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ill Make You a King as a Possessor RAW novel - Chapter (227)
빙의자가 왕으로 만들어 드립니다-227화(227/275)
“설마.”
레이먼이 어깰 으쓱했다.
미래를 알고 있는 소설 속 주인공들이 으레 그렇듯, 레이먼 역시 모르쇠로 일관했다. 그렇게 해도 케이가 자신을 더 이상 추궁하지 않을 것이라는 걸 알았다.
왜냐하면 케이는 이 일에 더 이상 연관되고 싶지 않아 할 테고 레이먼이 무언가 감추고 있다는 걸 알아도 슬쩍 빠질 사내였기 때문이다.
“그럼 넌 지금 기사단 소속은 아닌 거지?”
“어.”
그리고 셈이 빠른 케이라면, 만약 영법이나 기사단의 죽음에 레이먼이 연관되어 있었다면 이렇게 쉽게 기사단을 나왔을 리 없다는 것도 충분히 눈치챘을 것이다.
그렇다면 케이를 여기서 놓아주는 게 맞을까?
‘그건 아니지.’
망토까지 받을 실력자라면 나중에 필요할지도 모르고, 지난 생처럼 그냥 보내기엔 아까운 인재였다.
레이먼은 은근슬쩍 뒷말을 덧붙였다.
“오늘 일은 스턴에도 들어갈 테니까 영법에 대한 연구 지원이 훨씬 늘어나겠지.”
“…그래?”
“연구비도 더 받을 테고.”
확정 나진 않았지만 유타에게 부탁하면 아마 가능할 거다.
그렇게 되면 케이의 연구나 그의 행동반경 역시 레이먼의 시야 내로 들일 수 있었다.
케이는 ‘연구비’라는 이야기에 눈을 반짝이더니 큼큼대며 목소리를 가다듬었다.
“그, 연구비라는 게 얼마까지 늘어나겠어?”
“지금은 거의 없다시피 한 연구니까. 글쎄, 왕실이 관심을 갖는 만큼 줄 것 같은데. 아마 관심을 많이 가지겠지. 그런 연구는 연구원들에게 따로 품위 유지비까지 주니까…….”
“푸, 품위 유지비?”
케이가 말을 더듬었다.
영법에 관심이 없던 것도 아니었다. 최근 영법이 스턴에서 떠오르는 연구 주제이긴 했으니까. 하지만 원래 하던 연구는 어떡하지?
케이가 고심했지만 레이먼은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거의 다 넘어왔네.’
귀족이라고 해도 돈이 많이 필요한 놈이라면 분명 여기에 넘어올 거다.
레이먼은 쐐기를 박는 말을 던졌다.
“추천해 줘?”
“!?”
“이번 일에 대해 불려 갈 건 나니까. 네 실력이 좋다고 추천은 할 수 있을 거야. 나도 고마워서 그래. 내가 바텔바흐에 들어올 수 있도록 보증까지 서주고, 난 네 망토까지 사용했으니까.”
“레이먼, 네가 은혜를 아는 놈이었구나…….”
케이가 눈물을 글썽였다.
“네가 별로면-.”
“레이먼!”
그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레이먼의 손을 맞잡았다. 눈빛에 레이먼에 대한 불신 대신 감동과 기대가 차올라 있었다.
좋아? 라고 레이먼이 묻자 케이는 거세게 고개를 끄덕였다.
마법사가 차고 넘치는 스턴에서는 오직 잘나가는 마법사만 품위 유지비라는 것을 받을 수 있는데 이 액수가 어마어마하다는 소문을 케이도 익히 들어 알고 있었다. 그걸 이제 막 졸업한 그가 받을 수도 있다니? 아마 다신 오지 않을 기회나 다름없었다.
‘머리에 젤리만 들어찬 미치광이라고 생각했는데, 유타가 이놈을 옆에 둔 이유가 있었구나. 생각보다 나쁜 놈이 아니었어!’
조금 전까지 죽이고 싶었던 놈의 목이 갑자기 황금처럼 번쩍번쩍 빛났다.
미끼에 완전히 넘어온 케이에게 레이먼이 말했다.
“그래서 말인데…. 내가 동생한테 답장만 쓰고 기사단 때문에 못 즐긴 바텔바흐를 즐기려고 하는데 말이야. 도와줄 수 있나?”
어차피 바텔바흐에서 할 일도 마쳤으니 이제야 정말 여행을 즐길 참이었다.
조금 전까지 인상을 팍 쓰고 있던 케이가 자신만만한 얼굴로 말했다.
“당연하지! 내게 말만 해!”
***
케이의 관광은 나쁘지 않았다. 그가 왜 그렇게 자신감이 넘쳤는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포레스튼 재학 중엔 분명 방학 동안에만 바텔바흐에 방문했을 텐데도 그는 골목 구석구석 무엇이 있는지 정확히 꿰뚫고 있었다. 그가 소개한 찻집의 차는 레이먼이 맛봤던 차 중에 가장 향이 좋았고 달콤했으며 아드리안도 굉장히 좋아할 맛이었다.
레이먼은 가게에 있던 모든 차를 종류별로 구매했고 벌써부터 니콜의 양손은 짐으로 가득했다.
찻집 이후에 케이는 무기 상점으로 그들을 데려갔다.
“안녕하세요, 아저씨.”
“오! 케이! 오랜만이구나.”
“오랜만에 살 만한 무기가 있나 해서요.”
“그렇다면 잘 왔다. 마침 새로 들어온 무기들이 많으니 천천히 구경하렴.”
아티팩트를 주로 파는 스턴과 달리 바텔바흐에는 질 좋은 무기 상점들이 많았다.
그러나 레이먼에겐 마탑에서 받은, 쓸만한 검이 이미 있었기 때문에 레이먼은 대신 문득 생각난 ‘선배’가 쓸만한 검을 찾았다.
왕실에 돌아가면 슬슬 그를 한 번 찾을 명분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무기 상점에 들어간 레이먼은 주변을 한 번 스윽 훑었다.
어차피 길거리 무기 상점에 보검이나 마검 따위는 없을 테고, 그저 연습 때 편하게 쓸만한 검이면 충분했다.
개중에 질 좋은 놈을 놓치지 않기 위해 레이먼은 아모르에게도 검을 한 번 훑어보라 이야기했다.
[ 레이먼, 이 검을 사라. ]‘벌써 찾으셨어요?’
아모르는 순식간에 상점 내부를 한 번 돌더니 왼쪽 벽 가장 위에 걸려 있는 장식품 같던 검을 가리켰다.
‘저 먼지 쌓인 검 말입니까?’
[ 이거 아티팩트다. ]‘아티팩트라고요?’
[ 마력이 거의 남아 있지 않아 마법사가 쥐기 전까지 아티팩트인 걸 분간하기 어려웠겠지. 아주 오래된 검이야. ]이런 곳에 왜 아티팩트가 있는 거야?
“저 검은 못 보던 검인데요?”
눈치 빠른 케이가 레이먼이 응시하던 검을 가리켰다.
“저거? 저건 원래 있던 놈이야. 장식할 만할 무기를 찾다가 대충 하나 걸어둔 거지.”
“팔진 않으세요?”
그러자 가게 주인이 너털웃음을 지으며 손을 휘저었다.
“저거 검집이 멀쩡해서 그렇지, 안의 검날은 아주 엉망이야. 정말 괜찮은 검이 필요하면 저 안쪽에-.”
“그럼 저 검은 다른 검보다 더 싸게 파시는 겁니까?”
레이먼이 물었다. 주인이 답했다.
“응? 아니, 아니. 저 검은 파는 게 아니라니까?”
“그래서. 더 싸게 파시냐고 여쭤봤는데요.”
레이먼이 씨익 웃었다.
케이는 레이먼의 미소를 보더니 슬쩍 뒤로 한 발자국 빠졌다.
저 똥고집이 저 검이 정말 마음에 든 모양이었다.
물론 레이먼에 대해 잘 모르는 무기 상점의 주인은 난처한 듯 없는 머리를 뒤로 몇 번 쓸어 넘겼다.
“아니, 왜 저렇게 저걸 갖고 싶어 하는 건지 모르겠네. 정말 저런 게 갖고 싶은 거야? 아무래도 네가 검날을 잘 안 봐서 그런 것 같은데. 잠깐 기다려 봐. 읏차-!”
그는 의자를 끌고 와 레이먼이 마음에 들어 했던 검을 갖고 내려왔다.
화려한 검집에서 검을 스윽 뽑아 들자 이가 다 빠지고 찌든 때가 낀 검이 모습을 드러냈다.
조금만 더 보고 있으면 눈으로 악취가 맡아질 정도로 검은 더러웠다. 왜 주인장이 팔지 않으려고 손을 휘저었는지 이해가 갔다.
“이제 봤지? 검집이 예뻐서 장식해 둔 것뿐이야. 파는 물건이라고 하기엔 너무 낡았잖아.”
“여기서 샀다고 말하지 않으면 되잖아요?”
그러나 더러운 검도 레이먼의 고집을 꺾지 못했다. 꺾이지 않는 고집을 눈앞에서 보고 있는 쪽도 괴로웠다.
“끄응. 가격 책정도 안 했는데.”
“여기서 제일 비싼 검은 얼마인데요?”
레이먼이 물었다. 그는 주판을 가져와 몇 번 타닥거리더니 레이먼에게 내밀었다.
바텔바흐에서 이 정도면 장인이 만든 무기를 살 수 있는 가격이었다.
케이도 은근슬쩍 다른 검을 추천해 주는 분위기였지만 레이먼은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뭐, 뭘 끄덕이는 거야?”
“제일 비싼 검도 이 가격이면 된다는 소리죠? 이 가격을 지불하고, 여기서 샀다는 말도 하지 않을 테니. 주세요, 그 검.”
“허어어……. 케이, 너 어디서 독특한 친구를 데려왔구나?”
“얘가 좀 특이하긴 해요.”
결국 레이먼의 고집을 꺾지 못한 주인은 레이먼에게 그 검을 팔았다.
검을 산 뒤 레이먼은 아모르가 말한 아티팩트가 마력에 따라 어떻게 바뀔지 확인하기 위해 집으로 돌아왔다.
니콜은 새로 산 차를 마시고 싶다며 주방으로 들어갔고 레이먼은 검을 쥐고 뽑아 들었다.
여전히 물 때 같은 이상한 얼룩이 잔뜩 낀 더러운 검이었다.
‘천천히 호흡하고.’
처음 아티팩트를 다룰 때, 특히나 꽤 오래되고 괜찮은 아티팩트 같은 경우는 마력을 넣는 순간이 가장 중요했다. 오래된 아티팩트일수록 내구성이 약해져 있을 가능성이 컸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그 선배’보다는 레이먼이 더 마력을 더 섬세하게 다뤘다.
검의 진짜 정체도 확인할 겸 길들여 놓으면 선물하기에도 편하겠지.
레이먼 몸 안을 돌던 마력이 검자루를 타고 검 안으로 천천히 스며들었다.
넘치지 않도록, 숲속의 샘물처럼 평화롭게.
레이먼의 마력이 검 끝을 돌아 다시 검자루로 돌아올 쯤에는 검이 서서히 자신의 모습을 되찾고 있었다.
이가 다 빠진 검날이 유리 조각처럼 날카롭게 변했다. 다 썩은 충치처럼 검은색이었던 검의 표면은 깨끗하게 변해 레이먼의 얼굴이 거울처럼 비칠 정도였다.
“세상에! 대체 무슨 마법을 부리신 거예요, 도련님? 드디어 연금술 쪽도 마스터하신 건가요?”
차를 내오던 니콜이 깜짝 놀라 자리에서 펄쩍 뛰었다. 그 바람에 쟁반 위의 차가 카펫과 니콜의 발등 위로 떨어져 니콜은 악! 소리와 함께 천장에 닿을 것처럼 다시 한번 점프했다.
“악!!”
레이먼은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
험프의 이야기는 굉장히 흥미로웠다.
“제가 변장을 하고 회의장에 나타나면 아무도 제게 말을 걸지 않아서 다른 마법사들을 구경하기 좋거든요. 그러다 보면 발견하는 게 있는데, 그런 소소한 발견들이 꽤 재밌습니다.”
“그래? 예를 들면?”
유타가 물었다.
험프는 원래 얼굴로 돌아간 뒤, 소파 등받이에 몸을 기울인 뒤 말했다.
“누가 누구랑 친한지? 그리고 친하게 지낸 뒤에 어떻게 변하는지?”
“그건 몰래 보지 않아도 알 수 있는 거 아닌가요?”
“그게 또 달라요. 평소엔 전혀 접점이 없어 보이는데 남들 눈에 안 띌 때만 말을 하는 마법사들도 있거든요.”
험프가 쿡쿡 웃었다. 유타는 그가 무언가 알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묻지는 않았다.
아마 그가 직접 말해줄 날이 올 것이다. 억지로 알아낸다 해도 그다음에는 입을 다물 수 있으니까.
“그렇군요. 그럼 저도 다음에는 잘 지켜봐야겠어요.”
“유타 님은… 따로 묻진 않으시네요? 궁금하지 않으신가요? 제가 누구를 얘기하는 건지?”
“궁금하지만 험프 님이 원하실 때 말씀해 주시겠죠. 이런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되었네요. 처리해야 할 일이 있어서 저는 이만 일어나봐야 할 것 같아요.”
험프의 계획과 달리 유타는 그 이상 관심을 갖지 않았다.
“즐거웠습니다. 다음에 다시 대화를 나눠요. 그때는 제가 먼저 말을 걸게요. 그땐 편하게 선배라고 불러도 괜찮을까요?”
유타는 부담스러운 질문을 던지는 대신 활짝 웃으며 다음을 기약했다.
험프는 그 점이 더욱 호감으로 다가왔고 밖으로 나서는 유타의 옷자락을 슬쩍 붙잡았다.
“무슨…?”
“지금! 지금부터 선배라고 불러요, 유타.”
“예?”
“어디로 가시나요? 함께 가죠! 선배로서 함께해 드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