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ill Make You a King as a Possessor RAW novel - Chapter (208)
빙의자가 왕으로 만들어 드립니다-208화(208/275)
도련님의 시종으로 일한 지 10년이 넘는 세월.
그만두고 싶다고 생각한 적은 수도 없이 많지만 실제로 관둔 적은 없었다.
그래도 평생 충성을 바치기로 맹세했는데.
“후우.”
니콜이 크게 한숨을 쉬었다.
그는 레이먼이 내민 포스터를 재차 살폈다. 뒤집어도 보고 거꾸로 보기도 하고 눈을 깜빡이고 다시 보기도 했다.
역시나, 포스터 위 글자는 변하지 않았다.
바텔바흐 공국의 정식 기사단 모집.
도련님이 대체 생각이신 거지? 설마하니 진심으로 내가 이 기사단에 붙기를 기대하시는 건 아닐 테고.
이리저리 머릴 굴리던 니콜이 드디어 입을 뗐다.
“도련님, 제가 마음에 안 드시면 말로 하셔야지요. 이런 식으로 내쫓으시다니. 이 니콜, 너무 슬픕니다.”
니콜이 눈물을 닦는 척 셔츠 소맷자락으로 눈가를 문질렀다.
레이먼의 말이 거짓이길 바라는 니콜의 기대에 무색하게, 레이먼은 뚱한 얼굴로 답했다.
“뭔 소리야? 내가 왜 너를 내쫓아?”
“하지만 기사단에 입단하라고 하셨잖아요.”
“그러니까. 그건 일을 시킨 거지, 널 내쫓은 건 아니잖아. 그리고 나도 입단할 거야.”
니콜은 입을 더 크게 벌렸다. 자신은 시종이라 괜찮다고 쳐도, 스턴 왕국의 공자가 바텔바흐의 기사가 된다는 소리는 더 미친 이야기 아닌가.
“아니, 도련님. 이건 바텔바흐 공국의 기사단이에요. 다시 확인해보실래요?”
“니콜, 입.”
“도련님이 허락해주셨으면서.”
“그러니 내가 원할 때는 다물어야지. 뭐가 문제야?”
“도련님은 장차 공작가의 주인이 되실 분이세요. 그런 분이 한낱 공국의 기사단에 들어간다니. 도련님의 진짜 신분이 밝혀지면 국가 문제가 될 수도 있는 사항이죠.”
레이먼은 진심으로 감탄했다. 근육만 무식하게 커다란 니콜이 이런 생각까지 할 수 있는 녀석이었나?
니콜이 뭐라든 결정을 번복할 생각 따위 없었다. 레이먼이 가볍게 어깰 으쓱했다.
“안 들키면 되잖아.”
“오, 주스테 신이시여. 만약 들키면 어쩌시려고요.”
“마법으로 변장할 거니까 괜찮아.”
단호한 말투에 니콜은 제 주인이 고집을 꺾을 생각이 없다는 걸 빠르게 깨달았다.
니콜이 되물었다.
“그럼 기사단은 대체 왜 들어가고 싶으신 건가요?”
“바텔바흐의 검술이 얼마나 훌륭하면 2왕자를 홀렸나 싶어서. 확인해보려고.”
“그런 이유라면 굳이 기사단에 들어가야 하나요.”
“더 이상 질문은 금지야, 니콜.”
레이먼이 입술 위로 검지를 올리며 당부했다.
어차피 그는 니콜에게 전부 밝힐 생각이 없었다. 굳이 니콜을 위험에 처하게 하고 싶진 않았기 때문이다.
니콜을 함께 기사단에 입단시키는 이유는 간단했다. 자신이 다른 곳에 있는 사이, 기사단의 전체 동향을 감시할 인물도 필요했기 때문이다.
‘영법사를 직접 마주치게 할 생각은 없으니까.’
그 사이 니콜은 반항을 포기한 듯했다. 그는 단념한 얼굴로 말했다.
“그래요. 도련님의 충성스러운 니콜이 뭔들 못하겠어요. 그럼 딱 하나만 더요. 방학이 끝나도 남아 있으실 건 아니죠?”
“당연하지. 돌아갈 거야.”
“일단…… 알겠습니다. 따르겠습니다.”
결국 니콜은 투덜대며 짐 정리를 시작했다. 기사단 입단을 그렇게 반대하면서도 니콜은 자신의 실력이 부족할지도 모른다는 소린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입단 자체는 자신이 있단 소리였다.
그런 자신감은 나쁘지 않았다.
주인으로서 괜히 뿌듯하기도 했다.
레이먼은 그 감정은 속에 숨긴 채 퉁명스레 입을 열었다.
“그리고 니콜, 짐 정리만 하고 네 방은 따로 잡아. 내일 아침 9시에 다시 오면 된다.”
“도련님과 함께하면 1인실을 쓸 수 있어서 좋다니까요. 그럼 그때 뵙겠습니다.”
***
“케이,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하니?”
“아, 어머니.”
바텔바흐 공국에 도착해 집으로 향한 케이는 평화로운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어머니와 함께해서 행복하다는 생각이지요.”
“어머, 우리 둘째 아들. 네 애교 덕분에 요즘 아주 힘이 나는구나.”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대를 이어 남작이 된 형님과 어머니. 두 가족과 함께하는 저택이 케이에게 가장 행복한 공간이었다. 그런데 아주 살짝 불안한 점이 있다면….
‘왜 연락이 없지?’
그놈한테서 아무런 소식이 없다는 점이었다. 공국에 도착해 헤어진 지 무려 2주 반이나 지났는데 말이다. 사고라도 칠까 싶어 일부러 통신 스크롤도 주고 왔는데.
무슨 일이라도 생긴 건가? 아니, 생겼으면 이렇게 조용할 리는 더더욱 없었다.
조용하니 오히려 불안했다. 적어도 검술 스승을 붙여달라는 연락이 따로 올 줄 알았다. 신분을 숨기고 몰래 넘어온 탓에 공작가의 힘도 쓰지 못하니 따로 검술을 배울 만한 사람을 구할 수도 없을 텐데?
어머니와의 티타임에도 집중하지 못한 채, 케이는 창문 밖 풍경을 멍하니 응시했다.
그리고 무언가를 깨달았다. 순식간에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
케이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테이블 위 찻잔의 차가 살짝 넘쳐흘렀다.
“케이, 무슨 일이니?”
“어머니. 혹시 오늘이 기사단 모집 신청을 하는 날인가요?”
“어머. 벌써 그렇게 됐구나. 아마 그럴 거야. 그래서 하늘이 이렇게 소란스러운 거 아니겠니.”
바텔바흐처럼 작은 공국에서 기사단 입단 시험은 큰 행사 중 하나였다. 능력만 있다면 집안을 일으킬 수도 있는 기회였기 때문이다. 물론 귀족인데다가 집안에 마법사까지 있는 케이의 가문은 굳이 기사단에 입단할 필요도 없었지만 말이다.
“어머니, 저 잠시 나갔다 오겠습니다.”
“어머, 무슨 일이 있는 거니?”
“잊고 있던 약속이 갑자기 떠올라서요.”
케이는 서둘러 옷걸이의 망토를 챙겨 밖으로 나섰다.
그는 망토 주머니에 있던 연락 스크롤을 꺼내 펼쳤다. 그리고 스크롤을 쫙 찢으며 레이먼의 이름을 불렀다.
치직거리는 소리가 들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웅성거리는 소음이 크게 울렸다. 이건, 레이먼이 사람들이 많은 공간에 있단 소리였다.
예를 들면, 기사단 시험 신청 장소라든가.
“레이먼, 너 지금 어디야?”
[ 왜? ]“연락이 너무 없어서. 검술 스승을 못 구했으면 소개해주려고 했지.”
기사단은 바텔바흐의 사람만 칠 수 있으니 설마 신청을 진짜 하려고 하진 않겠지. 아쉽다고도 말했잖아. 괜한 기우겠지, 괜한 기우야. 케이는 그렇게 생각하며 애써 생각을 정리했다. 만약 스턴의 공자가 바텔바흐의 기사단에 숨어들면 얼마나 문제가 커질까. 그럼 그 신분 보증인인 나도…….
[ 아, 괜찮아. 그냥 관광이나 하다 가려고. 지금도 관광하러 나왔잖아. 바텔바흐 의 홍차가 맛있더라고.]“관광? 그게 정말이야? 오늘부터 기사단 시험 신청 기간인데?”
서둘러 광장으로 향하던 케이의 발걸음이 느려졌다.
진짠가?
[ 무슨 뜻이야? 혹시 내가 진짜 시험이라도 치렀으면 좋겠어? ]레이먼의 눈에 보이지도 않을 테지만 케이는 고개를 휙휙 가로저었다.
“아니. 그런 거 아니지. 그럼 검술은?”
[ 알아서 한다니까. ]“기사단은 진짜 신청 안 한다고?”
[ 어. 그러는 너야말로 어딘데? 왜 이렇게 시끄러워? ]“자, 잠깐 산책.”
[ 알았어. 관광 좀 하다 다시 연락 줄게. ]“어, 어어. 그래.”
통신이 끝나자 허공의 스크롤이 그대로 먼지가 되어 사라졌다.
“뭔가 이상한데.”
레이먼에게서 확답을 듣긴 했지만 어딘가 꺼림칙했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말도 안 되는 가정이긴 했다. 애초에 바텔바흐 공국의 사람만 칠 수 있는 시험 아니던가.
‘괜찮겠지.’
케이는 시원한 마음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즐기다 만 어머니와의 티타임을 다시 시작할 셈이었다.
***
“도련님, 거짓말이 아주 능숙하시네요.”
신청서를 쓰기 위해 기다리던 니콜이 제 옆에 선 레이먼에게 속삭였다.
“능숙하긴. 떨려 죽는 줄 알았다.”
“또 거짓말을.”
니콜이 어깰 으쓱하며 고갤 돌렸다.
두 사람은 광장을 가득 메운 사람들 틈에 줄을 서고 있었다. 그들 모두 기사단 입단 시험 신청을 위해 모인 이들이었다.
“그런데 전 정말 도련님이 그렇게까지 할 줄 몰랐어요.”
“뭐가?”
“입단 시험을 치른다고 바텔바흐 공국에 집을 사셨잖아요.”
니콜이 2주하고도 반이 지난날을 떠올렸다.
***
레이먼은 바텔바흐 공국에 도착한 다음 날 곧바로 집을 알아보러 다녔다. 적당히 쾌적하고 여태까지 거쳐 간 사람이 많은 저택으로 말이다.
바텔바흐 공국의 부동산은 외국인에게 매력적인 투자처는 아니었다. 자국민들 중 대부분 자택을 보유하고 있었고, 유입 인구도 적은 탓이었다. 그렇다고 공국이 관광지로 인기 있는 곳도 아니었다. 폐쇄적인 정책 탓에 관광객 역시 그리 많지 않았기 때문이다.
즉, 바텔바흐 공국에서 집을 사 거주하는 인물들의 99%는 자국민이라는 뜻이었다.
그래서 그들은 기사단 입단 시험 신청서에도 허점을 갖고 있었다.
[ 바텔바흐 기사단의 입단 시험은 바텔바흐의 거주자 모두에게 개방되어 있습니다. ]바로 거주자의 국적과 거주한 기간을 한정 짓지 않았다는 것.
케이는 쭉 바텔바흐에 살았으니 ‘바텔바흐의 거주자’를 ‘바텔바흐 사람’이라고 생각했을 확률이 높았다.
게다가, 일부러 확인한 여권에는 명확히 ‘바텔바흐의 국민’이라는 문장이 있었지만, 입단 시험에는 그런 문장도 없었다.
이로써 그들이 추후 레이먼을 추궁할 염려도 줄어든 것이다.
레이먼은 이틀 뒤 곧바로 집을 구매해 그곳으로 이사했다. 가구를 들이고 간단히 인테리어를 마쳤다.
레이먼의 충동적인 집 구매에 대해 니콜은 매우 당황스러워했다. 물론 레이먼에게 는 푼돈이었으나, 니콜에겐 그렇지 않았기 때문이다.
세상 어떤 인간이 타국의 집을 빵집 빵 고르듯 구입한단 말인가. 그게 제 주인이라고는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지.
집을 구매한 후 이사부터 인테리어까지 니콜이 모두 도맡아 했는데, 니콜은 이 과정에 전혀 힘들지 않았다. 레이먼이 집을 구매할 때 니콜에게 했던 말이 있었기 때문이다.
“근데, 정말 약속하신 거지요?”
“뭘.”
니콜이 이번엔 몸을 바짝 붙여 속삭였다. 목소리보다 근육이 먼저 닿아 레이먼이 은근슬쩍 뒤로 빠졌다.
“입단 시험에 통과하면 이번에 산 바텔바흐의 집을 저한테 주시기로 한 거요.”
“그래. 나는 필요 없으니까.”
“역시 우리 도련님! 통이 크시다니까요!”
니콜이 양 주먹을 꽉 쥐었다. 세상에, 어떤 주인이 일만 잘하면 집도 마련해 주실까? 이렇게까지 해주는 건 아마 우리 도련님뿐일 거야.
“도련님, 저 목숨을 걸고 이번 입단 시험, 1등으로 통과하겠습니다!”
“목숨을 걸면 집도 필요 없어지잖아. 적당히 통과해. 그리고 내가 있어서 1등도 못해.”
“말이 그렇다는 거지요, 말이. 먼저 신청부터 성공하자고요.”
니콜이 손을 비비며 군침이 싹 도는 표정을 웃었다. 1시간쯤 대기하자 줄이 빠졌고 이윽고 니콜과 레이먼이 이름이 불렸다.
“다음 신청자. 199번, 200번. 레이랑 콜. 이쪽으로 오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