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ill Make You a King as a Possessor RAW novel - Chapter (191)
빙의자가 왕으로 만들어 드립니다-191화(191/275)
“이 사기꾼 놈들.”
페인의 눈썹이 일그러지고 한쪽 입꼬리가 짜증으로 부들부들 떨렸다.
자신이 이놈들한테 단단히 속은 것이다. 대체 누가 한 나라의 신을 데리고 사랑의 도피를 하겠다고 말해? 어떤 또라이가 와도 이런 소리를 저런 얼굴로 지껄이지 않을 것이다.
“왜 사기꾼이라고 하십니까?”
페인의 박력에 레이먼의 심장도 미친 듯이 뛰고 있었다.
‘주스테 신이랑 사랑의 도피라니.’
내가 생각해도 미친놈이지….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진짜 사랑하는 사람이 있는 것도 아니고, 말할 수 있는 게 신밖에 없지 않나.
그리고 자신이 누구인가. 킹메이커 아닌가. 그에겐 킹메이커 전용 특성이 있었다. 어떤 말도 안 되는 소릴 해도 속여 넘길 수 있다는 소리다.
레이먼은 갑자기 고개를 푹 숙였다, 그리고 겨울철 사시나무 가지처럼 어깨를 파르르 떨었다. 누가 봤다면 페인의 괴롭힘에 못 이긴 재학생이 울음을 터뜨리고 있는 것처럼 보일 것이다. 페인은 이 어처구니없는 상황을 짜증 가득한 눈빛으로 내려다보았다.
“뭐야. 뭐 하자는 거야?”
“아니, 제 진심을 몰라주시니-.”
“레이먼!”
유타도 레이먼의 연기에 힘을 실었다. 벌벌 떠는 어깨를 유타가 꼭 끌어안아 주며 페인에게 말했다.
“형님도 너무 하십니다. 이 친구는 진심입니다.”
“너희들 둘이서 아주 돌아버렸구나? 됐다. 이런 얘기라면 내가 도움을 줄 것도 없지.”
페인이 자리에서 일어나자 레이먼도 입을 열었다.
“선배님, 제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주세요.”
“이봐, 레이먼. 나는 내가 흥미가 생길 만한 이야기만 들어. 사랑의 도피라 재밌을 것 같아서 왔더니… 뭐? 신? 말이 되는 소리를 해야지. 그런 관념적인 존재와 어떻게 도피를 하겠다는 거야?”
“신과 함께 도피하는 데에는 두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뭐?”
레이먼이 천천히 고갤 들었다.
“하나는 예배당에 있는 조각상을 들고 튀는 겁니다. 주스테 신을 믿지 않는 곳으로 가면 저만 온전히 정의로운 신을 모실 수 있겠지요.
이게 대체 무슨 헛소리야?
당황한 페인은 그대로 자리에 굳었다.
솔직히 말해 이 개소리의 두 번째 이유가 궁금하긴 했다.
대체 무슨 말을 할까?
“두 번째는… 도피를 할 수 없다면.”
“…….”
“신을 가지는 것이죠.”
“신을 갖는다고?”
그게 무슨 소리지?
레이먼이 불쌍한 척 손수건으로 눈가를 닦으며 말했다.
“주스테 신을 모시는 왕국은 스턴 왕국뿐이잖습니까. 그렇다면 이 왕국을 가지면 되는 일입니다.”
“헛소리네. 그럼 도피가 아니잖아.”
“그런가요?”
“그리고.”
페인이 삐딱하게 돌아섰다. 그는 유타와 레이먼을 번갈아 본 뒤 말했다.
“한다 해도 네가 가질 수 있는 것도 아니지.”
“그럼 가질 수 있는 사람이 정해져 있나요?”
“…그건.”
“신의 축복을 받았다는 왕족. 그 정도는 되어야 한다는 뜻이죠?”
“…….”
“왜 선배님께 제가 아니라 유타가 갔겠어요. 사실.”
레이먼의 목소리가 낮게 깔렸다. 그는 허리를 살짝 숙여 페인에게 몸을 바짝 붙이고는 속삭였다.
“사실 사랑의 도피를 원하는 쪽은 유타거든요.”
이 무슨 헛소리인가 싶었는데… 뭔가 묘하게 설득이 되기도 했다.
왜 그런 생각이 들지? 어이가 없어도 이렇게 없을 수가.
페인은 전혀 말이 되지 않는 소리에 기묘한 끌림을 느끼고 있는 거다.
최악이잖아?
“페인 선배, 선배님이 왜 스턴으로 돌아온 건지는 어느 정도 눈치채고 있습니다.”
페인이 스턴으로 온 건, 서머셋에 대한 의리 때문이 아니었다.
그는 바텔바흐에서의 생활이 다시 지겨워진 것이다.
사랑 때문에 2왕자가 스턴을 떠났다고?
레이먼은 그 소문을 믿지 않았다.
다수의 사람이 말하는 페인은 그런 인간이 아니었고, 바텔바흐를 떠나기 전 서머셋이 바라본 페인이 그런 인간이기도 했다. 바텔바흐로 넘어간 뒤에는… 세기의 로맨티스트라고 소문이 나긴 했지만.
‘로맨티스트는 페인이 아니라 그런 남자라도 받아준 아내 쪽일 거 같은데.’
만약 그런 성격을 가진 페인이 지금 이 상황을 즐거워할까?
단순히 페인을 방치만 해두는 이런 상황을?
레이먼은 서머셋과 페인 사이에 아주 작은 균열이라도 만들기만 하면 됐다.
그 균열은 점점 벌어져 전쟁이 일어날 때쯤에는 레이먼이 원하는 대로 흘러가게 될 테니까.
“페인 선배님, 지루하지 않으세요?”
“흠.”
“저는 선배님이 원하는 상황을 만들어드릴 수 있습니다.”
“…계속 말해봐.”
페인은 여전히 뚱한 얼굴이었지만 어느새 턱까지 올라온 손가락을 보면 설득에 효과가 아예 없는 건 아닌 모양이었다.
“선배님이 지루하신 이유는 이미 판이 다 깔렸다고 생각하셔서 그래요. 그럼 선배님이 다시 원래대로 돌려놓는 건 어떠세요?”
“원래대로? 그게 무슨 말이야?”
내가 다 깔아둔 판인데.
바텔바흐에서 첩자를 보낸 것도 자신이었고 이미 서머셋의 말대로 제국의 몇몇 마법사들을 고용해 바텔바흐의 기사로 교육시키고 있었다.
아티팩트도 팔아 재미 좀 보고 있는 상황에서 내가 굳이 그래야 하는 이유가 있나?
속이 시끄러운 그의 마음을 읽기라도 했다는 듯 레이먼은 자연스레 말을 이었다.
“선배님, 생각해보세요. 이대로면 선배님의 쓸모는 사라지지 않습니까.”
“그게 무슨 소리야?”
“바텔바흐의 쓸모가 영원할 거라 생각하세요? 바텔바흐는 독자적인 아티팩트도 없고, 마법에 꼭 필요한 마정석 등이 나오지도 않습니다. 그리고 만약, 저희 왕국이 바텔바흐와의 싸움에서 패배한다면… 제국이 어디를 노리겠어요?”
“……….”
자, 페인 스테디움 스턴은 말 그대로 망나니다. 그는 흥미 위주로만 움직인다. 그에게 아내는 단순히 호기심의 대상일 뿐이다.
레이먼은 그렇게 결론을 내렸다. 그도 그럴 게 그는 제 아내를 서머셋이 있는 스턴으로 데려오기까지 했으니까.
그래. 그런 결론이었다.
‘하지만.’
만약에, 정말 아주 만약에 그가 자신의 아내를 진정으로 사랑하게 됐다면 어떻게 될까?
왕국을 탈출하기 위해 시작된 그녀에 대한 단순한 흥미와 호기심이 바텔바흐를 떠나기 전과 후에 아주 약간의 차이가 생겼다면 말이다.
레이먼이 메이커포인트 사용으로 돌아온 뒤 읽은 일기장에는 그가 죽은 이후, 다른 인물들의 삶이 어떻게 변했는지 적혀 있었다. 바텔바흐는 결국 제국에 멸망하고 페인의 아내는 고향에 돌아가는 길목에서 죽는다. 아내의 죽음을 파헤치던 페인 역시 입막음을 위해 독살당한다.
‘내가 죽은 이후의 일이 일기장에 왜 적혀 있었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페인이라는 남자가 단순히 세기의 망나니라고만 생각했는데. 그래도 마지막엔 누군가를 위해 변했다는 것이다.
‘그래. 페인은 결혼 후에 변했어. 그리고 아마, 그 차이는 서머셋이 알지 못했겠지.’
레이먼은 그 ‘차이’에 걸기로 했다.
“최악의 경우, 페인 선배님의 아내분께서 위험에 처하실 수도 있겠지요.”
“…….”
“페인 선배, 우리 유타는 단 한 번도 제 편을 버린 적이 없답니다. 이 친구는 주스테 신과 함께 이 스턴 왕국이 도피하길 바라요.”
암호같이 이상한 말. 하지만 그 말에 담긴 뜻은 하나였다.
‘이 꼬맹이, 4왕자와 같은 걸 원하는군.’
페인이 씩 웃었다.
“그래서? 내가 무얼 하길 바라지?”
“아무것도.”
“흠?”
손에 든 찻잔을 아주 조용히 내려놓으며 검지손가락을 입술 위에 사뿐히 올린 레이먼이 입을 열었다.
“전 선배님이 아무것도 하지 않길 바랍니다. 다시 흥미가 동하게 해드릴 테니. 그때까지 누구의 편도 들지 말아주세요. 말로는 무엇이든 떠들어도 좋으니, 실행만 하지 않으시면 됩니다.”
지키고자 하는 게 생긴 사람은 약하다.
이전처럼 망나니 같은 선택을 할 수 없으니 말이다.
그리고 페인 스테디움 스턴은 아마도… 지키고 싶은 게 생겼을 거다.
“만약 그 일이 지켜진다면 저희는 무슨 일이 있어도, 페인 선배님의 소중한 이를 지켜드리겠습니다. 어떠세요, 선배님?”
레이먼이 싱긋 웃었다.
***
페인을 꼬시는 데 성공했다. 아주 약간은.
– 소중한 이가 있다고 어떻게 장담하지?
– 페인 님은 세기의 로맨티스트니까요.
– 아카데미 꼬맹이들이나 믿는 농담을. ……좋아. 고려는 해보지. 답장은 줄게. 어떤 식으로 줄지는 모르지만.
– 감사합니다.
페인의 저 대답은 ‘지금 당장은 자존심이 상하니 나중에 알겠다고 답장하겠다.’라는 뜻이었다.
그러나 안심할 수는 없었다. 서머셋이 페인에게 생긴 변화를 눈치챈다면 또 다른 방법을 써서 접근할 수 있으니까. 하지만 그 전에, 처음 발생한 전쟁의 결과만 바꿀 수 있다면 급한 불은 끈 셈이었다. 애초에 그 전쟁에서 1왕자가 죽은 탓에 많은 게 틀어졌으니까.
레이먼은 한숨 놓은 듯 의자에 몸을 뉘었다.
‘피곤해 뒤지겠네.’
일 좀 그만하면 안 되나?
전생에도 일하다 죽었는데 여기서도 일하다 죽을 지경이라니.
차라리 나 대신 다른 레이먼이 와서 일을 다 마친 뒤에 다시 돌아왔으면 좋겠어.
“하아.”
[ 피곤하냐? ]“예, 피곤합니다.”
완두콩이 레이먼의 어깨 위에서 콩콩 뛰었다.
[ 내가 네 피로를 온전히 풀어주진 못하겠지만 이 정도는 해줄 수 있지. ]아모르의 몸에서 초록빛이 퍼졌다.
피로에 축 처져 있던 몸이 가벼워졌다.
“이것도 사랑의 대정령이 가진 힘입니까?”
[ 사랑은 품어주는 것이니 네 마음을 가볍게 만들어주는 것 정도는 가능하지. 육신의 피로는 감정에서 비롯되는 것이니까. 잠깐 눈을 붙이는 건 어떠냐. 네 동생이 오면 깨워주지. ]페인과의 만남으로 가뜩이나 피곤한 하루였다. 하지만 아직 완전히 눈을 감을 수는 없었다.
오늘의 마무리는 아드리안과의 대화가 될 예정이었다. 무슨 일이 있더라도 그 30분의 대화시간만큼은 지켜줘야 했으니까.
“그럼 그때 깨워주세요.”
무거운 눈꺼풀이 감겼다.
오랜만에 꿈을 꾸었다. 그가 유태하였던 시절의 꿈이었다.
***
유태하에게 친구라 부를 만한 사람은 없었다.
그가 더러운 뒷골목 헌터라며 싫어하는 사람은 흔했다. 누군가 그에게 친근하게 굴 때는 대부분 정보를 사러 와 할인을 요청하는 그때뿐이었다. 매일 그런 종류의 사람들을 상대하다 보니 유태하도 인생에 재미가 없었다.
결국 그에게 그나마 재미를 주는 것은 돈이었다. 돈만 있다면 어지간한 것은 모두 할 수 있었다.
돈만 있다면 굶지 않아도 됐고, 편안히 누워 잘 수 있었고, 원하는 옷을 입을 수 있었다. 돈이 있다면 사람도 살 수 있는 게 그가 살고 있는 사회였다.
그러나 그도 종종 생각하곤 했다.
자신을 좋아하는 이가 한 명쯤은 있어도 되는 게 아니냐고 말이다.
“쯧. 아무리 꿈이라고 해도 짜증 나잖아.”
꿈속의 유태하는 이게 꿈이라는 사실을 자각하고 있었다. 눈앞에 있는 데이터를 정리하면서 얼른 잠에서 깨길 바랐다. 레이먼 반 스플린으로서의 삶은 하루하루 고역이었지만 그를 홀로 내버려 두진 않았기 때문이다.
짜증 나긴 해도 부모라는 게 있었고 융통성은 없지만 꽤 괜찮은 동생도 있었다.
목숨을 걸어야 하긴 했지만 적당히 믿음직한 놈들도 있었다.
유태하는 얼른 레이먼의 삶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만약 영혼이 속할 곳이 정해져 있다면 자신의 영혼은 유태하가 아니라 레이먼 반 스플린 쪽에 있는 것이 더 적당하다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