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ill Make You a King as a Possessor RAW novel - Chapter (269)
빙의자가 왕으로 만들어 드립니다-269화(269/275)
“이 상처요? 형님께서 그렇게 신경 쓰실 정도의 상처는 아닙니다.”
“정말로?”
“예, 정말이요. 마차에 올라타다 조금 긁힌 것뿐이라서요. 거의 다 나았으니 괜찮습니다.”
“그래, 그럼 됐다.”
레이먼이 잡아챈 손목을 천천히 놓아주었다.
영법으로 다친 상처였다면 상처가 더 벌어졌을 것이다.
천천히 낫고 있다면 아마, 걱정할 상처는 아니겠지.
“그보다 형님, 밀리포레 일에 대해서 여쭙고 싶은 게 있습니다.”
“뭔데?”
“유타 선배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학생들이 작위를 받을 수 없었던 것이나 그와 비슷한 정책들에 대해 신문에 실었습니다만 그게 어디에 쓸모가 있는지 잘 이해가 안 갑니다. 이미 해결된 일들을 알아서 무엇합니까?”
레이먼이 답했다.
“역사를 잊지 않는 건 중요한 거지. 게다가 포레스튼 아카데미의 학생들 중 왕실과 연결된 고위 귀족 가문의 이들도 많으니 쓸모가 없진 않을 거다.”
“아이들이 밀리포레에 실린 기사에 대해 부모님께 얘기할 거란 뜻입니까?”
“그보다는 캐묻는 게 맞겠지. 네가 적극적으로 나섰던 일이라면 학생들은 그 일에 대해 자신의 부모에게 얘기할 확률이 높은 거고.”
아드리안은 놀랐다.
자신이 한 일이 그 정도까지 영향력을 가질 줄 몰랐기 때문이다.
더욱 놀란 것은 그런 것까지 모두 계산해 자신에게 그 일을 부탁한 유타였다.
또한, 그런 유타의 심중을 전부 알고 대답하는 자신의 형님이 아드리안은 자랑스러웠다.
‘어쩌면 유타 선배가 부탁한 게 아니라 형님께서 유타 선배님을 통해 내게 일을 전달할 걸지도 몰라. 만약 그런 거라면 형님은 그게 알려지길 원치 않을 테니 입을 꾹 다물고 있어야겠지.’
아드리안이 무언가 결심한 표정으로 주먹을 꽉 쥐었다.
레이먼은 주먹 쥔 아드리안의 손등 위 상처를 다시 한번 곁눈질했다.
‘아니겠지. 하지만 꺼림직하다는 생각을 버릴 수는 없군.’
상처 부위가 크지 않아 다행이긴 했지만 며칠 뒤에도 상처의 형태가 그대로라면 주의할 필요가 있었다.
솔직히 말하면 이제 아드리안의 손등 상처 이외에는 지금 당장 신경 쓸 일이 없기도 했다.
서머셋 일도 해결된 것이나 다름없었고, 이 뒤에 있던 일들은 모두 서머셋의 역모로 인한 비극이었기 때문에 이미 끝난 일이나 다름없었다.
레이먼이 통제할 수 없는 게 있다면 바텔바흐의 침략 정도였는데 그 정도는 영법사의 개입만 없다면 자신과 친구들 정도로 해결할 수 있는 일이었다.
‘게다가 지금의 바텔바흐가 스턴을 침략할 일은 없을 거고.’
아마 바뀐 후계자의 성정은 흉포하진 않을 것이다. 동시에 권력욕도 그다지 없을 테고.
만약 흉포하고 욕심이 많은 성격이었다면 이미 국민들에게 지지를 잃었던 난폭하기만 한 공왕을 내버려 뒀을 리가 없으니까.
아마 공왕이 이 정도 규모의 전쟁이나 분란을 일으키지 않았다면 몸을 숨기고 조용히 살았을 가능성이 높았다.
실제로 서머셋이 스턴을 장악하면서 바텔바흐의 힘을 빌릴 때까지도 그런 후계자가 있다는 이야기는 들은 적이 없었으니까.
“정말… 다 끝난 건가?”
레이먼이 작게 중얼거렸다.
케네스와 페인, 매너스 모두 왕위에 관심이 없다고 선언했고 유리페 역시 왕실 자체를 좋아하지 않았다. 서머셋은 이미 왕좌를 노릴 자격을 잃었으니 왕족 중에서 왕위를 노리는 이는 유타뿐이었다.
유타가 왕좌에 오를 때까지 안심할 순 없을 테지만, 유타를 방해할 만한 인물이 없는 것도 확실했다.
“형님, 그럼 이번 기회에 휴가도 받으신 겁니까?”
레이먼이 고개를 끄덕였다.
“비슷하지. 공적 치하하는 날이 올 때까지는 출근하지 않아도 된다고 했거든.”
“그럼!”
“그럼?”
“저, 저랑 같이 상업 거리에 가지 않겠습니까?”
“거리에?”
“곧 졸업이라… 완드를 바꾸려고 합니다.”
“아, 그렇지. 5학년이면 완드 재료를 새롭게 살 무렵이긴 하지.”
레이먼이 엄지와 검지로 턱을 문질렀다.
“그래서? 진로는 완전히 정했고?”
“제 생각에… 저도 역시 왕성으로 가는 게 맞을 것 같습니다.”
“왜 그렇게 생각했는데?”
아드리안은 레이먼의 질문에 제대로 답을 하지 못하고 대충 얼버무렸다.
‘형님이 나중에 가주 수업을 받아야 하니 제가 그 자리를 채우려고 합니다.’
-라고 말했다간 레이먼의 표정이 그리 밝진 않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냥 형님이 하시는 걸 보니 멋져 보여서 그렇습니다. 전쟁에도 전력이 될 수 있고 스턴의 행정에도 직접적으로 관여할 수 있으니까요.”
“그래? 뭐… 네가 그렇다면 그런 거겠지.”
나중에 가주 수업을 받을 땐 스플린 가로 돌아오면 되니까.
‘왕실에 가까워지면 안 된다는 예견도 있었지만, 서머셋이 힘을 잃은 지금이라면 그 예견은 상관없다고 봐도 되겠지.’
아드리안의 의중을 모른 채 대충 넘긴 레이먼이 물었다.
“완드 재료로 생각해 둔 건 있고?”
아드리안이 우렁찬 목소리로 답했다.
“네!”
***
다음 날.
레이먼은 아드리안과 거리에 나가기 위해 방을 나섰다.
아드리안을 만나기 위해 내려가던 계단에서 레이먼은 집사와 이야기를 나누던 테리안과 마주쳤다.
“좋은 아침입니다, 그… 아버지.”
레이먼이 어색하게 ‘아버지’라는 단어를 내뱉었다.
진짜 아버지라는 걸 알기 전에는 쉽게 내뱉었는데 막상 진짜 아버지라는 걸 알게 되니 말하기 어려웠다.
테리안은 집사가 내밀던 서류를 잠시 덮은 뒤, 레이먼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눈을 마주치지 않았기에 테리안 공작의 얼굴은 보지 못했지만 질문하는 목소리는 부드러웠다.
“아침은 먹었느냐.”
“아뇨, 아직입니다. 다만, 오늘 아침은 아드리안과 나가서 먹을 것 같습니다.”
“나가서? 이 이른 아침에 어딜 가길래?”
“새롭게 완드를 만들 재료를 사려고 합니다. 아드리안도 이제 졸업반이니까요.”
“그런 거라면 네가 같이 가면 좋겠지. 그럼… 잠시 기다려라.”
테리안은 집사에게 무언가 명령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집사는 스플린 가의 직인이 찍힌 직사각형 형태의 작은 책자를 가져왔다. 그리고 그 책자를 레이먼에게 건넸다.
“이게 뭡니까?”
“수표책이다. 기왕 나가는 김에 너도 구매하고 싶은 게 있으면 이걸 사용하도록 해라.”
스플린 가의 직인이 찍힌 수표책?
대충 봐도 100장은 넘었다.
이곳에서 귀족 가문의 수표책은 현대의 신용카드나 다름없었다.
게다가 이 수표책은 무려 ‘스플린’ 공작가의 수표책.
‘한도 없는 신용카드가 내 손에…!’
레이먼의 푸른 눈이 반짝였다.
그가 이곳에 빙의했을 때부터 가장 바랐던 순간이었다.
기쁨에 입꼬리가 떨렸다. 그는 자꾸만 눈치 없이 올라가려는 입꼬리를 억지로 끌어내렸다.
‘내 돈을 쓰려고 했지만.’
왕실 마법사로 돈을 번다고 하나 솔직히 집안에 돈이 있으면 집안 돈을 쓰는 게 좋지 않나.
어차피 ‘그’ 스플린 공작가 아닌가.
드디어 사치를 부릴 정도로 마음의 여유도 생겼으니 레이먼은 이번 기회에 한 번도 해보지 못한 사치를 부려보고 싶었다.
올라가는 입꼬리를 억지로 끌어내린 레이먼이 떨리는 목소리를 가다듬은 뒤, 말했다.
“다 쓰고 난 뒤 이 책자는 어떻게 처리하면 됩니까?”
“네게 준 것이니 당연히 네 것이지. 내게 물을 일을 아니구나. 돌려줄 필요도 없다. 어차피 스플린 가는 네 것이나 다름없는데.”
테리안이 레이먼의 어깨를 툭툭 치며 말했다.
가주가 될 생각이 없는 아드리안은 그 말이 살짝 꺼림직하긴 했지만 넘어가기로 했다.
테리안과 대화를 마친 아드리안이 밖으로 나서자 아드리안이 마차와 함께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수도는 전쟁으로 인한 피해를 거의 받지 않았기 때문에 아드리안이 원하던 완드의 재료는 쉽게 구할 수 있었다.
남는 시간에 레이먼과 아드리안은 길거리 가게들을 구경했다.
여태 제대로 놀아본 적 없던 아드리안의 부탁이었다.
“형님! 이것 좀 보십쇼. 구름이 막대기에 꽂혀 있습니다.”
“그건 솜사탕이라고 하는 거다. 설마 솜사탕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거야?”
“수도에 잘 내려오지 않았고 포레스튼의 축제 때는 솜사탕을 만드는 학생이 없었습니다.”
“먹고 싶어?”
“예? 그… 예.”
“그럼 먹으면 되지. 주인장, 솜사탕 3개. 이걸로 계산 부탁해.”
“예, 예, 솜사탕…!!”
솜사탕 가게의 주인장은 레이먼이 내민 수표에 눈이 빠질 뻔했다.
‘스플린 가의 문장이 박힌 수표잖아?!’
게다가 수표에 적힌 액수는 그가 솜사탕을 수천 개 팔아도 벌 수 없는 돈이었다.
“제, 제, 제가 거슬러 드릴 돈이-.”
“거슬러 줄 필요 없어. 가져.”
“하지만!”
“내가 오늘 사치를 부리고 싶어서 그렇다.”
레이먼이 별거 아니라는 태도로 답했다.
하지만 속은 전혀 달랐다.
‘짜릿해.’
그래, 이렇게 의미 없이 돈을 펑펑 써보고 싶었다.
앞뒤 계산 안 하고, “세상에 어떤 새끼가 이런 식으로 돈을 써?”라는 식으로 말이다.
주인장은 눈물이 그렁그렁 맺힌 눈으로 크게 외쳤다.
“예! 알겠습니다! 솜사탕 3개 준비해드리겠습니다!! 그리고 스플린 가 분들은 언제 가게에 오셔도 무조건 무료로 솜사탕을 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레이먼은 그날 종일 그런 식으로 돈을 낭비해댔다.
“레이먼 도련님 만세!”
“스플린 가 만세!”
아주 좋은 기분이었다.
아드리안의 완드 재료 쇼핑과 돈 낭비를 즐기고 돌아온 레이먼은 다음 날 휴가 계획을 세웠다.
***
“자, 자! 그쪽 테이블은 이쪽으로요! 테이블보는 어디 있나요? 아, 아니에요! 그 파이는 이쪽에 가져다 놓으셔야 해요!”
니콜은 레이먼이 돌아오자마자 매우 바빴다.
레이먼이 곧 다가올 엄청난 사건을 미리 말해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 네? 이틀 뒤에 그분들이 전부 오신다고요? 그걸 왜 이제 말씀해 주세요! 세상에!
– 네가 고생하는 게 보고 싶기도 하고.
– 이런 분이 나의 주인이라니! 신도 참…감사하지!
– 온실 정원을 알아서 좀 꾸며줘. 집안보다는 그쪽에서 이야기를 나누는 게 편하니까.
– 하아, 알겠어요. 대신 이번 일 잘 끝내면 제가 제일 좋아하는 베리베리 생크림 케이크를 사다 주시는 겁니다.
레이먼의 전속 집사인 니콜의 주도하에 레이먼의 손님을 맞이할 준비가 진행되었다.
오기로 한 사람들은 총 4명.
케네스, 매너스, 유리페, 유타.
니콜에게 왕족 4명이 한꺼번에 영지를 방문한다는 이야기를 들은 사용인들은 매우 당황해했다.
– 왕자 전하와 왕녀 전하가 오신다고요?!
– 제 인생의 역작을 만들 때가 왔군요. 그날 테이블 위에 올라가는 디저트는 전부 제가 만들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죽겠습니다.
– 아니, 왜 죽어요.
– 정원의 나뭇잎을 그분들의 얼굴로 꾸며두는 것이 좋을까요? 아니면 꽃이라도 심어서 형상을….
잔뜩 긴장한 시종인들이었지만 그들 모두 완벽하게 준비를 마무리했다.
정원은 왕자나 왕녀의 얼굴로 된 조각상이 세워지진 않았지만 평소보다 화려하게 장식되었다.
디저트 역시 마찬가지였다.
니콜은 그날 요리장이 만든 디저트를 한 번 맛보고 엄지를 추켜세웠다.
약속의 날 오후.
마차 4대가 나란히 스플린 가의 앞에 정차했다.
마차에서 내린 이들은 마중 나온 레이먼을 보자마자 달려가 와락 끌어안았다.
“레이먼! 오랜만이야!”
“네, 전하. 저도 오랜만입니다.”
“내 생명의 은인! 정말이지, 사랑스럽기 그지없구나!”
“형님, 형님만 그렇게 끌어안습니까?”
“어어! 나도! 나도!”
“형님, 누님. 그러다 레이먼 죽겠습니다.”
유쾌한 하루의 시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