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ill Make You a King as a Possessor RAW novel - Chapter (222)
빙의자가 왕으로 만들어 드립니다-222화(222/275)
레이먼 반 스플린.
베일 역시 그 이름을 몇 번이나 들어본 기억이 있었다.
쿠모르 제국과 스턴 왕국의 정세에 변화가 생길 것이라는 소식과 함께 들려온 이름이었다.
처음에는 엘프의 가호 때문이었다.
– 원래도 마법으로 유명한 국가에 엘프의 가호를 받은 사내까지 나왔다니.
– 그 엘프의 가호라는 게 뭔데?
– 그걸 받으면 대마법사보다 더 여유롭게 마력을 다룰 수 있게 되는 거야. 엘프들이야 그런 능력을 갖고 있어도 우리 인간사에 크게 관심을 갖지 않아서 괜찮았는데, 그 힘을 인간이 가지게 되다니…….
인간사에 관심이 없는 엘프국의 엘프들.
그들은 종종 인간 사회에 섞여 필요한 정보를 얻어가곤 했지만 인간사에 영향을 끼칠 만한 일을 하진 않았다. 귀찮은 일을 싫어하고 자신들의 것을 지키기 바쁜 이들이었기 때문이다.
그런 엘프들이 ‘가호’를 내려줄 정도라니.
– 그 가호를 받은 사람은 누구야?
– 스플린 가의 장남.
– 공작가? 왕실이 아니라?
이름은 듣지 못했지만 그때부터 ‘스플린’이라는 가문은 기억했다.
그 뒤에도 그 가문에 대한 소문은 종종 들려왔다.
그의 이름까지 들려왔을 때는 ‘엘프의 가호’보다 더 엄청난 소식과 함께였다.
– 대정령과 계약을 했다고? 그때 말한 스플린 가의 장남이?
– 그래. 레이먼 반 스플린, 그 장남. 대체 얼마나 강한 건지 이제 가늠도 안 가는군.
– 이대로 가면 대륙의 판도가 완전히 바뀌겠어. 스턴이 제국을 집어삼키려 할 수도 있잖아. 그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지?
– 바텔바흐는 스턴과 친분이 있으니까 스턴을 돕게 되지 않겠어? 2왕자도 우리 쪽에 있고.
– 하지만 요즘… 대공님이 다른 계획을 세우고 계신 것 같아서.
– 대공님이?
– 바텔바흐와 스턴의 국경 쪽에 출정 명령을 내렸어. 국경 근처 작은 마을을 괴롭히고 다시 돌아오라는 식의 명령이었는데, 이해가 되진 않더군.
바텔바흐의 공국의 주인이자 현명하기로 유명했던 대공은 최근 영 이해할 수 없는 행보를 보이고 있었다.
스턴에 무의미한 시비를 걸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그때마다 스턴의 군대에게 당하거나 후퇴하는 걸로 마무리됐다.
단장들 역시 그의 행동을 이해할 수 없었으나 일단은 따랐다.
그들이 충성을 맹세한 사람을 배신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베일은 그때 들었던 레이먼이라는 이름을 잊지 않고 있었다.
훗날 전쟁에서 그 사내와 마주치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그게 이렇게일 줄은 몰랐지만.
처음 봤을 때부터 여간내기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눈빛에서 드러난 포악해 보이는 성정과 한 번 이긴 상대는 거들떠보지도 않던 그 오만함.
그 비범한 청년을 베일은 꼭 자신의 기사단에 데려오고 싶었다.
하지만 그가 스턴의 레이먼일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어떤 미친 공작가의 자제가 자신들을 공격하기 시작한 공국의 기사단에 몰래 숨어들 생각을 하겠는가.
진정 미치지 않고서야 불가능했다.
대정령과 계약까지 한 사내라면 맑고 순수한 영혼을 지니고 있을 테니 더더욱 그럴 리가 없었다. 그리고 그런 영혼을 지닌 사내라면 저런 눈빛을 갖고 있을 리도 없으니까.
“예. 이미 알고 계신 것 같은데 설명을 더 해드릴까요?”
“아니, 괜찮…습니다.”
“굳이 존대를 할 필요는 없는데요.”
“신분을 알게 된 이상 굳이 외교상 문제가 될 일을 만들 필요는 없으니까요. 물론 무례를 먼저 범한 쪽은 제가 아니지만 말입니다.”
베일이 말했다.
그 말은 신분을 숨기고 기사단에 잠입해 그 단원들을 죽이는 데에 일조한 레이먼의 죄가 자신보다 훨씬 크다는 걸 의미했다.
“예, 뭐. 사실 다 죽이고 단장님도 죽이려고 하긴 했습니다.”
“…….”
그 말에 베일은 말문이 턱 막혔다.
공국의 기사단장을 죽이려 했다는 말이 저렇게 가볍게 꺼내도 되는 말이었는가.
레이먼은 목에 걸린 검 모양 펜던트를 만지작거리며 말했다.
“제 계획에 단장님은 안 계셨거든요. 단장님이 전에 했던 말대로 목격자는 서로밖에 없으니 한쪽만 죽이면 간단하니까요.”
눈빛이 진심이었다.
눈동자 속 일렁이는 파란 물결. 베일은 그 물결이 자신을 목을 죄는 듯한 착각마저 들었다.
“지금도 기회는 있습니다. 아직 밤이 깊었고, 제 집무실에 불이 들어온 걸 아는 단원들도 없을 테니까요.”
“기회야 언제든지 있죠. 하지만 제가 이미 말씀드렸잖습니까. 살려드릴 테니 절 도우시라고.”
레이먼이 말했다.
“기억하시죠?”
당연히 기억하고 있었다.
“원하는 게 이 사태를 만든 장본인을 처단하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만.”
베일은 그때의 대화를 다시금 떠올렸다.
– 영법을 배우게 만든 배후가 있다는 건가? 그들이 자발적으로 영법을 배운 게 아니라?
– 바텔바흐의 일개 기사단원이 영법에 대해 어떻게 그렇게 자세히 알고 배울 수 있었겠습니까? 마법에 대해 제대로 아는 사람도 없는데. 단장님이야 단장이니 알고 계셨던 거겠죠.
– 도우세요. 바텔바흐에 해가 가는 일은 없을 겁니다.
“이 사태를 만든 장본인이 누구인지만 말씀해주시면 돕겠습니다.”
“그건 안 됩니다.”
“왜….”
“안 되는 건 안 되니까요.”
베일에게 자신을 도우라 말하긴 했지만 그를 완전히 믿지는 않았다.
회귀 전의 생에서 베일이 죽은 이유는 아마 끝까지 영법을 거부했기 때문이리라.
오늘 일을 보고 확신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런 사내가 1기사단장으로 바텔바흐를 굳건히 지키고 있었다면 영법사의 수가 그렇게 폭증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영법사가 늘어나는 건 어차피 바텔바흐 입장에서도 그리 좋지 않은 거 아닌가요?”
“그건, 맞습니다.”
“그 사람은 바텔바흐의 영법사로 스턴과 전쟁을 치르려 하고 있습니다.”
“내부에서 바텔바흐를 갉아 먹을 생각을 하는 게 아니라요?”
“그건 추후의 일입니다.”
“하지만 겨우 영법사들로 스턴을 전복시킬 수는 없습니다. 그건 스턴 출신인 도련님께서 더 잘 알고 있을 겁니다. 그 수로 스턴의 마법사들을 이기는 건 불가능합니다. 조금 전만 해도… 사실 대정령의 힘만으로도 다 죽일 수 있던 거 아닙니까?”
굳이 검을 사용하긴 했지만, 만약 그가 제대로 힘을 발휘했다면 자신의 도움도 필요치 않았을 거라는 걸 베일은 본능적으로 알았다.
레이먼이 말했다.
“그 사람의 목표는 스턴을 전복시키는 게 아니니까요.”
“스턴을 전복시키는 게 아니다…. 헤집기만 하면 된다는 뜻이군요.”
“뭐, 그렇습니다. 제가 해줄 수 있는 말은 여기까지입니다. 저를 도울 겁니까?”
“돕지 않는다면 제게 다른 선택이 있습니까?”
그의 대답에 레이먼이 양어깨를 으쓱했다.
“그건 아닙니다. 죽이고 튀어야죠.”
“도련님, 그렇게 적나라하게 말씀을 하시면-.”
“사실이잖아.”
“뭐, 그렇긴 하죠.”
베일은 한숨을 내쉬었다.
선택의 여지는 없었지만 그는 고민했다.
지금 여기서 스턴의 사람과 손을 잡아도 괜찮은 게 맞는 건가.
하지만 이미 너무 많은 단원을 잃었고 그에 대한 책임은 자신이 지어야 했다.
영법과 같은 대죄를 저지른 단원들을 명예롭게 보내줄 기회를 주었다.
그리고 신분을 숨기고 여기까지 들어온 미친 자라면 더욱 미친 짓을 할 가능성도 있었다.
여러 가지를 종합했을 때, 지금 여기선 그와 손을 잡는 게 맞았다.
베일이 말했다.
“제가 무얼 하면 됩니까?”
***
다음 날 아침이 밝았다.
그리고 예견된 혼란이 찾아왔다.
“으, 으아아아악-!”
“대체 무슨….”
레이먼과 베일이 치우지 않고 쌓아둔 수많은 사체들과 어느새 검붉게 변색된 피 웅덩이가 새벽 훈련을 위해 나선 기사들을 반겼다.
자신의 동료를 발견한 기사들은 충격에 더 이상 소리를 지르지도 못했다.
맨 처음 그들을 발견한 기사는 곧장 단장들의 방으로 달려갔고, 남은 기사단원들은 쓰러진 자신들의 동료를 확인했다.
시간이 흘러 완전히 굳은 그들의 사체는 조각상처럼 차갑고 단단했다.
어제까지만 해도 함께 밥을 먹고 훈련했던 동료가 전쟁터도 아닌, 바텔바흐 성의 내부에서 단체로 죽임을 당한 것이다.
“적들이 여기까지 쳐들어온 게-.”
“설마 그럴 리가 없잖아. 여긴 대공성의 중심이라고.”
“만약 그렇다면 이미 대공을 습격해야 옳아. 하지만 이건….”
그날 밤 훈련장에 오지 않았던 1기사단원들은 더욱 혼란에 빠진 듯했다.
그들은 망연자실한 얼굴로 흰 천을 덮은 채 누워있는 자신들의 동료를 바라보았다.
그러나 그들 중 우는 이들은 없었다. 대부분 이를 갈았다.
이 정도로 많은 단원이 죽은 사건은 바텔바흐의 역사상 단 한 번도 없던 일이었다.
그리고 이 일을 단장들이 가만히 넘어갈 리도 없었다.
“제기랄, 대체 왜 이 밤에 훈련장에 있던 거야?”
“뭐 들은 거 있어?”
“전혀…. 알았다면 나도 갔겠지.”
영법에 대해 전혀 알 길이 없는 일반 단원들은 그저 동료의 죽음에 분노할 뿐이었다.
1기사단원 중 한 명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의 눈빛에 살기가 어려 있었다.
“단장들은 어디에 계시지?”
“이 일에 대해 회의 중인 것 같다. 기다려.”
2기사단원 중 한 명이 말했다.
몸을 돌려 어디론가 발걸음을 돌리는 그의 어깨를 다른 단원이 붙잡았다.
“단장들, 회의 중이라고.”
“하지만-!”
“쳐들어갈 생각하지 마라.”
두 사람의 대화에 다른 기사단원이 끼어들어 말했다.
“그래, 이 일의 처분도 결국 단장들이 결정할 일이야. 무슨 일이 있었는지 우리는 아무것도 모르잖아.”
“아무것도 모른다고? 동료가 죽었어. 어제까지만 해도 같이 훈련하던 동료가!”
“기사라면 어떠한 상황에서도 평정심을 유지하라는 소리 못 들었나. 전쟁통에도 그럴 거야?”
“상황이 다르잖아!!”
단원들의 언성이 올라갔다.
동료의 죽음에 슬퍼하는 마음은 같았으나 그 표현방식이 다른 탓이었다. 그때였다.
“단장!”
“단장님들이 오셨다!”
굳은 표정의 단장들이 훈련장으로 모였다. 그리고 기사단장들 옆에는 훈련장에 보이지 않던 1기사단의 생존자 ‘레이’도 함께였다.
레이를 발견한 기사들이 깜짝 놀라 눈을 크게 치떴다. 일개 신입 단원이 단장들과 함께 이곳으로 돌아온 데에는 분명 까닭이 있을 터였기 때문이다.
“단장님! 무슨 일인지 설명이 필요합니다!”
“설마 스턴에서 저희를 습격한 겁니까?!”
“흉수가 누구인지는 모르지만 복수를 해야 합니다. 이대로 넘어가면 동료들의 죽음이-.”
혼란스러운 마음이 여실히 전해졌다.
베일은 그들의 이야기를 충분히 들어준 뒤에야 한 발자국 앞으로 나섰다.
– 가상의 적이 필요할 겁니다. 영법에 대한 이야기는 빼고 그 적들이 기사들의 몸에 해충을 심어 조종했다고 말하세요.
– 대체 그럴 필요가…….
– 저희가 한 일이 아니라고 배후가 믿게 만들어야 하니까요.
베일은 크게 숨을 들이마신 뒤, 입을 열었다.
“어젯밤. 1기사단원들 중 절반이 넘는 이들이 죽었다.
“…….”
“그리고 그들은 죽인 사람은.”
그는 검집에서 검을 뽑아 들었다. 그의 피가 엉겨 붙어 검게 보였다.
“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