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ill Make You a King as a Possessor RAW novel - Chapter (237)
빙의자가 왕으로 만들어 드립니다-237화(237/275)
“할아버지, 무슨 생각을 그리 해?”
“……알 거 없다.”
“차 한 모금 하시고 아무 말도 안 하시니까 그렇죠.”
레이먼의 말대로 윌로스는 차를 한 입 들이켠 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는 무언가 곰곰이 생각하더니 유타를 바라보며 물었다.
“하나만 물어보자. 너는 왜 이런 레시피를 생각하게 된 거냐.”
그는 찻잔을 들어 보였다.
“내 찻잎의 가격은 비싸. 그러니 다른 놈들도 내 찻잎 모종을 노리는 거고. 하지만 그 비싼 찻잎을 요리할 생각을 가진 놈들은 본 적이 없어. 그리고 지금 내게 내온 레시피는 대부분 앞 페이지에 있던 것들이지?”
유타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윌로스가 레시피를 거의 완벽히 외우고 있다는 사실에 놀랐다.
“앞 페이지의 요리는 대부분 고급스러운 식재료를 많이 활용했지만 뒤는 어디서나 쉽게 구할 수 있는 재료들을 이용했기에 묻는 것이기도 하다. 귀족들은 잘 먹지 않지만 어떤 기후에서도 잘 자라니 구하기 쉬워 가격도 저렴해 평민들이 자주 먹는 재료들이지. 그런 재료들로 너희들이 레시피를 만들 이유는 없을 텐데.”
공작가 도련님과 어울릴 정도면 저 은발 머리 놈도 귀족일 가능성이 높았다. 게다가 반말을 허락해 줬다는 걸 보니 신분 차이도 어마어마하게 나진 않을 것이다.
윌로스의 질문에 유타가 말했다.
“그게 제가 해야 할 일이기 때문이죠.”
“네가 해야 할 일이라고?”
“찻잎을 활용해 돈이 없는 이들이 보다 나은 삶을 누릴 수 있다면 그 방법을 생각하는 게 말이에요. 언젠가 모종을 재배하고 싶다고 말했는데 레이먼이 그걸 기억하고 바텔바흐에서 할아버지를 모시고 올 줄은 몰랐어요.”
유타가 생긋 웃었다. 얼마나 환히 밝게 웃었는지 잠깐 정령계로 돌아가 있던 빛의 대정령도 다시 돌아와 그 얼굴을 한 번 구경하고 돌아갈 정도였다.
윌로스는 습관적으로 콧방귀를 흥 뀌었다.
“그게 왜 네가 할 일이야? 스턴의 왕족이나……. 왕족…….”
그렇게 말한 윌로스는 다시 생각에 잠겼다.
그는 살면서 귀족과 큰 접점은 없었다. 그 자신이 바텔바흐의 귀족이긴 했으나 어차피 장사치나 장사를 하는 귀족 몇몇을 제외하고선 그의 찻잎 자체에 관심을 갖는 왕족이나 높은 신분의 귀족은 잘 없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도리어 윌로스 찻잎이 특권층만의 전유물이길 원했다.
하지만 그들이 윌로스를 찾지 않는 것과 반대로 윌로스의 귀에 들리는 정보는 많았다. 전국을 돌아다니거나 자국의 상권을 꽉 잡고 있는 장사치들이 그의 집에 올 때마다 새로운 이야기를 가져왔기 때문이다. 그래서 스턴의 왕족에 대한 이야기도 들은 바가 많았다. 특히, 2왕자가 바텔바흐의 귀족과 결혼하기까지 했으니 더더욱 그랬다.
하지만 그 왕자들 중에서도 이야깃거리가 가장 풍성한 왕자가 한 명 있었다.
외모에 대한 설명은 거의 듣지 못했기에 단번에 알아보지 못한 것이다.
하지만 두 가지 특징.
은발과 붉은 눈.
스턴에 은발과 붉은 눈이 얼마나 흔한지는 알 수 없었으나 눈앞의 정체 모를 귀족가 도련님도 은발에 붉은 눈이었다. 게다가… 저런 말을 한다는 건.
눈치챈 듯한 윌로스를 보며 유타가 심장께로 손을 올렸다.
“윌로스 할아버지, 제 이름은 이미 말씀드렸지만 다시 한번 소개하겠습니다.”
유타가 말했다.
“제 이름은 유타 스테디움 스턴. 스턴의 5왕자입니다. 그동안 꼭 만나 뵙고 싶었어요, 윌로스 님.”
“할아버지, 신분 알았으니까 이제 얘한테는 존댓말 해야 할 수도 있어. 알았죠?”
“아니에요, 저한테도 얼마든지 반말하셔도 돼요. 제가 부탁드리는 입장이잖아요.”
“야, 너는 왕족한테 말 놓으라고 하는 게 쉬운 줄 알아? 그거 나중에 나쁘게 써먹으려면 써먹을 수도 있다고.”
“알지만 여기엔 렌스랑 너희 가문 사람들밖에 없잖아. 그리고 윌로스 찻잎 재배를 허락받는 게 쉬운 일은 아니-.”
두 사람이 투닥거리는 사이, 윌로스는 차를 한 번 더 들이켰다.
“정말 5왕자님이 정말 맞…으시겠죠.”
“네. 맞습니다. 일부러 숨긴 것은 아닙니다. 편하게 관계를 시작하고 싶어서 언제 말할지 생각하다 보니 말할 타이밍을 놓쳤어요. 레이먼이 미리 말씀드리지 않았다고 해서요.”
“알아서 좋을 게 없잖아. 그렇죠, 할아버지?”
“그래도 말을 해주는 편이 좋았을 거다.”
스턴의 왕족에 대한 소문은 바텔바흐 내에서 그리 좋지 않았다.
일단 2왕자의 인성에 대한 소문이 아주 파다했다.
그것도 매우 안 좋은 쪽으로 말이다.
제멋대로 기사들에게 대련을 신청하고 이길 때까지 인정사정없이 공격하는 나쁜 놈이다.
그런 성품은 스턴에서도 쭉 그랬을 것이니 스턴의 왕족은 다 비슷할 것이다- 등등이 과반이었다.
개중엔 좋은 소문도 있었는데 그건 대부분 4왕자에 대한 이야기였다. 그나마 가장 나은 놈은 3왕자와 4왕자이고, 국경에 자주 나타나는 4왕자가 그나마 말이 통한다는 이야기.
물론 어디까지나 바람 따라 흐르는 장사꾼들의 말이니, 소문을 전부 믿을 필요는 없었지만.
5왕자의 소문은 거의 없다시피 했다. 그래서 윌로스는 5왕자가 정말 존재감이 없거나 무능한 인간일 거라 생각했었다.
장사치들의 입에 오르내리지 않는다는 건 그 두 경우가 대부분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몇 번인가 5왕자 이야기를 하던 스턴의 장사꾼도 있긴 있었다. 게다가 그가 하는 이야기 속 5왕자는 꽤 흥미로웠다. 그러나 계약이 성사되지 않아 그는 더 이상 찾아오지 않았고 5왕자의 이야기는 그걸로 끝이었다.
‘이제 보니 이 정도로 꽉 막혀 있었던 건 누군가 일부러 막은 걸 수도 있겠어.’
5왕자에 대한 생각을 새로이 한 윌로스가 물었다.
“어쨌든 왕자님께선 이 레시피로 저를 꾀어내려 하신 거라 생각해도 되겠습니까?”
“꾀어낸다뇨. 그런 의도로 만들어진 레시피는 아닙니다.”
유타가 고개를 가로저은 뒤, 말했다.
“지금부터 말하는 건 레이먼도 처음 듣는 이야기일 겁니다.”
‘나도…?’
“제가 보지 못한 재료로 요리하기 시작한 건 아주 어릴 때부터입니다. 제가 아카데미에 입학하기 전에 왕성에서 없는 존재로 취급받던 적이 있었거든요. 어머니와 살던 별궁은 아주 열악했고 중간중간 식재료를 빼돌리는 시종인들이 많아 늘 먹을 게 부족했습니다. 그래서 마당에서 캔 풀로 난생처음 보는 요리를 직접 만들어 허겁지겁 먹었던 적도 있었어요.”
확실히 이건 레이먼도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
“귀족에게 음식의 레시피는 좋은 식재료로 더 훌륭한 맛을 위한 것입니다. 생존이 아니라 유희를 위한 것이지요. 하지만 제 생각은 다릅니다. 어떤 레시피는 누군가에겐 살기 위해 꼭 필요한 정보이기도 하니까요. 저는 가난한 이도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행복한 삶을 살 수 있기를 바랍니다. 모종을 재배하면 윌로스 찻잎의 가격은 떨어질 겁니다. 그리고 저 레시피는 포레스튼에서 시작해 이젠 마을에도 배부되는 저희 뉴스레터에 싣고 싶다고 생각하는 중입니다.”
유타의 포부는 원대했다.
하지만 레이먼은 그의 설명에 가장 중요한 게 빠져있다는 걸 알았다.
그걸 알려줄 수도 있지만 그는 가만히 있었다. 만약 혼자서 그 부족함을 알지 못한다면 유타는 왕 후보로서의 자질이 부족한 것이나 다름없다.
레이먼은 반투명하게 켜져 있는 킹메이커용 상태창을 보았다.
회귀 후 왕 후보에는 변동이 있었다.
레이먼이 진정으로 왕 후보로 선택한 이만이 후보로 떠오르게 된 것이다.
그리고 이제 왕 후보는 한 명이었다.
“전하의 의도는 알았습니다.”
윌로스는 빈 접시를 힐끗 본 뒤 답했다.
“요리는 정말 맛있었고 레시피는 성공할 것 같기도 합니다. 아마 성공하겠죠. 윌로스 찻잎은 차로만 마셔도 매우 맛있을 테니 찻잎 자체로도 많이 팔릴 겁니다.”
하지만 윌로스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러나 그 사실만으로 제가 차 재배를 허락할 순 없습니다. 제게 돌아올 이득은 무엇입니까?”
아들과의 추억을 떠올릴 수 있게 해준 그에게 쉽게 모종을 건네줄 수 있었다.
하지만 윌로스에겐 명분이 필요했다. 다른 이들이 똑같은 조건으로 자신을 찾아와도 재배를 허락해 주지 않을 객관적인 명분이 말이다.
“윌로스 님께는 당연히 모종을 재배하고 판매해 얻는 매출의 60%를 드릴 겁니다.”
“60%나?”
60%라면 지금 스턴이 차를 수입하며 얻는 금액보다 훨씬 클 것이다.
게다가 이런 조건의 계약은 다른 차의 계약을 생각해봐도 흔치 않았다.
대부분 재배를 허락해 준다 해도 제안해 오는 조건은 순수익의 30%가 최대였다.
재배하는 데 들어가는 노동력 역시 고려해야 했기 때문이다.
아마 매출의 60% 자신에게 넘겨주게 되면 계약자에게 돌아갈 수익은 크지 않을뿐더러 거의 없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리고 해마다 레시피를 늘리겠습니다.”
“레시피를?”
“네. 제가 개발하는 게 아니라 윌로스 찻잎을 먹게 될 이들이 직접 만드는 레시피를요. 지금보다 더 많은 이들이 윌로스 찻잎으로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여드릴게요. 레시피 관련해서는 따로 요리대회도 개최할 생각이지만 이 부분은 계약이 성사된 이후에야 조율할 수 있어서 확답드리기 어렵습니다.”
윌로스는 고민했다.
아마 레시피에 관련된 소문은 빠르게 퍼질 것이다.
그리고 그 이야기를 들은 장사꾼들이 자신을 찾아와 말할 것이다.
자신들도 레시피를 만들어 보급할 테니 재배를 허락해달라고 말이다.
하지만 저 분배율을 들은 순간 혀를 차며 돌아갈 것이다.
5왕자가 제안한 분배율은 다른 이들이 절대 따라 할 수 없을 수치였다.
윌로스가 말했다.
“첫 재배는 어려울 겁니다.”
“그럼…!”
“윌로스 찻잎은 토양을 한 번 다져두는 게 중요하니까요. 제가 자주 방문할 수도 있으니 장기 허가증을 내주셔야 할 겁니다. 그리고 제가 드린 모종을 타국에 넘기는 건 용납하지 않을 것이니 알아서 하십쇼.”
“할아버지, 잘 생각했네.”
레이먼이 웃으며 말하자, 윌로스가 지팡이로 바닥을 한 번 콩 쳤다.
“공적 계약 중이니 윌로스라고 불러주세요, 공자.”
“그래, 그래.”
“자세한 건 일단 자리를 옮기고-.”
“정말 감사합니다, 윌로스 님!!”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유타가 윌로스의 두 손을 꼭 쥐었다.
‘스턴의 왕족은 다 성격 파탄인 줄 알았는데.’
자신에게 이득이 거의 없는 계약을 성사시키고 이렇게 웃을 수 있는 청년이 성격 파탄일 리가 없지.
밝고 상냥한 태양 같은 청년이다.
‘자신보다 다른 이들을 생각하는 마음이 깊으니 가장 위에 올라가기에 걸맞은 성격이야.
하지만 이 상냥한 성격 탓에 다른 이들에게 얕보일 가능성이 높아 그 부분은 걱정되지만……. 그 역할은 레이먼 공자가 그 역할을 잘해주는 것 같군.’
윌로스의 괴팍한 얼굴이 순간 처음으로 온화하게 변했다. 하지만 곧장 다시 험상궂은 표정으로 변했다. 그가 두어 번 기침하며 말했다.
“그럼 차나 한 잔 더 해도 되겠습니까.”
“당연하죠!”
윌로스는 렌스에게 차를 부탁하는 유타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생각했다.
이미 생을 다한 자신의 아들을 닮은 저 청년이 원하는 바를 전부 이룰 수 있기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