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ill Make You a King as a Possessor RAW novel - Chapter (214)
빙의자가 왕으로 만들어 드립니다-214화(214/275)
훈련장 ‘파도’로 가기 위해 문을 열자마자 그는 누군가와 마주쳤다.
“어디 가려고?”
“아…… 화장실을 못 찾겠어서요.”
“소등 이후 개별 행동은 원칙적으로 금지야. 따라와. 같이 가주지.”
“예에…….”
그렇게 레이먼의 원대한 계획의 첫날은 실패로 돌아갔다.
기숙사 순찰을 돌고 있던 1기사단장 베일과 만났기 때문이다.
세상에 어떤 기사단장이 직접 나서서 순찰까지 도는 건지.
‘왜 말 안 해줬어요?’
베일의 뒤를 따라가며 레이먼이 아모르를 곁눈질했다.
[ 네가 눈치를 못 채는 꼴이 재밌어서. ]‘이걸 정령이라고.’
하지만 아모르의 말이 맞았다. 평소의 레이먼이었다면 분명 베일의 기척을 눈치챘을 것이다. 영법사의 뒤를 칠 생각에 레이먼은 근처에 있던 베일의 기척까지 눈치채지 못한 것이다.
차라리 들킨 게 나았다. 이런 정신머리로 그들에게 다가갔다간 일을 귀찮게 만들었을지도 모른다.
‘질 것 같진 않지만.’
뚱한 얼굴로 따라오는 레이먼에게 베일이 질문했다.
“너는 어디 사람이지?”
“예……?”
“네 서류를 확인했는데 국적란을 비워뒀더라고. 바텔바흐 사람이라면 비워둘 리가 없으니까.”
“나중에 서류 제출할 때 아시면 되지 않을까요.”
“그것도 맞는 말이지. 자, 도착했어. 나올 때까지 기다려주지. 어쩐지 널 혼자 두지 않는 편이 좋을 것 같거든.”
베일이 사람 좋은 낯으로 웃었다. 레이먼은 대충 답하고 화장실에 들어가#들어갔다가 금세 나왔다. 누가 봐도 화장실을 가기 위해 방을 나선 이의 모습 같지는 않았다. 베일은 더 이상 질문을 하지 않고 레이먼을 방문 앞까지 데려다주었다.
레이먼은 방문을 열기 전 그 앞에서 물었다.
“저, 단장님.”
“단장이라고 해도 돼.”
“단장님, 최근에 훈련장을 자주 쓰는 기사들이 많아지지 않았습니까?”
“최근에? 글쎄. 갑자기 그건 왜?”
“그냥요. 얼마나 훈련을 혹독히 하시는지 궁금해서요. …밤이 늦었습니다. 단장님도 들어가서 주무세요.”
레이먼은 고개를 아주 짧게 숙인 뒤, 방 안으로 들어갔다.
‘끝까지 단장님이라고 부르네.’
베일은 한참이나 방문 앞에서 그가 떠난 자리를 바라보다 자신의 방으로 향했다. 침대가 있는 방이 아닌 자신의 집무실 쪽으로 말이다.
***
둘째 날부터 본격적인 훈련이 시작되었다.
뒤질 것같이 힘들었다. 더운 여름에 이딴 무식한 훈련이라니.
훈련장 50바퀴가 가벼운 아침 러닝이라는 게 레이먼의 기준으로는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
결국 마지막에는 아모르에게 거의 매달리다시피 하여 겨우 완주했다. 다행히 정령의 힘을 눈치채는 이는 없었다.
“우웩.”
바닥에 엎드려 헛구역질을 하는 레이먼을 2기사단 소속이 된 니콜이 아련하게 바라보았다. 함께 훈련하고 싶어도 단이 달라 한 무리에 섞이는 게 불가능했다.
‘도련님…!’
니콜이 몰래 눈물을 훔치는 사이 그다음 훈련이 시작되었다.
오전 훈련은 거의 기초 체력용 훈련이 전부였다. 윗몸일으키기나 오래달리기, 검 300번 휘두르기 등이 그 과정이었다.
“오전 훈련은 여기서 마친다! 적당히 씻고 별관에 가서 점심 식사를 하도록! 늦으면 식사하기 어려울 테니 늦장 부리지 마라!”
“네!”
배고픈 기사들이 일제히 식당으로 달려갔다. 그들은 식당 앞 개수대에서 적당히 씻은 뒤, 곧장 별관으로 쳐들어갔다.
‘이대로 밥을 먹으면 뒤질 거야.’
레이먼은 이전의 식습관으로 돌아갔다.
미친 훈련 뒤에 뭐라도 속에 들어갔다가는 전부 게워낼 것 같았기에 레이먼은 고목 그늘 아래 벤치에 앉아 쉬고 있었다.
“식사는 안 해도 괜찮나?”
휴식 중인 레이먼 곁에 베일이 다가와 질문했다.
“아… 네. 지금 먹었다가는 다 토할 것 같아서요.”
벤치에 반쯤 몸을 뉜 레이먼이 힘없이 답했다.
레이먼의 말은 반쯤 진심이었다. 베일은 처음엔 그렇게 힘들다며 그를 위로했다.
위로한 뒤에도 그는 한참이나 말을 하지 않고 레이먼 옆에 서 있었다. 마치 할 말이 있는 듯해서 레이먼은 겨우 몸을 일으켜 세워 먼저 질문했다.
“뭐 하실 말씀이라도 있으세요?
“어젯밤 네가 말한 게 신경 쓰여서 명부를 한번 살폈어.”
어젯밤?
“훈련장 사용 명부요?”
“그래. 보통 쓰는 날들이 정해져 있거든. 하지만 최근 몇몇 무리들이 지나치게 많이 훈련장을 사용하고 있더라고. 그리고 내 생각인데 아마….”
“명부에 이름을 올리지 않고도 사용하고 있을 거란 거죠?”
베일이 놀라 되물었다.
“어떻게 알았지?”
“그럴 것 같아서요. 그래서요?”
“글쎄. 훈련을 많이 한다고 뭐라 할 수도 없는 노릇이라. 그런데 레이, 그걸 어떻게 안 건지는 물어도 될까?”
하루 만에 그런 질문을 할 수 있는 신입이 있을 리가 없다.
이미 오래전부터 이 기사단에 대해 잘 알고 있는 사람만이 그런 질문을 할 수 있으리라.
레이먼은 어깨를 한 번 으쓱였다. 그는 대답할 생각이 없었고, 대충 엉덩이를 털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속이 좀 나아졌네요. 이제 식사를 하러 가봐야겠어요. 대화 좋았습니다.”
“그래…. 오후에 또 보자.”
베일은 더 묻지 않고 씨익 웃었고 레이먼은 자연스럽게 식당으로 들어갔다.
레이먼은 베일의 말을 듣고 완전히 확신했다.
영법사 무리는 1기사단에 속해 있는 게 틀림없다. 그게 전원인지 일부인지는 알 수 없지만 말이다. 그리고 레이먼이 확신하게 된 이유는 한 가지 더 있었다.
분명 케이는 바텔바흐의 1기사단이 전쟁의 최전방에서 일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레이먼은 단언할 수 있었다.
레이먼은 그 전쟁에서 단 한 번도 베일을 스친 적도 없었다.
후방에서도 전방에서도.
***
바텔바흐 기사단의 식사는 꽤 호화로웠다.
바다와 인접한 바텔바흐 공국의 이점을 모두 취한 식사였다.
육류보다는 생선과 해산물 위주의 식재료였지만 그렇다고 영양 면에서 부족하지도 않았다.
바싹 구웠지만 속은 윤기가 흐르는 연어 스테이크.
갖은 양념으로 절인 붉은 조개찜과 짭짤한 맛이 일품인 문어 요리.
그 외에도 오븐 닭구이, 가지무침, 샐러드 등 다양한 요리들이 레이먼을 반겼다.
평소의 그였다면 육류만 담았겠지만 레이먼은 연어 스테이크 한 덩이를 대충 접시에 올린 뒤 2기사단 쪽으로 향했다.
털썩.
“안녕.”
레이먼은 대놓고 2기사단 단원들 틈바구니에 앉았다. 맞은편에 니콜도 있었기에 레이먼은 편하게 손을 흔들었다. 니콜도 덩달아 손을 흔들었지만 표정은 여전히 당황한 눈치였다.
보통 서로 다른 단의 단원들은 합동 연습 외엔 교류할 일이 잦진 않았다. 그들이 친목을 다질 수 있는 시간은 휴식 시간을 제외하고선 식사를 할 때뿐이었다. 레이먼은 그 시간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려 했다. 니콜뿐만 아니라 다른 신입들이 섞인 무리에서 레이먼은 그야말로 스타였다.
이유야 간단했다. 1등 합격자인 레이에게 잘 보여야 한다는 생각에 모두 사로잡혀 있었기 때문이다.
“콜, 네가 새로 사귄 친구들이야?”
레이먼이 자연스레 말을 걸자 니콜이 답했다.
“네? 아, 네. 이번에 2기사단에 함께 들어온… 분들입니다.”
“그래? 안녕.”
“안녕, 레이. 너와 꼭 한번 이야기를 나눠보고 싶었어.”
레이먼에게 말을 걸지 못했던 이들도 이번 기회에 말을 거는 모양이었다.
다행히 그중에는 레이먼에게 비난의 말을 뱉었던 사람들은 없었다.
‘하긴, 니콜이 날 욕한 놈들을 곁에 둘 리가 없지.’
레이먼과 2기사단의 주요 화제는 당연히 훈련이었다.
훈련이 얼마나 힘든지, 어떻게 오전을 견뎠는지, 앞으로는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한 이야기가 오갔다.
다른 합격자들도 서서히 그들의 대화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고, 그들을 중심으로 합격자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당연히 친화력 좋은 선배들도 그들 사이에 끼여 레이먼 일행을 주시했다.
레이먼은 연차가 찬 기사들이 온 것을 확인하고 곧장 질문을 던졌다.
“그런데 말이야, 너희, 마법에는 관심 없어?”
“뭐? 마법? 갑자기 그게 무슨 소리야.”
“마법은 육체가 약한 놈들이 배우는 거지.”
“나는 검에 마력을 담을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거든. 물론… 나에게는 마법에 재능이 없어서 그럴 수는 없었지만.”
“1등으로 합격한 놈이 무슨 소리야?”
“그래. 넌 마법이 아니라 검술에 재능이 있다고.”
“고맙다. 음……그래.”
이름은 기억이 안 나네.
레이먼은 대충 할 말을 갈무리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빈 접시를 치우고 나서려는 찰나, 누군가 레이먼의 어깨를 툭 쳤다.
처음 보는 얼굴이었다.
얼굴이 삭아서 그가 꽤 오래 구른 기사임을 레이먼은 금방 눈치챘다.
그가 물었다.
“너. 이번 1등이지?”
“어…네.”
“1기사단의 네 직속 선배다. 편하게 루어라고 불러.”
“아.”
기사단에 들어오니 외워야 할 이름이 너무 많았다. 어차피 곧 까먹을 이름들인데.
대충 선배로 퉁 칠까?
“그래도 선배님이시니, 선배님이라고 부를게요.”
“굳이 그럴 필요는 없는데. 그래, 네가 그렇다면. 그보다 너, 아까 전에 마법 이야기를 꺼냈지?”
“아, 죄송합니다.”
레이먼은 최대한 순진무구한 표정을 지은 뒤 손을 내저었다.
“일부러 그런 건 아닙니다. 정말 그냥 호기심이어서요.”
“왜 그런 호기심이 생긴 거야?”
“스턴의 마검사들은 검에 마력을 담는다고 들었거든요. 바텔바흐의 신체 능력에 마력까지 쓸 수 있다면 정말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잠시 했을 뿐입니다.”
“그렇군.”
그는 레이먼의 등을 팡 쳤다.
그리고 호탕하게 웃었다.
“어떤 생각을 하든 네 발전에 도움이 되길 빌지.”
“…….”
“왜 그런 표정을 짓지?”
“아뇨. 감동이라서요. 그, 예, 감사합니다.”
레이먼은 대충 인사한 뒤 자리를 떴다.
‘맞는 것 같은데.’
식당에서 일부러 서슴없이 마법 이야기를 꺼냈다.
그리고 마법에 재능이 없는 티도 팍팍 냈다.
바텔바흐에서 영법을 배운 이들은 당연히 마법에 관심이 있었을 테고, 어떻게든 그 비슷한 힘을 찾기 위해 노력했을 테니까.
그 해의 1등이 그들과 같은 관심을 보인다면 분명 먼저 다가올 거라고도 예상했다.
그리고 예상은 들어맞았다.
아마 다가온 그 루어라는 놈은 영법을 배웠을 거다. 하지만 모든 걸 털어놓진 않았다. 관심 없는 척 발을 빼는 말을 하는 것만 봐도 그렇지.
‘하긴, 하루 만에 넘어올 정도로 조심성이 없지는 않을 테고. 서머셋 때문에 영법을 배운 거라면 더더욱 그렇겠지.’
어떻게 하면 그 경계심을 한 번에 풀 수 있을까?
레이먼은 열심히 머리를 굴렸다.
서머셋 같은 놈들로만 이루어져 있진 않을 테고.
영법을 처음 배운 놈들이라면 그 자만심에 막 젖어 있을 시기인데.
킹메이커 특성을 쓸까. 아니면…….
그때 레이먼의 머릿속에서 무언가 반짝하고 스쳐 지나갔다.
“그럼…… 그 망토를 써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