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ill Make You a King as a Possessor RAW novel - Chapter (234)
빙의자가 왕으로 만들어 드립니다-234화(234/275)
잠깐이었지만 케이는 고민했다.
어차피 저 남자가 찾는 건 레이먼일 테니 나는 그냥 빠질까?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 봐도 어차피 책임을 지는 건 이 도련님의 보증인인 자신이었다.
기차 계단을 오르던 케이는 한숨을 푹 내쉰 뒤, 다시 땅으로 내려왔다.
때마침 힘차게 달리던 역무원이 케이 바로 앞에서 멈춰 섰다. 꽤나 먼 거리를 달렸는지 숨을 헐떡대고 있었다. 레이먼 일행의 표를 봐줬던 다른 역무원이 물었다.
“무슨 일이야?”
“아니, 지금 기차에 맡긴 짐 중에 확인이 필요한 물건이 있어서.”
“어떤 물건이요?”
케이가 앞으로 나서자 역무원이 물었다.
“레이 님이십니까?”
“아뇨. 레이라는 남자의 보증인인 케이입니다. 조금 전 짐칸에 짐을 싣고 왔는데 무슨 문제라도 생긴 건가요? 보통 손님의 짐은 따로 확인 안 하는 걸로 아는데.”
케이의 말은 틀린 점이 없었다.
게다가, 그의 짐은 바텔바흐에 들어올 때와 거의 다른 점이 없었다. 겨울옷 몇 벌 더 챙겼을 뿐이다. 케이가 멀뚱히 역무원을 바라보는 레이먼을 곁눈질했다.
‘그렇다면 문제가 되는 건 저놈이 산 그 검인가?’
그의 시종인 니콜도 그 검에 신경 쓰이는 점이 있었는지 레이먼에게 작게 속삭였다.
‘저기 도련님. 설마 그 무기상점에서 산 그 검을 말하는 게 아닐까요?‘
‘그럴 거면 무기상점에 내놓으면 안 됐지. 그리고 검을 들고 가는 게 뭐. 다른 놈들 짐에는 그런 게 없을 거 같아?’
그 검은 꼭 들고 가야 하는데.
아모르가 추천할 정도면 평범한 아티팩트는 아닌 게 분명했다.
“그게, 아무래도 짐의 양이 워낙 많다 보니 옮기는 과정에서 짐 하나가 터져서요. 정리하다 보니 아무래도 확인이 필요해서 이렇게 찾게 되었습니다.”
“알겠어요. 가보죠, 그럼.”
케이 뒤에 있던 레이먼이 앞으로 나섰다.
“아, 혹시.”
“레이입니다. 제 짐은 어디에 있습니까?”
“아, 이쪽입니다!”
스턴이었다면 공작가 자제의 짐에 의문을 품을 생각조차 하지 않았을 것이다.
레이먼은 오랜만에 전생의 경험을 떠올리며 그를 따라갔다. 역무원이 안내한 곳은 그들이 짐을 맡기기 위해 들렀던 곳이었는데 그 앞에는 그들의 짐가방 몇 개가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가방의 옆구리가 터져 있었는데 아마 그쪽으로 내용물이 빠져나온 모양이었다.
니콜은 짐가방의 가죽 상태와 성인 남성의 몸통만 한 가방들을 보자마자 소리쳤다.
“어, 저거! 그걸 담아뒀던 가방들 아닌가요?”
레이먼이 물었다.
“뭘 담아둔 가방이었는데?”
그러자 니콜 대신 역무원이 답했다.
“홍차입니다.”
“홍차요?”
레이먼이 질문했다.
“정말 홍차가 맞습니까?”
“네. 아무래도 양이 몇십 kg이 넘어서 단순 기념품이 아니라 불법으로 반출하려는 것인지 확인하는 절차가 필요합니다. 선물 가게에서 사는 찻잎은 재배가 불가능해 반출이 가능하니 해당 가게의 영수증이나 번호를 넘겨주시면 됩니다!”
아, 이거. 그거구나.
레이먼은 회귀 전 왕성에서 읽었던 뉴스레터를 떠올렸다.
[ 바텔바흐에서만 나던 찻잎, 스턴에서도 발견되어…(중략)… 해당 찻잎은 스턴 내에서도 인기리에 판매되던 차이지만 워낙 모종의 수가 적어 바텔바흐와 스턴에서도 구하기 어려운 차로 유명했다. 이번 발견을 통해 더 많은 사람이……. ]요약하자면 바텔바흐에서만 나던 희귀한 찻잎이 스턴에서도 발견되었다는 내용이었다.
엄청난 화제가 되진 않았지만 소소하게 입소문을 탄 소식이었다.
하지만 몇 주 뒤에 스턴에서 모종을 불법 수입해 재배했다는 게 밝혀졌다.
그 뒤부터는 전쟁이 발발해 찻잎에 대한 이야기가 시들해졌으니 딱히 화제가 된 이야기는 아니었다.
“잠시만요.”
그 사이, 니콜은 자신의 가방에서 구겨진 영수증을 꺼내 역무원에게 건넸다. 역무원이 영수증을 확인한 뒤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네, 확인되었습니다! 전부 기념품 가게에서 구매하셨네요!”
“그럼 가보면 되겠습니까?”
케이가 불안한 듯 말하자, 역무원은 활짝 웃은 뒤 그를 안심시켰다.
“예! 이외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저야말로 이렇게 멈춰 세워서 정말 죄송합니다. 너그러운 마음으로 이해해 주시니 정말 감사했습니다.”
“근데 이런 식으로 모종을 불법 수입하려는 사람이 많습니까?”
한숨을 돌리고 이제 떠나려는 케이가 무색할 정도로 레이먼은 그 자리에 말뚝이라도 박힌 것처럼 움직이지 않았다.
이제 곧 기차가 떠날 시간인데도 말이다.
“이봐, 레이먼. 곧 기차가 떠날….”
“많습니까?”
“어, 예. 많습니다. 특히나 희귀한 차는 주변국에도 많이 수출되는 편이니 모종을 가져가려는 사람들이 많지요.”
“그렇군요. 그럼 합법적으로 모종을 수입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음, 제가 거기까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아! 일전에 모종을 수입하려는 분께 증명서류를 받은 적이 있는데 그때는 수입하려는 사람과 모종을 건넨 이의 사인이 있었습니다.”
역무원이 말했다.
“아무래도 모종의 주인은 모종마다 따로따로 있어서요. 그래서 수입하기 더욱 어렵죠.”
“공국에서 관리하는 게 아닙니까?”
“그건 아닙니다. 찻잎은 발견한 사람이 이름을 붙이고 상품으로 만들어 팔기 때문에 보통 발견한 사람이 상품 특허의 주인이 됩니다. 그 과정에서 공국의 도움을 받으면 일정 지분을 넘기는 식으로 판매가 되고 있습니다. 다만, 모종의 주인이 알려지는 경우는 많지 않아서 계약하기가 어려운 것이지요.”
말하는 도중에 맛 좋은 차라도 생각이 난 것인지 역무원의 목울대가 한 번 크게 출렁였다.
“레이먼, 기차 시간이-.”
“그럼 ‘이’ 모종은 어떻습니까? ‘이’ 모종의 주인은 아십니까?”
레이먼은 케이의 말을 가볍게 씹고 가방의 가장 많은 자리를 차지하던 차 하나를 꺼내 들었다. 역무원은 차를 한번 살펴보고선 호탕하게 웃었다.
“아! 이 차의 주인은 아주 유명하지요. 공국의 도움을 일절 받지 않고 차를 성공시켰거든요. 이 차는 저도 참 좋아합니다. 먹고 나면 아주 힘이 불끈불끈 나는 게 건강해지는 기분도 들고, 맛도 달달한데 시원하기까지 하니 일하다 먹으면 아주 꿀맛이지요.”
“이 주인과 계약한 사람은 있습니까?”
역무원이 손사래를 쳤다.
“에이, 아뇨. 없었습니다. 조금 전 말씀 드린 것처럼 이분은 남과 이득을 나누길 원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그를 찾아간 손님들을 발길질해 내쫓는 걸로 유명해진 분이기도 합니다.”
자신의 주인을 잘 알고 있는 니콜은 기차 탑승을 완전히 포기한 채로 레이먼의 대화에 집중하고 있었다.
“도련님, 이 차의 주인과 계약하려고 하시는 겁니까?‘
“글쎄. 역무원님, 이 차의 주인은 어디에 살고 있습니까?”
“여깁니다.”
“예?”
“이곳 바텔바흐 수도 중심가 가장 큰 저택에서 지내고 있어요.”
역무원의 이야기를 전부 들은 레이먼은 니콜에게 기차 짐칸의 짐을 모두 빼라고 일렀다. 역무원은 “저도 돕겠습니다!”라며 그를 따라갔다. 케이는 이 모든 상황에 혼절할 것 같았다. 이게 유타가 레이먼을 옆에 두는 이유인가?
인생이 어디로 흘러갈 지 한 치 앞도 알 수 없었다.
“이봐, 레이먼. 오늘 돌아가야 일하기 3일 전부터 준비할 수 있어.”
“그 말은 이틀은 여유 시간이 있다는 소리네.”
***
“형님이 늦으시네요.”
역으로 레이먼을 마중 나온 아드리안이 중얼거렸다.
“그러게.”
유타 역시 아드리안과 함께 레이먼을 기다리고 있었다.
원래 일정대로라면 그를 기다릴 여유가 없었겠지만 레이먼의 도착일이 이틀 늦어졌기 때문에 마중을 나올 수 있었다. 게다가 레이먼이 따로 부탁하기도 했다.
‘원래라면 마중 나오라는 부탁을 할 놈이 절대 아닌데.’
그래서 유타는 레이먼이 늦은 이유가 궁금했다.
레이먼은 유타에게조차 바텔바흐에 이틀 더 머무른 까닭을 이야기해 주지 않았다.
쓸데없이 유타가 가장 좋아하는 바텔바흐 차를 마시는 레시피와 자세한 맛, 왜 차를 좋아하는지에 대한 설명을 요구했을 뿐이다.
게다가 자세한 설명을 적은 편지를 마법을 통해 전달하길 원했다. 아마 며칠이나 걸려선 안 되는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오닉스는?”
“선배는 마중 나올 시간에 좀 더 자고 싶다고 하셨어요.”
“하하, 걔라면 그럴만하지.”
두 사람의 잡담 소재가 다 떨어질 무렵이었다.
빠아아앙-.
덜컹, 덜컹.
“온다.”
기차가 역에 도착하는 소리가 들렸다. 그들은 자연스레 일등석 칸이 있는 방향으로 향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레이먼과 니콜의 모습이 보였다. 그 뒤를 케이가 뒤따라 내렸다.
아드리안은 레이먼을 보자마자 종종걸음으로 얼른 다가가 레이먼이 들고 있던 아주 작은 짐까지 대신 들었다.
“형님.”
“아드리안.”
“고생 많으셨어요. 여행은 즐거우셨어요?”
“어. 설마 마중 나온 거야?”
레이먼이 놀란 듯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아드리안을 뒤따라오던 유타는 그런 레이먼을 발견하고선 손을 흔들었다.
“마탑에서 일하면 마중 나올 시간이 없었을 텐데.”
“내일 포레스튼으로 돌아가야 해서요. 마탑에서 해야 할 업무는 어제 전부 끝났어요.”
“그래. 그럼 다행이네.”
“네. 그런데… 니콜은 어디로 가는 건가요?”
아드리안은 내리자마자 자신에게 인사한 뒤 짐칸으로 터덜터덜 향하는 니콜의 뒷모습을 가리켰다.
“아, 니콜? 짐칸에서 챙겨야 할 게 좀 있어서.”
“형님은 따라가지 않으셔도 되나요?”
“나는 소개할 사람이 있거든. 유타도 왔지?”
“네, 유타 선배도 오셨어요. 그런데 소개해 주실 분이라뇨?”
그제야 아드리안은 형을 뒤따라 내린 노인이 자신의 형과 동행이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노인은 스턴이 처음인 듯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기차역의 전경은 바텔바흐와 스턴이 확연히 달랐기 때문에 그가 이렇게 두리번거리는 이유도 이해는 갔다. 아드리안이 레이먼 곁에 바짝 붙어 서서 속삭였다.
‘형님, 저분은 바텔바흐에서 모셔 오신 분인가요?’
‘어. 우리한테 도움을 주실 거야.’
‘도움이요? 어떤…?’
‘돈방석.’
‘네?’
‘푹신한 돈방석을 줄 거라고.’
그렇게 말한 레이먼이 다가오는 유타에게 저벅저벅 걸어가 팔목을 붙들었다.
“레이먼? 아무리 내가 반가워도….”
“인사드릴 사람 있어.”
레이먼은 유타를 붙들고 노인 앞에 섰다. 노인은 인상을 팍 찡그린 채 괴팍한 표정을 짓고 있었는데, 어린아이가 봤다면 사탕도 던져버리고 도망갈 듯한 얼굴이었다.
유타 역시 이 노인의 정체를 전혀 몰랐기 때문에 당황한 채 두 사람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레이먼, 이분은 어떤 분이…….”
“할아버지, 얘입니다.”
“뭐?!!”
“얘라고요.”
“어? 내가 걔라고? 뭐가?”
당황한 유타의 눈이 커다랗게 변했다. 지팡이를 짚고 있던 노인이 지팡이를 허공에 휘휘 저어 레이먼을 내쫓았다.
그는 유타 앞에 바짝 다가섰다. 넘어지면 코 닿을 거리에서 노인이 다시 소리쳤다.
“네가 내 차로 얄궂은 레시피를 만든 그 싸가지 없는 놈인 게로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