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ill Make You a King as a Possessor RAW novel - Chapter (23)
빙의자가 왕으로 만들어 드립니다-23화(23/275)
“쫄?”
“쫄쫄쫄?”
“쫄쫄쫄쫄?”
무표정한 얼굴로 쫄쫄 대는 레이먼을 바라보며 유타가 싱긋 웃었다.
“안 쫄았어.”
“그럼 됐지.”
레이먼이 어깰 으쓱했다.
그는 이 일에 자신이 있었다. 정보상 헌터로 유명했던 건 전부 자신의 실력이었으니까. 누구도 뭐라 하지 못할 자신의 실력. 밑바닥에 있던 자신을 그래도 먹고살 수 있게 해준 자신만의 능력.
‘그냥 죽어라 파헤쳤던 것뿐이지만.’
레이먼이 의자를 끌어당기며 말했다.
“그럼 이 클럽 회장은 네가 해.”
“내가?”
“응. 그래야 내가 하는 모든 일이 전부 네 업적이 될 테니까.”
이놈은 뭘까.
레이먼의 말에 유타는 생각했다.
유타의 인생에서 믿을 수 있는 사람은 여태껏 단둘뿐이었다. 어머니와 자신의 기사 렌스.
그들 이외에 자신의 비밀을 아는 사람은 없었고 그럴 필요도 없다 여겼다.
불필요한 일은 불필요한 문제를 일으키고 마니까.
그런데도 가끔 그럴 때가 있다.
“레이먼. 넌 정말로 내가 왕이 되길 원해?”
“그거 답하면 나 쿠데타에 가담하게 되는 걸까?”
“어쩌면.”
“그럼 답 안 할래. 넌 내 친구니까 내 마음 정도는 읽을 수 있지?”
가끔 불필요한 일을 저지르고 싶을 때가 말이다. 그것도 아주, 아주, 아주 충동적으로.
그래, 이건 도박이다. 충동이 물고 온 일생일대의 도박.
그리고 그럴 때마다 저지른 도박은 늘 거대한 파도를 몰고 온다. 그때의 거대한 파도는 자신을 덮치고 집어삼키게 될 때도 있지만, 때론 고여 있던 잔잔한 호수에 새로운 물고기를 데려오기도 한다.
“있잖아, 레이먼. 내 비밀을 알려줄까?”
때론, 파도를 만들어내는 물살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어. 아니?”
물론, 이런 대답은 예상 못했지만.
***
“그거 내가 꼭 알아야 해?”
유타는 당황했다. 자신이 기대한 답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곧바로 평정심을 되찾았다. 그게 그가 살아온 방식이었다.
원하는 답을 기다리는 게 아니라 끌어내는 것 말이다.
“알아야지. 넌 내 생명의 은인이고 나를 위해 클럽까지 만들어 줄 사이니까. 게다가 지금 나한테 왕이 되고 싶냐고 물은 건 너잖아? 정확히 말하면 네가 제안한 거지. 자, 지금부터 내가 말해주는 비밀이 알려지면 너랑 나, 모두 죽는 거야.”
“…아니, 그러니까 내가 널 도울 수는 있는데 아직 네 비밀은-.”
“스턴에서는 왕족이라면 누구나 왕이 될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지는 건 알지?”
“…어.”
“하지만 딱 하나. 딱 하나 결격 사유가 있어.”
제기랄. 제기랄. 말하지 마. 말하지 말라고.
레이먼은 몰래 혀를 꽉 깨물었다. 이러려고 신문 클럽을 만들자고 한 건 아니었다. 아니, 물론 유타가 언젠간 말해줄 거라고 생각은 했었다. 아무래도 레이먼이 유타를 왕 후보로 삼은 이상 그는 레이먼에게 모종의 호감을 느낄 것이고, 추가로 레이먼은 언제나 유타에게 이득이 되는 방향대로 행동할 예정이었으니까.
그러니 그의 비밀을 듣게 되는 것도 신임을 얻는 과정에서 얻는 보상 중 하나겠지.
하지만 너무 빨랐다. 아직은 나도 좀 부담스럽다고. 서머셋이 내 왕 후보로 등록될 수도 있단 말이야! 네가 그 비밀까지 말해주면 난 빼박 네 편이어야 하잖아! 난 그냥 네가 왕이 될 때 ‘아, 도움 준 애가 누구더라? 아아아, 그 스플린 가 애!’정도면 된다니까?
유타가 테이블 위 찻잔에 손가락을 걸며 살짝 턱짓했다.
“이제 너도 눈치채지 않았어?”
“아니. 모르겠는데.”
“거짓말이네.”
레이먼이 도리질했다. 죽어도 모르는 체한다.
“아니, 거짓말 아닌데.”
“나 여자야.”
“안 믿어.”
“말했다?”
“안 믿는다고.”
“이제 너도 나랑 같은 배를 탄 거야.”
“아아아아아, 안 들린다.”
“하하하하, 재밌네. 내 이름도 가짜야. 유타가 아니라 유리아거든.”
“…아아아… 아아아……”
그날 밤, 어린 소년의 구슬픈 곡소리가 기프트 클래스 방 한 칸을 가득 채웠다.
***
“이제 포기하지?”
레이먼이 유타의 침대에 엎드린 지 30분쯤 흘렀다.
잔을 다 비운 유타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아, 평소엔 유리아라고 부르면 안 되는 건 알지?”
알지? 그걸 아냐고?
그걸 모르면 개똥멍청이 아냐?
당연하지. 누가 유리아라는 이름을 알았다고 유리아라고 소문을 내고 다니겠냐고.
“하아.”
베개에 깊이 얼굴을 숨기는 중, 침착함을 되찾은 레이먼은 짧은 한숨을 내쉬곤 벌떡 일어났다.
유타의 비밀을 알게 되었으니 이제 그와 자신은 한배를 탄 셈이었다. 렌스가 자신을 바라보는 눈도 달라졌다. 좋은 쪽은 아닌 것 같았지만.
“비밀을 안 김에 물어보는 건데, 넌 진짜, 진심으로 왕이 되고 싶은 건 맞지?”
“맞아.”
“왕이 되려고 여자인 걸 숨긴 거고? 그래서 머리도 짧게 자른 거야?”
“레이먼. 네가 머리 길이로 성별을 따지는 편협한 시각을 가진 귀족이라고 생각하진 않았는데.”
“…이건 실수. 미안.”
“받아들이지.”
유타가 고갤 끄덕였다.
“어쨌든, 레이먼. 난 널 정말로 신뢰해. 그러니 너에게 도박을 건 거야. 네가 이 아카데미에서 믿을 수 있는 친구라는 사실에 말이야.”
도박 한번 잘 걸었네. 넌 나중에 도박을 직업을 가져도 되겠어.
한 번 더 한숨 쉰 레이먼이 손을 팔랑대며 답했다.
“그래. 믿어, 믿어. 난 네게 해가 되는 일은 절대 하지 않을 거니까. 일단 클럽이나 만들자. 그거 얘기하려고 온 거니까.”
“그런데 1학년도 클럽을 만들 수 있는 거야?”
“아니? 2학년부터가 규정이지.”
“그럼…”
유타는 잠시 고민하는 듯하다가 씨익 입꼬릴 올렸다. 레이먼도 그를 따라 웃었다.
“응. 네가 생각하는 그게 맞아.”
***
헌터 시절, 레이먼은 언제나 최하위권에 속했다. 능력은 대부분 잡기에 불과했고 S급 헌터만큼 화려한 이력을 만들어낼 수도 없었다.
그리고, 그런 상황 속에서도 그는 자력으로 최하층에서 벗어났다.
레이먼은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활용해 역전하는 법을 알고 있는 남자였다.
‘상대가 원하는 걸 주는 것.’
그게 가장 핵심이었다. 그러기 위해선 손에 쥔 패가 많아야 한다. 그게 정보든, 사람이든, 가능성이든 간에 말이다.
그리고 이번 생에 그가 가진 패는 나쁘지 않았다.
“클럽을 만들고 싶다고?”
“네. 그런데 클럽을 만들려면 어떤 선생님께 말씀을 드려야 하는지 몰라서요. 선배는 혹시 아세요?”
다음 날, 레이먼이 유타를 데리고 향한 곳은 기프트 클래스의 휴게실이었다. 각 클래스별 휴게실에는 낮잠을 위한 수면실이 따로 있었는데 보통 고학년이 수면실을 점령하고 있었기 때문에 1학년은 잘 들리지 않는 곳이긴 했다.
그리고 수면실에는 그리 놀랍지 않게도, 옆으로 드러누운 챈들러가 책을 읽고 있었다. 챈들러는 유타의 말에 눈썹 한쪽을 들어 올릴 정도의 흥미를 보였다.
“1학년은 클럽을 만들지 못할 텐데… 라고 하기엔 네 옆에 있는 패가 꽤 쓸만하네. 유타 맞지?”
“안녕하세요.”
“안녕하지, 안녕해. 난 언제나 안녕하니까. 흐음. 근데 무슨 클럽을 만들 건데? 포레스튼에 클럽은 이미 100개가 넘어. 네가 만들려는 클럽 정돈 있을걸?”
“신문 클럽이요. 찾아보니 포레스튼에는 아카데미 신문이 없더라고요.”
“없는 데에는 이유가 늘 있는 법이지 않을까, 도련님들?”
“그렇죠.”
근데 뭐, 어쩌겠어요. 제가 만들겠다는데. 레이먼의 답에 챈들러가 만족한 듯 입꼬리를 올렸다. 그는 책으로 입가를 가리곤 레이먼의 질문에 답해주었다.
“클럽 담당은 초초 교수님이야. 아, 초초 교수님은 축복 수업 담당이라 아마 1학년인 너희들이 모르는 교수님이겠구나. 수업이 없을 땐 예배당에 계시니까 그쪽으로 가면 돼.”
“예배당이요?”
“축복 마법을 주로 사용하는 마법사들은 자주 신께 기도를 드려야 되거든. 아… 그래. 생각해 보니 초초 교수님이면 ‘네 패’가 통할 수도 있겠다.”
챈들러가 유타를 흘긋 쳐다보곤 말했다. 레이먼은 고개를 가볍게 숙여 인사했다.
“감사합니다, 선배.”
2주 뒤, 만반의 준비를 마친 레이먼은 유타를 데리고 예배당에 있을 초초 교수에게 향했다. 예배당은 생활관에서 클럽 하우스로 가는 복도에 있었다. 중간중간 충분히 들릴 수 있는 위치였지만 학생들은 고해성사할 때 외에는 예배당에 잘 가지 않았다.
‘누가 봐도 착해 보이는 분이라고 했지. 어…… 설마 저 사람인가.’
예배당엔 긴 벤치가 늘어져 있었는데 가장 앞줄에 말로만 들었던 초초 교수님이 보였다. 척 보기에도 광택이 가득하고 순해 보이지만 묘하게 어딘가 욕심이 느껴지는 얼굴. 그리고 그녀는 졸고 있었다.
‘깨워야 할까?’
‘좀 기다리자.’
레이먼과 유타는 그녀가 얼른 깨어나 침을 닦기를 기다렸다. 저러다 바닥까지 침이 떨어질 것 같아 당장이라도 빨간 고무대야를 내주고 싶었으나 레이먼은 그 욕구를 겨우 참아냈다. 한참 시간이 지나서야 초초 교수가 무거운 눈꺼풀을 뜨고 침을 닦았다.
이때다. 레이먼과 유타가 서로 마주 보곤 바로 앞으로 나섰다.
“안녕하세요, 교수님.”
초초 교수가 느릿하게 고개를 돌렸다. 그녀는 레이먼과 유타가 누군지 전혀 모르는 눈치였다.
“응…? 너희들은 내 수업을 듣는 학생들이 아니구나. 누구지?”
“저는 레이먼 반 스플린. 함께 온 이 학생은-.”
“유타 스테디움 스턴입니다.”
“5왕자랑 공작 가문이구나.”
그들 가문의 이름을 들은 초초의 눈빛이 반짝였다.
챈들러에게 초초에 대해 들은 이후, 레이먼은 그녀에 대해 철저히 조사했다.
그녀의 일생, 그녀가 남긴 업적, 그녀의 논문 그리고 전 레이먼이 남긴 일기장까지.
이전 레이먼의 일기장엔 쓸만한 정보가 많은 편은 아니었다. 동생에 대한 칭찬이 대부분인 일기장이었으나 종종 아카데미 생활에 대한 내용이 적혀 있긴 했는데 그중에 초초에 대한 것도 있었던 게 천운이었다.
포레스튼은 기본적으로 실력주의 학교였지만 왕실 편애가 없는 건 아니었다. 특히 초초 교수가 심했다.
일기장에 적힌 바로는, 초초 교수의 입에선 매번 왕족과 왕실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고 한다.
‘이래서 이 교수님의 교양 수업은 인기가 없는 건가?’
애초에 초초 교수는 왜 이렇게 왕족을 좋아하는 거지? 교수님들이 모두 이런 건 아닌데 말이다.
자자, 그래서 준비했습니다, 당신을 위한 맞춤 선물. 5왕자 유타-.
‘그래, 저 얼굴이 보고 싶었지.’
1학년이 데려온 선물이 마음에 들어 죽겠다는 표정, 저거. 심지어 왕족을 데려온 1학년도 공작 가문의 장남.
왕족과 공작 가문의 아들이 패키지로 오면 초초 교수는 좋아할 줄 알았다. 즉, 그들의 존재는 초초에게 있어 종합 선물 세트나 다름없었다.
초초 교수는 헛기침으로 겨우 목소리를 가다듬은 다음 말을 이었다.
“그래서? 여기까지 1학년이 무슨 일이지? 축복 마법에 흥미라도 있는 거야?”
“물론 축복 마법에 흥미도 있지만… 새로운 클럽을 만들고 싶어서요. 교내 신문 발간을 위한 클럽인데, 클럽을 만들려면 교수님께 클럽 신청을 해야 한다고 들었거든요.”
“그건 맞지. 하지만 1학년은 원칙적으로 클럽을 만들 수 없어.”
“어떻게 안 될까요?”
“그게 교칙이란다.”
“그럼 2학년이 신청서를 제출하면 되는 건가요?”
“그래, 맞지. 너흰 1학년이고.”
그렇게 대답할 줄 알았지.
2주. 2주 동안 준비했다.
2주 동안 겨우 이 정도 질문과 불쌍한 척하는 대사만 준비했다고 하면 거짓말이겠지. 레이먼은 주머니 속에서 클럽 신청서를 꺼내 들었다. 그리고 그 종이에 적힌 이름은 레이먼도, 유타도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