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ill Make You a King as a Possessor RAW novel - Chapter (229)
빙의자가 왕으로 만들어 드립니다-229화(229/275)
크리스가 이상한 건 하루 이틀이 아니었다.
– 디찬~ 내가 너를 위해 무엇을 했는지 보여줄까!
– 아니.
– 바로, 바로!! 너를 위해 케이크를 만들어 왔지! 처음 만든 케이크라 예쁘지 않을 수 있지만 네 얼굴도 그렸는데, 어때? 여기 있는 게 눈이고 이 크림이 우리 약혼자의 높은 코를 나타낸 거야. 이 케이크를 본 모두가 아주 잘 만들었다고 칭찬을 해줬다고!
생일도 아닌데 갑자기 케이크를 만들어 오기도 하고.
– 디찬! 정말 그 연구원이 하고 싶은 거야? 나는 정말 네 실험실을 부숴버리고 싶어. 어떻게 너와 나의 거리를 이렇게까지 떨어뜨려 놓을 수 있는 거야?
– 지금 내 일자리를 없애버리겠다는 거야?
– 그, 그런 의미는 아니었어. 많이 화가 난 거야, 디찬? 내가 뭐라고 너의 일을 빼앗겠어. 그저 너무 우수한 약혼자를 둔 사람의 푸념이라고 생각해 줘. 너와 내가 결혼을 약속하긴 했지만 아직 정식으로 결혼한 사이는 아니니까… 불안했나봐.
혼자 급발진해서 화를 냈다가 사과를 할 때도 많았다.
– 디찬, 네가 보고 싶어서 와봤어. 혹시 민폐였나?
– 왜 말도 안 하고 와서 앉아 있는 거야. 내가 미안하잖아.
– 네가 보고 싶은 건 매일이고, 내 마음 따라 행동한 것이니 네게 말해서 부담을 지울 필요가 없지. 그래도 오늘 저녁은 내게 시간을 잠시 내주겠어?
그런데도 힘든 일은 죽어도 말 안 하는 못난 놈.
디찬은 맹목적인 약혼자인 크리스를 좋아하고 있었고, 그가 슬퍼하면 그녀도 슬펐으며 누군가 그에게 함부로 말하면 같이 화가 났다.
여하튼, 크리스는 이상한 만큼이나 감정이 표정에 잘 드러나는 놈이었다.
특히나 디찬에게는 그 표정 변화가 무서울 만큼 잘 보였다.
이번 데이트를 위해 만난 순간부터 크리스의 표정은 부자연스러웠다.
평소보다 어정쩡하게 더 올라가 있는 입꼬리.
마주치기만 하면 자연스레 다른 쪽으로 돌아가는 시선에,
몸짓도 오늘따라 더욱 과장되어 있었다.
보통 이 정도로 무언가 티가 나는 날은 그가 그녀에게 숨기고 싶은 무언가가 있을 때였다.
디찬의 반응에 크리스는 정말이지 자신이 죄인이라는 듯 테이블에 머리를 쾅 박으며 소리쳤다.
레스토랑을 통째로 빌려서 다행이지, 만약 다른 손님들이 있었다면 주변에서 폭발이라도 일어난 줄 알았을 것이다.
“디찬, 정말 미안해!”
“뭐? 나한테 왜-.”
“그 자리에서 네 편이라고 내가 얘기했어야 했는데!!”
쉬이익- 소리와 함께 흰 연기라도 나올 것처럼 빨갛게 달아오른 이마로 크리스가 고개를 들었다. 높은 콧대도 덩달아 테이블에 박았는지 토마토처럼 부어 있었다.
훌쩍이는 크리스에게 디찬이 여전히 불퉁한 표정으로 물었다.
“네 변명을 들으려고 말한 게 아니잖아, 크리스. 네게 무슨 일이 있었고 그 사람이 널 괴롭힌 거면 나한테도 말해야 한다는 뜻이야. 나는 네 약혼자잖아.”
“…!”
“네가 입버릇처럼 말하던 단어를 잊은 거야? 멋대로 감동한 표정 짓지도 말고.”
“디찬, 역시 그대랑 나는 천생연분이야. 꼭 결혼을 해야 해. 이런 너한테 나는…….”
크리스의 눈에서 또다시 닭똥 같은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디찬은 다시 그에게 티슈를 건네주었고 그는 퉁퉁 부은 눈에 고인 눈물을 닦았다.
“대체 뭔데.”
“들어도 화내지 않을 거라고 약속을….”
“듣고 나서 생각해 볼게. 말해.”
“하아.”
크리스는 한참 고민했지만 이내 페인과 있었던 일을 술술 불기 시작했다.
“-그 질문에 나는 제대로 대답하지 못했어. 하지만 너와 레스토랑에 오는 내내 생각해 봤는데 만약 네가 영법사가 됐고 포기할 생각이 없다면.”
“…….”
“그래도 나는 너를 죽이지 못할 거야.”
크리스가 환하게 웃었다.
이제 결론을 내린 듯한 모습이었다.
데이트를 위해 정문으로 향하던 발걸음은 무거웠다.
스턴의 기사로서, 그리고 자랑스러운 파리앙 가문의 일원으로서 영법은 용서할 수 없는 범법 행위가 맞았다.
하지만 멀리서 자신을 기다리는 디찬을 발견한 순간, 크리스는 자신이 기사단에 들어온 이유를 생각했다.
그는 그녀를 지키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리고 그녀에게 자신의 진심을 보이고 싶었다.
그렇기에 그는 마검사가 되어 그녀에게 기사의 맹세를 하고 싶었다.
– 디찬, 나는 너를 위한 기사가 될 거다.
– 그래, 네 마음대로 해. 대신 나한테 너 때문에 기사가 됐다는 식으로 말하지는 마.
– 그럴 리가. 기사의 맹세는 그런 얄팍한 게 아니야. 대신 디찬, 너도 나와 꼭 결혼해야 해? 알겠지?
– 글쎄.
그러니 만약 그녀가 영법사가 된다 하더라도 맹세는 깨지지 않으리라.
“디찬, 걱정하지 마. 나는 네가 영법사가 되어도 널 지킬 거야. 정 안 된다면 스턴을 떠나면 되겠지. 파리앙 가문의 뒷배가 없어도 너와 나라면 우린 어떻게든 살아갈 수 있을 거야.”
“그럴 일 없어.”
디찬이 단호하게 말했다.
영법이라니.
그런 선택을 하는 마법사가 있다는 사실이 디찬은 도리어 이해가 가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그 순간에! 이렇게 말하지 못했어. 그게 너무 후회가 돼. 정말 미안해, 나의 디찬.”
그가 다시 한번 테이블에 머리를 박으려 하자 디찬이 마법으로 작은 구름을 만들어 약혼자의 이마를 지켰다.
디찬이 연어를 한입 크기로 썰어 크리스의 입에 푹 넣어준 뒤 물었다.
“그런데 페인 전하는 왜 갑자기 나타나 너에게 그런 말을 한 거야?”
디찬이 먹여 준 연어를 우물우물 전부 씹은 뒤, 크리스가 입을 열었다.
“산책하다 우연히 만났어. 영법에 대해 내게 질문한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이유도 없이 물은 거야?”
“서머셋에 대해 잠깐 안부를 물은 게 다야. 아마 내가 서머셋이랑 친하니까 그걸로 물꼬를 트려고 한 것 같은데.”
“그래? 일단 알겠어. 네 진심도 다 전해졌으니까 이제 편하게 고기나 먹어. 네가 불편한 표정으로 있으면 나도 불편해.”
“디찬…….”
역시 나의 약혼자.
크리스는 크게 감동 받은 눈빛으로 디찬을 한 번 바라본 뒤, 조금 가벼운 마음으로 스테이크를 썰기 시작했다. 디찬 역시 조용히 연어를 입에 넣은 뒤, 생각했다.
‘영법이라.’
크리스에게 말하진 않았지만 최근 서머셋이 연구실에 자주 찾아왔다.
굳이 올 필요가 없는데도 쓸데없는 잡담을 나누기도 했고, 어떤 연구가 진행되고 있는지 확인하기도 했다. 왕실이 연구 성과를 확인하는 건 종종 있는 일이었지만 왕자가 직접 연구실을 찾아오진 않았다.
게다가 디찬이 알고 있는 서머셋은 비효율적인 외출을 하는 사내도 아니었다. 분명 자주 찾아오는 이유가 있다는 건데.
‘그 이유를 말해주진 않았고.’
설마- 라는 생각이 잠깐 들었지만 디찬은 연어 한 입으로 그 고민을 잠시 접어두기로 했다.
지금은 연구실이 아니었고 왕성 밖 디찬의 역할 역시 더 이상 연구원이 아니었다.
***
디찬과 크리스는 이제 다시 각자가 일하는 장소로 돌아가야 했다. 디찬은 아직 끝내지 못한 연구, 크리스는 추가 훈련을 하기 위해서였다.
크리스가 디찬을 배웅하기 위해 왕실 마법사와 연구원이 함께 사용하는 식당 쪽 길목을 함께 걸어가던 순간이었다.
“어?”
“응?”
“뭐야, 네가 왜 여기 있어?
두 사람 모두에게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
크리스는 그를 발견하자마자 성큼성큼 걸어가 양어깨를 붙들고 흔들었다.
“챈들러? 네가 여기 왜 있는 거야?”
“뭐야, 내가 왕성에 오길 가장 바란 건 너였잖아.”
챈들러는 크리스가 흔드는 대로 익숙하게 종잇장처럼 흔들거렸다. 익숙한 듯 리듬을 맞추던 챈들러는 뒤이어 걸어오는 디찬에게도 한 손으로 인사했다. 표정 변화가 잦지 않은 디찬 역시 잔뜩 놀란 표정이었다.
“너, 왕성에 들어온 거야? 왜? 서머셋 보러?”
“아니. 일하러 온 거지.”
“왜?”
정말 이해가 안 갔다.
재학 시절, 크리스가 몇 번이나 챈들러에게 왕실을 위해 일할 생각이 없냐고 물었었다.
서머셋이 왕성으로 돌아가고 챈들러가 본가로 돌아가게 된다면 이 가족 같은 학생회가 사라지게 될 거라며 크리스가 슬퍼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크리스는 챈들러의 능력을 매우 높게 샀다. 상인 가문을 이어받아야 하는 블랭킷과 달리 챈들러는 충분히 왕성 마법사가 될 수 있으면서 왕성에 오지 않겠다고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제 와서 갑자기?
심지어 몇 년이 흘러서?
“왜 온다는 거야?”
“글쎄. 내 마음이 바뀌었나 보지.”
“이해가 안 가네.”
“그럼 어디서 일하는 거지? 마탑? 아니면 왕실? 잠깐 있다 가는 게 아니라 계속 있는 건 맞지?”
크리스가 물었다.
크리스의 손아귀에서 벗어난 챈들러가 바로 뒤편을 대충 가리켰다.
“왕실 마법사. 들어오게 되면 레이먼이랑 동기네.”
“크하하하, 한참 선배면서 동기라니. 그러게 일찍 들어왔으면 좋았잖아.”
디찬과 달리 단순한 크리스는 친구가 돌아왔다는 사실만으로 매우 기뻤다.
그의 머릿속은 블랭킷까지 불러 서머셋과 함께 학생회 시절처럼 다시 왁자지껄 이야기를 나누는 상상으로 가득 찼다. 크리스가 말했다.
“너까지 왔으니 블랭킷까지 부르자고. 시간 되면 서머셋이랑 같이 차라도 마시면서 말이야.”
하지만 돌아오는 반응은 기대했던 반응이 아니었다.
자신처럼 활짝 웃으며 기뻐할 거라 생각한 챈들러는 묘한 표정으로 답했다.
“그래…. 그것도 뭐, 나쁘지 않지. 어쨌든 오늘은 대충 한번 둘러보러 온 거야. 레이먼이 방학 끝나고 이쪽으로 돌아오면 같이 들어올 생각이니까.”
“같은 클래스 후배라 그런가? 아직도 많이 친한가 봐.”
디찬이 말했다.
디찬 역시 레이먼을 아끼는 편이었지만 챈들러는 같은 클래스 후배라고 해도 이렇게 누군가를 대놓고 편애한 적이 없었다. 심지어는 졸업하고 몇 년이나 지났는데도 말이다.
“레이먼은 특별하지.”
챈들러는 디찬의 말에 부정하지 않았다.
그가 가볍게 웃으며 답했다.
“그놈 옆에 있으면 재밌는 일이 많이 생기거든. 그놈 때문에 이곳으로 온 것도 있어. 어쨌든 만나서 반가웠어.”
챈들러는 크리스와는 가벼운 포옹을, 디찬과는 짧게 악수를 나눈 뒤 왕성을 떠났다. 크리스는 여전히 꿈이라도 꾼 것처럼 상기된 표정으로 떠나는 챈들러의 등을 바라보았다.
반면, 디찬은 너무 많은 일들이 한 번에 생겨 귀찮은 얼굴이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챈들러는 레이먼에게서 온 편지를 다시 한번 읽었다.
[ 곧 스턴으로 돌아갈 예정입니다. 제가 가기 전에 왕성에 한번 들러서 크리스 선배와 디찬 선배에게 눈도장을 찍어주세요. 아무리 사회성이 없다지만 졸업하고 바로 절교하신 건 아니죠?아, 그리고 약속한 건 해결해 드릴게요. 왜 그걸 미리 말 안 한 거예요?
어쨌든 곧 돌아갈 테니 기다리고 계세요.
레이먼 올림 ]
다시 읽어도 어이없는 편지였다.
하지만 레이먼이 보낸 거라면, 뭐.
챈들러가 피식 웃으며 스크롤을 공중에 던졌다. 스크롤이 푸른 불꽃으로 화르르 불타며 사라졌다. 그가 작게 중얼거렸다.
“네 부탁은 군말 없이 들어줘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