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ill Make You a King as a Possessor RAW novel - Chapter (196)
빙의자가 왕으로 만들어 드립니다-196화(196/275)
포레스튼에서 에글린턴으로 가는 데에는 두 가지 방법이 있었다.
첫 번째는 포레스튼에 찾아온 이들처럼 허락을 구하지 않고 몰래 다른 아카데미에 숨어드는 것이다. 검지와 중지를 쭉 세운 리트리가 말했다.
“숨어드는 방법은 쉬워. 왕성의 담보다 높게 날다가 경비를 피해 낙하하면 되는 거지. 두 번째는-.”
“떨어져 뒤진다는 말을 복잡하게 하는 이유가 있냐?”
오닉스가 툴툴대는 목소리로 중얼대자 리트리는 그의 어깨에 팔을 올리며 능청스럽게 답했다.
“그게 무슨 말이야, 오닉스. 너무 서운하게 말하지 마.”
“쯧.”
“허락만 받으면 마차를 타고 가면 되잖아. 이번 건은 허락을 구하는 편이 좋을 것 같은데.”
“유타 말이 맞아. 두 번째 방법은 허락을 받고 고급스러운 마차를 타고 우리 아카데미로 가는 거지. 대신 에글린턴 방문 일지에 너희들이 이름이 기록되겠지만!”
리트리가 활짝 웃으며 허공에 글자를 쓰는 시늉을 했다.
포레스튼과 더불어 에글린턴은 단순한 교육기관이 아닌, 국가의 핵심 전력인 마법사를 교육하고 양성하는 곳이었다. 두 곳을 방문한 이들은 당연히 제 이름과 출신, 그리고 소속을 하나도 빠짐없이 방문일지에 기록해야만 했다. 방문일지의 기록은 누구나 열람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종종 일어나는 크고 작은 사건에서 도움이 되곤 했다.
그리고 그런 기록에 남기 싫은 이들만이 아무도 몰래 아카데미에 숨어들려고 하는 것이다. 리트리처럼 단순히 재미를 위해 숨어드는 경우도 있겠지만 대다수의 경우는 전자에 속한다.
“아카데미 방문 허락은 아카데미 총괄 교수님께 부탁드려야 해. 그 총괄 교수님이 바로 클레임 교수님이고.”
레이먼은 고민했다. 기록에 남는 것과 남지 않는 쪽 어느 쪽이 이득일까?
“마차를 타고 가자.”
고민을 마친 레이먼이 소파에서 일어났다. 오닉스는 대놓고 볼멘소리를 냈다.
에엑-! 귀찮게 왜 허락을 구해야 해? 하고 투덜대는 소리가 방 안을 가득 채울 정도였지만 레이먼은 귀를 후비는 걸로 가뿐히 그 소릴 무시했다.
“테디도 데려가는 게 좋을까?”
“예전에 테디도 에글린턴 구경을 하고 싶어 했었어. 교복의 디자인이 아주 정교해서 기회가 있을 때 한번 잔뜩 보고 싶다고 한 적이 있지.”
교복을 보고 싶다니. 지극히 테디 베어릴스러운 이유였다. 레이먼은 여전히 투덜대는 오닉스의 멱살을 쥐고 방 밖으로 쫓아낸 뒤, “우리가 허락을 구할 테니 넌 테디 데려와.”라고 말하곤 문을 닫아버렸다. 시원시원한 행동에 리트리가 배를 움켜쥐고 호탕하게 웃었다. 옆에 서 있던 타일은 “저거 친구 맞아요?”라고 질문한 뒤, 인상을 찌푸렸다.
“그럼 우리는 허락을 구하러 가야 하니까. 잠깐 기다려. 음…….”
레이먼은 서랍장 안에서 무언가 뒤적거렸다. 이윽고 종이 한 장을 찾은 레이먼이 오닉스가 떠난 걸 확인한 뒤, 말했다.
“좋아. 찾을 걸 찾았으니 가볼까.”
“지금 바로?”
리트리가 조금 전 기억을 떠올렸다.
정면으로 마주친 클레임 교수는 라 디밀레에서 짧게 대화를 나누었을 때보다 훨씬 무서웠다. 리트리가 마음의 준비를 하겠다며 테이블에 머리를 박는 사이, 레이먼이 말했다.
“클레임 교수님께 바로 가는 거 아니야.”
“그러면?”
유타가 물었다.
“걔. 걔 챙겨 가야지.”
“걔?”
“교수님이 훔쳐간 결계 장인.”
***
실리드 교수는 간만에 발견한 인재에 손이 떨렸다. 티키에게 자신이 아끼는 차와 쿠키를 내어준 그는 그녀에게 언제 결계에 관심을 가졌는지 왜 여태 관련 논문을 내지 않았는지 만약 관심이 있었다면 왜 자신을 찾지 않았는지 질문했다. 결계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아이라면 이 실리드 교수를 찾는 게 당연한 것을! 어떻게 이런 일이!
과장 섞인 자세로 이마에 손을 올린 채 주변을 몇 바퀴째 돌고 있는 그를 티키는 한심하게 바라보며 설명했다. 결계에 관심을 가지게 된 지 얼마 되지 않았고 에글린턴에서 결계는 그리 중요한 과목이 아니며 자신은 실리드 교수가 결계로 유명한지 전혀 알지 못했다고 말이다.
“결계가 주요 과목이 아닌 것은 맞다만 필수 이수 과목에는 들어가지 않나?”
“에글린턴에서 결계는 교양 과목에도 들어가지 않아요.”
“뭐?”
실리드가 이번에도 과장된 목소리와 함께 소파에 풀썩 앉았다.
“결계가 교양도 아니라고?”
“에글린턴에서 방어 계열 마법은 거의 배우지 않아요.”
“에글린턴은 포레스튼과 교육 과정이 비슷하지 않았나?”
“몇 가지 부분만 제외하면 비슷하다고 말할 수 있어요. 실제로 왕실의 역사나 공격 계열, 원소 계열 마법, 치료 마법은 제대로 배우고 있거든요. 다만 결계는 문자를 읽거나 암기해야 할 분량이 많아서 뒤로 밀린 듯해요.”
티키의 말에 잠시 멍한 얼굴이었던 실리드가 고개를 끄덕였다.
‘문자도 못 읽는 아이들이 필수로 배울 수 있는 수업도 아니니. 전력만 키울 요량인가.’
평민 중에선 스턴의 기본 문자도 읽지 못하는 아이들이 많았다. 아카데미 입학 후 기본 문자를 읽고 쓰는 것부터 배워야 하니 결계에 쓰이는 고대 문자와 수식까지 외울 시간이 거의 없었다. 티키는 남들보다 배우는 속도가 훨씬 빨랐기 때문에 결계 과목도 수강할 수 있던 것이다.
“에글린턴 전체에서 결계 과목을 수강한 학생은 몇 명이지?”
“저희 학년에선 저뿐이에요. 워낙 수가 적어서 학년 구분 없이 배우거든요. 학년을 구분하지 않는다면 총 4명입니다.”
“그중에서 네가 제일 유능하고?”
“나이가, 제일 많으니까요.”
티키는 별거 아니라는 듯 고개를 숙였다.
겨우 이런 일로 이 정도 칭찬을 받는 게 익숙지 않아서였다.
하지만 실리드의 생각은 달랐다.
‘이 아이는 천재야.’
실리드는 티키가 백 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천재라고 생각했다.
결계 마법은 마력이 많다고 잘 다룰 수 있는 게 아니다.
문자에 대한 이해가 확립되어야 하고, 고대 문자를 암기하고 사용할 수 있어야 하며 동시에 마법 수식의 원리도 알아야 한다. 여러 지식을 복합적으로 사용할 수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실리드는 차를 한 잔 들이켠 뒤, 조심스레 질문했다.
“졸업하면 어디로 취업할 거지?”
“저는, 일단 마탑으로 가려고 생각 중이에요.”
“네가…… 마탑으로?”
결계에 이 정도로 재능이 있는데 마탑으로 간다고?
실리드는 이런 인재가 마탑에 가는 게 이해가 가지 않았다.
“네가 결계 마법에 재능이 있는 건 알고 있었지?”
“…조금은요.”
“그런데 왜 마탑을 택한 거야? 마탑은 연구를 주로 하지만 결계와 같은 마법진이 아니라 아티팩트 위주라 네가 뜻을 펼치기에 좋지 않아.”
물론 아티팩트에도 마법진이 활용되고, 마탑에서 새로운 마법진을 개발하긴 했지만 결계를 해제하고 새로운 결계를 만드는 데에는 연구실이 더 적합할 텐데.
의문을 잔뜩 품은 그의 질문에 티키가 퉁명스레 답했다.
“결계에 그 정도로 흥미가 있진 않아요.”
“거짓말.”
실실 웃던 실리드가 처음으로 무표정한 얼굴로 말했다.
“너무 티 나는 거짓말이잖아. 관심이 없는 애가 내 결계의 허점을 뚫고 안으로 들어올 리가 없잖아. 천재와는 별개의 문제야. 보통의 결계는 고대 문자를 쓰지 않아. 배울 필요도 없지.”
티키는 천재다. 결계의 천재가 아니라, ‘문자’의 천재.
평민으로 태어나 문자를 그렇게 빨리 깨우치고 고대 문자, 마법진의 문자까지 모두 암기할 정도니까. 하지만 실리드의 결계는 단순히 문자에 대한 이해뿐만 아니라 고대 마법진에 대해서도 지식이 해박해야만 해제가 가능했다. 게다가 우연이라 볼 수도 없는 것이 한 겹도 아닌 사중으로 이뤄진 마법진이었다. 복잡한 수식을 풀어낸 기막힌 우연이 4번이나 들어맞았을 리 없지.
“결계를 연구하고 싶지?”
“……연구실은 연봉이 너무 적어요.”
“돈 때문에 연구를 하지 않으니까.”
그래서 연구실엔 귀족이 많았다. 연구실에 들어오는 귀족은 돈과 명예에 부족함이 없었고 그들은 오로지 지식에 대한 열망만이 있었다. 그래서인지 포레스튼에 입학했던 평민들 대다수는 용병으로 나가거나 타 귀족 가문의 과외 선생이 되곤 했다. 그들은 돈이 필요했다.
“하지만 전 돈이 필요해요. 연구실에서 일하면 제가 원하는 만큼 돈을 모을 수 없잖아요.”
“그럼 교수님께서 돈을 더 주시면 되겠네요.”
그때, 연구실의 문이 벌컥 열렸다. 열린 문으로 노크도 없이 성큼성큼 걸어 들어온 이는 바로 레이먼이었다. 그는 허락을 구하지도 않은 채 실리드 옆으로 거침없이 걸어갔다. 실리드가 자신들의 이야기를 당최 어떻게 엿들었는지 따지기도 전에 레이먼은 티키를 바라보며 말했다.
“교수님이 티키를 놓치기 싫으시면 그만큼 투자하면 되니까요. 연구실에 취업한 졸업생은 교수 장학금을 받을 수 있잖아요?”
장학금?
그때였다.
“네 말이 맞아! 그 방법이 있었지?”
실리드는 레이먼의 조언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책상 서랍을 뒤지기 시작했다. 서랍에서 종이 몇십 장이 허공에 날린 뒤에야 실리드는 서류를 하나 손에 들고 티키 앞에 돌아왔다.
“이게 뭔가요?”
“교수 장학금 서류야. 내가 그동안 후원하고 싶은 제자가 없어서 서명만 해두고 제출하는 건 까먹고 있었는데 너라면 얼마든지 가능하지! 교수 장학금은 왕실 마법사의 연봉만큼 매해 받을 수 있어.”
티키는 당황스러웠다. 그녀가 잔뜩 구겨진 눈썹으로 질문했다.
“이렇게 좋은 걸 저한테요?”
“당연하지! 네가 그럴 가치가 있으니까!”
레이먼이 씨익 웃었다.
아마 전생의 실리드는 티키에 대해 전혀 알지 못한 모양이었다. 그는 레이먼이 전쟁에 참가하고, 서머셋이 왕위에 오를 때까지 제자를 단 한 명도 들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니 바뀐 것이다. 티키의 미래도, 실리드의 미래도.
“하지만 장학금이 끊기면 또 박봉으로 돌아가잖아요.”
“그땐 마탑으로 돌아가면 된다! 내가 추천서를 써줄 수 있으니까.”
“…….”
고민하는 티키의 손을 리트리가 잡고 깃펜을 쥐여줬다.
“리트리!”
레이먼을 따라 들어온 리트리와 어느새 그 옆에 자리한 타일도 다가와 깃펜에 잉크를 묻혔다.
“타일까지!”
“티키, 너 결계 마법 좋아했잖아.”
“네가 도서관에 혼자 늦게까지 남아 결계 관련 책을 보고 있던 걸 우리가 모를 줄 안 거야?”
“…….”
“하고 싶은 게 있으면 하면 되지! 너한테 그럴 능력도 있다잖아!”
“하지만 나는 너랑 마탑에 가기로 약속했잖아.”
“친구는-.”
리트리가 환하게 웃었다.
“친구가 가는 길을 응원해야 할 의무가 있어. 그러니 난 네가 어떤 길을 가도 응원해.”
“…….”
티키는 제 앞에 놓인 장학금 관련 서류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실리드 교수의 사인은 이미 되어 있었다. 이제 티키만 서명한다면 그녀는 원하던 공부를 원하는 돈을 받으면서 할 수 있을 것이다.
“나도 네가 결계 마법을 좀 더 배웠으면 좋겠어.”
그들의 이야길 듣던 유타가 티키에게 다가갔다.
“내가 너를 잘 알지는 못하지만, 네가 교무실에서 결계 마법을 푸는 과정을 이야기할 때, 그때 그 표정이 내가 본 네 표정 중에 제일 다채로웠거든.
이렇게 모두. 티키는 실리드 교수의 집무실로 들어와 자신을 둘러싼 이들을 한 번 훑어보았다. 그녀는 짧은 한숨을 내쉬고선 서류를 집어 들었다.
“서명은.”
“…….”
“서류를 전부 확인하고 할게요.”
“좋아!”
“잘 생각했어!”
“그렇게 끌어안으면 숨이 안-!”
“축하해!”
“리트리!!!”
실리드 교수 역시 그녀의 대답에 행복해하며 장미꽃을 휘날리며 뛰어다녔다.
저 세 명이 웃는 얼굴로 서로를 끌어안는 광경은 왠지 모르게 가슴을 시큰거리게 했다. 마음이 따뜻해지는 장면을 바라보며 레이먼은 속으로 생각했다.
이걸로 에글린턴에.
‘변화를 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