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ill Make You a King as a Possessor RAW novel - Chapter (244)
빙의자가 왕으로 만들어 드립니다-244화(244/275)
같은 학년의 유명 인사. 더군다나, 그가 왕족이라면 그를 모를 학생은 없을 것이다.
챈들러 역시 서머셋에 대해선 익히 알고 있었다. 같은 기숙사는 아니었지만 복도에서 수없이 마주쳤으니 말이다.
어딜 가나 모두가 그를 주목했으니 도리어 서머셋이 어디 있는지 모르는 게 이상할 정도였다.
그러나 그의 실물을 제대로 본 건, 예배당에서가 처음이었다.
기도 수업을 제외하고선 포레스튼의 재학생 중 예배당을 찾는 이들을 찾기 어려웠다.
그래서 챈들러는 조용한 예배당을 좋아했다. 수업을 빠지고, 예배당에 와 혼자 잠을 자는 게 챈들러에겐 최고의 시간이었다.
그날도 여느 때와 다름없이 수업을 빠져 먹고 예배당에 간 날이었다.
그곳에서 검은 머리카락에 붉은 눈, 어디선가 본 왕자의 얼굴을 마주한 것이다.
보통이라면 호들갑을 떨며 그를 반겼겠지만 챈들러는 그를 가볍게 무시하고 벤치에 누웠다.
그게 서머셋의 흥미를 끌 줄은 몰랐지만 말이다.
서머셋 역시 챈들러를 잘 알고 있었다.
챈들러는 몰랐겠지만 그 역시 포레스튼의 유명 인사였다.
최연소로 마법 논문에 이름을 올린 아이작 가문의 자제. 유명해지지 않을 수 없었다.
다들 퉁명스러운 그에게 제대로 말을 붙이지 못했을 뿐이다.
그러나 서머셋은 그렇지 않았다.
그는 챈들러의 마법에 관한 생각에 큰 흥미를 지니고 있었다.
“너랑 대화를 나눠보고 싶었어.”
그날 이후로 서머셋은 챈들러를 만나면 마법에 대해 대화를 나누고 싶어 했다.
챈들러는 그가 질문을 던지면 대충 답해주거나 무시하는 식으로 대화를 이어 나갔다.
보통이라면 챈들러와 대화를 할 정도로 똑똑하지 않았는데 서머셋은 꽤나 똑똑했다.
그는 챈들러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정확히 이해하고 따라왔다.
챈들러는 서머셋에 대한 생각을 조금은 고쳐먹었고, 그가 챈들러를 학생회로 초대했을 때는 받아들였다. 서머셋이 마음에 들어서는 아니었다. 학생회에 들어가면 학생회실에서 더욱더 조용히 잠을 잘 수 있을 테니까.
그러나 서머셋과 챈들러의 관계는 조금 특이했다.
두 사람의 대화는 언제나 마법이었고, 친구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챈들러는 자신들의 대화에 미묘함을 인지하고 있었다. 서머셋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두 사람 다 그 균열을 고칠 생각은 없었다.
챈들러는 서머셋과 대화를 나누면서 그에 대해 또 한 번 생각을 고쳐먹었기 때문이다.
– 서머셋, 그 마법은 너와 어울리지 않아.
– 왜 그렇게 생각해, 챈들러?
– 마석이 너무 많이 필요하고, 그 마석은 너무 위험한 곳에 있어. 지금 광부들이 가기에는 현실적으로 어려워.
– ……. 네 말이 맞아, 챈들러. 어렵긴 하겠다.
그렇게 말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서머셋은 그 마법을 완성했고 다른 학생 앞에서 시연까지 해 보였다.
그런 일이 몇 번 반복되자 챈들러는 약간의 회의감을 느꼈다. 서머셋이 자신을 따라 왕성에 가자고 했을 때는 단호히 거절했다. 그와 더 가까워지면 좋을 게 없었다. 특이한 놈이라고만 생각하기에는 서머셋의 몇 가지 행동들은 챈들러가 생각하는 선을 넘었기 때문이다.
전혀 상관없는 놈이라면 아무 문제 없지만 가까워지기는 싫은 놈.
하지만 굳이 적을 만드는 멍청한 일을 하진 않는 편이 좋았기 때문에 챈들러는 서머셋의 곁에 있었다. 그렇게 지루한 아카데미 생활을 하던 도중 레이먼을 만난 것이다. 그리고 레이먼이 좋아하는 왕족이 똑똑하고 착하기만 한 5왕자인 것도 알았고.
똑똑하고 착한 놈은 포레스튼에 널리고 널렸으니 그다지 흥미가 생기진 않았다.
유타가 아무리 똑똑하다고 해도 자신보단 똑똑하지 않을 거란 걸 챈들러는 알고 있었다.
자신은 진짜 천재, 유타 저놈은 노력파인 게 딱 보였으니까.
신기한 건 자신과 같은 부류인 레이먼이 유타를 좋아한다는 것이다.
어떻게 친구를 사귀는 분야만 저렇게 멍청할 수 있는지 궁금할 정도였다.
그러나 이것도 레이먼에게 말하지 않았다.
적을 만드는 멍청한 짓은 하진 않는 게 좋으니까!
더군다나, 레이먼이 유타를 좋아한다면 굳이 레이먼이 싫어할 행동을 할 이유가 없었다.
맛없는 젤리를 씹어도 젤리는 젤리니까. 다행히도 유타는 서머셋처럼 완전히 썩은 젤리는 아니었다.
유타와 레이먼은 졸업할 때까지 쭉 그 우정을 유지했다.
그게 챈들러는 신기했기에 편지로 물어본 적도 있었다.
대체 유타를 왜 그렇게 챙기는 거야?
돌아온 대답이 웃겼다.
[ 천재도 아니고 성격이 좋아서요. ]천재가 아니라서 좋다니.
그리고 성격이 좋은 애가 어디 한둘인가.
‘나도 성격이 좋잖아.’
챈들러가 그 의미를 깨달은 건 최근의 일이었다. 그는 크리스를 만나고 돌아가는 길에 유타를 만났다. 방학부터 바쁘게 일하고 있는 모습이 불쌍해 보였다. 그래서 몇 마디를 걸었다. 둘만의 대화를 이렇게나 길게 나눈 건 처음이었는데, 말하면 말할수록 챈들러는 신비한 느낌이 들었다.
“선배님?”
“아, 어.”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하세요? 그리고 지금 드린 과일은 저 골목 안쪽 가게 아주머니께서 직접 키운 농장에서 따온 거라 아주 싱싱하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된답니다.”
그렇게 유타가 환히 웃었다.
“최근 가게가 어렵다고 하셔서 좀 도왔어요. 아무래도 영상구 사업 말고도 다른 걸 좀 더 생각해야 할 것 같아요.”
“다른 거?”
“음…. 예를 들어, 키우기도 쉽고 맛도 좋은 식재료 같은 거요. 직접 키워 먹을 정도만 되어도 충분하지만 상품 가치가 있는 작물이면 더욱 좋겠죠. 빈 토지는 많지만 수도의 날씨에서 키울 수 있는 작물이 그리 많지 않더라고요.”
“네가 그걸 왜 생각해?”
서머셋이 생각하는 건 늘 마법과 전쟁이었다. 왕실의 권력, 그 힘, 명예 같은 모두가 당연히 갖고 싶어 하는 것들 말이다. 탐욕을 부려도 전혀 이상하지 않은 그런 감정들.
유타가 하는 생각은 서머셋도, 챈들러도 전혀 하지 않을 고민이었다.
“모두가 행복하면 좋잖아요.”
“…….”
“저는 이만 가봐야 할 것 같아요. 다음에는 레이먼과 함께 뵐게요, 선배님.”
“잘 가, 유타.”
유타는 끝까지 꾸벅 인사를 한 뒤 자리를 떠났다. 챈들러는 한참을 그 자리에 서 있다가 수도 공원에 자리한 벤치에 앉아 가만히 마을을 살폈다.
수도의 마을은 아이작 가의 영지와 달리 사람이 더 많고 쾌활했다. 하지만 동시에 골목 어귀마다 부모를 잃은 아이들도 많았다. 그리고 챈들러는 단 한 번도 그 아이들에게 관심을 가져본 적이 없었다. 심지어는 그런 빈민가가 존재한다는 걸 알고 있어도 말이다.
챈들러가 멍한 얼굴로 자신들을 응시하자 골목길의 아이들이 천천히 그에게 다가왔다. 그들은 천진난만한 얼굴로 꽃을 내밀었다. 어디서 꺾어왔는지 모를 꽃들이었다. 아마 돈을 요구하는 걸 테지. 챈들러가 주머니에서 동전을 뒤지는 척하자 아이들 중 한 명이 고개를 저었다.
“이건 선물이에요.”
“맞아, 훔친 것도 아님!”
“왜… 이걸 나한테.”
양갈래 머리를 한 소녀가 앞니가 하나 빠진 채 활짝 웃으며 말했다.
“심심해 보여서. 그리고 아까 유타 오빠랑 같이 있었잖아요.”
“유타를 알아?”
“네! 왕실에서 일하는 정원사래요. 그래서 왕성에서 나오는 날마다 저희가 파는 꽃을 사 가세요. 꽃이 예뻐서 옮겨 심고 싶대요.”
“근데 조금 바보예요. 뿌리가 없으면 옮겨 심어도 자라지 않을 텐데.”
“아냐! 왕실 정원은 마법의 가루가 뿌려져 있을지도 모른다고!”
아이들은 유타의 이름이 나오자마자 저마다 한마디씩 거들며 활짝 웃었다.
챈들러는 그들이 건넨 꽃을 찬찬히 살폈다.
분홍색 잎을 가진 아름다운 작은 꽃이었지만, 그뿐이었다.
왕실에서 한 번도 본 적 없는 꽃.
“꼬마야.”
“응?”
“남은 꽃은 얼마니? 나도 내 정원에 심고 싶어서.”
“와!! 정말로요?”
“그래. 거짓말 같은 귀찮은 짓은 안 해.”
챈들러는 아이가 파는 꽃을 전부 샀다. 전부 사도 챈들러가 하루에 쓰는 돈의 절반의 절반에도 미치지 않는 적은 돈이었다. 그는 왜 레이먼이 유타에 대해서 그렇게 설명했는지 점차 깨닫고 있었다.
***
왕실 마법사로 일한 지 3주 정도가 지났다.
레이먼은 나름 왕실 마법사로서의 입지를 확실히 다지고 있었다.
그의 존재를 소문으로만 알고 있던 선배들도 어느새 레이먼에게 다가와 아부를 떨 정도였다. 그리고 그 이유는 그가 얻은 엘프의 가호나 대정령과의 계약 때문은 아니었다. 레이먼의 미친 서류 처리 능력 때문이었다. 선배들도 일주일은 걸릴 일을 레이먼은 하루 이틀이면 끝내곤 했다.
그들이 주로 레이먼을 부르는 때는 2시에서 3시 사이였다. 이미 일을 다 하고 정원 벤치에 앉아 쉬고 있는 레이먼을 찾아 부르는 것이다. 그런 일이 반복되자 선배들 사이에선 어떤 규칙이 생겼다.
먼저, 레이먼에게 일을 부탁하기 위해서는 정원 벤치에 앉아 있을 때를 노려야 한다.
“저…… 레이먼.”
그리고 오늘치 일이 남아 있는지 묻고 없다고 답하면 그때 본론을 꺼낸다.
“혹시 내 서류 처리 좀 도와줄 수 있을까?”
그리고 그들이 내민 서류를 확인한 레이먼이 ‘개수’를 말하기를 기다린다.
“이 정도 분량이면 2개 정도면 될 것 같은데요.”
“오, 오늘까진데?”
“네, 대신 제가 모르는 걸로 2개라 잘 고르셔야 할 거예요. 이미 10개 정도는 알고 있어서.”
“하, 10개나?”
“네.”
“아, 알았어. 잠깐만 기다려.”
만약 레이먼이 제시한 개수를 모두 채우지 못하면 의뢰는 그걸로 불발.
실패한 날에는 두 번 재도전은 불가능하다.
이미 기둥 뒤에 숨어서 자신의 차례를 기다리는 이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레이먼이 심드렁한 얼굴로 벤치에 앉아 “이제 가보셔야 할 것 같은데요.”라고 말하기 전까지 레이먼의 요청을 들어줄 수 있어야 했다.
한참 고민하던 그는 레이먼에게 조심스레 물었다.
“너한테 말하는 건 전부 비밀이 지켜지는 거지?”
“네, 적어도 제 입으로 떠들고 다니진 않아요.”
레이먼이 장사용 표정으로 활짝 웃었다.
레이먼의 미소를 확인한 그는 주위를 살짝 둘러본 뒤, 다가와 속삭였다.
“마, 말할게. 첫 번째는……, 곧 유리페 왕녀가 수도로 돌아올 수 있다는 이야기야.”
“그건 알고 있는데요. 오시는 날도 정해져 있잖아요. 두 번째 회의 때.”
“어, 알고 있어?”
그는 다시 머리를 쥐어 싸맸다. 기둥 뒤에 숨은 마법사들의 수가 점차 늘어나는 게 느껴졌다.
“제가 모르는 걸로 다시요.”
그는 한참을 고민하다 벤치 손잡이를 꽉 쥐며 말했다.
“으으으윽, 그러면 이건 어때! 페인 전하의 메이드와 매너스 전하의 기사가 연인 관계라는 소문 말이야.”
레이먼이 서류를 대신 처리해 주는 데에 요구하는 조건은 단 하나.
바로 왕실에 떠도는, 레이먼이 아직 알지 못하는 소문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