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ill Make You a King as a Possessor RAW novel - Chapter (250)
빙의자가 왕으로 만들어 드립니다-250화(250/275)
상황을 정리해 보자.
레이먼은 거울 속 자신을 한 번 더 바라보았다.
그리고 고개를 휙 돌렸다.
그리고 다시 한번, 고개를 휙 돌려 거울을 바라보았다!
역시나 거울 속에 비친 얼굴은 앳된 레이먼 반 스플린이었다.
16살보다는 훨씬 어린, 잘 쳐봐야 9살에서 10살 정도 되어 보였다.
레이먼은 이번엔 방 안을 둘러보았다. 자세히 살펴보니 다른 점이 어느 정도 있었다.
16살의 레이먼이 됐을 때, 책장 속 책들은 굉장히 닳아 너덜너덜해진 상태였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았다. 깔끔하게 정리된 책장 속 책 중에는 한 번도 펴보지 않은 것처럼 깨끗한 책들도 보였다. 책상의 크기나 높이도 이 나이 또래의 아이에게 맞춰진 책상이었다.
아직 마법에 대한 열정을 버리지 않은 어린아이.
그게 지금의 레이먼 반 스플린이었다.
하지만 어리둥절하긴 했다.
포 리마인드로 돌아온 건 레이먼 반 스플린의 과거가 아니라 유태하의 과거였어야 하는 거 아닌가? 왜 레이먼으로 돌아온 거지?
레이먼이 애꿎은 텅 빈 수첩을 뒤적거리는 사이, 누군가 문을 똑똑 두드렸다.
“도련님, 일어나실 시간입니다.”
“일어났어. 들어와.”
레이먼이 부르자 그때, 문을 열고 익숙한 얼굴이 들어왔다.
좀 더 앳된 얼굴이긴 했어도 니콜이었다.
“옷도 벌써 갈아입으셨네요.”
“응.”
“아침은 지금 바로 준비할까요? 평소처럼 방에서 드시는 편이 좋으실까요?”
“…….”
“왜… 그러세요, 도련님?”
레이먼이 고개를 갸웃했다. 저 정도로 예의 바른 니콜이라니.
‘신기하네.’
“도련님?”
“너 원래 그렇게 예의가 발랐어?”
“어, 도련님께서 편하게 하라고 말씀하셨지만 역시 아직은 불편해서요. 노력하겠습니다.”
그 숨 쉬듯이 내뿜던 무례가 노력해서 된 거였구나.
“네 노력이 가상하다, 니콜.”
“아… 그게.”
“오늘 아침은 식당에서 먹을 거야. 준비해 줘. 가족들은?”
“공작님과 공작부인께선 영지 문제로 잠시 수도의 타운 하우스로 가셨고, 아드리안 도련님께서는 아직 식사를 하지 않으셨습니다.”
“아드리안한테도 말해줘. 밥 같이 먹자고.”
레이먼의 말에 니콜이 놀란 듯 눈을 잠시 크게 떴다.
“알겠습니다!”
니콜은 곧이어 우렁찬 대답을 내뱉은 뒤, 방을 나섰다.
‘왜 레이먼의 과거로 왔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이유가 있겠지.’
일단,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정보 수집이었다. 이유가 있다면 그 이유를 찾아야 했으니까.
게다가 이 시점의 아드리안이 어떤 모습인지 궁금하기도 했다.
레이먼 반 스플린이 마법에 재능이 없다는 걸 스스로 눈치채지 못했을 리가 없다. 그런 상황에서 자신보다 재능이 있는 동생을 어떻게 대했는가.
처음부터 망나니처럼 대한 것은 아닐 거다. 사람이 변하는 이유는 한순간의 실수나 상황이 아니라 꾸준히 주어진 무언가 때문일 테니까.
얼마 지나지 않아, 니콜이 거친 숨을 내쉬며 레이먼의 방으로 돌아왔다.
“도련님, 아침 준비가 끝났습니다.”
“알았어.”
“아드리안 도련님께서도 함께 드신다고 합니다.”
“그래? 알았어.”
레이먼이 복도로 나가자마자 많은 시종인들이 먼저 레이먼에게 인사했다.
“좋은 아침입니다, 큰 도련님!”
“어… 그래.”
“오늘 아침에는 도련님의 얼굴을 봐서 너무 좋네요!”
“안녕하세요, 도련님!”
“좋은 아침이에요, 도련님!”
이 정도로 열렬한 환영을 받으니 레이먼은 좀 당황스러웠다.
16살의 레이먼이 살던 삶과는 조금 달랐기 때문이다. 그때도 시종인들이 자신을 신경 쓰고 있는 건 느껴졌지만 지금처럼 다가오진 않았기 때문이다. 도리어 지금이 더욱 친근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그들은 레이먼이 마법에 재능이 없다는 사실을 아직 제대로 모르는 것처럼 보였다.
‘하긴 시기상 그럴 수도 있나.’
마법에 재능이 있다 해도 10살은 넘겨야 제대로 마나를 다룰 수 있을 테고, 내 예상이 맞다면 지금 레이먼은 이제야 10살쯤이 되는 해일 것이다. 게다가 마나가 적으면 적을수록 조절이 쉽고, 조절이 쉬웠기 때문에 이미 마법을 사용한 적이 있을지도 모른다. 아니….
‘마법을 쓸 수 있었어.’
자연스레 잊고 있던 기억이 머릿속에 흘러 들어왔다. 레이먼 반 스플린은 7살 때 마법을 쓴 적이 있었다. 그래서 자연스레 모든 이들은 스플린 가의 장남이 굉장한 인재라는 생각을 갖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시간이 꽤 흐른 지금, 레이먼 반 스플린은 깨닫게 된 거다. 자신이 마법에 재능이 없다는 걸.
그리고 처음 그걸 깨달은 직후에는 그게 노력으로 어떻게든 극복할 수 있는 것이라 믿었다.
그래서 공부했고, 부단히 노력했겠지.
하지만 노력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전부 놓아버렸을 것이다.
그때의 처참한 감정이 심장을 옥죄였다.
자신의 기억도 아닌데 이렇게 고통스러운 까닭은 아마 지금 육체의 주인이 자신이기 때문이겠지.
레이먼이 식당 홀의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서자 아주 어린 아드리안이 식탁 옆에서 자신을 기다리고 있었다.
“혀, 형님!”
“안녕, 아드리안. 왜 서 있는 거야?”
“아직 형님이 오지 않으셔서요! 기다렸어요.”
“너는 예나 지금이나 말을 잘 듣네.”
“네?”
“아니, 아무것도 아니야. 얼른 앉아. 다리 아프잖아.”
“네!”
식사 시간은 평화로웠다. 아드리안은 얼마 전 시작한 과외에서 배웠던 마법 지식에 대해 미주알고주알 얘기했고 레이먼은 들어주었다. 간혹 틀린 점이 있으면 고쳐주기도 했다.
그때마다 아드리안이 너무 부담스럽게 쳐다보길래 일부러 눈을 피하기도 했다.
“형님은 역시 최고예요!”
“그 정도는 아니야.”
“게다가 뭔가 갑자기 어른스러워지신 거 같아요. 역시 형님께 배울 점은 너무 많아요.”
그렇겠지. 10살짜리 몸에 총합 30년은 산 애늙은이가 들어있으니까.
“요새 많이 바빠 보이셔서 말을 못 걸었어요.”
“내가? 아… 뭐, 그랬지.”
“종종 방에 놀러 가도 될까요? 방해하지는 않을게요. 정말 옆에 앉아서 공부만 할게요.”
“그래, 상관없어.”
어차피 기억을 일깨우는 것뿐이니 과거가 바뀌진 않을 테고. 레이먼은 아드리안의 부탁을 흔쾌히 들어준 뒤 다시 방으로 향했다. 하지만 그 순간 무언가 꺼림직한 느낌이 들었다.
레이먼은 자신의 손을 살폈다. 멀쩡했던 손이 반투명하게 변해 있었다. 그리고 눈앞에는 레이먼 반 스플린이 움직이고 있었다. 이게… 진짜 레이먼 반 스플린의 기억인 건가?
– 나는 마법에 재능이 없구나.
레이먼은 책상에 앉아 확실히 깨달았다. 마법에 재능이 없다는걸.
– 큰일이네. 이래선 우리 가문을 구할 수가 없어.
구할 수가 없다고? 그게 무슨 소리지?
기억 속 레이먼이 책상을 손가락으로 톡톡 치며 생각했다. 그가 보고 있는 다이어리를 슬쩍 훔쳐보았다. 그 다이어리는 레이먼이 호수에서 주웠던 그때 그 일기장이 맞았다.
하지만 일기장의 두께가 훨씬 두꺼웠다. 마치 호수에 빠졌던 일기장의 내용이 전부가 아니었다는 걸 말해주는 것처럼.
– 만약 내가 본 예언이 진짜라면 어떻게든 상황을 바꿔야 해. 내가 아니라면 동생이 해야 할 텐데. 아드리안이 그걸 해낼 수 있을까….
레이먼은 놀랐다.
기억 속 레이먼은 절망적인 상황에서 좌절하는 성격이 아니었다.
도리어 그 상황 속에서도 어떻게든 해결할 방법을 찾고 있었다.
그가 생각했던 최초의 레이먼과는 사뭇 다른 느낌이었다.
그리고 예언이라니. 레이먼 반 스플린은 뭘 알고 있었던 걸까?
– 하지만 해야지. 어쩌겠어. 주스테 신이 나에게 이런 미래를 알려준 이유가 있을 거야.
레이먼은 천천히 손을 뻗었다. 책상 앞에 앉은 진짜 레이먼과 자신의 영혼이 완전히 융화되는 순간, 유태하는 깨달았다.
왜 자신이 어린 시절을 기억하지 못했을까?
왜 유태하로 살아가는 모든 날들이 다른 세상에 사는 것처럼 가슴이 답답했을까.
그곳이 자신의 세상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 사실을 깨달은 순간, 눈앞의 모든 것이 까맣게 변했다.
그리고 다른 세상이 펼쳐졌다. 그리고 그곳에는 어린 유태하가 있었다.
어린 유태하를 보았을 때는, 어린 레이먼을 봤을 때와 같은 감정은 느껴지지 않았다.
– 지옥 같은 삶을 벗어날 수 있는 거죠?
– 당연하지. 우리 브로커들이 이런 방면으로는 빠삭해.
– 어디로 가는 건데요?
– 너와 비슷한 또래의 영혼과 너를 바꿔줄 거다. 그 아이의 삶을 네가 대신 살면 된다. 너무 걱정하지 마. 다른 우주, 다른 세상이라도 너보다 사는 게 더 나은 쪽으로 보내줄 테니까. 대신, 너도 약속할 게 있다.
– 뭔데요?
– 그쪽에서도 삶을 포기하는 순간, 네 영혼은 끝난다. 그러니 죽는 날이 오더라도 절대 포기하지 말고 발버둥치도록.
그 순간, 레이먼은 다시 한번 우주 같은 공간에 갇혔다.
그리고 레이먼 양옆, 위아래로 수많은 장면이 스쳐 지나갔다.
자신이 아닌 다른 레이먼 반 스플린이 레이먼의 삶에 녹아 들어간 과정, 그때 느꼈던 절망.
자신이 살았던 유태하로서의 삶과 악착같이 살아남았던 그 과정.
레이먼의 인생을 살기 시작했던 어린 유태하의 인생도 그리 녹록지 않아 보였다.
그의 인생은 서머셋의 반역 성공과 스플린 가의 멸문으로 끝이 났다.
잘 살기 위한 선택이 어쩌면 그의 삶에서 가장 큰 실수가 되어버린 것이다.
그 뒤로 텅 빈 레이먼 반 스플린의 몸은 다른 이의 영혼이 채워 16살 무렵부터 다시 시작하기를 반복했다.
‘왜 반복했지? 죽는 걸로 끝났을 수도 있잖아.’
레이먼이 한참을 생각해 내린 결론은 하나였다.
‘아직 진짜 레이먼은 살아있으니까.’
그렇기 때문에 레이먼 반 스플린의 운명을 억지로 끝내버릴 수가 없었던 거라면.
반대로, 내가 살았기 때문에 내 영혼이 들어갔던 유태하의 육신도 죽지 못했겠지.
그리고 내가 유태하로서의 인생을 끝냈을 때가 돼서야 비로소 레이먼 반 스플린의 톱니바퀴가 돌아가기 시작한 것이다.
솨아악-
모든 걸 깨달은 레이먼이 천천히 눈을 떴을 때는, 포 리마인드를 썼던 그 침대 위로 돌아와 있었다. 거실로 나가자 티비를 보고 있는 유태안이 보였다.
검은 꿈속에 유태안이, 다른 친구들이 나온 까닭은 그때 이룰 수 있었던 것들에 대한 아쉬움일지도 모른다. 심지어는 자신조차 알지 못했던, 무의식 속의 아쉬움 말이다.
레이먼은 유태안 옆에 앉았다.
분명 옆에 있지 않았던 유타, 오닉스, 챈들러, 크리스 등 레이먼이 인연을 맺었던 이들이 전부 자신들 옆에 서 있었다.
원래라면 이상한 풍경이었겠지만 레이먼은 그들을 쫓아내지 않았다. 그들이 어떻게 집 안으로 들어왔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이건, 꿈이었으니까.
“형? 왜 그래?”
꿈속 동생이 말했다.
레이먼은 그런 유태안을 바라보며 말했다.
“나는 돌아가야 해.”
“어디로 간다는 거야, 형?”
“유태하로 살았던 인생도, 나쁘지 않았어. 어떻게든 살아남았고 전에 봤던 장면에서 날 위해 울어주던 애들도 있었으니까.”
“형, 왜 그래?”
“그래, 레이먼. 무슨 일 있는 거야? 포 리마인드에 알려지지 않은 부작용이라도 있었나?”
레이먼은 소란스러운 와중에도 차분히 말했다.
“하지만 지금 나는, 유태하가 아니라 레이먼 반 스플린이다.”
“…….”
“그러니 돌아가겠어.”
딱-.
레이먼이 손가락을 탁 튕기자 환한 빛이 그들을 전부 감싸 가두었다.
검은 꿈이 전부 흰색으로 바뀌자 그제야 바깥의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 계약자가 영법을 알려달라고 바로 알려줘? ] [ 나도 처음엔 거부했다. 붉은 치가 포기하지 않았을 뿐이지. ] [ 안 깨어나면 어떡할 건데? 지금 내 계약자가 죽게 생겼잖아. ] [ 그건 네 계약자가 유약한 것이지. 내 탓은 아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