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ill Make You a King as a Possessor RAW novel - Chapter (26)
빙의자가 왕으로 만들어 드립니다-26화(26/275)
레이먼은 헌터 유태하로 살았던 시절, 이런 상황을 경험한 적이 있었다. 어떤 조직에서 정보를 빼내야 했고, 그 정보가 정확히 뭔지도 모르는 상황.
의뢰 내용은 ‘그 조직을 위험에 빠뜨릴만한 내부 정보를 빼 올 것.’
그 상황에서 그는 조직원 한 명을 납치해 어떤 정보를 내놓으라 추궁할 수도 없었고, 해당 조직에 잠입해 스파이로서 정보를 빼낼 만한 여유시간도 없었다. 그때 그가 택한 방법은 서로가 서로를 팔아넘기게 하는 방법이었다.
간단했다. 먹잇감으로 삼은 놈들에게 활로와 함께 탈락자들이 겪게 될 끔찍한 죽음을 보여주면 된다. 동시에, 그 활로를 지나갈 수 있는 사람은 얼마 되지 않는다고 덧붙여 주면 완성.
견고한 조직에도 연약한 부분은 존재하기 마련이다. 그 부분은 가장 먼저 무너져 떨어져나와 활로로 달려올 것이다.
그리고 그 빛에 걸려든 나방이 여기 한 마리.
“여기가 신문 클럽 맞지?”
“맞아요. 혹시 피데스?”
레이먼이 손가락으로 그를 가리켰다. 소년이 천천히 고갤 끄덕였다.
“저, 정말로 뭐라도 말하면 이름을 빼주는 거지? 정말이지?”
“아이, 물론이죠. 정보 제공자의 익명은 지켜줘야 하는 거죠. 자자, 선배님 어서 앉으세요. 니콜, 손님에게 차 한 잔 내오고.”
“네, 도련님.”
찾아온 학생은 그날, 유타를 치고 간 무리의 구석에 홀로 서 있던 녀석이었다. 무리 중 한 명이긴 했지만 그들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는 놈이었는데, 예상대로 가장 먼저 떨어져나왔다.
“콩피데스 찻잎으로 우려낸 블랙티입니다.”
니콜이 건넨 찻잔을 받아든 제보자, 피데스의 A 씨는 따뜻한 차 한 모금을 들이켜고 나서야 진정된 듯 말을 이었다.
“내가 뭘 어떻게 하면 되는 건데?”
“간단해요. 선배님께서 피데스 클래스에서 벌어지는 일 중에 다른 학생들에게 알려지지 않은 걸 말해주면 됩니다. 그리고 저희 쪽이 알고 있는 정보랑 비교할 거예요.”
쿵. 레이먼이 두꺼운 서류 뭉치를 테이블 위에 큰 소릴 내며 내려놓았다. 물론 허세였다. 자세히 뜯어보면 레이먼이 대강 채워 넣은 개소리가 전부였으니까.
하지만 저놈 눈에 이런 게 들어올 리가 없지.
“선배님?”
레이먼이 다정한 목소리로 톤을 올리자 그의 어깨가 움찔 떨렸다.
“으음. 너희들이 알고 있는 정보는 뭔데?”
“네?”
“나도 아무거나 말할 수는 없잖아.”
얼씨구. 제 발로 여기까지 온 주제에 세게 나오네?
레이먼의 눈이 가늘어졌다.
레이먼이 어깰 한 번 으쓱했다.
“제공해주실 생각이 없다면 가세요, 선배. 저흰 아쉬울 게 없으니까요.”
“…그, 그건.”
동그란 안경 너머로 고민하는 눈빛이 보였다. 유타는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그의 시선 속으로 제 얼굴을 들이밀었다.
안경 너머 푸른 시선이 흔들렸다.
‘와.’
왕족을 가까이에서 본 일이야 많았다. 서머셋을 실제로 봤을 때도 감탄했다.
왕족의 고귀함이란 이런 거구나-라고 생각했다.
‘내가 저 얼굴로 태어났으면 진짜 장난 아니게 살았을 텐데. 진심으로.’
그가 서머셋의 얼굴에서 느낀 분위기는 고귀함, 냉정함, 그리고 부드러움이었다. 유타는 그렇지 않았다. 화려한 은발에 눈에 띄는 붉은 눈.
이 소년의 붉은 눈은 이제껏 본 왕족 중 누구보다 강렬했다. 마치 용암을 녹인 불꽃이 그 안에 담긴 듯한 강렬함이었다. 왕족이라기보다는 사냥꾼에 더 가까워 보였다. 그의 큰 골격은 그런 그의 눈과 잘 어울렸다.
휴게실에서 봤을 땐 이런 분위기가 아니었는데.
“선배님.”
“……”
“선배님?”
“아, 어! 네! 어라? 어.”
잠시 넋을 잃었다 돌아온 그의 반응에 레이먼이 동의한다는 듯 슬쩍 고갤 끄덕였다.
‘이해합니다, 선배님.’
저 얼굴을 보면 그럴만하죠. 끄덕끄덕.
피데스 선배의 반응에 유타가 한쪽 눈썹을 끌어내리고 부드럽게 웃었다.
“저희가 선배님이 선배님이라는 건 어떻게 알았을까요?”
“…어? 그거야 교복 색이-.”
“그건 조끼 색만 다르잖아요. 선배님은 동복 셔츠만 입고 있으신걸요.”
“응…? 어라.”
어라라?
“아이, 물론이죠. 정보 제공자의 익명은 지켜줘야 하는 거죠. 자자, 선배님 어서 앉으세요.”
“간단해요. 선배님께서 피데스 클래스에서 벌어지는 일 중에 다른 학생들에게 알려지지 않은 걸 말해주면 됩니다. 그리고 저희 쪽이 알고 있는 정보랑 비교할 거예요.”
그러네? 그럼 대체 왜 날 보자마자 존대를 한 거지? 내가 선배인 건 어떻게 안 거야?
오소소. 그 순간, 등줄기를 따라 소름이 돋았고 식은땀이 옷감 사이로 흘러내렸다.
그 학생은 깨달았다.
‘이놈들, 이미 내 뒷조사를 끝낸 거구나.’
유타가 부드럽게 웃으며 한 손을 내밀었다.
“선배님. 저흰 선배님께 기회를 드리는 겁니다.”
“기, 기회?”
“모든 걸 바로잡을 기회요. 이제 곧 중간고사인 건 알고 계시죠?”
“어, 어엉.”
유타의 진실된 눈이 그를 바라보았다.
새하얀 손이 피데스의 트로이 목마가 될 사내를 붙들었다.
“선배님. 선배님은 포레스튼의 영웅이 되시는 거예요. 밀리포레가 당신을 돕겠습니다.”
“……여, 영웅?”
“선배님의 용감함은 영웅이나 다름없죠. 잘못된 일을 바로잡기 위해 이곳에 온 거니까요. 마법사의 귀감이시네요, 선배님.”
유타, 이 녀석. 레이먼은 속으로 감탄했다.
‘생각보다 말 잘하네.’
왕의 자질이 세치 혀 아니야?
“하지만 내가 그런 일을 했다는 게 알려지면-.”
나는. 유타의 꿀 발린 소리에 고민에 빠진 제보자 A 씨가 머릴 빠르게 굴렸다.
그가 피데스의 양아치들에게 빌붙은 까닭은 간단했다. 귀족 무리 중에서도 제일 작위가 낮은 남작 가문. 돈이 없어 빚더미에 나앉은 영지. 그런 상황에서도 자신을 믿고 포레스튼에 보낸 가족.
그들의 기대를 배신할 순 없었다. 그렇기에 그는 반드시 왕실 마법사가 되어야만 했다. 기존 왕실 마법사의 추천서가 꼭 필요한 자리.
여기에 온 이유도 비슷했다. 신문에 그 ‘사실’이 실리면 인맥은커녕 자신이 제일 먼저 버려질 게 뻔하니까. 그래서 일단 왔다. 제대로 된 설명을 들은 이후에 결정하려고 했다.
‘그런데 영웅이라니.’
그런 대접을 받을 생각은 없었는데.
만약 지금 자신이 여기서 모든 진실을 불면 어떻게 되는 걸까?
탁탁탁. 달달 떨기 시작한 다리와 함께 발바닥에선 경쾌한 소리가 났다.
“선배님. 말씀드렸잖아요. 정보 제공자의 익명성은 반드시 보장합니다.”
이때다 싶어 레이먼이 천천히 다가와 남은 한쪽 손을 붙들었다. 양쪽에 손을 붙잡히자 어쩐지 무력한 기분마저 들었다.
오닉스는 저 정도로 애쓰는 두 사람이 미쳤다고 생각하며 그들 반대편에 위치한 책장 쪽으로 아예 몸을 돌려버렸다.
“선배님.”
유타의 얼굴에 박힌 붉은 루비가 반짝였다.
“저처럼 버려진 왕자도 왕실 마법사 서너 명은 알고 있습니다. 어린 시절, 그들과 가까이 지내며 수업을 받았으니까요.”
“왕실 마법, 사?”
“선배님, 앞으로 저희는 좋은 사이가 될 것 같지 않습니까?”
환하게 웃는 미소 너머로 언뜻 악마가 보이는 듯했다. 하지만 상관없었다.
피데스에서 온 유약한 선배는 그의 손을 꽉 붙들었다.
***
“시험이 끝나면 곧바로 신문 제작에 들어가야 해서 바쁘겠네.”
“그렇지.”
피데스에서 온 손님이 떠난 뒤, 클럽 3인방은 오후 수업에 들어갔다.
시험까지 앞으로 2주. 신문 1호 발간까지는 3주. 즉, 일주일 안에 모든 사건을 정리해서 신문로 발간해야 한다는 뜻이었다.
하지만 동시에 레이먼에게 이번 중간고사는 매우 중요한 시험이었다. 그의 아버지와 했던 약속이 있었기 때문이다.
“포레스튼은 매년 50명의 신입생을 뽑지. 이번 학기, 네가 그 50명 중의 5등 안에 들어라. 그럼 널 인정해주마. 만약 그 정도 성적도 내지 못할 거라면 곧바로 돌아와라.”
그 망할 놈. 50명 중에 5등이라니. 자기는 최고 등수가 몇 등이었길래 굳이 5등을 얘기한 건지.
레이먼은 이를 빠득 갈 정도로 화가 났지만, 괜찮았다. 그는 자신이 있었다.
배우고 있는 모든 과목은 이미 암기하고 있는 내용이었고 응용문제가 나온다 해도 모조리 맞힐 자신이 있었다.
즉, 레이먼의 목표는 겨우 5등이 아니었다.
1등. 아버지의 콧대를 뭉개고도 남을만한 등수를 얻어야 했다.
그러니 중간, 기말고사 모두에서 그는 반드시 1등을 해야 했다. 완벽한 1등으로 한 학기를 마감하고, 그 성적표를 본가에 보낼 예정이었다. 그럼 아드리안도 날 더욱 자랑스러워할 테고 말이야.
수업 내용은 모두 암기하고 있는 상태에서 그가 걱정하는 건 ‘1서클 마법 실전’과 ‘1학년 마법진’ 수업이었다. 이 수업들만큼은 단순 이론이 아닌 마력의 양으로 등수가 결정 나는 수업이었기 때문이다.
기초 수업이었기에 더더욱 그랬다.
파이어볼이라든가, 윈드 같은 기초 마법의 위력은 각각이 지닌 마력의 양으로 결정이 나곤 했으니까. 그런 의미에서 그에게 가장 큰 적은 대놓고 마력 양이 넘치는 유타와 오닉스 두 명이었다.
‘얘넬 제치고 1등을 한다. 그리고 신문까지 완벽히 해내야 해.’
쉬운 건 아니었지만 어려운 일도 아니었다. 딱히 목숨을 거는 것도 아니었으니까. 방과 후, 레이먼은 도서관으로 향했다. 생활관의 꼭대기에 자리한 도서관으로 가는 길의 나선형 계단에서 익숙한 소리가 오랜만에 들려왔다.
띠링-
[ 당신은 ‘유타’라는 인물과 유대감을 대폭! 쌓는 데에 성공했습니다. ] [ 친밀도가 올라 보상이 지급됩니다. ] [ 조언 – 중간고사를 치기 전, 챈들러와 블랭킷의 도움을 받는 편이 좋다. ]챈들러와 블랭킷?
의외의 조합이 레이먼이 우뚝 걸음을 멈춰 세웠다.
블랭킷 선배야 그렇다 쳐도 챈들러 선배가 도움이 될만한 일이 있나?
챈들러 선배가 똑똑한 건 맞다. 완드 소지 관련 논문이나 그동안의 업적으로 봐서 그는 어쩌면 레이먼 자신보다 천재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천재가 1학년의 중간고사에 무슨 도움을 줄 수 있단 말인가.
‘그래도 챈들러 선배한테 가보긴 해야겠지.’
조언이 저렇게 말을 했다는 건 분명 그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소리니까.
탁탁탁. 멈췄던 걸음을 옮겨 도서관에 도착했다. 시험 기간이라 그런지 한적했던 도서관에도 평소보다 사람이 많았다. 레이먼은 도서관의 가장 구석진 직사각형 테이블로 향했다. 그곳은 왕국 관련 역사책이 모인 곳으로 찾는 이가 적어 가장 조용한 장소였기 때문이다.
그런 장소에도 딱 한 명, 학생이 있었다. 갈색 머리, 나른한 얼굴. 인중과 코 사이에 연필을 끼운 채, 입술을 비쭉 내밀고 있는 챈들러였다. 부스스한 머리를 나풀대던 챈들러는 레이먼을 발견하자마자 해사하게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안녕, 레이먼. 요즘 꽤 자주 마주친다. 아, 쉿쉿. 여기 도서관이야.”
“선배님, 시끄러운 건 선배뿐이에요.”
“그런가?”
어쩐지. 우연이 아닌 것 같은 기분이지만.
그렇게 생각하며 레이먼은 그의 옆자리 의자를 뺐다.
우연이 아니라면 이 상황을 잘 활용하면 될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