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ill Make You a King as a Possessor RAW novel - Chapter (253)
빙의자가 왕으로 만들어 드립니다-253화(253/275)
“그래. 도와줄게.”
“정말입니까?”
“내가 거짓말을 할 이유가 없잖아.”
챈들러가 말한 ‘레이먼도 잘 알고 있는, 저주에 해박한 마법사’는 바로 유리페였다. 유리페 왕녀가 고문이나 저주 마법에 특출난 마법사라는 걸 모르는 사람은 없었지만 그녀를 전쟁에 끌어들이려는 사람은 없었다. 그녀는 왕실의 일에 개입하는 걸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고 졸업한 이후에는 스웨인 가의 영지에서 하고 싶은 공부만 하며 살았으니까.
그런 유리페가 운 좋게 수도에 있었다.
덕분에 수신자 설정으로 보낸 마법 편지는 한 시간도 지나지 않아 수도에 있던 유리페에게 전달되었다. 유리페는 편지를 읽자마자 레이먼이 있는 왕성으로 찾아왔다. 그녀는 의기양양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운이 좋았구나, 레이먼. 내가 수도에 있는 날은 많지 않아. 그렇지, 마리아?”
“네가 하루 종일 침대에만 누워 있으니 그렇지, 유리페.”
“어, 어쨌든 도와준다고. 어차피 네가 말한 대로 저주 마법을 푸는 거라면 전방에서 싸울 필요는 없는 거잖아. 내가 공격형 마법에는 영 재능이 없거든.”
그녀는 레이먼이 준 편지를 팔랑거렸다.
편지의 내용은 대충 이러했다.
[ …곧 바텔바흐와의 전쟁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전쟁 준비를 위해 저주에 해박한 마법사가 필요합니다. 덧붙여 입이 아주 무거운 사람이어야 합니다. 그런 사람을 찾다 보니 챈들러 선배로부터 유리페 선배를 추천받게 되어서 이렇게 …(중략)… 흥미가 있으실 만한 주제라고 생각합니다. 당연하죠. 왕녀시니까요. 그리 달갑진 않으실 일이겠지만 왕실의 일원으로 스턴을 지킬 의무가 있으신데 이를 무시할 분은 단연코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암, 그렇겠죠. 일전에 유타를 도와준다고 말씀도 주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 (유타에게서 들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중략)… ]“네 이 반 협박에 가까운 편지를 읽고 화를 내지 않고 돕는다고만 하는 내 아량에 감사하렴.”
유리페가 씨익 웃었다. 섬뜩한 미소였다.
레이먼은 유리페 왕녀의 손에서 편지를 가져와 그대로 태워버린 뒤, 말했다.
“협박이라뇨. 그저 제 감상을 써 내려간 것뿐이죠. 그리고 제 생각대로 유리페 왕녀님께서는 훌륭한 왕실의 일원이십니다.”
“허…. 얘는 왕실 마법사가 되고 성격이 더 더러워졌어.”
“칭찬 감사합니다. 수도에는 얼마나 머무르실 예정입니까?”
유리페가 어깨를 으쓱했다.
“글쎄. 딱히 정하고 올라온 건 아니라서.”
어차피 스웨인 영지로 돌아가도 할 일이라곤 기한이 정해져 있지 않은 자체 연구뿐이었고 스웨인 영지에 비상사태라도 벌어지지 않는 한 그녀가 돌아갈 이유는 없었다. 마리아 스웨인 역시 마찬가지였다.
레이먼은 자리에서 일어나 말했다.
“그럼 저희 타운 하우스에 머무는 건 어떠십니까. 챈들러 선배도 불러 함께 이야기를 나누면 좋을 것 같습니다.”
“스플린 가의 타운 하우스는 유명하지.”
유리페가 만족스러운 듯 자리에서 일어나 손을 내밀었다.
“그럼 끌어들인 김에 잘 부탁해, 레이먼 반 스플린.”
“최선을 다해 모시겠습니다, 유리페 전하.”
그들은 잡담 몇 마디를 더 나눈 뒤, 레이먼의 집무실에서 나와 타운 하우스로 향하는 마차로 올라탔다.
마리아가 말했다.
“유리페, 꼭 도와야겠어?”
“뭘?”
“전쟁 말이야. 네가 가지 않아도 내가 가면 되는 일인데 굳이 네가-.”
“마리아, 나도 나름 왕녀야. 할 수 있는 일이 있는데 의무를 저버리진 않아야지. 그리고 레이먼과 챈들러 선배가 부탁한 일이기도 하고.”
“그 두 사람이 너한테 특별한 건 아니잖아.”
“그 두 사람은 아니지. 그 두 사람이 움직이는 목적이 중요한 거지.”
유리페가 웃었다.
내 동생 유타. 유리아.
‘돕는다고 해놓고선 여태 아무것도 해준 게 없었는데, 이제야 해줄 수 있는 일이 생겼구나.’
스웨인 가의 영지에 있다고 해서 왕성의 소문이 귀에 들어오지 않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아카데미 방학 때마다 왕성에 머물렀던 유리페였다.
그녀의 눈과 귀가 되어줄 사람들이 왕성에 한 마차는 있었다.
최근 왕성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유리페도 잘 알고 있었다. 레이먼이 한동안 어떤 상태였는지, 유타가 어떤 노력을 했는지, 그 친구들은 어땠고… 서머셋은 어떤 상황인지.
분명 어딘가 틀어져 있는 게 분명하다면 그 파란은 시종인들 사이에서 가장 빠르게 퍼지기 마련이다.
유리페는 알고 있었다.
그녀에게 딱히 특출난 남매애가 있는 편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잘못된 선택을 하는 가족을 내버려 둘 만큼 정이 없는 것도 아니었다.
창밖으로 뛰어노는 아이들이 스쳐 지나갔고 얼마 지나지 않아 잘 가꾼 정원이 있는 아름다운 타운 하우스 앞에 마차가 멈춰 섰다.
***
유타와 렌스, 오닉스와 테디, 그리고 리트리.
이들은 포레스튼 시절 레이먼이 그나마 친분을 많이 쌓았던 사람들이었다.
게다가 같은 마탑에서 일하게 되면서 제법 어색했던 오닉스와 리트리, 두 사람의 사이도 많이 좋아진 것처럼 보였다.
“마차가 좁다.”
“하하하, 그래서 더 정겹지 않아?”
“난 너랑 진짜 죽어도 안 맞을 것 같다.”
“오닉스, 죽음 뒤에 있는 세상을 너도 상상하는구나? 우리는 엄청 잘 맞을 거야.”
“…….”
오닉스는 리트리처럼 말이 안 통하는 사람이 없다고 생각했다.
겉으로는 잘 보이지 않게 얼굴을 살짝 찌푸린 오닉스의 시선이 마차 밖으로 향했다.
‘내가 왜 이 꼴이 된 건지.’
평소였다면 바쁜 일만 서둘러 해치우고 빈둥거렸을 시간인데.
왜 이 5명이 한 마차를 타고 어디론가 가고 있느냐 하면 단 한 사람의 초대가 있었기 때문이다.
“얘는 왜 우리를 한꺼번에 타운 하우스로 부르는 거야? 그냥 마탑에 와서 얘기하든가. 나, 테디, 리트리. 여기서 과반수가 마탑에서 일하잖아.”
“너무 툴툴거리지 마라. 레이먼이 은밀히 해야 할 얘기가 있을 수도 있다.”
“테디, 너처럼 굴었다가 호구가 되는 거다. 너, 다른 지역 친구가 보자고 하면 무조건 그쪽으로 가지?”
“어, 어떻게 그걸-.”
오닉스가 안 봐도 알았다는 표정으로 혀를 끌끌 찼다. 오닉스는 마차 안에서 왜 인간이 호구처럼 굴면 안 되는지- 에 대해서 일장 연설을 펼쳤다. 유타와 렌스는 늘 있는 일이었기 때문에 숨 쉬는 것처럼 그 말을 무시했다. 테디 역시 그럴 수 있을 텐데도 눈을 반짝이며 오닉스의 이야기에 집중했고 리트리는 별생각이 없어 보였다.
마차가 멈추자마자 오닉스가 가장 먼저 마차에서 내렸다.
타운 하우스의 문이 활짝 열리며 그들을 반겼고, 그들 모두를 데려간 곳은 1층의 접견실이었다.
그리고 접견실에 있는 사람은 레이먼이 아니었다.
“챈들러 선배님?”
“유, 유, 유리페 왕녀님!
문을 열고 들어온 5명 중 4명이 유리페 왕녀를 향해 정중히 인사했다.
유리페는 갑자기 왜들 이러냐는 얼굴로 손사래를 쳤다.
“너희들 포레스튼에서는 이 정도로 예의 차리지 않았잖아. 됐으니까 얼른 앉아.”
그녀는 가장 뒤에서 따라 들어온 유타를 발견하자마자 쌩하고 달려가 와락 껴안았다.
“내 동생, 유타. 잘 지냈니?”
“아, 네. 누님도 잘 지내셨지요? 스웨인 영지는 여전히 훌륭히 잘 경영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내가 한 일이 뭐가 있겠어. 영지 운영은 내가 아니라 영주가 하는 일인걸. 난 종종 말도 안 되는 일만 몇 가지 조언해 주었을 뿐이란다. 네 쪽이 훨씬 대단하던걸?”
유리페가 유타의 등을 두드렸다. 유타의 귓불이 붉게 물들었다.
한편, 리트리는 챈들러에게 말을 걸고 싶은 모양이었다. 챈들러가 앉은 자리 맞은편으로 얼른 달려가 착석한 리트리는 잔뜩 상기된 표정으로 챈들러를 바라보았다. 한참을 바라봐도 챈들러가 먼저 말을 걸지 않자, 결국 리트리가 먼저 질문했다.
“혹시 저를 기억하시나요?”
“음… 그렇긴 하지.”
“역시! 저희가 오다가다 마주친 적도 많잖아요!”
“마주친 적만 많았지.”
“얘기를 나눈 적도 있는걸요?!”
“내가 원한 건 아니었지만.”
이렇게 다가오는 놈은 부담스럽단 말이야.
챈들러가 책으로 얼굴을 홱 가려버리자 리트리는 책 옆으로 이리저리 고개를 내밀었다. 정말 커다란 개를 키우는 견주의 기분이 이럴 것 같았다.
여기저기 떠들썩한 가운데, 드디어 레이먼이 문을 열고 등장했다. 뒤따라 들어온 니콜이 준비한 홍차를 한 잔씩 테이블 위로 올려놓았다.
“이거 향이 엄청 좋다? 이거 뭐야?”
향을 맡자마자 리트리가 감탄했다.
“조만간 많이 나올 테니까 그때 알아봐.”
레이먼은 평소처럼 퉁명스럽게 답한 뒤, 방을 둘러보았다.
“일단 이렇게 모여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각자 바쁜 일이 있었을 텐데.”
“그래. 그러니까 별로 대단치도 않은 소식이면 네 등을 후려칠 거다.”
오닉스가 말했다.
성깔이 전혀 변하지 않았다.
“중요한 일이야.”
레이먼이 손가락을 탁 튕기자 주변 마나의 흐름이 바뀌었다.
방음 마법이 발동된 것이다. 그리고 이 방에 모인 사람 중 그 변화를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무능력한 사람은 없었다. 갑작스러운 방음 마법에 리트리도 꽤 놀란 듯했다. 귀족의 사적 공간인 타운 하우스에서도 방음 마법을 사용할 정도라면 평범한 이야기는 아닐 테니 말이다.
레이먼이 말했다.
“지금부터 하는 이야기는 다른 곳에 가서 절대 하면 안 되는 이야기입니다. 가족이나 가장 친한 친구.”
레이먼이 유리페와 리트리를 바라보았다.
“포함해서 말입니다.”
“대체 뭔데 그래?”
“제가 이번에 꽤 오랜 기간 병석에 누워 있었다는 걸 여기 계신 분들은 알고 계실 겁니다. 그 병이 무엇인지는 제대로 밝혀진 바도 없고요. 여기서 그 병이 무엇이었는지 밝히려 합니다.”
레이먼이 심장께에 손을 올렸다.
“영법을 배웠습니다. 제가 오랜 기간 병석에 누워 있던 건 영법을 배우기 위한 시험을 통과하기 위해서입니다.”
“잠시만 레이먼 그건-!”
유타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스턴에서 영법을 배운 자는 모두 감옥행이었다. 그게 스플린 가의 장남이라도 말이다. 유타도 그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입을 다물고 있었다.
“왜?”
안쪽에서 묵직한 목소리가 들렸다. 챈들러라고 생각했는데 그 맞은편에 앉은 리트리였다. 리트리는 창백한 얼굴로 레이먼을 바라보고 있었다.
소중한 친구에 대한 커다란 배신감이었다.
영법이 얼마나 추악한 것인지 알면서도 왜?
“리트리버, 나콘 테이텀의 사망 사건을 기억하지?”
바로 얼마 전 일이다. 기억하지 못할 리가 없었다.
졸업하기 직전까지 최선을 다해 단서를 잡아보려 했으나 배후가 누구인지는 정확히 알아내지 못했다. 정확히 말하면… 그 정보가 진실이라고 확신하기 어려웠다. 아무리 생각해도 마탑과 왕실이 영법과 얽혀 있다는 음모론 같은 이야기는 말도 안 됐다.
“나콘 테이텀 사건의 배후자는 4왕자다.”
“지금 무슨-.”
“사실을 말하는 거다.”
레이먼은 담담히 말했다.
“나는 이번에 벌어질 전쟁에서 4왕자에게 영법으로 벌어진 일에 대한 모든 책임을 물을 생각이야. 영법 역시 그 사람에게 대적하기 위한 거고.”
“이걸 우리한테 말하는 이유는?”
테디가 질문했다.
레이먼이 말했다.
“여기 모인 사람이라면 비밀을 지켜줄 거라 생각했어.”
“지키지 않을 수도 있잖아.”
왕녀가 손을 들었다.
레이먼도 동의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예. 그럼 그때는 제가 배운 영법으로 기억을 지울 겁니다. 백치로 만드는 것도 좋겠네요.”
“와. 너 아주 작정했구나?”
왕녀가 감탄했고 레이먼은 담담히 말했다.
“그럼 비밀을 지키지 않으실 분, 계십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