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ill Make You a King as a Possessor RAW novel - Chapter (185)
빙의자가 왕으로 만들어 드립니다-185화(185/275)
“꺼흑, 흐흐흡.”
“그만 울지? 나보다 더 울어.”
“하지만, 드디어, 꺼흑.”
안게트는 생각보다 더 눈물이 많은 사내였다.
유타가 하루 동안 휴식을 취한 뒤 일어나 챈들러의 저주를 확인했을 때, 저주는 처음부터 없었던 것처럼 말끔히 사라져 있었다.
유타에게 거듭 감사의 말을 전하던 안게트는 아이처럼 엉엉 울기 시작했고, 다 큰 남자의 눈에서 흐르는 닭똥 같은 눈물을 챈들러는 정말 똥 치우듯 대충 닦아주었다.
챈들러의 저주에 대해서는 유타와 레이먼만 알고 있기로 했기 때문에 함께 따라온 오닉스나 아드리안, 심지어는 저주에 대해 오랜 시간 토론한 유리페까지 그 누구도 알지 못했다.
오열하는 안게트를 뒤로한 채, 레이먼은 약속한 사항을 확인하기 위해 챈들러에게 질문했다.
“선배는 왕성에 언제쯤 들어올 거예요?”
“너희들이 졸업할 때쯤 같이 들어갈 거 같은데. 그 전에 좀 더 쉬어야지. 들어가면 바빠질 텐데.”
“알겠어요.”
챈들러 선배가 들어오면… 뭐가 달라질지는 정확히 모르겠지만.
적어도 서머셋의 동태를 확인하는 건 더 쉽겠지.
‘서머셋은 우리보다 챈들러를 더 믿을 테니까. 가까이 지내지 말라곤 했지만… 이중 스파이를 부탁하는 것 정도는 할 수 있겠지.’
“레이먼,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해?”
생각에 잠긴 레이먼에게 유타가 스윽 고개를 내밀었다.
레이먼과 전혀 다른 붉은 눈동자가 강렬하긴 했지만, 여전히 어린 티가 남은 순수한 눈동자였다. 레이먼은 유타의 볼을 손바닥으로 밀어내며 답했다.
“너무 가까워.”
“우우-.”
“형님, 유타 형님께서 괴로워하십-.”
아드리안은 레이먼의 다소 거친 손길을 제지하려 했지만.
“너 누구 편이야?”
“당, 당연히 형님 편…이지요.”
레이먼을 말리려던 아드리안은 그의 말 한마디에 당황한 채, 그대로 자리에 앉았다.
“우우-!”
“하아….”
유타 얘는 왜 정신을 차리자마자 나를 졸졸 쫓아다니는 거야? 힘쓰고 힘들면 좀 누워 있든가.
레이먼의 손바닥 힘이 잠깐 떨어진 사이, 유타는 그의 팔목을 휙 낚아채고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리곤 레이먼을 끌고 어디론가 향했다.
어딜 가려는 거지?
아이작 가의 저택 지리를 아직 채 익히지 못했기 때문에 유타가 갈 수 있는 곳은 기껏해야 자신이 배정받은 방과 화장실 그리고 안게트의 응접실 정도였다.
그중에서 유타가 선택한 곳은 자신의 방이었다.
“유타, 왜 이래?”
“레이먼, 내가 정말 궁금한 게 있어.”
“뭔데.”
“네가 이상해.”
“내가?”
“정확히 말하면 챈들러 선배의 집에 오자고 얘기할 때쯤부터.”
내가 돌아온 시점을 정확히 알아봤잖아?
“그 뒤로 아이작 가문에 바로 온 게 아니라 그 마을에 들러서 동상의 저주도 풀고.”
“네가 풀어준 거지.”
“챈들러 선배의 저주도.”
“그것도 네가 풀어준 거지.”
“하지만 그것들에 대해 미리 알고 있던 건 너잖아. 너, 이곳에 오기 전부터 이미 그 사실들을 알고 있던 거지?”
레이먼이 물끄러미 유타의 눈을 바라봤다.
자신의 푸른 눈동자와 달리 깨끗하고, 더없이 또렷한 붉은빛의 눈동자.
거짓으로 넘어갈 분위기가 아니었다.
유타는 제 추측을 확신하고 있었다. 결국 레이먼은 작은 한숨과 함께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어떻게?”
“그건 말 못 해.”
말해봤자 믿지도 않을 테고, 그런 절망적인 미래를 겪고 다시 돌아왔다는 걸 알려주고 싶지도 않으니까.
‘그래도… 너무 단호했나.’
믿을 수 있는 친구라면 비밀 없이 모든 걸 말해줄 수 있는 관계여야 할 테고, 유타가 바라는 건 그런 관계였을 텐데.
하지만 레이먼은 앞선 대답을 번복할 생각도 없었다.
그리고, 그 뒤로 유타가 보인 반응도 놀라웠다.
“그래? 알았어.”
“…그게 다야?”
“네가 말할 수 없는 데에는 이유가 있겠지. 결과적으로 네 행동은 내게 득이 됐고, 이 상황에서 내가 너를 의심해봤자 내가 얻을 수 있는 건 없잖아. 그렇다면 나는 너를 믿어야지.”
생각지 못한 반응이었다.
나를 이 정도로 믿는다고?
얼떨떨해진 얼굴의 레이먼이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고개를 끄덕이는 것뿐이었다.
“……그래. 그래 주면 고맙지.”
“하지만 언제가 말할 때가 되면 그때는 알려줘야 해. 나도 알아야 네가 하려는 일이 정말 내게 도움이 되는지 알 수 있잖아?”
“결과적으로 네게 도움이 될 일인데도?”
“당사자가 아니면 몰라. 너도 그런 적 있지 않아?”
“뭐가.”
“그 사람은 널 도와주기 위해 한 선택이라고 했지만, 사실 너에겐 큰 도움이 되지 않았던 선택 같은 거.”
그런 선택이라면.
‘있지.’
레이먼은 아드리안이 했던 말을 떠올렸다.
분명 그때 아드리안이 레이먼에게 했던 말 역시 그런 종류의 것이었다.
‘이게 다 가문과 나를 위한 일이라고.’
“그러니까, 말은 해줘. 때가 되면.”
“알겠어. 유타, 하지만 아무한테나 그런 식으로 믿음을 주면-.”
“안 그래. 내가 바보야?”
“나보다 멍청하긴 하지.”
“왕족에게 못 하는 말이 없군, 자네.”
“그럼에도 용서해주실 거잖습니까, 전하?”
“저 입을 다물게 해야 하는데. 얼른 돌아가자, 애들이 기다리겠어.”
쿡쿡 웃으며 복도를 벗어나는 유타의 뒷모습을 보고 레이먼은 피식 웃은 뒤 뒤따라갔다.
***
챈들러의 저주를 해결한 뒤, 남은 방학 동안 그들은 아이작 가에서 편안히 지냈다.
그들이 지내던 방은 더욱 호화스럽게 꾸며졌고 아들의 소식을 알게 된 아이작 백작은 매일 저녁 새로운 음식을 내놓으며 감사를 표했다. 안게트가 누굴 닮았나 생각했는데 바로 아이작 백작을 닮은 모양이었다.
오닉스는 저녁 음식을 입에 넣을 때마다 포레스튼의 음식도 맛있었지만, 이 집안의 음식도 만만치 않다면서 혀를 내둘렀다. 오닉스의 혀가 거친 말을 내뱉지 않을 때는 달콤하거나 매우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뿐인 듯했다.
반면, 아이작 가의 편안한 생활을 견디지 못한 이도 있었는데 바로 아드리안이었다.
레이먼은 그런 아드리안에게 유리페와 대화를 좀 더 나눠보라 조언했다.
아드리안이 서머셋에게 저주나 영법 때문에 세뇌나 회유에 당한 것이라면 유리페와 친해지는 것이 그에게도 도움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방학의 마지막 날. 포레스튼으로 돌아가기 위해 짐을 챙기던 때였다. 레이먼에게는 예상치 못한 일정이 생겼다. 유리페가 먼저 레이먼의 방에 찾아온 것이다. 어딜 가나 함께하던 마리아 스웨인도 떼어 놓고 말이다!
마리아 스웨인을 떼어 놓다니. 연필에서 흑심이 빠진 것과 다름없는 수준의 행차에 레이먼이 입을 떡 벌리자 유리페가 ‘뭘 그렇게 봐?’라는 표정으로 대꾸했다.
“왜 그렇게 놀라?”
“그… 혼자 오셔서요?”
“둘이서 할 이야기가 있어서 그렇지.”
“제가 이번 방학 때 유리페 전하를 반하게 만들기라도-.”
“헛소리는 그만하는 편이 좋아. 중요한 이야기를 해주기 위해 왔으니까.”
유리페는 성큼성큼 걸어와 소파에 털썩 앉았다.
말을 타다 온 것인지 승마복을 입은 채였다.
“승마를 하다 오셨습니까?”
“유타랑 잠시. 유타는 여전히 귀엽더라고. 너는 내 동생, 정말 귀엽지 않아?”
“귀엽다기보다는 그냥 친구죠. 그게 중요한 얘기입니까?”
“아니. 중요한 이야기는 내 동생이 아니라 네 동생.”
“아드리안이요?”
그제야 레이먼은 유리페 쪽으로 몸을 돌려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발끝으로 맞은편 소파 쪽을 가리켰고 레이먼은 왕녀의 뜻에 따랐다.
“아드리안은 너무 좋은 애야.”
“좋은 동생인 건 이미 알고 있습니다.”
소파에 앉은 레이먼의 답에 유리페가 답답한 듯 고개를 살짝 내저었다.
“그 뜻이 아니라, 너무 좋은 애라고.”
“너무?”
“그래, 너무. 네가 그 애한테 나한테 저주 마법학에 대해 배우라고 이야기한 거라며?”
“네, 포레스튼에서는 이제 유리페 선배님보다 저주 마법을 잘 아는 분을 찾기 어려울 정도니까요.”
과장이 아니라 정말 그랬다. 저주 마법 같은 학문을 전공으로는 출세하기가 힘들었다. 왕족이기에 출세 걱정도 없고 권력에도 욕심이 없는 그녀처럼 저주 마법학을 깊이 배우는 사람은 포레스튼에서 찾기 드물었다.
그런 그녀가 챈들러의 저주는 왜 눈치채지 못 했냐고 묻는다면, 애초에 저주란 의식하지 않고 눈치채는 건 드물기 때문이다. 마력을 통해 그 사람의 몸을 헤집어보지 않는 이상은 말이다.
그렇게 해야 저주의 의미가 있는 것이고 비밀스럽게 누군가를 고통스럽게 하거나 죽일 수 있으니까.
“솔직히 저주 마법학을 배우고 싶어 하는 애는 없거든. 그래서 난 아드리안이 네 말을 듣긴 했지만 저주에도 실제로 흥미가 있는 줄 알았어.”
“그런데요?”
“아니더라.”
유리페는 아드리안과 나눴던 대화를 상기하며 말했다.
– 아드리안, 그런데 너는 나한테 저주 마법학을 배우고 싶다고 했잖아. 레이먼이 나한테 부탁한 것도 있지만 너도 저주에 흥미가 있는 건가?
– 아뇨. 형님이 말씀하셨으니까 그냥 따르는 겁니다. 배워두면 형님께 도움이 될 것 같기도 하고요.
– 너는? 너는 흥미 없어?
– 흥미…. 흥미 있는 일이 딱히 없어서 잘 모르겠는데요.
“애가 흥미 있어 하는 게 없어. 전부 너한테 도움이 될까 싶어 하는 일이야.”
“그런가요.”
“그게 문제라고 생각 안 해?”
내가 형제를 가져봤어야 그게 문제인지 아닌지 알지.
그냥 날… 좀 많이 좋아하는 동생 아닌가?
“문제…인가요?”
“원래도 이랬어?”
“원래도요?”
“그냥 네가 살아온 평생 이랬냐고.”
내가 살아온 평생, 이라고 해도 이 몸에 들어온 게 입학 직전인데.
그때를 기준으로 하면 평생 그랬던 게 맞기는 하지만.
“글쎄요. 잘 기억이 안 나네요.”
“내가 저주에 대해 좀 알아서 하는 말인데.”
유리페의 곱슬머리가 앞으로 다가왔다.
늘 장난스러운 표정이 다분한 그녀였는데 지금은 전혀 그런 분위기가 아니었다. 레이먼은 침을 꼴깍 삼킨다거나 덩달아 긴장한 표정을 짓진 않았다.
“저렇게 한 가지에 맹목적인 애들은 저주에 걸리기 쉬워.”
“그…렇군요.”
“그러니까 네가 잘 좀 챙겨. 너 말고도 의지할 곳을 여러 군데 만들어두란 뜻이야.”
“유리페.”
“이젠 선배도 안 붙이니?”
“저주에 약한 사람은 영법에도 쉽게 당할 가능성이 높습니까?”
내가 영법에 대해서 어떻게 알아- 라고 투덜거리면서도 유리페는 팔짱을 낀 채 대충 고개를 끄덕였다.
“뭐, 그럴 가능성도 높긴 해. 영법도 결국 마법의 일종이니까.”
“그렇군요.”
“영법이든 마법이든 저주에 약한 건 매한가지란 소리야.”
“그래서 선배한테 맡긴 거죠.”
물론, 얘가 그런 상태에서 서머셋에게 넘어간 줄은 몰랐지만.
‘미리 알았다면 막을 수 있었을 텐데.’
뭔가 미안하기도 했다.
그러나 속과 달리 무뚝뚝한 레이먼의 답변에 유리페가 눈썹을 찌푸렸다. 그제야 그가 왜 아드리안을 자신에게 맡겼는지 눈치챘기 때문이다. 물론 조금 다르게 해석한 듯했지만 말이다.
유리페는 말했다.
“영악하네, 영악해.”
으쌰. 그리곤 그녀는 짧게 앓는 소릴 내며 소파에서 일어났다. 그녀는 “어쨌든 난 짧게라도 잘 가르쳤어. 나머지는 네가 알아서 해.”라는 말과 함께 방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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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님, 혹시 제가 형님께 뭔가 잘못한 게 있을까요?”
“옳소, 옳소! 애한테 무슨 짓을 시킨 거냐.”
“오닉스, 넌 뭘 알고 끼어드는 거냐.”
“모르지. 그냥 재밌어 보이잖아.”
물론, 방학이 끝나고 아카데미로 돌아오자마자 이런 난장판이 벌어질 줄은 상상도 못했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