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ill Make You a King as a Possessor RAW novel - Chapter (190)
빙의자가 왕으로 만들어 드립니다-190화(190/275)
페인은 제 성격이 얼마나 엉망인지 아주 잘 알고 있었다.
– 페인 님께서는 왕족의 위엄이 잘 느껴지지 않으시죠.
– 그런 말씀은 함부로 하시는 게 아니에요.
– 우리끼리 하는 말인걸요? 뭐 어때요.
– 페인 왕자께서 8살이 되셨을 때, 귀족 한 명 목이 날아간 걸 잊으셨어요?
– 그전에는 궁인들 5명이 한꺼번에 궁을 나갔지요.
– 왕족이니 그 정도 권력은 있으시니까요.
왕족이시면서. 왕족인데도. 왕족이니까. 왕족이라서.
온갖 문장 앞에 붙는 ‘왕족’이라는 수식어가 페인은 불편하면서도 편리했다.
자신이 이렇게 멋대로 행동할 수 있는 까닭 역시 그가 왕족이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렇다면 그들의 기대에 부응하는 것이 옳지 않은가? 그들의 인식에 그가 철부지 망나니 2왕자라면 더더욱 그렇게 행동하면 될 일이었다. 그게 편하기도 했다. 잘날 필요도 없고, 노력할 필요도 없고, 성질머리대로 행동하면 되었으니 말이다.
그래서 포레스튼에서도 그렇게 행동했다. 덕분에 많은 소문이 무성히 생겨났고, 다가오고 멀어지는 이들이 많았다. 서머셋도 그중 한 명이었다.
형제였음에도 불구하고 왕성에서는 제대로 얘길 나눠본 적이 없었는데 아카데미에 입학한 이후 대화를 제대로 나눠보게 된 것이다.
페인이 알고 있는 서머셋은.
– 2왕자보다 나은 4왕자
– 좀 더 일찍 태어나면 좋았을 아이
– 우수한 학생
이었다. 즉, 가족이 아니었다면 내게 엮여줄 일도 없을 놈이란 거다.
페인이 서머셋과 처음으로 만난 장소는 포레스튼의 예배당이었다.
주스테 신을 모시는 예배당은 수업 시간에는 늘 텅 비어 있는 공간이었다. 즉, 페인이 땡땡이를 치기 가장 좋은 장소라는 뜻이다.
여느 때처럼 예배당의 긴 벤치에 책으로 얼굴을 덮은 채 드러누운 페인은 바로 뒷자리에서 누군가의 인기척을 느꼈다. 책을 슬쩍 아래로 내린 채, 훔쳐본 시야에는 그리 친하지 않은 가족이 있었다. 그리고 그에게 별 흥미가 없던 페인은 다시 책을 덮고 잠을 청했다. 하지만 다음 날도, 그다음 주에도 페인은 여느 때처럼 예배당에 누워 시간을 때웠는데 그때마다 서머셋이 찾아오는 거다.
페인은 오기로 그놈을 무시했다.
왕국에 돌아오기 전, 흥미로운 여자를 만났고 그녀와 함께라면 이 지긋지긋한 왕국을 떠날 빌미를 만들 수도 있었다. 사랑은 아니었지만 사랑만큼 형용하기 어려운 애틋한 감정이 그녀에게 있었기에 페인은 쉽게 결정을 내릴 수 있었다. 페인이 바텔바흐로 떠나기를 결정하고 얼마 지나지 않은 오후였다.
그날도 예배당에 누워 잠을 청하던 페인은 간만에 벤치에서 일어났다.
예배당의 단상 위에는 주스테 신의 조각상이 있었다. 새하얀 조각상에는 남자인지 여자인지 알 수 없는 이가 긴 머리를 늘어뜨린 채 서 있었다.
페인은 뚱한 얼굴로 조각상을 향해 말했다.
“이봐, 나 조금 있으면 이 지긋지긋한 나라를 떠날 거야. 주스테 신의 축복을 받은 왕족이 이곳을 떠난다는 게 웃기는 이야기지?”
흥. 콧방귀를 뀐 그가 앞줄 벤치 위로 꼰 다리를 척 올려놓았다.
“주스테가 준 축복이 바텔바흐에게도 닿을 수 있을지 모르겠어.”
“바텔바흐로 떠나시나요, 형님?”
“……넌 지긋지긋하지도 않냐?”
서머셋이 늘 그렇듯 웃는 낯으로 그를 찾았다.
“매너스는 날 보러 오지도 않는데 말이야.”
“가족을 찾는 게 흔치 않은 일은 아니지요.”
“그렇긴 하지. 그래, 네 말대로 나는 바텔바흐로 떠날 거다. 말릴 거냐?”
말리지 않겠지. 왕좌를 노리는 이가 한 명이라도 주는 건 왕의 자식들끼리 바라던 바일 테니.
“말리지 않겠지요? 형님이 바텔바흐로 떠나면 저야 좋으니까요.”
“네가…?”
“형님. 이 지긋지긋한 왕국이 싫다고 하셨지요?”
“어디서부터 들은 거냐?”
아무래도 이 녀석은… 내 이야길 처음부터 다 엿들은 것 같은데.
‘이 도둑고양이 같은 자식.’
하지만, 이제야 좀 흥미가 생기는군.
페인이 씨익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서머셋은 특유의 여유로운 미소와 함께 페인에게 더욱 가까이 다가왔다. 예배당에는 둘뿐이었고 둘의 목소리 외에는 어떤 잡음도 들리지 않았다. 하지만 어째서인지 순간 페인의 귓가에는 바이올린의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빠른 박자의 위태로운 소리였다.
“형님은 왜 이 왕국이 지긋지긋하십니까? 형님은 왕족이시니 원하는 것도 모두 가지실 수 있고, 그 누구보다 풍요로운 생활을 즐기실 수 있습니다. 검술에 재능도 있으니 조금만 노력하시면 단장 자리를 금방 꿰차시겠지요.”
“쉽게 가질 수 있는 데엔 흥미가 없어.”
서머셋의 눈빛이 날카롭게 바뀌었다.
부드러운 눈웃음에서 어떤 압력이 느껴졌다.
그가 주스테 신의 동상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렇다면… 왕좌는 어떠하십니까?”
“뭐?”
“왕좌에는 흥미가 없으십니까?”
“노력해도 가지지 못할 것에는 흥미가 없고, 그 딱딱한 자리에는 앉고 싶지도 않아. 그런 말을 입에 담다니……너야말로 그 딱딱한 자리에 흥미가 있는 게 아니냐?”
페인의 도발이었다. 2왕자인 자신이야 왕좌에 대한 욕심을 입에 담아도 어느 정도 수긍할 귀족들이 있었으나 서머셋은 4왕자다. 차례가 돌아도 한참을 돌아야 했다. 그런 그가 왕좌에 대한 욕심을 품는다면.
“제가 허리가 좋지 않습니다.”
“뭐?”
“그래서 의원에게 물으니… 허리가 좋지 않으면 너무 편한 좌석을 피하고 조금 딱딱한 의자에 앉는 게 건강에 좋다고 하더라고요.”
“…….”
“그래서 조금 탐이 나긴 합니다. 그 자리가 워낙 귀해서요.”
“하하, 하하하하.”
페인이 눈을 가린 덥수룩한 앞머리를 쓸어 넘겼다.
자꾸만 웃음이 터졌다.
‘이거 웃기는 놈이네?’
“네 그 욕심을 나한테 말하는 이유는?”
“형님께선 흥미로운 걸 좋아하시니 제 이야기에 조금은 흥미가 동하지 않을까 해서요. 흥미가 동하셨다면 저에게 약간의 도움을 주는 것도 좋겠지요.”
서머셋이 주스테 신을 향해 기도했다.
주스테 신을 향한 기도는 두 가지 예법으로 나뉜다. 평민이나 귀족들이 사용하는 예법과 왕족만이 사용하는 왕실 예법. 공식 왕실 예법에 따라 서머셋은 두 손을 맞잡고 고개를 살짝 숙인 뒤, 맞잡은 손의 위에 올라온 엄지에 짧게 입을 맞추었다. 예배당의 스테인드글라스로 넘어온 빛이 그의 머리카락을 비추었다. 머리카락의 어둠에 내리쬔 빛은 반사되지 않고 그 어둠에 그대로 물들었다.
“바텔바흐로 넘어가시면 왕실의 감시에서 자유로워지실 겁니다. 제가 몇 번 도움을 요청하면 그때 도움을 주시는 건 어떻습니까?”
“내가 그래야 하는 이유가 있어?”
이 건에 손을 빌리는 건 명백히 위험한 일이다.
페인이 한쪽 입꼬릴 올리며 이죽거렸다. 그러나 서머셋은 어떤 표정 변화도 없이 웃으며 답했다.
“재밌을 겁니다.”
“내가 그런 개인적인 이유로 널 도울 것 같아?”
“아닌가요?”
“…….”
글쎄. 어떨까.
페인은 주스테의 조각상을 바라보았다.
올곧고 정의로운 신.
그 신을 믿는 왕국.
그 왕국의 돌연변이 같은 자신.
그런 그에게 자신의 안위나 신의 같은 게 이제 와서 중요할 리 만무했다. 페인은 자리에서 일어나 조각상을 발로 툭 차 쓰러뜨렸다. 바닥에 떨어진 조각상의 목이 그대로 두 동강이 났다. 페인은 주스테를 향해 기도하는 서머셋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좋아. 도와줄게. 물론 네가 나에게 가장 흥미로운 존재일 때까지다.”
“그렇게 되었으면 좋겠네요, 형님. 결혼 축하드립니다.”
“흥. 네게 가장 먼저 축하받을 일은 아니다.”
그렇게 페인은 포레스튼을 떠났다.
그 뒤로 그는 스턴 왕국 최고의 망나니에서 최고의 로맨티스트로 거듭났다. 그가 바란 적은 없는 칭호였지만 말이다.
어쨌든, 자신의 계획대로 바텔바흐로 넘어간 그는 서머셋에게서 종종 연락을 받았다.
– 바텔바흐로 아티팩트를 빼낼 겁니다. 형님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 몇 년 후 전쟁을 대비해주세요. 마법사를 영입하세요. 제국에서 나온 용병들을 고용해두면 될 겁니다.
비록 그에게서 도움이 필요할 때뿐이었지만.
하지만 페인은 서머셋의 요청을 거절하지 않았다. 아직까진 스턴 왕국에 대한 흥미보다 서머셋의 행동이 더욱 페인의 흥미를 끌었기 때문이다.
– 스턴 왕국으로 돌아와 저를 도와주지 않겠습니까? 이제 거의 다 온 것 같습니다.
그러나 서머셋에 대한 그의 흥미는 영원하지 않았다.
스턴으로 자신을 다시 불렀을 때부터는 조금 흥미가 떨어지기 시작한 것이다.
여유로워 보이긴 했으나 부러 자신을 바텔바흐에서 스턴으로 끌어들이는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좀 더 긴밀히 도움을 요청하거나 자신의 편이 필요해서겠지.
‘하지만 난 네 편이 아닌데.’
고민하던 페인은 아내를 데리고 스턴으로 돌아왔다. 페인에게 들은 이들 중 흥미로울 것 같은 아이가 한 명 있었으니까.
‘레이먼 반 스플린, 그리고.’
그 쓸모없던 5왕자 패거리들.
그놈들이 움직이면서 서머셋의 계획이 틀어졌지.
‘5왕자. 그놈은 가진 것도 없는데. 사람 한 명을 가진 정도로 입지가 이렇게나 바뀔 수가 있나?’
재밌어. 좀 더 가까이서 보고 싶어.
그 마음으로 온 포레스튼이었지만 유리페, 그 밉살맞은 녀석 때문에 가까워지진 못했다. 게다가 생각보다 재밌는 일은 벌어지지 않았고 페인은 포레스튼을 졸업한 후 그대로 왕성에 갇혀 살게 되었다. 서머셋 탓에 돌아갈 순 없었고 일을 할 만큼 재밌는 일도 없었다.
– 하지만 그 친구…… 사랑의 도피를 하고 싶어서 조언을 얻고 싶다고 하는데요.
– 누구랑?
– 그건 본인한테 직접 확인하셔야 할 것 같아요.
– 진짜 사랑의 도피야?
– 예!! 형님처럼! 대단히! 엄청난! 사랑의 도피입니다!
그런 와중에 생긴 일이었다.
“좋아, 내가 한번 만나서 조언을 주겠다!”
그리고 그 일은
아주 심심하던 페인에게 매우! 대단히! 흥미로운 일이었다.
***
“그렇군요.”
“뭘 그렇게 남 일처럼 이야기해? 네 사랑의 도피잖아.”
“그렇죠. 제 일이죠. 설마 선배님이 그걸 믿고 진짜로 와주실 줄은 꿈에도 몰랐지만요.”
그렇게 된 일이군.
포레스튼의 생활관. 자신의 방에서 페인을 갑작스레 마주한 레이먼은 이제야 상황을 이해했다. 자신이 사랑의 도피를 하는 걸로 만들다니….
유타, 이 자식. 대체 누구한테 뭘 배운 거야? 언제 이런 사기꾼이 됐지?
레이먼이 곁눈질로 유타를 슬쩍 노려보았다. 유타는 여느 때와 다름없이 햇살처럼 따뜻한 모습으로 생글생글 웃고 있었다.
페인이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레이먼을 흘겨보았다.
“뭐야, 거짓말이었어?”
“아뇨. 거짓말은 아닙니다.”
레이먼은 가볍게 손을 좌우로 내저은 뒤,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어찌 됐든 유타가 만들어온 기회였다.
모처럼 찾아온 기회를 헛되이 할 수는 없지.
레이먼은 상체를 앞으로 숙여 적당히 불쌍한 자세를 잡고는 페인에게 말했다.
“사랑의 도피를 하려는데 도무지 조언을 얻을 분이 없어서요. 페인 선배님이 그 일로 가장 유명한 분이시니 조언을 얻을까 합니다.”
“그래서 누구랑? 누구랑 하는 건데?”
레이먼의 나름 진지한 언동에 페인도 화를 슬쩍 누그러뜨리고선 물었다.
레이먼이 답했다.
“주스테 신님이요.”
뭐?
“………너 미쳤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