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ill Make You a King as a Possessor RAW novel - Chapter (258)
빙의자가 왕으로 만들어 드립니다-258화(258/275)
볼락 클리프 계곡은 더 이상 이주하려는 사람이 없는 험준한 계곡이었다.
회귀 전에도 바텔바흐는 그 낭떠러지를 지나 스턴으로 오는 길을 택했다. 그리고 스턴은 그들의 실수를 이용해 승리하려 했다. 실제로 계획 자체는 나쁘지 않았다. 계곡의 지리를 잘 알고 있는 건 바텔바흐보다 스턴이었으니까.
‘그때 당시엔 그 선택이 이상하다 생각했었지. 아무리 단거리라고 해도… 바텔바흐 놈들이 그렇게 멍청이일 리는 없으니까.’
전술을 조금이라도 아는 놈이라면 계곡을 전진 장소로 활용하는 선택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 계곡의 지리에 대해 정확히 꿰뚫고 있지 않다면 말이다.
볼락 클리프를 통해 스턴으로 오는 길은 하나였다. 두 계곡 사이에 난 좁은 길목. 따라서, 볼락 클리프를 통해 침략해 오는 적은 그 길목에서 폭격하면 승리하는 싸움이었다.
실제로 스턴의 계획도 그와 비슷했다. 어찌 됐든 그들이 계곡의 길목을 활용할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그 계곡을 택하는 이점이 없었다. 위로 온다고 해도 반으로 갈라진 계곡 때문에 스턴으로 넘어올 수 없었을 테니까.
하지만 그 모든 계획을 깨부순 건, 7서클 대지 마법 테라 리브란데레였다.
두 개의 절벽을 하나로 합치며 새로운 길이 탄생했었고, 준비한 첫 번째 계획이 전부 무쓸모로 돌아갔던 것이다.
베일이 보낸 편지를 손에 든 레이먼이 자리에 앉았다.
[ 다만, 볼락 클리프를 통한 진로는 기사단 대다수가 반대했다. 그런데도 그 계곡을 선택한 사실이 꺼림칙해 미리 연락한다. ]“기사단의 대다수가 반대했다. 그런 상황에서도 굳이 볼락 클리프를 선택했다…라.”
이 상황에서도 왜 바텔바흐의 전술가는 마법에 대해 알리지 않았지?
애초에 ‘테라 리브란데레’ 같은 대규모 마법을 사용한다는 사실을 기사단에게 미리 알렸다면 그들이 반대할 이유는 없었다.
레이먼이 편지를 다시 유심히 살폈다.
‘베일은 역습 계획에 대해 아는 것 같지는 않아.’
애초에 베일이 그런 사실을 알았다면 편지에 마법에 관한 내용을 담지 않았을 리가 없다.
만약 그가 그런 사실을 알고 있다면 이 편지엔 볼락 클리프를 통한 진로가 꺼림칙하다는 내용이 아니라,
[ 그 계곡에서 대규모 마법을 시행할 것이다. 그 마법사가 어디서 왔는지는…. ]같은 내용의 편지가 왔을 테니까.
즉, 기사단 역시 볼락 클리프에서 그런 대규모 마법이 사용될 거라는 걸 아직 모른다는 뜻이다.
애당초 바텔바흐에는 그런 대규모 마법을 쓸 수 있는 마법사가 없었다. 그래서 스턴도 그런 가능성을 고려하지 않을 것이고.
하지만 전쟁에서 바텔바흐의 기사들은 마치 그런 일이 벌어질 걸 예상이라도 한 듯 행동했다.
‘아무것도 몰랐다면 그게 가능한가?’
예상된 전쟁 일시는 얼마 남지 않았다.
이 상황에서 아직 베일이 마법에 대해 모른다는 건, 아마 전쟁 직전에 이런 전술에 대해 알려줬을 가능성이 컸다.
그렇다면 그 작전을 짠 누군가는 왜 기사단장에게까지 그런 사실을 숨길 필요가 있었는가.
‘그편이 마법사의 출신이나 정체를 숨기기 용이할 테니까.’
그 정도 마법을 쓸 수 있는 마법사는 대륙에 많지 않을 것이다. 마법 강국인 스턴이 그런 마법사의 소재를 파악하지 못할 가능성은?
‘만약 스턴에 조력자가 있고 그 소재를 의도적으로 감춘 거라면? 스턴의 7서클 마법사는 누가 있지? 그중에 서머셋과 친밀히 지내던 이들은? 그들 모두 전쟁에 참전했었나?’
그땐 생각지 못했던 여러 경우의 수들이 머릿속에 끝없이 떠올랐다.
‘어쨌든 바텔바흐에선 기사단들에게 마법에 대해 알려줄 수밖에 없어.’
그 시기를 앞당길 순 있겠지.
거기까지 생각이 미친 레이먼은 깃펜을 들어 베일에게 답장을 썼다.
창틀에 앉아 기다리던 새의 발목에 쪽지를 묶었다. 새의 등을 한 번 쓰다듬자, 새는 양 날개를 크게 펄럭인 뒤 푸른 하늘을 향해 날아갔다.
***
케네스가 있는 곳은 왕실 마법사 중에서도 연구에 집중하는 이들이 모여 있는 실험실이었다. 그들이 연구하는 건 마법진, 물약, 저주 등 다양했다.
그중에서도 케네스가 가장 흥미 있는 건 바로 물약이었다.
“이건 무얼 하는 건가?”
“…….”
“저기?”
“비누 향을 담은 마법 향수를 만들고 있습니다.”
“호오. 어떤 마법을 담은 거지?”
“고통을 줄여줍니다. 긍정적인 감정을 끌어내는 정령의 가루를 사용했거든요.”
“그건 레이먼의 도움이 있었던 건가?”
이미 스턴의 정보를 대부분 머리에 넣은 케네스가 디찬이 만든 향수를 집어 들었다.
“감정과 관련된 마법은 굉장히 어려운 것이라 들었거든.”
“맞습니다. 레이먼이 사랑의 대정령과 계약한 덕분에 관련된 감정에 대한 마법 연구가 더욱 활발해졌거든요. 제 눈에 정령은 보이지 않지만 레이먼이 건네준 정령 가루는 활용할 수 있습니다.”
“그렇군. 그렇다면 이 향수에 중독되는 걸 막는 마법도 걸려 있나?”
“향수……그 자체에 중독된다, 그 부분은 미처 고려하지 못했습니다.”
디찬은 생각지도 못한 부작용에 눈을 크게 떴다.
케네스가 향수가 담긴 병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기분이 좋아지는 경험은 한 번 맛보면 놓기 어려우니 말이야. 그 정도를 잘 조절해야 할 거야.”
“알겠습니다.”
“하지만 좋은 연구라고 생각해. 나도 향수에 관심이 많거든.”
“그렇군요.”
“안 물어봐? 왜 내가 향수에 관심이 많은지?”
“예?”
“아니, 지금은 물어봐야 하는 타이밍 같아서.”
디찬은 생각했다.
1왕자가 생각보다 귀찮은 놈이구나.
그녀는 한숨을 한 번 삼키고 말했다.
“그럼… 왜 관심이 많으십니까?”
“내가 쿠모르 제국에 있을 때 말이야, 제일 그리웠던 게 뭔지 알아? 스턴의 내 방에서 나던 익숙한 향. 그게 너무 그리웠거든. 이상하게 아무리 스턴에서 가져온 물건들로 방을 채워도 스턴에서 맡았던 향이 나지 않았어. 그런데 스턴에 돌아오자마자 그때 그 향이 느껴졌지. 향은 말이야, 그 자체만으로 사람을 행복하게 해줄 때가 있어. 굳이 마법을 걸지 않아도 말이야.”
케네스가 웃었다.
디찬은 조용히 테이블 위 향수를 바라보았다.
“좋은 향은 추억을 불러일으키지. 네가 연구하는 그 향수도 그런 향수가 되었으면 좋겠다. 그렇지?”
케네스가 지은 천진난만한 웃음에 디찬도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늘 무표정했던 디찬이었기에 주변에서 함께 연구하던 동료들도 놀라 웅성거릴 정도였다.
케네스는 연구실을 몇 바퀴 돌며 다른 이들의 연구를 둘러본 뒤 다시 디찬에게 돌아왔다. 그는 디찬이 향수를 만드는 과정을 지켜보며 말했다.
“이봐, 하나만 물어봐도 돼?.”
“예, 물어보세요.”
“나랑 아직 어색한… 누가 있는데 말이야.”
“네.”
“그 애한테 다가갈 때 좋은 향수는 있나?”
“글쎄요. 제가 향수 공방을 운영하는 건 아니라서요.”
“그렇지?”
케네스가 실망한 듯 어깨를 축 내려뜨렸다.
디찬은 잠시 고민한 뒤 말했다.
“하지만 전하께서 제게 하시는 것처럼 말을 걸면 싫어할 사람은 거의 없을 것 같습니다.”
“그래?”
“조금 말이 많긴 하지만요.”
케네스는 디찬의 말에 진심으로 감동한 듯, 벅찬 목소리로 답했다.
“고마워, 네가 나한테 용기를 줬어. 그럼 마저 하도록 해. 나는 가봐야 할 곳이 있어서.”
“예, 다음에 또 들러주세요.”
케네스는 급히 발걸음을 돌려 연구실을 떠났다.
그가 복도에서도 완전히 사라진 걸 확인한 뒤, 디찬은 짧은 한숨을 내쉬었다.
***
연구실을 떠난 케네스가 도착한 곳은 바로 왕실 마법사들이 일하는 공간이었다. 하지만 그는 레이먼이 아닌 유타가 일하는 업무실로 향했다.
그는 카렌이나 렌스를 거치지도 않고 유타의 업무실 문을 바로 열어버렸다. 안에는 열린 문을 바라보는 유타가 앉아 있었다.
“유타!”
“형님?”
“들어가도 돼?”
“아, 예. 물론이죠. 들어오세요.”
“너무 격식 차리지 않아도 괜찮아. 정말로.”
케네스는 그저 놀러 왔을 뿐이라는 걸 온몸으로 어필하며 소파에 앉았다. 유타는 읽고 있던 서류를 대충 정리한 뒤, 케네스 앞에 마주 앉았다.
레이먼과 함께라면 모를까, 케네스와 둘만 있는 공간에서 사적인 대화를 나눈 적은 없었다.
유타는 아주 어린 시절, 케네스를 슬쩍 스친 것 외에는 그에 대한 기억이 거의 없다시피 했다.
어색한 건 마찬가지인 듯했다.
그렇게 말을 잘하던 케네스가 유타 앞에선 연신 헛기침을 해댔다. 카렌은 케네스가 굉장히 심한 감기에 걸린 환자고, 감기를 옮기기 위해 유타에게 온 건가 생각할 정도였다.
카렌이 쓸데없는 상상을 한다는 걸 눈치챘는지 렌스는 카렌을 데리고 밖으로 나왔다.
둘만 남은 방.
유타가 살갑게 말을 걸었다.
“여기까진 어쩐 일이세요? 전쟁 준비로 많이 바쁘지 않으신가요?”
“바쁘지. 귀찮아 죽겠어. 하지만 그건 너도 마찬가지잖아? 형…된 도리로 응원하러 와야 할 것 같아서 말이야.”
“하하, 그런가요. 다행히 저는 그리 바쁘지 않아요. 다른 곳에서 마법사로 활동 중인 후배나 동기들이 도와준다고 연락이 많이 와서요. 실력도 부족하지 않을 거예요.”
유타가 이번 전쟁에서 맡은 일은 ‘축복 마법사 동원’이었다.
졸업반 학생들을 참전시키지 않는 데에 가장 큰 목소리는 낸 사람이 유타였던 게 컸다.
유타는 불만 없이 그 일을 받아들였다.
“그래? 따로 정리해 둔 건 있어?”
“보여드릴…까요?”
유타가 눈썹을 들어 올렸다.
케네스가 그 정도까지 관심을 가질 줄 몰랐기 때문이다.
“줘봐.”
“어… 잠시만요.”
유타가 안쪽 서랍에서 차곡차곡 정리해 둔 서류를 꺼내왔다.
‘어느 정도려나.’
솔직히 말해 큰 기대는 되지 않았다.
이제 막 졸업해 일을 시작한 학생의 정리는 어느 정도 난잡한 부분이 있기 마련이었다.
비록 스턴에서 일한 적은 없었어도 쿠모르에서 처리한 일이 몇 가지 있었으니까. 케네스는 자신이 무언가 조언해 줄 거리가 있다고 생각했다.
“…….”
“별로인가요?”
“아니, 그게 아니라.”
사락, 사락.
종이를 넘기는 케네스의 손가락이 빨라졌다.
사락, 사락, 사락, 사락.
케네스가 속독을 잘한다거나 업무에 대단히 천재적인 재능이 있는 건 아니었다.
유타의 서류가 굉장히 정리가 잘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앞부분이 이해되면 뒷부분도 무리 없이 이해가 갔고, 각 마법사의 능력이나 해당 마법사들이 참여했을 때 가장 적합한 전술 등이 모두 별개로 잘 정리가 되어 있었다.
“다 네가 직접 정리한 거지?”
“네, 맞아요. 아무래도 제 일이다 보니 제가 하는 게 마음이 편해서요.”
“…….”
케네스는 금세 서류를 읽은 뒤, 테이블 위에 조용히 올려두었다.
유타가 침을 꿀꺽 삼켰다.
유타는 지금까지 어머니 외에 다른 가족에게 자신이 한 일을 제대로 보여준 적이 없었다.
매너스가 종종 물어보긴 했지만 그게 전부였다.
한동안 얼굴도 볼 일 없었던 장남이 갑자기 찾아와 자신이 처리한 서류를 보고 싶어 한 일은 유타도 생애 처음 겪는 일이었다.
‘실망하진 않았겠지.’
“완벽해!”
케네스가 한쪽 다리를 꼬았다. 양팔이 위로 올라간 건 덤이었다.
항복하는 듯한 제스처를 취하며 말했다.
“내가 도와줄 게 아무것도 없어.”
“하아……. 다행이네요. 혹시 부족한 점이 너무 많을까 걱정했어요.”
유타가 가슴을 쓸어내렸다.
어머니의 눈엔 늘 부족했던 자신이었는데.
가족에게 처음으로 받는 칭찬이었다.
“무슨 소리야. 이걸 보고 부족한 게 있다고 말하는 사람은 일을 아예 해본 적도 없을걸? 이렇게 효율적으로 정리된 보고서를 나는 읽은 적이 없어.”
“…….”
“사실 가족 노릇이라도 해보려고 온 건데 할 수 있는 게 칭찬밖에 없어서 아쉽네.”
케네스가 이를 다 드러내는 미소로 웃으며 말했다.
“수고했어, 유타.”
“감사…합니다.”
유타가 고개를 푹 숙였다.
케네스는 그런 유타를 조용히 응시했다.
그리고 볼을 긁거나 손가락을 꼼지락대더니 한참 있다 입을 열었다.
“그…… 너한테 하고 싶은 말도 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