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ill Make You a King as a Possessor RAW novel - Chapter (21)
빙의자가 왕으로 만들어 드립니다-21화(21/275)
크리스가 반사적으로 다음 말을 이었다.
“난 챈들러를 좋아하지만 그놈은 이상한 놈이야. 물론 그 점을 높이 사서 서머셋이 학생회에 뽑은 거지만.”
연극 무대의 배우처럼 과장된 손동작이 그의 말에 담긴 황당함을 더욱 잘 느끼게 해주었다.
“너 정말 챈들러 아이작에 대해 뭘 알고 있긴 해? 애초에 아이작 가문에 대해서 알 리가 없지. 기껏해야 지방의 촌놈이잖아.”
디찬이 크리스를 말렸다.
“크리스.”
“지금 내 발언이 너무 중앙 귀족적이었나? 은연중에 내 우월함을 드러냈나 보군. 사과… 아니, 그런데 방금 그게 내 잘못인가? 내가 우월한 건 그냥 사실이잖아.”
“하아……”
디찬이 얼굴을 손으로 크게 쓸었다. 아마 크리스는 디찬이 말리지만 않는다면 챈들러의 험담을 밤이 걷힐 때까지 늘어놓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레이먼은 신경 쓰지 말라는 투로 입을 열었다.
“아닙니다. 선배님 말씀도 맞죠. 그런데 걱정하시는 것보다 저는 챈들러 선배님에 대해 알고 있는 게 많아요. 궁금한 것도 있고요.”
블랭킷에게 챈들러의 이름을 처음 들었을 때는 눈치채지 못했다. 하지만 얼마 있지 않아 레이먼은 챈들러 아이작에 대해 기억해냈다.
스플린 가의 서재에서 읽었던 그 논문. 이 세상을 바꾼 위대한 논문의 유일한 저자.
챈들러 아이작. 그가 아직 학생이었다니!
레이먼은 잠에서 깨어나거나 자리에서 일어나면 어떻게든 그에게 말을 걸어볼 생각이었다. 레이먼의 반짝이는 눈빛을 읽은 크리스가 투덜거렸다.
“하지만 네가 원한다고 해도 챈들러가 널 버틀러로 뽑지 않을 수도 있어. 쟤는 버틀러를 별로 두고 싶지 않아 하니까.”
“그래요? 이유는요?”
“자기 이름이 챈들러라 버틀러를 두는 게 싫대. 발음이 비슷하잖아. 챈들러, 버틀러. 버틀러, 챈들러.”
“그게 이유래요?”
“천재는 괴짜인 법이지. 아니면 녀석이 그냥 괴짜이거나.”
디찬의 괴짜론에 크리스가 냉큼 끼어들었다.
“너도 1학년 천재에 저놈이랑 같은 클래스니 어울릴 수는 있겠네. 때마침 챈들러도 깨어났잖아. 디찬의 버틀러가 될 생각이 없다면 얼른 저쪽으로 가는 게 이득 아니야?”
아무래도 크리스는 레이먼을 자신의 라이벌 19,210번쯤으로 생각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그렇게 생각해준다는 게 고맙긴 하지만.’
레이먼은 디찬과 크리스에게 정중히 고갤 까딱하고선 챈들러에게 향했다.
챈들러는 크리스의 말대로 깨어 있긴 했다. 아주 무기력하고 환영식에는 관심도 없다는 얼굴로 말이다. 저런 상태로 앉은 사람에게 말을 걸어봤자 좋은 꼴을 당하진 않을 거라는 걸 레이먼은 직감적으로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리고 다행스럽게도 레이먼 대신 나서준 용감한 꼬마 기사들이 있었다.
2학년 신입 버틀러 후보생들이었다. 가까운 선배들 위주로 간단한 인사 중인 모양이었다.
“기프트 클래스의 챈들러 선배님이시죠?”
“응. 맞아.”
레이먼은 그들을 등지고 서서 장 스 베리의 조각 케이크 하나를 집어 들었다. 몰래 대화를 엿듣기 위함이었다. 의외였던 건 그런 표정을 짓고 있던 것과는 정반대로 시원하고 부드러운 목소리가 챈들러의 입에서 튀어나왔다는 점이다.
“너희들은?”
“저희는 피데스 클래스의 아담 리처드와….”
“큐컴버 보일입니다! 신입 버틀러로 학생회에 입회하게 되었습니다.”
챈들러가 크게 하품하며 대꾸했다.
“그렇구나. 괜찮은 놈들인 모양이네. 그러니 학생회 추천도 받았겠지. 보일 가문이랑 리처드 가문이면. 아아아아, 알겠다. 크리스한테 몇 번 들은 기억이 있지.”
“영광이에요! 저희야말로 챈들러 선배님과 대화하게 되어 너무 기쁩니다!”
“왜?”
“예?”
“왜 기쁜데?”
셋 사이에 흐르고 있던 기류가 단숨에 반전되는 순간이었다.
‘기프트 클래스는 입이 매운 놈들을 모아둔 클래스인가.’
이러니 이쪽 선배들은 제대로 승진도 못 했지. 레이먼이 왜인지 아주 익숙한 맛이 나는, 케이크의 토핑으로 올려진 제철 과일을 씹으며 생각했다.
‘아까 얼굴을 제대로 못 봤는데 어떻게 생겼으려나. 성깔 드럽게 생겼으면 바로 튀어야지.’
레이먼이 챈들러와 대화를 나누고 싶은 이유는 순전히 그 논문에 대한 흥미 때문이었다. 어차피 진짜 버틀러가 될 생각도 없었고, 잠재적 납치 교사범에 살해 예고까지 받은 4왕자가 속한 학생회에 오래 남아 있을 이유는 더더욱 없으니까.
“그거야 학생회의 선배님이시고-.”
“응.”
“학생회뿐만 아니라 학교의 선배님이시니까 당연히 예의를…”
“예의와 기쁘다는 뜻이 다르잖아. 아니야? 내가 잘못 알고 있나?”
“아, 어… 그게.”
두 선배가 고장 난 태엽 인형처럼 뚝딱거리다 결국 도망치듯 자리를 피했다. 떠나는 두 명의 등을 바라보며 챈들러가 입술을 샐쭉 내밀었다.
‘참…… 애들이 자존심도 없나.’
이상한 걸 물어본 것도 아니고, 간단한 것도 대답을 못하다니.
‘해마다 질이 떨어지는 것 같아.’
그때였다.
“제가 대답해도 되나요?”
환영식에 마련된 개인 침대에 앉은 챈들러가 동그랗게 치뜬 눈으로 눈앞의 자그마한 꼬맹이를 올려다보았다.
“…어라라, 너는 아까 쟤네들보다 더 어려 보이는데.”
“1학년 레이먼이에요. 챈들러 선배님과 같은 기프트 클래스구요.”
그가 느끼기에 1학년치고는 침착한 표정에 무감한 말투였다. 특히 불타는 듯한 머리카락 색이 인상 깊었다. 챈들러는 크게 웃음을 터뜨리곤 레이먼에게 손을 흔들며 말했다.
“하하하, 기프트면 기대가 되긴 하네. 그래, 좋아. 말해봐.”
“완드 소지 금지 법안을 뒷받침할 논문의 저자가 선배님이시잖아요. 그런 분을 만나 뵙게 되면 당연히 기쁠 수밖에요.”
기껏해야 직속 선배님이니까 당연히 기쁘죠- 라는 답이 날아올 줄 알았는데. 챈들러의 입꼬리 끝이 미묘하게 변했다. 그가 말했다.
“…그거 꽤 옛날 논문인데. 어떻게 알았어?”
“본가에 관련 자료가 있었습니다. 제가 옛날 서적이나 자료를 찾아보는 걸 좋아해서요. 그 논문은 선배님께서 포레스튼에 입학하시기도 전에 쓴 논문이죠?”
“맞아. 자료를 보는 걸 좋아하면… 꽤 많은 논문을 읽었을 것 같은데, 내가 쓴 논문을 기억하는 이유라도 있나?”
레이먼은 그 질문에 좀 더 큰 목소리로 답했다.
“선배님께서 완드 소지를 금지하는 법안을 제안하기 전, 마법사의 완드 소지는 완전 합법이었잖아요. 시간이 흘러 마법사의 수가 늘어가는 와중, 선배님이 아니었으면 스턴은 완전히 마법사들이 지배하는 왕국이 되었을 겁니다. 그럼 주교와 왕실의 권위도 흔들렸을 테고요. 이 정도로 세상을 뒤바꾼 분과 말을 섞는 것 자체가 당연히 기쁘고 기대가 될 수밖에요.”
완드는 마법에 필수적인 도구는 아니다. 쓸데없는 마법 계산식을 외우기만 한다면 마력이 존재하는 한, 마법사는 언제 어디서나 마법을 사용할 순 있었으니까.
다만, 완드는 마법의 시전 시간을 줄이고 그 위력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시켜주는 아주 훌륭한 도구였다. 완드를 들지 않은 마법사가 30초 동안 병사 10명을 상대할 수 있다면, 완드를 든 마법사는 병사 1,000명은 상대할 수 있었다.
그런 완드 소지의 자유를 금지한 게 챈들러였다.
“그거 마법사들은 싫어하는 법안이야.”
“근데 그걸 이뤄냈잖아요.”
챈들러가 비웃듯 한쪽 입꼬리를 올렸다.
“정확히 말하면 아버지의 힘이지. 우리 가문은 학자 가문이잖아.”
“그럼에도요. 덕분에 마법을 무분별하게 사용하는 마법사도 줄었고, 범죄율도 줄었죠. 평민들에게 마법 가문에 대한 인식도 더욱 긍정적인 쪽으로 바뀌었고요. 오히려 포레스튼 쪽에서도 이득이었죠. 포레스튼 출신 왕실 마법사는 완드 소지가 자유로우니까요. 뭐…1학년은 아니지만.”
레이먼의 말솜씨에 챈들러가 재밌다는 듯 웃음을 흘렸다.
“하하하, 버틀러는 학년과 관계없이 완드 소지를 자유롭게 할 수 있으니 넌 예외겠지.”
“그런가요?”
“…좋아, 레이먼. 네가 나의 논문을 얼마나 좋아했는지는 잘 알았어.”
“감사합니다.”
“다만, 난 버틀러를 뽑을 생각이 없으니 내 버틀러가 되는 대신 우리 인연은 클래스 선후배로 정리하는 게 어때?”
“그렇군요. 감사합니다.”
레이먼의 담백한 답변에 챈들러가 놀란 토끼 눈이 되어 말했다.
“보통 버틀러가 되면 엄청 좋아하는데. 넌 학생회 지망이 아니었나?”
“서머셋 회장님이 절 마음대로 후보에 집어넣어서요. 마음에 안 들면 그냥 나가면 된다고 하시던걸요?”
“…아하. 그럼 서머셋이 그걸 말해주진 않은 모양이구나?”
레이먼은 순간 등줄기가 섬찟해지는 걸 느꼈다. 서머셋이 뭘 말 안 했는데?
그게 뭐든 제 마음에 들진 않을 것이라, 레이먼은 생각했다.
***
이 영악한 4왕자!
레이먼이 크게 소리를 질렀다. 오닉스는 귀를 막았다가 레이먼이 진정할 때쯤에야 손을 떼고 물었다. 무슨 일인데?
“학생회를 나가려면 학장과 상담해야 한대.”
“그럼 하면 되잖아.”
“학장 눈에 띄는 짓을 해서 뭐하게? 그것도 남들 다 좋다는 학생회에서 내보내달라는 일로.”
클래스 휴게실로 돌아온 레이먼은 소파에 발라당 드러누웠다.
학장과 상담. 할 수야 있었다. 어차피 레이먼은 눈에 띄는 1학년 중 1명이었다. 물론 학장과 상담하는 정도로 소문이 부풀진 않을 것이다. 하지만 애초에 학생회를 나갈만한 타당한 이유가 없었다.
사실 학생회 입회는 레이먼 입장에서도 나쁘지 않은 조건이었다. 서머셋과 친분이 쌓여 왕 후보가 추가된다면 그건 그거대로 좋은 일이었고.
레이먼이 이런 과민반응을 보이는 이유는 ‘껄끄러움’ 때문이었다. 전직 헌터의 감이라고 할까.
“그럼 어떡할 거야?”
소파 등받이 너머로 유타가 얼굴을 내밀었다. 처음에는 저 잘난 얼굴이 적응이 안 됐는데 계속 보다 보니 또 괜찮았다.
“해서 나쁠 건 없지만. 모르겠네. 네 형이 있잖아.”
“난 상관없는데. 나보다 친해지진 않을 테니까.”
“모르지, 그건. 근데 넌 표정이 좋다? 새로 들어간 클럽이 마음에 들었어?”
정치 토론 클럽이 꽤 마음에 들었는지 유타의 얼굴은 환영식에 가기 전보다 훨씬 밝아져 있었다. 뭔가 윤기도 흐르는 것 같고.
“토론이 재밌더라고. 나중엔 나를 죽이는 게 형님들한테 이득일지 아닐지도 토론하겠더라.”
“오.”
그건 흥미롭네- 라고 말하려다 레이먼은 입을 꾹 다물었다.
생활관 휴게실에 모인 1학년들은 어떤 클럽에 들어갈지 신나게 떠들어대고 있었는데 그중에는 피데스 클래스의 질 나쁜 패거리도 보였다.
저 3학년 패거리는 피데스 내에서도 악명 높았다.
같은 클래스 애들 중 성적이 낮은 평민을 무시하고 다니는가 하면 그 평민들을 심부름꾼처럼 부리고 다니기도 했다. 클래스장 선배가 저지했다고 들었는데 안 보이는 곳에서는 여전히 양아치 짓을 하는 모양이었다.
‘왕실 마법사가 될 거란 놈들이 참. 왕실의 미래도 밝다.’
레이먼과 유타, 오닉스가 바로 보이는 입식 테이블에서 이야기를 나누던 패거리들은 슬쩍슬쩍 곁눈질하며 유타를 흘겨보았다. 유타 역시 그 시선을 느끼곤 그들의 대화를 엿듣기 시작했는데, 대화 내용이 가관이었다.
“정치 토론 클럽 가봤어? 참관?”
“아, 어. 재밌더라~. 나중에 왕실 지원할 때 도움이 될 거 같던데?”
“5왕자도 흥미 있어 보이던데? 친해지든가.”
“그런 똥은 줘도 안 가져. 너는 가질래?”
“똥에선 구린내나 나지. 차라리 4왕자님한테 줄을 대야지. 동감?”
“동감.”
사실 어찌나 크게 말하던지, 엿듣는 게 아니라 생활관 휴게실에 모인 모든 클래스가 다 들을 수 있을 정도였다. 레이먼이 유타의 안부를 걱정할 정도였으니 말이다.
“야, 너 괜찮… 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