이.
그러나 저주 마법을 좋아하는 왕녀와 함께 서재에서 이야기를 나눌 정도라면 그 아이 역시 아직 포기하지 않은 것이다.
.
.
.
“형님? 날 찾았다고?”
“그래. 얼른 와서 앉거라.”
“형님이 저를 찾으시다니 영 좋은 신호는 아닌 거 같은데.”
“챈들러.”
안게트는 챈들러가 자리에 앉자마자 곧장 본론을 들이밀었다.
“네 저주를 풀 수 있을 것 같다.”
“…….”
“빛의 대정령이 동상의 저주를 풀었던 것처럼 네 저주도 풀 수 있을 것 같은-.”
“누가 그래?”
“누, 누구-.”
“레이먼이 그랬어?”
안게트는 잠시 고민했다.
만약 여기서 레이먼이 그 말을 했다는 사실을 밝힌다면 그의 비밀이 이미 타인에게 들켰다는 걸 챈들러가 알아버릴 것이다.
하지만 그럼 어떤가.
챈들러도 이미 눈치채고 있겠지만 영지민들도 아이작 가의 챈들러가 죽을병이나 저주에 걸렸다는 걸 알고 있는데.
소문이 퍼지지 않은 것은 영지민들의 배려와 결속력 덕분이지 그의 저주가 온전한 비밀로 지켜지고 있단 걸 의미하지는 않았다.
하아.
길게 한숨을 쉰 안게트는 결국 도박수를 두기로 했다.
“레이먼이… 말해줬다.”
“소문을 들은 모양이네. 우리 영지민 중에도 대충 알고 있는 사람들은 있으니까.”
“챈들러, 너도 유리페 왕녀님과 얘기 나눈 걸 보면 해주를 포기하진 않은 것 아니냐. 그렇다면 기회가 왔을 때 잡아야지. 너와 친한 학생들이니 비밀도 지켜줄 거다.”
안게트의 목소리가 점차 격양되었다.
동생을 살릴 수 있다는 희망이 다시금 밤하늘에서 반짝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반면, 챈들러의 목소리는 놀랍도록 차분했다.
“형님.”
“그래.”
“희망을 쥐고 놓기 싫은 나도 마찬가지야.”
챈들러가 꽉 주먹을 쥐었다.
“하지만 형님, 쥐었다 다시 폈을 때 그게 사실 희망이 아니라 절망이라는 걸 알게 되면.”
“챈들러….”
“최악인 거 알아?”
아, 만약 정말 그 대정령이 모든 저주를 풀 수 있다면 좋을 텐데.
하지만 대정령이라고 해도 뭐가 다를까.
그 대정령마저 이 저주를 풀 수 없다면 어떤 심정으로 살아가야 할지 알 수 없는데.
차라리 희망을 쥐어 짜내고 어딘가에는 내 저주를 풀어줄 존재가 있을 거란 신기루 같은 믿음을 가지는 편이 더 낫지 않을까.
“고민은 해볼게.”
자리에서 일어난 챈들러는 웃었지만, 그 쓰린 웃음은 안게트가 자리에서 일어날 수 없게 만들었다.
그런 그가 문을 열고 복도로 나왔을 때, 기둥에 기대선 레이먼을 마주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
“레이먼?”
“챈들러 선배가 그렇게 생각을 많이 하고 사는 분이신 줄은 몰랐어요.”
“엿들었어? 버릇없는 후배~.”
“하급 정령이 대신 들어준 겁니다.”
“뻔뻔하긴.”
챈들러가 레이먼을 피하기도 전에 레이먼이 챈들러 바로 앞까지 다가왔다.
챈들러는 레이먼이 할 말을 대충은 알고 있었다.
아마 가족들이 자신들에게 늘 하던 말과 비슷한 말이리라.
네 저주는 네 잘못이 아니다- 라든가, 희망의 끈을 놓지 말자꾸나- 라든가, 혹은 저주 때문에 놈팡이 같이 사는 네 꼴을 더 이상 볼 수가 없구나- 라는 아주 못돼 먹은 말도 레이먼이라면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예상과 달리 레이먼의 푸른 눈은 챈들러의 탁한 눈빛을 정확히 응시했다.
“선배가 살지 않으면 제 주변이 죽습니다.”
“……?”
“그래서 선배를 살리고 싶은데 선배는 어떠세요.”
“푸, 푸하하하-! 레이먼, 지금 무슨 헛소리를 하는 거야?”
내가 죽으면 모두가 죽는다니.
이게 무슨 참신한 협박인가.
“왜 웃으십니까? 전 진지해요.”
“하하하, 그럼? 넌 내가 남들이 죽는다고 하면 책임감에 저주를 풀어달라고 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한 거야?”
레이먼이 단호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뇨. 선배는 남한테 지지리도 관심이 없죠. 심지어는 자기 목숨도요.”
“날 잘 아는구나? 그런데 왜 그런 말을 했어?”
자신과 비슷한 성격이니 알 수 있었다. 세상이 멸망하든, 남들이 죽든 말든 상관없을 거다. 심지어 자신의 목숨조차 함부로 버릴 수 있는 사내니까.
‘크리스 선배가 그렇게 싫어한 이유가 있어.’
두 사람은 너무 달라.
크리스 선배라면 어떻게 해서든 살려고 하겠지. 남은 사람과 자신의 약혼자를 위해서. 하지만 챈들러 선배는 다르다.
그리고 그런 사람을 회유하는 방법은 내가 가장 잘 알고 있지.
“선배가 모르는 걸 제가 알고 있으니까요.”
“뭐?”
“선배가 모르는 걸 제가 알고 있다고요. 그리고 선배가 죽으면 평생 그게 뭔지 모르겠죠.”
“…….”
그에게 목숨보다 중요한 것.
아마… 자신이 잘 아는 것으로 남들보다 우위에 서는 것.
지금까진 대충만 살아도 언제나 남들보다 뛰어났을 것이다.
그걸 챈들러 선배는 진즉 눈치채고 있었겠지.
그러니 삶에 미련이 없는 거다.
더 살아봤자 언제나 가장 우수한 이는 자신일 것이고, 만약 이대로 단명한다면 짧은 삶이 안타까웠던 불세출의 천재라는 타이틀 정도는 얻을 수 있을 테니까.
그런데도 고민은 되겠지.
살고자 하는 건 인간의 본능이니까.
‘하지만 선배는 그 감정도 이해하지 못할 거야.’
본능에는 논리가 없거든.
‘그럼 그 논리를 심어주면 돼. 그가 앞으로 더 살아가야 할 의미 말이다.’
“제가 왕실 마법사가 되면 선배의 연구보다 더 훌륭한 성과를 많이 낼 거예요. 그리고 이미 선배보다 많은 걸 알고 있죠. 그리고 선배는 제 주변 사람들이 죽는 이유도 모를 거예요. 이미 죽었으니까. 죽어서 참견할 방법도 없거든요.”
“이봐, 레이먼.”
“깃펜으로 선배를 불러낼 수는 있겠죠. 그래 봤자 종이 쪼가리에 몇 마디 적는 걸로 끝이겠네요. 유령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곤 기껏해야 책상을 공중에 띄우거나 문을 덜컹거리게 하고 종이에 몇 마디 끄적거리는 정도니까요. 포레스튼 1학년도 할 수 있는 간단한 일이죠.”
[ 레이먼, 일기장 속 애들이 화내겠다. ]‘뭔 상관입니까?’
레이먼은 아모르의 말을 깔끔히 무시하고 속사포처럼 다시 말을 내뱉기 시작했다.
챈들러는 이어지는 공격에 정신이 혼미할 지경이었다.
이게 나를 살리고자 하는 애의 태도인가? 심지어 저주가 뭔지 제대로 모르지 않아? 그냥 나를 살리겠다고 대뜸 방법이나 제시하는 게….
“하하하! 하하하, 하아. 하하…. 이런 설득은 처음이야, 레이먼.”
“별말씀을요. 그저 이 세상에서 가장 똑똑한 게 선배가 아니라는 걸 알려드리는 것뿐입니다.”
“1학년 때는 나를 존경한다고 했던 것 같은데.”
“그땐 그때의 선배였으니까요. 선배는 그때보다 멍청해진 것 같습니다.”
“와, 레이먼. 너만큼 나를 열받게 하는 애는 없을 거다.”
“네. 그래서요?”
“그래서…….”
챈들러가 침묵했다. 그에게도 고민할 시간이 필요했다.
본능에 드디어 논리가 생겼다. 사실 그에겐 변명이 필요했을지도 모른다.
여태껏 쉽게 포기해왔는데. 일부러 대충대충 살아왔는데.
지금에서야 이 저주가 풀린다면, 어떻게 살아가야 하지?
아, 이러면 안 되는데.
또 눈앞의 희망을 바로 쥐어버릴 것 같다.
“레이먼, 내 저주에 대해 어디까지 알고 있어?”
***
챈들러의 저주에 대해선 일기장에도 나와 있지 않았다.
즉, 저주를 푸는 건 다른 어떤 레이먼도 시도해보지 않았다는 소리다.
‘애초에 챈들러와 이 정도로 친분을 쌓은 건 많았던 레이먼들 중 나뿐인 것 같고….’
그렇다면 이게 과거를 바꾸는 첫 단추가 될 수 있겠지.
“레이먼?”
“네, 말씀하세요.”
챈들러의 방으로 온 그들은 원탁 테이블에 마주 앉았다.
“내가 저주에 언제 걸렸는지는 알아?”
레이먼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뇨.”
“얼마나 알고 있는데?”
“언젠가 죽는다…? 정도?”
“레이먼, 원래 인간은 죽어.”
“그렇긴 하죠.”
챈들러는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그렇게 심각하게 생각했던 저주도 레이먼과 함께 있으니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느껴졌다.
“내가 저주에 걸린 시점은 아무도 몰라. 심지어 당사자인 나조차도 모르지.”
본인도 모른다고?
레이먼이 고개를 기울였다.
“예? 그럼….”
“저주에 걸렸다는 걸 알게 된 건 우연이었어. 독감에 걸린 날 치료하기 위해 온 신관이 말해줬지. 내 몸을 침식하고 있는 이 저주는 내가 30살이 되기 전, 나를 완전히 집어삼킬 거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