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ill Make You a King as a Possessor RAW novel - Chapter (194)
빙의자가 왕으로 만들어 드립니다-194화(194/275)
티키가 실리드 교수의 사무실로 끌려간 이후, 리트리와 레이먼 일행은 다른 이들의 시선을 피해 레이먼의 방으로 향했다.
마물 소동 사건은 클레임 교수의 정리 하에 마무리되었다.
‘에글린턴의 학생들이 내년 교류회 일로 포레스튼에 방문하는 길에 착오가 생겨 발생한 일.’이라는 클레임 교수의 말에 태클을 걸 수 있는 학생이 있을 리가 없었으니까.
리트리는 레이먼의 방에 가는 복도 내내 그의 어깨를 붙잡고 “정말 용서해주는 거 맞지?”라고 몇 번이나 말을 걸었다. 지겹다 못해 혹사당한 한쪽 귀가 고통스럽기까지 했다. 레이먼은 고막에서 피가 흐르는 줄 알았다. 아니, 이대로 가다간 피가 흐를 거다.
정말 고막이 펑 하고 터져 버리기 전에 레이먼은 정령들로 리트리의 입을 막아버렸다.
“읍읍!”
“리트리 이 새끼는 어째 졸업반이 되도 변하는 게 없냐.”
오닉스는 그런 리트리를 보곤 낄낄댔다.
“말하고 싶냐? 말하고 싶어? 낄낄. 어쩌냐, 말도 못 하고~.”
“읍읍!”
“리트리…는 결국 저렇게 됐구나?”
다른 교수와 면담 중이었던 유타도 마물 소동과 에글린턴의 착한 침입자들에 대한 소식을 듣고 곧장 레이먼의 방에 찾아왔다. 리트리가 저런 꼴이 될 걸 예상이라도 한 듯 유타는 그리 놀라지 않았다.
그리고 유타는 리트리를 따라온 타일에게 반갑게 인사했다.
타일은 사나운 얼굴로 인사를 대신했다.
“그런데 타일. 왜 그렇게 무서운 표정을 짓는 거야?”
“원래 생긴 게 이 모양이야.”
“하하하, 그거참 다행이야. 난 네가 나한테 뭔가 화가 단단히 난 줄 알았지.”
“……됐어.”
“앞으로는 그런 오해하지 않을게. 미안하다.”
유타의 사과에 타일은 홱 고갤 돌렸다. 그리고 곁눈질로 유타를 한 번 살폈다.
오랜만에 본 유타는 교류회나 라 디밀레 축제 때 마주쳤을 때보다 훨씬 성숙해져 있었고 왠지 좋은 냄새도 났다. 마법사는 고위 마법을 쓸 수 있을수록 고귀한 존재가 된다고 했는데, 이게 그런 걸까?
타일이 낯가림을 하는 사이, 정령의 속박에서 겨우 벗어난 리트리와 레이먼은 편지로 나누던 대화를 이어갔다.
“면접에선 오늘처럼 사고를 치지 않은 모양이야. 마탑 면접은 까다로웠을 텐데.”
“말도 마. 에글린턴은 특별 전형 탓에 마탑주님이 직접 면접에 참여하셨다니까.”
“아버-! 아니, 마탑주가?”
그 말에 놀란 오닉스가 고개를 홱 돌렸다. 리트리의 멱살을 낚아챈 오닉스가 그의 몸을 주머니 속 동전 털듯 털어대며 말했다.
“다시 말해봐. 마탑주가? 정말 마탑주가 너희 면접에 참가했단 말이야?”
“그그으으으, 래애애앵애. 우리 하하하학장님이이이시잖아아아아.”
“오닉스. 네가 아무리 멍청해도 남을 흔들면서 제대로 된 답을 구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건 아니지?”
“…제기랄!”
레이먼의 말에 그제야 오닉스가 리트리의 멱살을 놓아주었다.
켁켁! 죽는 줄 알았네! 포레스튼의 애들은 너무 거칠어.
녹이 슨 페인트통 같은 목소리로 리트리가 징징거렸고 레이먼은 귀를 후볐다. 귀를 다 후빈 뒤에는 말없이 리트리를 응시했다.
리트리는 묘한 압박감을 느꼈고 그러다 결국 제 발 저린 도둑처럼 먼저 입을 열었다.
“레이먼? 혹시 나 아직도 용서를 빌어야 할 게 남았어?”
***
리트리라는 패를 어떤 식으로 활용하는 게 좋을까?
리트리에 대해서는 알고 있는 게 많았다. 돌아온 이후로 편지로 내내 교류했고 니콜에게 부탁해 따로 뒷조사도 했기 때문이다.
리트리버 역시 타일과 마찬가지로 성을 받았다. 리트리버 세터. 미들 네임은 없었지만 새로운 성을 받았다는 건 나름대로 귀족처럼 대우를 해주겠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그리고 리트리버 세터의 1학년부터 5학년까지의 성적은 중간 정도였지만 마검술이나 실전 마법 등에서는 언제나 최상위 석차를 받아왔다. (이 때문에 다들 리트리가 용병이나 마법 기사가 될 거라 생각한 모양이지만 리트리는 마탑을 택했다.)
또한, 니콜은 리트리에 대한 주변 학생들의 이야기도 몇 개 던져줬는데-.
– 리트리버 세터는 분명 타국의 숨겨진 왕자가 분명하다. 그렇지 않고서야 저렇게 잘생기고 능력까지 완벽할 리가 없다. 조금 철들지 않은 부분까지 완벽!
– 리트리버 세터와 검술 수업에서 얽히고 싶지 않다. 그 수업은 무조건 낙제하고 말 것.
– 리트리버 세터와 같은 수업을 들었는데 조는 모습마저 황홀. 저 얼굴로 함께 공부하는 모습을 직접 볼 수 있는 것만 해도 행복.
…별로 흥미는 생기지 않았다.
여하튼 그가 에글린턴에서 충분히 눈길을 끌 만한 학생이라는 건 레이먼도 쉽게 확인할 수 있는 정보였다. 그러니, 서머셋에게도 이건 ‘쉽게 확인할 수 있는’ 정보라는 뜻이다. 게다가, 라 디밀레에 침입했던 영법사 일로 서머셋 역시 리트리와 접점이 있었다.
“저기, 레이먼?”
“리트리, 너 그때 서머셋 왕자님과도 종종 편지를 주고받는다고 했지?”
회귀 이후, 리트리의 편지를 무시하지 않고 잘 받아준 덕분에 알게 된 정보였다.
“그런데?”
리트리가 부드럽게 웃었다.
에글린턴의 학생들에게 서머셋과 매너스는 특별하다. 대외적으로는 그 두 명이 에글린턴의 창립을 이끈 이들로 소문이 나 있기 때문이다. 매너스가 가장 열정적이었고 그 일을 서머셋이 뒷받침했다나 뭐라나. 그리고 서머셋은 매너스의 눈을 피해 에글린턴의 학생들과 자주 교류했는데, 아마 이들이 온전히 매너스의 전력이 되는 걸 막기 위함인 듯했다.
“그냥. 궁금해서.”
레이먼이 어깰 으쓱했다.
“포레스튼에는 3왕자 전하나 4왕자 전하와 개인적으로 편지를 주고받는 학생이 거의 없거든.”
“우리도 자주 오는 건 아니야. 모두가 편지를 받는 것도 아니고.”
“그럼 너는 왜 편지를 주고받는 건데?”
“글쎄? 내가 마음에 드신 거 아냐? 너야말로 서머셋 왕자님께 그리 관심이 많은 줄 처음 알았어.”
리트리가 눈을 가늘게 떴다. 의심의 눈초리였다. 너 말이야….
“서머셋 왕자님한테 관심 있어? 난 열린 마음이라 뭐든지-.”
“서머셋 선배가 누굴 개인적으로 챙기는 성격은 아니라 물어본 거야. 마탑에 들어가면 더 자주 마주칠 텐데 잘 지내보라고.”
서머셋은 아마 회귀 전에도 지금도 ‘리트리버’라는 인물에게 관심을 갖고 있을 가능성이 컸다. 마지막 반역 때 리트리라는 패가 어떻게 쓰였는지는 모르겠지만 리트리와 서머셋이 이대로 더 깊은 친분을 쌓는다면 서머셋이 어떤 계획을 세우고 있는지도 좀 더 자세히 알 수 있겠지.
레이먼의 말에 리트리가 웃으며 답했다.
“네가 말하지 않아도 그럴 거야. 하지만 알지? 레이먼? 난 그 왕자 전하보다는 내 주변 친구들이 우선이야.”
“글쎄. 상황이 닥쳐보면 알겠지.”
“그렇게 내가 못 미덥냐.”
훌륭한 마검술을 지닌 리트리를 전쟁의 전방에 세우지 않은 것도, 티키의 결계를 전쟁에 사용할 수 없게 한 일에도 전부 서머셋이 개입되어 있을 것이다.
그리고… 레이먼은 리트리를 믿고 싶었다. 적어도 편지를 자주 나누게 되면서 알게 된 리트리의 성품은 그리 나쁘지 않은 것 같았으니까.
“그런데 말이야.”
“응?”
레이먼의 방 소파에 푹 젖은 빨래처럼 늘어져 있던 리트리가 갑자기 벌떡 몸을 세웠다.
“오늘 내가 포레스튼에 몰래 숨어든 걸 다른 애들이 마물이라고 착각했잖아.”
“그런데?”
“아니, 왜 그런 생각을 했는지 궁금해서.”
마물이라는 단어에 방 안에 함께 있던 학생들의 시선이 집중됐다.
리트리가 어깨를 으쓱했다.
“마물을 본 적 없는 학생들이 검고 이상한 물체를 보자마자 그런 생각을 할 리가 없을 것 같아서. 한 번이라도 마물을 본 적이 있거나, 마물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있어야 그런 말을 할 수 있는 거 아니야?”
생각해 보니 맞는 말이었다.
하지만, 부정하고 싶었다.
저걸 내뱉은 놈이 리트리였기 때문이다.
세상에. 리트리가 저런 말을 어떻게?
레이먼이 살짝 놀란 듯한 표정으로 말했다.
“리트리, 네가 드디어 생각이라는 걸 했구나?”
“하하하, 칭찬 고마워. 그냥 그런 생각을 한번 해본 거지. 너무 심각하게 받아들이지는 마! 아, 우리 너무 재미없는 얘기만 하는 것 같아. 좀 재밌는 일 없어? 에글린턴은 요즘 재미가 없어서 포레스튼까지 온 거란 말이야.”
다시 몸을 늘어뜨린 리트리가 찡얼대기 시작했다. 오닉스는 그런 리트리의 정수리를 주먹으로 콱 쥐어박고 싶었지만 참았다. 함께 있던 타일은 리트리의 말에 동의하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두 사람을 번갈아 보던 레이먼이 질문했다.
“아카데미가 재미없는 건 당연한 거잖아.”
“그치만 요새는 좀 더 재미가 없단 말이야.”
“요새는?”
“졸업하는 애들을 대상으로 이상한 교육을 시작했거든.”
“이상한 교육?”
회귀 전까지 알지 못했던 일이었다. 레이먼이 관심을 보이자 살짝 신이 난 리트리의 말이 빨라졌다.
“이틀에 한 번 정도 외부 마법사들이 와서 강의를 해. 주로 왕실에서 오는 거라 졸업하는 학생들은 의무로 들어야 하는데 그 수업이 완전 최악이야. 그렇지, 타일?”
“응. 재미도 없고 의미도 없어.”
타일도 뚱한 얼굴이었다.
“대체 뭘 가르치는데?”
가만히 듣던 유타가 질문했다.
외부에서 교수나 마법사를 초빙해 수업을 진행하는 건 그리 드문 일이 아니었다. 그 수업이 그리 흥미롭지 않다는 것도 이미 모두가 잘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딱 한 번 들어봤는데, 뭔가 쓸모없는 걸 가르쳐. 뭐 마법사의 마음가짐이라던가 왕성에 들어오면 누구한테 잘 보여야 하고 줄을 잘 타는 방법이라던가. 우리가 평민이라 그런 줄을 잘 타는 게 중요하다는 말도 하더라고.”
“확실히 재미는 없겠네.”
레이먼이 어깰 으쓱했다.
“하지만 누군가한테는 필요한 수업인 것 같은데.”
오닉스가 말했다.
“줄을 잘 타고 싶은 놈들도 있겠지.”
그의 말대로 권력에 좀 더 욕심이 있는 인간이라면 분명 그 수업은 단순히 재미없는 시간 낭비가 아니라 꼭 필요한 수업일 것이다. 리트리가 그런 쪽으로 관심이 없어서 그렇지. 오닉스의 말에 리트리는 “물론 나도 그건 동의하지. 하지만 나한테는 쓸데없고 재미없는 걸 어떻게 해?”라고 말한 뒤, 다시 소파에 몸을 홱 눕혔다.
그리고는 다음 말을 이었다.
“그래도 그 수업이 좋은 점은 있어. 수업을 다 들으면 상품을 주거든.”
“상품?”
“마력석을 나눠줘, 상등품까지는 아닌데 평민은 중등품도 구하기 어려우니까. 타일은 그래서 마력석을 벌써 3개나 모았다니까?”
마력석? 마력석을 그냥 뿌린다고?
잠시 생각을 고르던 레이먼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 마력석 혹시 지금도 갖고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