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ill Make You a King as a Possessor RAW novel - Chapter (187)
빙의자가 왕으로 만들어 드립니다-187화(187/275)
아드리안에 대해 아는 건 그리 많지 않다.
‘애초에 진짜 동생도 아니고.’
레이먼이 아드리안을 가장 처음 본 건, 초상화.
어머니를 닮은 곱슬머리를 지닌 레이먼과 달리 아드리안은 테리안 백작을 닮은 얇은 머리카락의 직모였고, 위로 솟은 레이먼의 눈가와 달리 아드리안의 눈매는 비교적 아래로 내려가 있어 웃을 때는 순한 강아지처럼 보이기도 했다.
나보단 착해 보이네- 가 레이먼이 생각한 아드리안의 첫인상이었다.
그리고 아드리안은 첫인상처럼 레이먼에게 아주 착한 동생이었다.
그동안 천재라며 오냐오냐 키워졌을 텐데도 불구하고 말이다.
마치 자신의 형이 자신보다 더 나은 마법사가 되기를 쭉 바라왔던 것처럼.
하지만 별문제는 되지 않았다.
형에게 잘하는 동생.
실존하기 어렵지만, 어쨌든 불가능한 것은 아니었으니까.
그런 종류의 형제애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최근에서야 그게 잘못됐다는 걸 깨달았다.
형을 아끼는 동생은 물론 나쁠 것이야 없다. 하지만 형‘만’ 아끼는 동생은 그 형에게까지 피해를 끼칠 수 있었다. 설령 유리페를 통해 저주에 대해 자세히 배웠다고 해도 그게 서머셋이 아드리안에게 거는 저주의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는 건 아니었다.
‘사실 저주에 걸렸는지 아닌지도 모르지. 어디까지나 아드리안이 나를 배신하고 서머셋의 편이 되었을 리 없다고 생각한 데에서 비롯된 거니까.’
나도 동생을 너무 믿는 건가.
‘상관없어. 어차피 서머셋 쪽도 전보다 더 확실히 감시할 테니까.’
만약 아드리안이 서머셋의 회유나 세뇌가 아닌 자신의 판단으로 그런 일을 벌인 거라고 해도 성격을 바꿀 필요는 있었다.
유리페의 말대로 지나치게 의존적인 관계는 어느 쪽이든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다. 한편 레이먼의 방에 초대받아 멀뚱히 앉아 있던 아드리안은 인상을 찌푸린 자신의 형을 가만 바라보고 있었다.
옆에 선 니콜이 아드리안의 귓가에 작게 속삭였다.
‘큰 도련님이 저런 표정을 지으실 때 어떤 생각을 하는지 저, 니콜은 알고 있습니다.’
‘뭔데?’
덩달아 아드리안도 작게 속삭였다.
‘저 표정은 바로 배가 아파 당장 화장실로 달려가고 싶으신데 우리를 불러뒀기 때문에 억지로 참고 있는 것으로-.’
“다 들린다, 니콜.”
“헉.”
“너는 그 주둥이를 따로 떼어내서 상자에 담아두기라도 해야겠다. 마법으로 잠가버리고 열쇠는 바다 한가운데에 던져버리고 말이지.”
“세상에, 어떻게 그렇게 무서운 발상을 다 하세요?”
니콜이 헙-하는 공기 먹는 소릴 내며 양손으로 입을 턱 막았다. 아드리안이 입가를 손으로 가려 웃었고, 풀린 분위기에 레이먼도 편하게 아드리안에게 질문했다.
“아드리안, 이번 학기만 끝나면 내가 아카데미를 떠나는 거 알고 있지?”
“네.”
“내가 졸업하기 전에 너한테 몇 가지 당부하고 싶은 게 있어서 말이야. 네가 고쳐야 할 부분도 있고.”
“네, 뭐든지 따르겠습니다.”
“그 내 말만 따르는 그 태도도 고쳐야 한다는 뜻이야.”
“…그게 문제가 됩니까?”
아드리안이 고개를 옆으로 갸웃했다.
“저는 형님과 이렇게 대화를 나누고 시간을 보내는 게 좋습니다. 형님은 그게 싫으신가요?”
“나도 좋아. 좋은데-.”
“어릴 적 형님은 제게 시간을 쏟기보다 마법을 공부하는 데에 정진하셨고, 저도 그걸 이해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그럴 필요가 없으시잖아요. 그래서… 저와 좀 더 함께할 시간이 많아졌다고 생각했는데 그건 아닌 모양이었군요.”
레이먼은 답답한 마음에 제 가슴을 망치로 쾅쾅 치고 아드리안의 머리를 프라이팬으로 후려치고 싶었다. 아드리안이 자신의 말 한마디에 저런 식으로 삽질을 하는 성격일 줄은 전혀 몰랐기 때문이다. 그저 충직한 놈인 줄 알았지 저런 식으로 소심할 줄은.
하지만 저 성격은 예전 레이먼의 태도가 만들었을 가능성이 컸다.
즉, 자신이 지금 당장 어찌할 수 있는 게 아니라는 뜻이다.
그리고 아마도.
‘저 땅굴 파는 성격이 추후에 문제가 됐을 가능성이 커. 나에 대한 의존성도 저 탓일 가능성이 크고.’
“아드리안.”
“네.”
“혼자 앞서 생각하지 마.”
“……죄송합니다.”
“죄송하다고 말할 필요도 없어. 네가 나한테 사과할 일이 아니니까. 다 내 탓이지.”
“형님 탓이-!”
아닙니다아…. 아드리안이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 반응에 레이먼이 피식 웃음을 흘렸다.
‘내 탓이 아니라기엔 내가 너를 너무 밀쳐냈지.’
일기장 속 유령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새롭게 떠오른 내용들이 있었다.
그 내용들은 유태하가 빙의하기 직전, 과거의 레이먼이 어떤 모습이었는지를 낱낱이 보여주었는데 아드리안이 다가오는 족족 밀어내는 모습이 담겨 있었다.
물론 아주 어렸을 때는 아닌 것 같았지만. 아마 가문에서 마법 재능으로 차별하는 걸 머리로 인지하게 됐을 때부터 아니었을까.
아드리안이 다가오면 무시했고 없는 사람 취급을 한 데다가 노려보기까지 했으니.
폭력을 쓰지 않은 게 그나마 다행인 지점이었다.
그래서 얘가 이렇게 나를 따르는 거겠지.
때리기까지 했으면 따르는 게 아니라 마법을 쓸 줄 알게 된 순간부터 복수를 위해 칼을 갈았을 것이다.
‘설마 지금도 복수하려고 본모습을 숨기고 있는 건….’
레이먼이 고개를 휘휘 내저었다.
레이먼이 된 뒤로는 이런 생각을 멀리하기로 했다. 제 편으로 인식한 이상 확실히 챙겨야 그다음으로 나아갈 수 있었으니까. 지킬 것이 생긴 삶은 생각보다 귀찮은 게 많았다.
“형님? 제가… 마지막 말을 제대로 하지 못해서 상처받으셨습니까?”
“작은 도련님, 큰 도련님은 그런 데에 상처받으실 분이….”
“니콜.”
“어휴, 조용히 하겠습니다. 차라도 더 내올까요?”
“그래, 기왕이면 생활관 휴게실에 있는 차였으면 좋겠어. 우리는 데는 20분은 걸렸으면 좋겠군.”
주근깨가 박힌 니콜의 광대가 봉긋 솟아올랐다. 그는 “그럼 딱 20분 뒤에 뵙겠습니다요!”라며 소리치곤 후다닥 자리를 떠났다. 둘만 남은 자리에서 레이먼은 거의 빈 찻잔을 한 번 더 들이켰다.
“아드리안, 옛날 일은 내가 정말 미안해.”
“…형님께서 제게 사과할 일이 아닙니다. 그때는 분위기가 그랬으니까요.”
“그건 내가 잘못한 게 맞아. 그리고 나는 네가 그것 때문에 무언가 불안해하지 않았으면 해. 나는 전으로 돌아가지도 않을 거고, 너랑 대화를 많이 하고 지낼 거야. 아카데미를 떠나서도 너와 자주 편지할 거고.”
“정말…이십니까?”
아드리안의 눈이 초롱초롱 빛났다.
“그래. 떠나기 전에도 너와 대화를 나눠야 할 거 같아서. 너만 괜찮다면 매일 30분이라도 너와 시간을 보내려고 하는데. 어때? 그 30분 동안 무얼 할지는 번갈아 정하도록 하고.”
이렇게라도 어린 시절의 추억이나 믿음을 쌓아줄 수 있다면 무언가 달라지지 않을까.
아드리안의 성격은 이번 학기 동안 한 번에 바꿀 수는 없을 것이다. 그 성격은 아드리안이 그동안 겪은 경험의 총체적인 결과물이었기 때문이다.
성격을 단번에 바꿀 수 없는 것 정도는 레이먼도 알고 있었다.
그러니까 차근차근, 할 수 있는 걸 하며 노력해간다면 적어도 몇 년 뒤의 미래는 바꿀 수 있을 것이다. 그걸 위한 ‘메이커 포인트’ 아니겠는가.
그 미래를 바꿀 수 없다면 이 시점으로 돌아왔을 리 없으니까.
레이먼의 제안에 아드리안이 믿을 수 없다는 듯 눈을 동그랗게 치떴다. 다리 위에 올려둔 주먹 쥔 양손이 떨렸다.
방학 때야 시간을 함께 보내긴 했다. 하지만 그건 학기 중도 아니고 할 일도 없었기 때문에 후계자의 의무를 다한 것이라고만 생각했다. 그걸로도 충분했다.
어린 시절 형님에게 갔어야 할 애정을 모두 빼앗은 어린 동생에게 형님이 해줄 수 있는 최선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은 아카데미 학기 중이 아닌가. 아무리 수업이 없고, 왕실 내정이 끝난 상태라곤 하지만 새롭게 배울 것들이 많이 있을 것이다. 그런데도 자신과 매일 시간을 보내겠다고?
“형님은 바쁘… 바쁘시지 않습니까. 왕실에 들어가시기 전에 마법학 복습도 해야 하시고 행정 사정도 미리 익히셔야 할 게 산더미일 텐데-.”
“그런 것들 외우는 거야 금방이야. 그리고 아무리 바쁘더라도 동생 봐줄 시간이 없겠어.”
그게 형제 아닌가. 서로 죽일 듯이 굴면서도 어쨌든 가족으로 서로가 1순위인 사이 말이다.
뭐, 여기서 ‘서로 죽일 듯이 굴면서’라는 부분은 아주 먼 미래로 빠져있거나 아예 없는 것 같긴 하지만.
아드리안이 거의 울 것 같은 얼굴로 고개를 푹 숙였고, 때마침 니콜이 간식 바구니와 함께 찻주전자와 찻잔을 들고 등장했다.
니콜은 아드리안이 훌쩍이는 걸 보자마자 호들갑을 떨며 테이블 위에 간식을 올려두며 외쳤다.
“레이먼 도련님, 이게 무슨 일입니까! 설마….”
“내가 뭐.”
“그 심드렁하고 퉁명스러운 얼굴로 아드리안 도련님께 겁을 준 거 아닙니까?”
“내 표정이 그렇게 더럽고 치사해 보이나?”
“제가 그렇게까진 표현하지 않았지만 그렇게 보일 수도 있지 않을까요?”
니콜의 동의하는 말에 놀란 아드리안이 고개를 들어 소리쳤다.
“형님은 그런 표정 짓지 않으셨어. 내가, 내가 당황해서 잠깐 흐트러진 것뿐이야.”
“도련님! 역시 저도 그렇게 생각했답니다.”
“너… 그렇게 생각 안 했으면서.”
“헤헤, 제가 다 도련님을 생각해서 드리는 말씀이지요.”
니콜이 헤실헤실 웃으며 올려둔 쟁반을 정리했다.
레이먼은 그사이에 한 번 더 물었다.
“아드리안, 그래서 네 생각은 어때? 시간은 괜찮아?”
“저는, 좋습니다. 형님이 시간만 되신다면요.”
“그래. 그때 네가 짠 방학용 해야 할 일 리스트는 전부 했으니까 다른 걸로 짜서 갖고 와봐.”
“저… 그럼. 저도 하나 부탁이 있는데 괜찮을까요?”
“부탁?”
나랑 시간을 보내는 걸로 된 거 아닌가? 그래도… 여기서 뭐라도 하나 더 들어주는 게 나중에 더 낫겠지.
레이먼이 고개를 끄덕이자 환하게 웃는 얼굴로 아드리안이 자신의 부탁을 이야기했다. 아드리안의 부탁은 매우 간결했고, 레이먼이 아드리안에게 시킨 것과 동등한 수준의 부탁이었다.
***
“그래서. 네가 짜고 있는 게 그거야?”
“그래. 너도 뭔가 하나 더 말해봐. 형제랑 해본 거 있어?”
“형제랑? 글쎄. 어린 나를 무시하는 거라던가… 아니면 지나가다 한 번 웃어주기?”
“유타, 너한테 물어본 내가 잘못이지.”
아드리안인 레이먼에게 부탁한 것은 간단했다.
– 형님도 저와 하고 싶은 소원 리스트를 작성해주세요! 저도 형님이 저랑 하고 싶은 일이 뭔지 알고 싶습니다!
비교적 간단한 소원이지만 레이먼에게는 까다롭기 그지없는 부탁이었다.
그는 단 한 번도 누군가와 목적 없이 무언가를 같이 하고 싶다고 생각한 적 없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도움을 받으려고 찾아왔더니, 유타 역시 형제와 제대로 된 추억을 쌓은 적이 없는 놈이었다.
“오닉스, 너는?”
“나? 나 버려져서 형제 없이 자랐잖아.”
“아, 맞다.”
“테디 너는?”
“나는 외동이다.”
“아…….”
제길, 도움 되는 놈들이 없잖아. 레이먼은 열심히 머리를 움켜쥐었고 결국 도움을 얻기로 한 쪽은.
“나는 동생이 있어!”
“나도 사랑스러운 여동생이 있지.”
평소라면 절대 의지하지 않았을 같은 기프트 클래스의 동급생들이었다.
“그런 거라면.”
“우리가 도와줄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