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ill Make You a King as a Possessor RAW novel - Chapter (243)
빙의자가 왕으로 만들어 드립니다-243화(243/275)
“선배님.”
“레이먼, 왕성에서 다시 보니 보기 좋아.”
“선배님의 갈색 곱슬머리도 오늘따라 더욱 풍성해 보이시네요.”
“감사국에 있을 때는 살짝 탈모가 온 것도 같은데 말이지. 쉬니까 다시 자라더라고. 하루 만에 빠글빠글.”
“빠글빠글이요?”
“빠글빠글. 왜…… 아저씨 같나? 우리 형이 쓰던 말인데.”
“아뇨, 전혀요. 식사는요?”
“나가서 하자고. 여기 밥은 맛있긴 한데 취향은 아니야.”
간이 약하긴 하죠. 레이먼은 동료들을 먼저 보내고 챈들러와 수도에서 가장 유명한 레스토랑이 즐비한 식당 골목으로 향했다. 리트리가 소개해 줬던 식당이 있는 곳이었다.
“여긴 어떠세요. 리트리가 추천했던 식당 중 하나거든요.”
“외관은 별론데….”
“선배가 좋아할 가지 스튜도 있어요.”
“들어가자.”
레이먼은 자리에 앉자마자 챈들러의 취향에 맞춘 메뉴를 2개, 자신이 적당히 좋아하는 요리를 하나 포함해 주문을 마쳤다.
“감사국이랑 이곳 분위기는 많이 다른가요?”
“조금은. 네 동기들만 봐도 감사국보다는 자유롭게 일하던데?”
챈들러는 저주가 풀린 후, 레이먼의 부탁대로 아무도 몰래 감사국에 들어갔다.
그의 친구인, 정확히 말하면 동료였던 크리스나 디찬, 블랭킷도 모르게 말이다.
감사국은 귀족, 마법사 등 특권층을 감사하기 위해 만들어진 기관이었기에, 감사국에 언제 누가 들어가는지는 본인이 말하지 않는 이상 알기 어려웠다. 그래서 크리스나 디찬, 심지어는 무수한 정보를 다루는 상인 가문의 블랭킷도 챈들러가 감사국에 들어갔던 사실을 전혀 몰랐다.
[ 감사국 일은 나쁘지 않아. 하지만 쉴 틈이 전혀 없기도 해. 중간에 몰래 낮잠을 자러 갈 시간도 없다는 게 말이 된다고 생각해, 레이먼? 음. 너라면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을 것 같긴 하다. ]챈들러의 편지에는 감사국에 보냈던 삼인방 중 한 명인 라이가 최근 실수로 벌을 받았다는 이야기도 함께 적혀 있었다.
어쨌든 챈들러는 감사국은 딱히 쓸모 있는 정보가 없다고 말했다. 이 정도 정보는 스플린 가문의 정보꾼들도 알고 있을 거란 말도 함께 덧붙였다. 그렇게 말하면서 예시 한 가지를 들었다. 그 예시는 감사국 내에서도 기밀에 속하는 내용이라고 했는데, 이미 레이먼이 몇 달 전부터 알고 있는 내용이었다.
결국 레이먼은 챈들러에게 감사국에서 나와 잠깐 가문으로 돌아가 있으라고 말했다.
그리고 때가 되면 다시 무언가 부탁할 것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그때는 레이먼이 졸업한 뒤, 바텔바흐 여행 중 찾아왔고 그는 이번에는 챈들러를 왕실 마법사로 불렀다.
챈들러 정도의 실력이니 왕실 마법사로 들어오는 건 식은 죽 먹기였다.
게다가 아직 서머셋은 챈들러를 이용하고 싶어 했다.
서머셋이 쌓은 권력의 탑은 꽤 높았지만 그 높이만큼 위태로웠다. 주변 귀족들이 그와 매너스를 유력한 후계자로 지지했으나 언제든지 바뀔 수 있는 표였다.
더군다나, 존재감 없던 5왕자까지 최근 급부상하기 시작했다. 마음이 급해졌을 것이다.
‘바텔바흐의 상황으로 봤을 때 영법은 이미 어느 정도 완성되었을 테고. 그렇다면… 원하는 인재에게 영법을 시험할 가능성도 높아.’
챈들러도 그가 시험하고 싶은 인재 중 한 명이겠지만, 회귀 전에는 영지에 있었기 때문에 직접적으로 영법을 걸 만한 상황이 없었다.
그러니 회귀 전, 그의 술수에 넘어간 건 서머셋이 눈길을 보내던 인재 중 가장 유약했던 아드리안이었을 가능성이 높았다.
“가지 스튜 나왔습니다.”
“감사합니다.”
“레이먼…….”
“네.”
“나는 왜 이곳의 가지 스튜를 이제야 알게 된 거지?”
“선배님이 좋아하시는 식당들의 외관과 너무 달라 제대로 알아보려 생각도 하지 않았을 테니 이곳에 가지 스튜가 있다는 사실조차 몰랐을 가능성이 높겠죠.”
“…….”
“왜 그러세요.”
“네가 너무 냉정해서 살짝 상처받았어.”
챈들러가 심장을 움켜쥐는 시늉을 하며 스튜를 한 입 더 떠먹었다.
스튜를 절반쯤 먹을 때까지 챈들러는 감사국에 떠도는 시시콜콜한 소문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었다. 감사국은 대정령과 계약한 게 유타와 레이먼 두 명이라는 사실은 이미 알고 있었고, 현 왕을 치료한 사람이 유타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이 정확한 사실을 소문으로 치부한 이유는 누구도 자료로 남기지 않았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그들의 공식적인 업무는 귀족과 마법사의 감시지 왕족에 대한 감시가 아니었기 때문에 굳이 왕족의 일을 자료로 남길 이유도 없었다.
“감사국은 재판소랑 사이가 좋은가요?”
“재판소? 아, 네 동기가 있다는 거기? 좋은 것 같긴 해. 감사국에서 일하기 싫은 애들이 몰래 재판소로 도망갔다가 걸려서 돌아오기도 하거든.”
“그게 가능한가요? 건물이 붙어있지도 않을 텐데.”
챈들러가 어깨를 으쓱했다.
“친구가 있다면야?”
“기억은 납니다.”
“그래서. 네가 나를 굳이 왕실 마법사로 부른 이유는 뭐야? 크리스랑도 만나게 하고 말이야. 내일은 셋이서 만나기로 했어. 서머셋, 크리스, 나.”
챈들러가 말했다.
“서머셋은 너랑 내가 친하다는 걸 이미 잘 알고 있을 텐데. 네가 시키려는 게 뭔지는 아는데 나를 믿을지는 모르겠다.”
챈들러는 그때나 지금이나 레이먼이 원하는 게 뭔지 알고 있었다.
서머셋에게서 정보를 빼내 달라는 거겠지.
하지만 서머셋은 포레스튼에 재학할 때에도 자신에 대한 정보를 거의 주지 않았다.
그런 성격이 바뀌었을 리가 없다.
레이먼이 말했다.
“믿든 믿지 않든 몇 가지는 오픈할 겁니다. 그쪽도 급하거든요.”
“급해? 걔가?”
“제가 훼방을 좀 놨어요.”
“네가? 어떻게?”
“…….”
“너나 서머셋이나 비밀이 너무 많아.”
그렇게 말한 챈들러가 스튜의 마지막 한 스푼을 입에 집어넣었다.
레이먼이 물었다.
“그런데 왜 저는 돕고 서머셋은 돕지 않으시나요? 제가 입학하기 전, 서머셋과 가장 가까웠던 건 챈들러 선배 같은데.”
“…….”
챈들러는 그 말을 듣고 쓰게 웃었다. 그는 빈 접시를 한편으로 밀어낸 뒤, 답했다.
“그러게나 말이다.”
***
챈들러는 느지막한 오후가 되어서야 서머셋의 집무실로 향했다.
크리스가 놓은 으름장 때문이었다.
– 아침 훈련만은 결단코 빠질 수 없다. 숭고한 귀족의 의무야. 타의 모범이 되어야 하는 우리 가문이 아침 훈련에 빠진다는 그런 모욕적인….
– 아……. 뭐, 그래. 나도 늦잠 자고 좋지.
챈들러는 오전 늦게까지 잠을 자다 느지막이 일어나 점심을 먹은 뒤 출발할 수 있어 기뻤다. 마침 성에 들어가기 전에 함께 이야기를 나누기로 했던 크리스를 만날 수 있었는데, 옷차림이 말이 아니었다.
“넌 옷이 왜 그래?”
흙먼지를 잔뜩 뒤집어쓴 옷은 반쯤 갈색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크리스는 통쾌하게 웃으며 말했다.
“훈련을 성실히 했다는 증거다. 체력과 마력이 곧 국력이니 훈련을 게을리하는 자는 기사가 될 수 없어.”
“나까지 더럽히진 마. 옷 갈아입는 거 귀찮으니까.”
“걱정 마라. 난 너랑 달리 준비성이 매우 철저하니까. 훈련복 외에 일상복도 챙겨왔지.”
그렇게 말한 크리스는 허공에서 새 옷을 소환했다.
하지만 진한 푸른색의 눈에 띄는 옷은 파티라도 참석하는 귀족의 옷차림 같았다.
챈들러의 눈에는 매우 과한 디자인에 색채였지만 크리스는 그 옷이 매우 마음에 드는 듯 뿌듯한 미소를 머금은 채, 안으로 들어섰다.
똑똑-.
“전하, 오후에 함께하기로-.”
“아, 들어오라고 해.”
집사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서머셋의 답이 들려왔다. 문이 열리자 정중앙에 마련된 커다란 책상에서 업무를 보고 있던 서머셋이 자리에 앉은 채 그들을 반겼다. 외눈 안경을 낀 모습이 퍽 잘 어울렸다. 크리스와 챈들러를 번갈아 바라본 서머셋이 말했다.
“너희 둘이 이곳에 있는 걸 보니 정말 새롭다. 잠시만 기다려. 이 서류만 끝내면 되거든.”
“너는 왕실에 돌아온 이후로 너무 서류에만 파묻혀 있어, 서머셋. 계속 그러다간 체력이 약해져 금방 쓰러질 거다.”
“크리스, 내게 너만큼의 근육은 애초부터 무리야. 운동은 틈틈이 하고 있으니 너무 걱정 마. 그리고 나보다는 챈들러가 더 심하지 않아?”
“저놈은 애초에 다른 사람의 말을 듣질 않아.”
크리스는 혀를 찼고, 서머셋은 그들이 앉아 있는 소파로 와 앉았다.
시시콜콜한 이야기로 시작된 대화는 점차 깊어져 갔다.
“마법 기사단 분위기는 어때?”
“별다른 것 없지. 할 수 있는 게 훈련뿐이니까.”
“늘 고맙다. 최근 바텔바흐와 일이 너무 복잡해져서 너희들한테 미안할 일이 많아.”
서머셋의 말에 크리스가 시원하게 웃었다.
“기사라면 당연히 해야 할 일이니 미안해할 필요 없어.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는 게 중요한 거지.”
너털웃음에 어깨를 툭 친 크리스를 보곤 서머셋이 한 번 미소 지었다. 그가 이번에는 챈들러를 바라봤다.
“챈들러, 너는 좀 어때. 네가 감사… 아니지, 왕실 마법사로 온다고 했을 때 좀 놀랐어.”
서머셋은 챈들러가 보냈던 편지로 그가 감사국에 있었던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크리스 앞에서 그 얘길 꺼내진 않았다. 그 이야기를 들으면 본인만 몰랐던 거냐며 길길이 날뛸 게 눈에 선했기 때문이다.
아무것도 모르는 크리스가 말했다.
“그러니까 말이야. 올 거면 미리 말 좀 하라고.”
“내가 오고 싶으니까 온 거지.”
“따로 이유가 있던 건 아니고?”
살짝 고개를 숙인 뒤, 손가락을 만지작거리던 서머셋이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그는 여전히 고개를 숙인 채, 슬쩍 눈길로만 챈들러에게 눈치를 줬다.
챈들러는 그의 눈빛을 알고 있었는데도 모르는 척 말했다.
“이유가 있다고 움직일 놈은 아니잖아, 내가. 와서도 잔다고 한 일도 없어.”
“그럴 거면 왜 돌아온 거야?”
“그냥. 시골은 심심하더라고.”
“그렇구나. 다른 이유가 없으면 왕실 마법사 말고 내 일을 돕는 건 어때? 너 정도면 내 옆에 있어도 아무 말 하지 않을 거야.”
“세기의 천재한테 누가 함부로 말을 해?”
크리스가 투덜거렸다.
“됐어. 네 옆에 있으면 바쁘기만 하지.”
“챈들러, 너는 아직도-.”
“내가 너한테 꼭 필요한 건가?”
챈들러가 물었다. 서머셋이 답했다.
“당연하지. 이 삭막한 왕실에서 내 편이 될만한 녀석들은 너희들 정도니까.”
“그래? 그럼 내가 네 편이 되면. 네가 하고 싶은 건 뭔데?”
“야, 챈들러. 거기까지 해라.”
크리스가 챈들러의 발을 툭 쳤다. 챈들러는 왜- 라고 반문했다.
“내가 친구한테 목표가 뭔지 물어본 것도 잘못이야? 그 정도도 알면 안 되나?”
“선이란 게 있는 거다.”
“선 지키면서 친구를 만들 수는 없는 거다.”
“그렇네. 챈들러, 네 말이 맞아. 내 목표는 간단해. 내가 하고 싶은 걸 이룰 힘을 갖는 거야. 그러기 위해선 너희들이 필요해. 날 배신하지 않고 믿을 수 있는 이들이 말이야.”
서머셋의 말엔 힘이 있었다. 아마 그 힘이 왕좌를 가질 이의 증명이라면, 서머셋은 왕좌에 오를 자격이 충분할 것이다.
타인을 설득하는 목소리의 힘은 생각보다 강력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힘이 전부일까?
왕위에 오를 자가 갖춰야 할 덕목은 그게 전부인 건가?
챈들러는 서머셋을 처음 봤을 때를 기억했다.
주스테 신을 모시는 예배당에서, 창문을 통해 비치는 햇빛을 온전히 받고 있던 그 모습을 기억한다. 마치 주스테 신이 새롭게 태어난 것처럼 보이기도 하던 그 이상했던 신기루를 말이다.
– 챈들러, 학생회에 들어오지 않겠어?
그날의 기억이 선명하게 챈들러를 덮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