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ill Make You a King as a Possessor RAW novel - Chapter (218)
빙의자가 왕으로 만들어 드립니다-218화(218/275)
베일의 등장은 그들도 예상하지 못한 듯했다. 마치 레이먼이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등장할 타이밍을 놓쳐버린 레이먼은 쭈뼛거리며 다시 풀숲 뒤로 몸을 숨겼다.
그의 계획에 베일은 없었고 그가 원래 순찰 범위를 벗어나 왜 이곳에 있는지도 이해할 수 없는 노릇이었다.
“다시 묻는다.”
베일은 어쩐지 성이 나 보였다.
그는 다시 등불을 가슴께까지 들어 올리고 말했다.
“여기서 뭣들 하고 있는 거지.”
“훈, 훈련입니다.”
“저희끼리 따로 훈련을 하고 싶었는데 시간이 없었습니다. 말씀드리지 못하고 나와 죄송합니다.”
눈치 빠른 이들은 들고 있던 검을 검집에 다시 넣었다. 단장 정도 되는 실력자라면 혹여 영법의 흔적을 눈치챌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리라.
하지만 레이먼은 베일이 알아차릴 것을 기대하지도 않았다.
알아차렸으면 진작에 알아차렸겠지.
‘근데 정말 왜 온 거지?’
기사들의 변명을 들은 베일은 검집에 검을 집어넣는 이들을 흘겨보았다. 그가 말했다.
“무슨 훈련이 추가로 필요했는지 말할 수 있다면 반영하겠다. 거기, 너부터 말해봐.”
“어, 그게.”
“말하기 어렵나? 그럼 다음.”
베일은 먼저 말을 떠낸 기사를 제외한 다른 이들에게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들 모두가 입을 다물 뿐 별다른 말을 하지 못했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영법이었고 관련된 일을 베일에게 말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단장님. 제가 말씀드리겠습니다.”
결국 참다못한 루어가 앞으로 나섰다.
그러나 베일은 그에게 기회를 주지 않았다.
“내가 먼저 하겠다.”
베일은 주머니에서 쪽지를 하나 꺼냈다.
그는 쪽지를 펼쳐 날짜를 읽기 시작했다. 날짜를 들을 때마다 수군거리는 목소리가 점점 커졌다.
“…이상이다. 훈련장 무단 사용이 오늘뿐이 아니던데.”
“그걸 어떻게-.”
“훈련장은 훈련이 끝난 시간 이후 그날 당번에 의해 땅을 깨끗하게 다져 다음 날 훈련을 준비한다. 하지만 이 날짜들에는 청소가 끝난 이후에도 누군가 훈련장을 다시 사용한 흔적이 남아 있었다. 대체 너희들이 말하는 훈련이라는 게 뭐길래 이렇게까지 하는 건지 묻고 싶군. 단장들도 아무도 모르는 그 훈련을 말이야.”
베일은 영법에 대해선 여전히 눈치채지 못한 듯했다. 하지만 적어도 자신의 단원들이 수상한 무언가를 준비하고 있다는 건 알아차린 모양이었다.
분위기가 점점 더 무거워지던 그때, 풀숲 뒤에 숨은 레이먼은 나갈 타이밍을 재고 있었다.
‘베일 저놈이 방해되는데.’
베일이 이 자리를 떠나지 않으면 저놈들을 죽일 수가 없지 않나.
아니면 베일까지 한 번에 처리하는 게 좋으려나.
목격자가 없는 게 최고긴 하지.
하지만 마음에 걸리는 게 있었다.
회귀 전 레이먼은 전쟁에서 다른 단장들은 본 적이 있어도 베일을 본 기억은 없었다.
그렇다면 다른 단장들과 달리 베일은 전쟁에 나오지 못했거나 못할 이유가 있었다는 게 된다.
레이먼은 지금 이 장면이 ‘그때’ 베일을 보지 못한 이유와 무언가 관련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 어떻게 합니까?”
베일의 말에 겁먹은 단원들이 가장 앞에 서 있던 루어에게 속삭였다.
머릿속 실타래가 엉킨 루어도 별말을 하지 못하자 그 옆에 서 있던 한 단원이 말을 꺼냈다.
“이곳에서 먼저 시험을 해볼까?”
그 주변에 검은 안개가 일렁였다.
‘예, 예. 보입니다.’
안개는 영법에 물든 검은 마나였다. 하지만 마나 서클을 지니지 않은 이들은 눈치챌 수 없을 것이다.
즉, 이 공간에서 저 검은 안개를 눈치챌 수 있는 건 레이먼과 그의 정령 아모르뿐이었다.
안개의 완성도는 낮지 않았다. 꽤 오래 연습했다는 걸 의미했다. 영법을 쓰는 마검사를 일반 검사가 이길 가능성은 매우 낮다.
특히나 상대가 영법을 쓰고 있는지도 모르는 일반 검사라면 말이다.
“무슨 말인지 모르겠지만 네 주변에 이상한 기운이 일렁이는 건 알겠다.”
그러나 베일은 ‘일반 검사’는 아니었다.
그는 바텔바흐에서 가장 영예롭다는 1기사단의 단장이었고 가장 뛰어난 검술 실력을 지닌 사내이기도 했다.
‘마력을 사용할 줄 아는 건가…?’
베일은 과거 전쟁에서 마검사와 상대한 전적도 있었다. 그리고 그때 느꼈던 기운이 이곳에서도 느껴졌다.
그러나 그때와는 달랐다.
머리가 아파올 정도로 불쾌한 기분이 들었고, 시큼한 악취가 코끝을 찌르기도 했다.
그 주변을 둘러싼 정체를 알 수 없는 무언가는 마치 시체의 탑으로 이뤄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사내를 둘러싼 검은 안개는 점차 선명해졌다.
그 주변에 서 있던 단원들의 술렁거림은 더욱 커졌다. 사내가 말했다.
“영법이 우수하다는 걸 알리기 위해선 가장 우수한 검사에게 그 본보기를 보이는 편이 좋잖아.”
“하지만 단장님이잖아!”
“그게 뭐. 단장을 신경 쓸 거였으면 애초에 영법을 배워서도 안 됐지. 힘에 눈이 멀어 영법을 배우기로 한 놈들이 이제 와서 신의를 따진다는 소리인가?”
그때, 기사들의 말을 들은 베일이 말했다.
“너희들, 영법을… 영법을 배운 거냐?!”
영혼을 갉아먹는 마법, 영법.
영법은 바텔바흐의 기사 중에서도 실력 있는 자들이라면 알고 있는 정보였다.
마나 서클이 없는 이들은 언제나 영법에 노출될 위험에 처해 있었고, 그 유혹에 저버리지 않도록 늘 정신력을 단련해야 했기 때문이다.
건강한 정신, 건강한 육체는 영법을 이겨내기 위해 만든 구호이기도 했다.
“…….”
“루어!”
“다, 단장님! 영법은 그리 안 좋은 게 아닙니다! 태생부터 서클이 없는 저희가 마검사와 동등하게 싸울 방법 중에선 영법이 최고 아닙니까!”
“…….”
베일은 들고 있던 등불을 바닥에 내려놓았다.
그는 천천히 검집에서 검을 뽑아 들었다.
바텔바흐의 단장들은 정도를 걷지 못한 자신들의 단원을 직접 처분할 수 있는 권력을 지니고 있었다.
그리고 이곳에 모인 이들 중 대다수가 1기사단. 음험한 기운에 휩싸인 이는 1기사단원처럼 보이진 않았으나 베일에게 먼저 달려든다면 그를 공격할 이유도 충분했다.
‘슬프군.’
베일의 표정이 구겨졌다.
바텔바흐의 검술은 약하지 않다.
그러나 자신들이 익히는 검술을 믿지 못하고 다른 힘에 손을 뻗은 자들을 어떻게 바텔바흐의 기사라고 말할 수 있을까.
베일이 검을 들자, 검은 안개의 사내 역시 검을 제대로 뽑아 들었다. 기사의 상징인 롱소드 대신 양손에 짧은 단검을 쥔 그는 이미 기사로 보이진 않았다.
“너희들이 틀렸다는 걸 보여주겠다.”
“그런가요?”
사내는 웃었다. 그는 이미 자신의 승리를 확신하고 있어 보였다.
“마나를 다루지도 못해 소드마스터도 될 수 없는 당신에게 듣고 싶진 않네요.”
“……그런가.”
“여기서 당신이 죽으면 영법을 배우고자 하는 이들이 늘겠죠. 그거면 충분합니다.”
풀숲 뒤에 숨은 레이먼은 왜 베일이 전쟁통에 보이지 않았는지 깨달았다.
‘여기서 죽었나 보군.’
베일의 실력이라면 저 남자 한 명쯤은 상대할 수 있을 거다. 제아무리 영법사라고 해도 한 가지 기술을 극한까지 연마한 고수를 죽이기는 어려웠을 테니까.
하지만 저 사내의 행동에 다른 기사들이 가만히 있었을 리 없었다.
자신의 죄를 묻기 위해서라도 목격자인 베일을 없애는 건 어쩌면 인간으로서 지극히 당연한 본능이었다.
챙-! 챙-!
화악-!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들렸다. 잠시 머리를 굴리던 레이먼의 눈길이 다시 그들 쪽으로 향했다.
예상했던 대로 베일은 밀리기는커녕 사내를 압도했다.
“영법을 배워도 쓸모가 없는 모양이군.”
“크윽.”
사내도 당황한 듯했다. 자신이 밀릴 줄은 꿈에도 몰랐던 모양이다.
그러나 그것도 잠깐이었다.
“이제 돌이킬 수 없어. 다들 단장을 죽여!”
기사도를 잊은 이들이 순식간에 그에게 가세했기 때문이다.
“크윽-.”
베일이 뒤로 밀렸다. 뒤로 밀린 베일의 뒤를 노린 루어의 검이 베일의 배를 관통했다.
그리고 그 검에 둘러싸인 검은 안개는 순식간에 베일의 몸을 감쌌다.
이대로 두면 검게 물든 베일의 시체가 그대로 바닥을 나뒹굴 것이다.
레이먼은 이 사태를 가장 먼저 이끈 장본인인 사내의 얼굴을 가만히 바라보다 이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레이먼이 말했다.
“좋아. 생각이 정리됐어.”
레이먼의 갑작스러운 등장에 가세하던 기사들의 행동이 멈췄다.
주저앉아 숨을 몰아쉬던 베일도 레이먼을 곁눈질했다. 그리고 경악했다.
왜 네가 여기에- 라는 표정이었다.
“뭐, 뭐야?”
“레이! 네가 왜 이 자리에 있는 거냐!”
“루어, 네가 불렀어?”
“내가 불렀으면 이렇게 놀라겠어?”
당황한 이들을 진정시키듯 레이먼은 침착한 얼굴로 풀숲에서 빠져나와 그들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이 사태를 만든 장본인 앞에 섰다.
“멀리서 봤을 때는 긴가민가했는데 여기서 보니까 정확하네.”
“……지금 무슨.”
“루어 선배님. 지금 이 사람, 누구로 보입니까?”
“누, 누구냐니? 너도 본 적 있잖아. 그……그게. 어라? 누구지?”
“루어, 그게 무슨 소리야? 쟤는 그게-. 어, 얼레?”
사내의 얼굴에 작은 안개가 개미 떼처럼 드리워 있었다.
영법을 통해 존재 자체를 혼란시킨 것이다.
“서머셋이 보냈나?”
사내는 입을 다물었다. 아무래도 말할 생각이 없어 보였다.
레이먼은 주변을 둘러보았다.
이곳에 모인 이들의 수는 대충 열 몇 명.
전쟁통의 영법사의 수는 어림잡아 30명은 됐던 거 같은데.
‘여기서 더 늘어난 건가.’
레이먼은 루어를 바라보며 물었다.
“선배, 영법을 배운 기사의 수는 이게 전부입니까?”
“그, 그게 무슨-.”
“답니까?”
결국 루어가 고개를 끄덕였고, 레이먼은 이번엔 베일에게 질문했다.
“여기서 일어나는 일은 전부 함묵해주실 겁니까? 어차피 이 사람들 다 죽이려고 했잖아요.”
“…레이, 네가 지금 무슨 소릴 하는 건지는 알고 있나.”
“배에 구멍 뚫린 분이 할 말은 다 하시네요. 네, 알고 있는데요. 단장님이 실패하신 일을 제가 대신해드리는 대신 소문 내지 말아달라 말씀드리고 있잖아요.”
“레이, 네가 해결할 수 있는-.”
그는 말하다 말고 입술을 꽉 깨물었다. 영법이 그의 몸을 천천히 침식하고 있었다.
아드리안의 상처도 비슷했겠지.
이 자리에 유타가 있었다면 영법의 저주를 곧바로 치유해줄 수 있었을 테지만 그럴 수는 없었다.
‘아모르 님.’
[ 알고 있다. ]아모르에게 베일을 부탁한 뒤, 레이먼은 목걸이를 꽉 쥐었다. 목걸이의 검은 점차 크기를 키웠다.
그리고 레이먼이 손가락을 탁 튕기자 허공에 검은 구멍이 생겨났다.
검은 구멍에 손을 쑥 집어넣은 뒤 빼자 익숙한 빨간 망토가 드러났다.
빨간 망토를 두르자마자 레이먼의 눈앞에 보라색 글자가 일렁거렸다.
[ 망토를 입은 자는 살아있는 규칙이 된다. ] [ 그 시간 동안에는 어떤 규칙도 해당 규칙을 우선하지 않는다. ] [ 규칙 적용 반경은 망토를 입은 사람을 중심으로 원 형태로 뻗어 나가며 반지름 500m 기준이다. ] [ 망토 속 규칙은 다음과 같습니다. ]아티팩트가 제 역할을 하기 시작했다는 뜻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