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ill Make You a King as a Possessor RAW novel - Chapter (220)
빙의자가 왕으로 만들어 드립니다-220화(220/275)
챙-!
“레이!!”
“예, 레이입니다. 선배.”
아티팩트 덕에 기껏 배운 영법은 모두 무력해졌다.
자신들의 앞을 막아선 살기 어린 베일의 시선에 덤비지 않고 살아남은 그들은 주춤거리며 뒤로 물러났다.
아직 숨어 붙어 있는 이들이 작게 속닥거렸다.
– 영법이 왜 안 되는 거야!?
– 나도 안 되잖아?
– 제기랄, 이럴 거면 뭐 하러 영법을 배운 거야?
– 일단 여기서 도망… 도망쳐야 해.
“단장님. 여기 있는 사람들 전부 왜 죽은 걸로 할지는 정하셨습니까?”
“저주에 걸렸다고 해야지.”
“저주라. 나쁘지 않은 이유인 것 같습니다.”
베일이 자신의 편을 들어줘 레이먼은 꽤 기뻤다.
살리고 싶었던 베일을 살릴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영법이 아니라 저주로 대충 둘러댄다면 서머셋에게도 지금 일어난 일을 어느 정도 얼버무릴 수 있으리라.
‘일이 끝나면 내 정체에 대해 물을 테니, 그때 어떻게 답할지만 잘 생각해둬야겠어.’
생각이 끝나자마자 레이먼과 베일 양쪽 모두 가운데 동그랗게 모인 기사들을 향해 달려들었다.
그런 베일과 레이에 대항하기 위해 이제는 적이 된 1기사단의 단원들 모두가 검을 들었다.
그리고 그들 대부분은 등을 돌려 레이먼을 향해 빠르게 달려들었다.
영법을 사용할 수 없다면 이 구역에서는 단장이 가장 강한 사람일 테니까.
물론, 조금 전 한 사람이 레이먼의 손에 의해 죽었지만 그건 분명 그가 영법을 믿고 방심한 탓이리라.
“살고 싶으면 길을 비켜, 레이!”
그러니 합심해서 레이를 돌파한 뒤, 도망치기만 한다면 아직 희망은 있었다.
“비키라면 비키는 게 멍청이지.”
푹.
검이 살을 통과하는 소리는 언제 들어도 익숙해지지 않을 듯했다.
“커흑-.”
무슨 일이 벌어진 거지?
피를 울컥 토한 단원은 천천히 자신의 배를 내려다보았다. 분명 얼룩 하나 없는 깨끗한 옷이었다.
그 옷은 길게 찢어져 피를 쏟아내고 있었고 흘러나오려는 다른 어떤 것을 사내는 꽉 움켜쥐었다.
그는 흐릿해지는 정신을 부여잡고 억지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레이에게 함께 달려든 열댓 명이 되는 기사들은 어느새 바닥을 뒹굴고 있었다.
자신처럼 피를 토한 이들도, 그러기 전에 목이 베여 눈을 부릅뜬 채 바닥을 뒹굴고 있는 이도 있었다.
왜 이렇게 된 건지, 그는 회고했다.
그가 원하는 건 강해지는 것밖에 없었다.
– 선배, 무슨 일이십니까?
– 검술 실력이 많이 늘었던데. 따로 연습이라도 하고 있나?
– 예! 훈련 시간이 끝나고 소등 시간에는 방에서 혼자 기본기를 다지고 있습니다.
– 그래, 많이 늘긴 했던데…. 조금만 더 하면 마검사도 이길 수 있을 것 같아.
– 예에? 제가요? 선배 정도는 되어야 어떻게 덤빌 만하죠. 마력이 없는데 어떻게 이 정도 실력으로 이기겠습니까.
그때, 그 이야기에 넘어가면 안 됐던 걸지도 모른다.
– 그럼 마력과 같은 위력의 힘을 다룰 방법이 있다면 배우고 싶나?
– 예? ……저는 서클도 없습니다, 선배님. 하지만 그럴 수만 있다면 그러고 싶습니다.
– 목숨을 바쳐서 배워야 한다 해도?
– 기사가 목숨을 바치는 일을 두려워해서 되겠습니까!
그날 이후 달이 뜨는 밤, 훈련장에 불려 나가게 되었다.
선배들이 사용하는 마력이, 아니 영법을 통해 발현된 검은 생명력이 불길하다는 걸 애써 무시했다.
욕심이 났기 때문이다.
‘나도 이걸 배우기만 한다면…’
배우면 배울수록 정신이 무언가 탁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종종 선배가 말하는 뜻 모를 주문을 외울 때면 듣고 싶지 않은 목소리가 들리기도 했다.
뜻을 알 수 없는 말을 읊조리던 목소리는 영법을 배운 기간이 길어질수록 또렷하게 들리기 시작했다.
– 레오, 갑자기 왜 그래?!
– 어?
– 왜 갑자기 내 목에 검을 겨누냐고! 게다가 이건 목검이 아니라 진검이잖아!
– 아… 어? 그러게, 내가 왜 그랬지?
그리고 목소리에 따라 자신도 모르는 사이 몸을 움직인 때도 있었다.
영법을 배우는 게 점점 무서워졌지만 멈추기엔 너무 늦어버렸다는 걸 그도 알고 있었다.
한 번 맛본 강함을 어떻게 완전히 포기할 수 있겠는가.
“하아.”
어쩌면 지금 멈춰서 다행일지도 모른다.
만약 이대로 시간이 흘러 그 목소리에 지배당하는 날이 온다면, 그날엔 분명 무언가 후회할 일을 저질렀을 게 뻔했으니까.
“……고, 맙.”
푹-.
그리고 그의 감사 인사를 다 듣기도 전에 레이먼은 그의 목울대를 그대로 찔렀다.
검을 한 방향으로 돌려 완전히 숨통을 끊은 뒤, 검을 뽑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피로 물든 훈련장 위에 서 있는 사내는 단 두 명뿐이었다.
피 묻은 볼을 베일이 스윽 닦은 뒤, 레이먼 쪽으로 돌아보았다.
그는 아직 검을 검집에 넣지 않았다. 아직 기사로서 해결해야 할 일이 남아 있다는 뜻이었다.
달밤의 노란 빛이 그의 검은 머리카락을 어슴푸레하게 비췄다.
빛에 반사된 검은 머리카락은 어떤 각도에서 보면 은빛으로 보이기도 했다.
그 은빛에 레이먼은 스턴에 두고 온 자신의 왕 후보를 떠올렸다.
베일의 눈빛에 담긴 단호함에는 마탑으로 내몬 자신의 동생을 떠올렸다.
‘그 두 사람, 잘하고 있겠지?’
“레이.”
베일이 검을 올렸다.
레이먼도 그에 응해주었다.
“네, 단장님.”
“네 진짜 이름이 뭐지?”
“…….”
“그 정도 실력의 마법사가 우리 바텔바흐의 국민이라면 좋을 테지만….”
베일이 한숨을 쉬었다.
검 끝이 조금 흔들렸다.
“그래. 아마 아니겠지. 오늘 네가 이곳에 있는 것도 우연은 아닐 테고. 레이, 솔직하게 말하면 네 처분은 내가 어떻게든 노력해보지.”
“단장님이 어떻게 노력하실 겁니까?”
“어떻게든 살 수 있도록 해주면 되지 않겠나.”
“솔직하게 말하지 않으면 어떻습니까?”
레이먼의 답에 무뎌진 베일의 시선이 다시 날카로워졌다.
그가 말했다.
“유일한 목격자라면 처리하는 편이 깔끔하지.”
“단장님이 저를 처리할 수는 있으시고요.”
레이먼이 부드럽게 웃었다.
휘어지는 눈꼬리와 얇아진 눈 때문인지 마치 뱀처럼 보이는 미소였다.
분명 경고를 날린 건 베일인데도 더 여유로워 보이는 건 레이먼이었다.
그는 쓸모를 다한 케이의 마법 망토를 허공에 만든 검은 구멍에 다시 집어넣어 옷매무새를 정리했다.
‘마법인가.’
검은 구멍 속에 물건을 보관할 수 있는 마법이 있다는 건 베일도 들은 적이 있었다.
하지만 분명 모든 마법에는 완드와 주문이 필요할 텐데.
그는 레이가 마법 주문을 외우는 것도 완드를 집어 드는 것도 전혀 보지 못했다.
이 정도만 봐도 그가 어느 정도 실력자인지 베일은 가늠할 수 있었다.
아마 그가 진심으로 마법을 사용한다면 자신 정도는 한순간에 죽일 수도 있으리라.
베일이 침착하게 다시 입을 열었다.
“출신을 말하라.”
“제가 제 정체를 말씀드리면 절 도와줄 의향은 있으십니까?”
“레이, 지금 거래를 건 쪽은 나다.”
“단장님, 뭔가 착각하는 게 있는 모양입니다.”
레이먼이 천천히 걸어 베일에게 다가갔다.
레이먼의 겨눈 검 끝에 레이먼이 손가락을 가져다 댔다. 그리고 천천히 밀었다.
손가락엔 피 한 방울 나지 않았다.
“거래를 제안할 수 있는 건 강자이고, 제 생각에 이 자리의 강자는 저인 것 같습니다만.”
웃고 있는 레이먼과 베일의 굳은 표정이 대조되었다.
“그건 모를 일이지.”
“저는 단장님을 살리고 싶습니다. 제 계획에 단장님이 도움이 될 것 같거든요.”
“네 계획이 뭔지 묻지.”
레이먼이 말했다.
“이 사태를 만든 장본인을 처단하는 것.”
“영법을 배우게 만든 배후가 있다는 건가? 그들이 자발적으로 영법을 배운 게 아니라?”
“바텔바흐의 일개 기사단원이 영법에 대해 어떻게 그렇게 자세히 알고 배울 수 있었겠습니까? 마법에 대해 제대로 아는 사람도 없는데. 단장님이야 단장이니 알고 계셨던 거겠죠.”
베일의 눈이 흔들렸다.
그리고 레이먼은 그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도우세요. 바텔바흐에 해가 가는 일은 없을 겁니다.”
달빛이 밝은 밤이었다.
달빛이 내려오는 날 내려온 악마는,
그 어떤 피보다 붉은 머리카락과,
그 어떤 호수보다 깊은 눈동자를 하고 있었다.
†
마탑의 아드리안은 형에게서 온 편지를 읽고 있었다.
편지의 내용은 대부분 비슷했다. 오늘은 바텔바흐의 어떤 지역을 관광했고 어떤 지역이 즐거웠고 어떤 지역의 빵이 맛있었다.
한눈에 봐도 일상적인 내용이 가득한 편지에 옆에서 훔쳐보던 오닉스가 편지를 빼앗아 들었다.
“얘는 바텔바흐에 진짜 관광하러 간 거야? 이럴 거면 널 왜 떼어놓고 갔어?”
“형이 쓴 편지가 아니에요.”
“뭐?”
“비슷하게 잘 따라 쓰긴 했지만 형은 L을 쓸 때 끝을 돼지 꼬리처럼 한 번 말고 뾰족하게 끝내거든요. 이건 둥글어요.”
“그럼 누가 쓴 건데?”
“니콜이 썼겠죠. 니콜이 형 곁을 오래 지켜서 이런 걸 잘하거든요.”
오닉스가 얼굴을 구겼다.
이 새끼는 동생한테 쓰는 편지도 대필을 시켜?
내용도 무슨 동네 꼬맹이들이 쓰는 수준으로 단순한데, 이것도 쓰기 싫어서 니콜이 쓰게 한 건가?
“뭐, 얼마나 대단한 걸 했다고 대필을 시켜. 내용도 개차반인데.”
“아마 내용도 거짓말일 거예요. 진짜라면 대필할 이유가 없을 테니까요.”
“바텔바흐까지 가서 관광 내용을 삥땅 칠 이유가 뭐가 있는데?”
“글쎄요. 단순 관광이 아니겠죠. 선배 말대로 절 두고 갔으니까요.”
아드리안은 마탑에 있는 동안 배운 게 있었다.
그는 이익이 되지 않는 일엔 거짓말하는 법을 배웠고, 그것을 유익하게 쓰는 법도 배웠다.
묵묵히 입을 다무는 대신 적당한 진실이 뒤섞인 거짓말을 하는 건 생각보다 어렵지 않았다.
아니, 어렵지 않다기보다는 훌륭한 스승을 만난 덕분일지 모른다.
남들이 어려워하는 걸 쉽게 해내는 사람은 그 분야의 고수라고들 하니까.
“뭘 그렇게 봐?”
그런 면에서 오닉스는 매우 훌륭한 스승이었다.
그는 마탑주가 자신의 아버지인 게 다 알려진 걸 알고 있으면서 모른 척했고 자신에게 유리할 때만 적당히 그런 낌새를 내비쳤다.
어떻게 사람이 저렇게 영악할 수 있을까 생각하면서도 그의 곁에 딱 붙어 있다 보니 아드리안에게도 그런 요령이 생긴 것이다.
‘하지만 형님께서 내가 마탑에서 배웠으면 한다는 게 이런 건 아닐 텐데.’
“형님이 저를 마탑에 보낸 이유가 정말 뭘지 고민 중이에요.”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야, 야! 아드리안! 아, 선배님도 계셨네요. 안녕하세요.”
때마침 마탑에서 함께 일을 돕고 있는 아드리안의 동기가 급히 달려와 그의 이름을 불렀다.
놀란 얼굴에 숨을 몰아쉬는 걸 보니 급히 온 모양이었다.
“소, 손님 오셨어!”
“나한테?”
“누군데?”
누군데? 라고 물은 쪽은 오닉스였다.
오닉스와 그리 대화를 나눈 적이 없던 아드리안의 동기가 당황한 모습으로 두 사람을 번갈아 바라보며 답했다.
“어, 그게. 서머셋 왕자님께서… 오셨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