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ill Make You a King as a Possessor RAW novel - Chapter (20)
빙의자가 왕으로 만들어 드립니다-20화(20/275)
방 전체에 도청 마법을 깨달은 건 건물에 발을 들였을 때부터였다.
지난번 한 차례 찾았을 때와는 다른 위화감. 문지방을 넘어 들어설 때 느껴지는 공기의 이질감. 그 묵직하고 불쾌한 감각.
물론 일반적인 1학년이라면 느끼지 못했을 수도 있다. 부족한 마력 양 대신 감지 능력이 발달한 레이먼조차도 알아차리기 어려웠으니까.
그러나 레이먼이 지닌 방대한 지식이 그 부족함을 메꿨다. 얼마 전 도서관에서 읽은 ‘도청 마법’에 대한 설명과 공간에서 느껴지는 분위기가 정확히 일치했기 때문이다.
레이먼은 도청 마법이 걸려 있다- 라는 확신이 서자마자, 이렇게 행동하기로 했다.
“네, 맞아요.”
“왜 그런 거야?”
“친구라서요.”
“거짓말도 잘하네.”
“정말이에요. 소중한 친구라서 구한 것뿐입니다.”
레이먼의 모범적인 답변을 들은 그들은 팔짱을 낀 채, 레이먼을 내려다보며 저들끼리 작게 숙덕였다.
‘얘가 소문의 그 애란 말이야? 너무 작지 않아?’
‘1학년 중 유일한 버틀러잖아. 그럼 맞겠지.’
왜소한 몸집에 비해 압도적인 마력 양이 느껴지는 것도 아니다. 그렇다고 대마법사의 품격이 보이는 것도 아니고. 포레스튼 입학 전에는 스플린 가에서 모자란 첫째 아들을 숨긴다고 소문이 돌았을 정도였는데… 전부 연막이었나? 근데 그 공작가에서 그럴 필요가 있나?
그들 중 한 명이 삐딱한 태도로 말했다.
“정말로? 왕자가 소중한 친구라서 구했을 뿐이라고?”
레이먼이 동그랗게 눈을 뜨며 대꾸했다.
“당연하죠. 자꾸 이상한 소릴 하시네요. 선배님들도 서로가 위험에 처하면 당연히 구하실 거잖아요.”
“그, 그렇지.”
“당연하지. 그냥 확인차 물어본 거야.”
“그렇죠?”
레이먼이 생글 웃었다.
블랭킷은 한 발짝 물러나 그들의 대화를 엿듣고 있었는데, 이는 도청 마법과는 별개로 레이먼의 목소리가 꽤나 크고 또랑또랑했기 때문이다.
‘역시 심성이 고운 아이라니까.’
소문만 들었을 땐 ‘혹시나’라는 마음도 있었다. 5왕자에 붙고 싶어 하는 1학년인가- 라는 생각 말이다. 하지만 오늘 그의 대화를 들으니 확실히 그런 걱정은 기우였던 모양이다.
“다들 모였구나?”
중앙 계단의 문이 열리며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확성 마법을 덧씌웠는지 크게 소리내지 않았는데 목소리가 방 전체를 울렸다.
“새로 온 인원들과는 다들 인사 나누었을까?”
서머셋이 웃으며 난간을 잡았다.
레이먼이 속으로 혀를 끌 찼다. 서머셋이 대체 어떤 의도로 자신을 이 학생회에 넣었는지 당최 이해할 수가 없었다. 레이먼은 공식적으로 5왕자의 목숨을 구해준 생명의 은인이었고 서머셋은 비공식적으로 5왕자와 덤으로 납치된 공작가 자제 레이먼 납치범의 흑막이기도 했다.
그런 상황 속에서 레이먼을 굳이 학생회에 심은 이유가 없을 리가 없었다. 없는 편이 더 이상하지.
‘뭐, 신경 쓰이면 물어봐야지.’
***
“하하하, 그게 신경 쓰인 거야?”
“네.”
“너무 그렇게 인상을 찌푸리진 마. 못생겨지잖아.”
“죄송합니다.”
4왕자는 생각보다 장난치는 걸 좋아했다. 그는 잠시 고민하듯 생각을 고르더니 입을 열었다.
“내가 너를 여기에 꽂은 건, 내 동생을 구해준 것에 대한 감사 치레야. 내 동생의 친구로 앞으로 잘 헤쳐 나가려면 인맥이 더 많이 필요할 테고, 네가 아는 것보다 학생회 입회에는 그런 장점이 훨씬 많거든.”
“……인맥이요?”
그렇지, 인맥이 필요하긴 하지. 레이먼은 순간 감정이 앞서 나갈 뻔한 것을 반성했다.
“네가 싫으면 관두면 되고. 포레스튼 학생회는 학생들의 의견을 존중한단다. 하지만 오늘 환영식까지는 즐기도록 해봐. 앞으로 네가 생활하는 데 도움이 될만한 선배들도 많이 있잖아. 예를 들어, 네가 조금 전에 대화한 블랭킷.”
서머셋이 눈짓으로 블랭킷을 가리켰다.
“블랭킷은 상인 집안이지만 마법 실력도 우수해. 재력과 실력을 둘 다 갖춘 사람은 귀족 중에서도 보기 드물어. 친해지면 좋을 거야.”
“조금 전에 인사 나눴는데… 예, 참고하겠습니다.”
돈 많은 놈들은 어느 세상에서나 도움이 되지.
“좋아, 레이먼. 정말 마지막으로 다시 한번 감사 인사를 전하지. 내 동생을 구해줘서 고마워.”
“당연한 일이죠. 선배야말로 괜찮으세요?”
“뭐가?”
“여러 가지로요.”
예언도 그렇고, 범인으로 지목당하는 점도 그렇고. 레이먼은 뒷말을 삼켰다.
“난 괜찮아. 원래 형제 사이의 다툼은 제일 좋은 가십거리거든.”
서머셋이 부드럽게 웃으며 자릴 뜨고 레이먼은 주변을 살폈다.
‘너무 의심했나. 좋은 사람인 것 같기도 하고.’
그리고 서머셋의 말한 대로 학생회는 인맥을 위한 거대한 보물창고나 다름없었다. 기본적으로 다른 클래스의 선배들과 친해질 기회는 클럽이나 생활관 휴게실이 아니면 거의 없다시피 했고 학생회에는 그런 선배들 가운데서도 꽤 좋은 가문, 좋은 성적의 선배들만 모여 있었다.
즉, 앞으로 자신에게 도움이 될 가능성이 큰 사람들이란 뜻이다.
‘블랭킷 선배가 소개해준 사람은…’
레이먼이 이름을 알고 있는 사람은 블랭킷이 소개했던 피데스 클래스의 4학년 디찬, 크리스. 그리고 기프트 클래스의 챈들러 정도였다. 물길을 가로지르는 연어처럼 레이먼은 로비를 어느새 가득 채운 학생회 일반 회원들을 헤집고 디찬에게 다가갔다.
디찬은 푸른 머리에 차가워 보이는 인상을 고수한 채, 포도 주스를 마시고 있었다. 아니지… 마시고 있는 게 맞나?
“이런. 제기랄.”
“이 개 –같은.”
“왜 안 되는 거야?”
그녀가 아무리 입에 주스를 털어 넣어도 유리컵 안의 포도 주스는 전혀 줄지 않았기 때문이다. 얼음 마법인가?
자연스레 흘러나온 마력이 포도 주스를 얼려버린 모양이었다. 유리컵 표면에 작은 성에가 낀 게 보였다. 레이먼은 슬쩍 그녀에게 다가가 말했다.
“도와드릴까요?”
거절할 줄 알았던 디찬이 잔을 내밀며 말했다. 워낙 냉담해 보이는 인상 때문인지 그녀 주위엔 아무도 없었다.
“그렇게 해주면 고맙지. 어떻게? 온기 마법?”
“근데 제가 1학년이라 온기 마법은 배운 적이 없어서요. 잠시만 실례할게요.”
레이먼은 편하게 다가가 고블릿의 아래를 쥔 그녀의 손에 제 손가락을 살짝 겹쳤다. 디찬이 놀라 손을 빼려 하다 멈췄다. 손끝을 시작으로 휘몰아치던 마력이 정리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다른 의미로 눈을 동그랗게 뜬 디찬이 레이먼을 바라보았다. 키가 비슷해서 올려다볼 필요도 없었다.
“제가 마력 양이 적어서요. 그러다 보니 남의 마력을 흡수하는 마법을 쉽게 익힐 수 있었어요. 이제 선배가 온기 마법으로 주스만 살짝 녹이시면 될 거예요.”
“그 마법, 1학년 과정엔 없지 않아?
“마력이 부족해도 쓸 수 있어서 독학했어요.”
레이먼이 한 발짝 물러섰다. 편하게 주스를 마신 디찬이 잔을 내려놓으며 물었다.
“레이먼 맞지? 이름표는 재킷 안이 아니라 위에 달아.”
“아, 죄송합니다.”
“어쨌든 고마워. 난 디찬이야. 선배들은 이름표를 달지 않는 게 전통이라.”
“괜찮아요. 디찬 선배님도 버틀러를 구하시죠?”
“없어서 오긴 했는데 모든 학생회 주요 멤버가 버틀러를 반드시 구해야 하는 건 아니라서.”
“그렇군요.”
“너는? 원하는 선배라도 있는 거야?”
“있긴 한데…고민중이에요.”
디찬은 환영식 파티를 물끄러미 바라보다 이내 고갤 내저었다.
“잘은 모르겠지만, 크리스의 버틀러만은 절대로 되지 마. 절대로.”
“이유가 있나요?”
“쟤 풀네임이 뭔지 알아? 크리스 세바스찬 파리앙이야.”
“파리앙이요? 그럼 좋은 가문이잖아요. 그런데 왜 추천하지 않으세요?”
“마침 이쪽으로 오네. 만나보면 알아.”
디찬이 이토록 혐오스러운 감정을 내비치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레이먼은 살면서 정말 다양한 사람을 만나봤다고 여겼다.
전생에는 사기꾼부터 시작해서 청부 살인마.
이번 생에는 엄마 얼굴을 완드에 박아넣은 동급생.
이제 와서 딱히 놀랄만한 인간 군상은 없었다. 디찬은 그런 레이먼은 인생을 몰랐으니 당연한 말이었지만.
한편 레이먼이 고민하는 사이 디찬의 격렬한 혐오를 한 몸에 받는 중인 크리스는 당당한 발걸음으로 그들에게 다가왔다. 정확히 말하면 당당하다기보단 대형견의 신난 발걸음이라고 해야 할까?
멈춘 그의 시선은 레이먼이 아니라 디찬에게 꽂혀 있었다. 키가 6피트 2인치는 될 것 같은 남자가 양팔을 활짝 벌리며 말했다.
“디찬! 우리 작은 아기 고양이! 해야 할 일은 모두 끝낸 거야?”
음?
“크리스, 시끄러워.”
“하아, 우리 꽃 같은 디찬에게 이런 허드렛일을 시키는 학생회장이라니! 내가 회장 자리를 빼앗아 버릴까, 디찬? 그럼 네게 내 옆자리를 주겠어. 아니지, 디찬! 회장 자리를 네게 주어야지. 내가 지금 무슨 생각을 한 거지? 디찬, 난 너보다 위에 설 생각이 없어, 나의 사랑. 나의 꿀.”
절로 인상이 찌푸려지는 고백 공격이었다.
‘확실히 이상한 사람이다.’
제법 근엄한 얼굴로 걸어왔던 그는 잔뜩 풀어진 얼굴로 디찬을 꽉 끌어안았다. 어찌나 다정한 포옹이었는지 양쪽 볼을 서로 포갠 두 사람의 모습은 언뜻 보면 닭살 돋는 잉꼬 커플이나 다름없었지만, 디찬의 표정이 보였던 레이먼은 차마 그 말을 하진 못했다.
디찬이 크리스의 가슴을 겨우겨우 밀어내며 입을 열었다.
“멍청한 소리 그만해, 크리스. 게다가 이름표를 교부하는 건 중요한 일이야.”
“디찬. 네가 그렇게 말한다면 모두 맞는 말이지. 내가 하는 말이 뭐가 중요하겠어. 네가 회장이 되라고 한다면 나는 회장이 되고, 너만을 위한 개가 되라고 한다면 나는 너의 충실한 개가 될 거야.”
“이제 내 말이 무슨 말인지 알겠지?”
레이먼은 고개를 끄덕였다.
“두 사람은 약혼한 사이인가요?”
“일단은.”
“결혼까지 할 사이지. 네가 레이먼인가? 반가워. 내가 없는 사이 내 보물을 잘 챙겨줬더구나.”
그의 키에서 오는 압박감은 확실히 엄청났다. 손아귀 힘은 블랭킷만큼 세지 않아 다행이라 여기며 레이먼은 고갤 돌렸다.
“레이먼이면 이번에 들어온 신입생이지? 네가 따를 선배는 잘 선택해야 할 거다. 네 앞으로의 아카데미 생활을 책임질 수도 있거든. 우리 디찬을 도왔으니 나는 언제든지 환영이다.”
레이먼이 귀를 쫑긋 세웠다. 디찬이 이상한 놈이라고 하긴 했어도 어찌 됐든 크리스는 여전히 좋은 가문의 자제임은 틀림없었다. 저 남자의 사랑만 방해하지 않는다면 크게 신경 쓸 일도 없으리라. 그럼 조용하고 편하게 아카데미 생활을 마무리 짓고 유타를 왕 자리까지 올릴 수 있을지도 모른다. 방법은 모르겠지만. 사실 지금은 그냥 서머셋과 그 형이 왕좌를 포기하고 내려왔으면 좋겠다.
레이먼이 여러모로 복잡한 생각을 하는 사이, 크리스는 자신의 버틀러가 되면 함께 해야 할 일과를 읊기 시작했다.
“일단 새벽 5시에 기상해서 식당 봉사를 함께 하면 되겠군. 조리하시는 마법사 아주머니분들이 늘 일손이 부족해 힘들어하시거든. 요리 봉사를 마친 이후에는 수업 시작 30분 전까지 교내 정화 봉사를 하게 될 거다. 내 버틀러들은 청소 봉사를 좋아했지. 예습은 해야 하니 수업보다 일찍 강의실에 들어가는 건 당연한….”
“죄송합니다. 사실… 마음속에 둔 분이 따로 계셔서요.”
한참 자신의 일과를 읊던 크리스의 목소리가 잠시 잠잠해졌다. 그리고 말했다.
“그래? 누구지?”
“챈들러 선배님이요.”
“누구? 챈들러 아이작?”
이번에도 디찬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걔를 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