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ill Make You a King as a Possessor RAW novel - Chapter (27)
빙의자가 왕으로 만들어 드립니다-27화(27/275)
“하암.”
“선배, 주무실 거면 방에 돌아가세요.”
“음. 고민 중.”
사각사각. 레이먼의 깃펜이 빠르게 움직였다.
그는 여태껏 암기한 내용을 빈 종이에 필사하는 중이었다. 이번 중간고사 범위 중 필기는 전 과목을 합쳐 대강 1,000페이지 분량. 완드 개발과 실전 수업은 암기할 필요는 없으니 제외.
사각사각. 지금까지 필사한 범위는 총 200페이지. 1,000페이지 정도는 머릿속에 이미 들어있다. 남은 2주는 해당 분량을 출력해서 완벽하게 암기했는지 확인하는 과정.
그래서 레이먼은 여유로웠다.
“레이먼.”
그런 신입생을 신기하게 바라보던 챈들러가 턱을 괸 채 물었다.
“너 머릿속에 시험 범위가 다 들어있구나?”
“그렇게 보이시나요?”
“지금까지 막히는 부분이 하나도 없었거든. 망설이지도 않고.”
“쓴 내용이 전부 맞는지는 모르잖습니까.”
맞겠지만.
그 말에 챈들러가 쿡쿡 웃었다.
“아냐,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모두 맞아. 내가 1학년 때 배웠던 교재를 그대로 쓰고 있는 모양이네.”
그 말에 레이먼의 깃펜이 멈추었다.
“그 말은 선배님도 이걸 전부 외우고 있다는 말씀이시네요.”
이번엔 챈들러는 굳이 답하지 않고 어깰 으쓱했다. 그 행동 자체가 답이 되었다. 레이먼은 사각거리던 깃펜을 책장 사이에 내려놓았다.
아무래도 시스템 창의 조언이 이번에도 맞는 소리였나보다.
레이먼이 슬쩍 시선을 내리깔았다. 그 끝에 챈들러가 있었다.
“선배님.”
레이먼이 느리게 입을 열었다.
“몇 등이세요?”
“나 몇 등이더라. 쭉 등수가 똑같아서 모르겠네.”
“마지막에 확인한 등수는 몇 등이었는데요?”
“아마 1등? 다 맞았으니까.”
“실기도요?”
“응.”
이거네.
쿵쾅대는 심장을 진정시키고 레이먼이 말했다.
“포레스튼의 시험에 족보도 있나요?”
“하하하, 그런 건 없어. 출제 범위는 같아도 문제는 매번 달라지니까.”
“그러니까 예상 기출 문제 같은 것도 따로 없단 말씀이시죠?”
“그렇지?”
그런 와중에도 1등을 한 번도 놓치지 않았다. ‘그’ 피데스 클래스에도 지지 않고 말이다.
“뭐 수상한 점은 없었어요?”
“수상한 점? 글쎄. 내가 1등이라는 게 수상한 점이긴 했지. 그전까지 1등은 늘 피데스 녀석들이었거든.”
“그렇군요.”
“녀석들 중에 명문 출신이 워낙 많아야지. 다들 조기 교육은 받고 온 거 아니겠어?”
“조기 교육이 만점 교육은 아니잖아요.”
“……뭔가 의심하는 말투네?”
챈들러의 한쪽 입꼬리가 슬며시 올라갔다. 그도 감을 잡은 듯했다.
그라면 이미 알고 있었을지도 모르지.
사각사각. 별다른 답을 하지 않고 종이로 고개를 돌린 레이먼이 다시 깃펜을 손에 쥐고 필사를 시작했다. 시선은 빈 종이를 향했으나 대화는 이어졌다.
“제가 남들보다 마력이 많이 모자란 와중에 이번 시험에서는 꼭 1등을 해야 해서요, 제 실기 시험 준비 좀 도와주실 수 있으세요?”
“그게 네가 할 일에 도움이 되는 거야?”
“여러 모로요.”
“나한테는 무슨 도움이 되는데?”
“그 뒤에 벌어질 상황이 재밌겠죠.”
“하하하.”
좋아, 그런 거라면 해야지. 레이먼의 마지막 말을 들은 챈들러가 호쾌하게 웃으며 레이먼의 어깨에 팔을 걸쳤다.
‘무겁네.’
치우고 싶다.
***
챈들러가 실기 수업을 돕기 위해 간 곳은 훈련장은 아니었다. 이런 훈련은 아무도 모르는 데서 해야지 재밌는 거라며 레이먼을 포레스튼 너머로 데려갔다.
여기서 한 가지 설명해야 할 게 있는데…
포레스튼의 주위는 아무것도 없었다. 말 그대로 아무것도. 포레스튼은 마법으로 구름 위에 단단히 고정된 건물이었다. 즉, 건물 주변을 제외하고 구름에 발을 뻗었다간 그대로 추락해버린다는 소리였다.
“여기도 사용할 수 있었어요?”
그 사실을 알면서도 챈들러는 그를 건물 밖으로 데려온 것이다.
“응. 반경 500m까지는 그냥 바닥처럼 사용할 수 있거든. 구름 다이빙 동아리 애들이 하는 말을 엿들었지. 하하하. 재밌지 않아? 이거 봐. 구름을 눈처럼 뭉쳐서 던질 수도 있어. 에잇.”
챈들러가 던진 구름 공이 레이먼의 어깨를 정통으로 맞췄다. 다행히 구름이라 아프진 않았다. 대신 어깨에 껌처럼 들러붙었다.
“한 번 더, 에잇.”
양쪽 어깨에 드레스의 퍼프 소매처럼 구름을 단 레이먼이 말했다.
“여기서 뭘 하려고요?”
“마력이랑 서클 강화. 너, 남들보다 마력이 적다고 했지?”
“네.”
“자자, 그럼 여기서 문제. 마력의 양을 늘리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서클의 수를 늘리거나, 크기를 늘리거나, 마력의 질을 높이면 되겠죠. 질을 높이는 경우엔 양은 증가하진 않겠지만요.”
“이론은 부족한 게 없구나?”
진심으로 놀란 챈들러가 짧게 휘파람을 불었다. 크게 가르칠 건 없겠는데?
“그래서 오늘은 네 서클의 크기를 늘려볼까 해.”
“어떻게요?”
레이먼은 매일 매일 마력을 운용하는 연습을 해왔다. 그래봤자 1,500이었다. 나쁜 양은 아니었으나 그렇다고 많은 양도 아니었다. 1등이 되기엔 턱없이 부족한 양임은 틀림없었다.
“이렇게.”
그 순간, 레이먼은 몸이 붕 뜨는 느낌이 들었다. 아니, 느낌이 아니라… 진짜였다. 정말로 몸이 허공에 붕 떠 있었다. 몇 초 동안 말이다.
슬쩍 발아래를 내려다보았다. 그리고 발밑에 새하얀 구름이 아닌 푸르른 하늘이 보인다는 것을 깨달았고 더 밑으로 초록색 위 검은 점처럼 찍힌 주택들이 보인다는 것도 눈치챘다. 이러면 떨어지는 거 아닌가?
후우욱-
찰나였다. 몸의 추락을 느낀 레이먼이 구름을 붙들었다. 아직 마법에 걸린 구름은 단단하게 굳었기에 붙잡을 수 있었다. 구름 위에 선 챈들러가 다리를 쪼그리고선 레이먼을 내려다보았다.
“단시간에 서클의 크기를 늘리려면 생명의 위협을 느끼는 정도는 되어야 하지.”
“선배, 미쳤어요?!”
“걱정하지 마.”
겨우 버티고 있는 다섯 손가락. 그 손가락을 갈색 머리의 신이 천천히 떨어뜨렸다.
하나.
“마력을 느끼고 발밑에 집중해. 바닥에 유리가 있다고 생각해. 그리고 넓게 퍼뜨려. 그 면적이 커질수록 네 서클의 크기와 마력의 양이 늘어나는 거야.”
둘.
“올라올 때는 계단을 상상하고.”
그리고 세 번째 손가락이 떨어졌을 때, 레이먼은 챈들러의 말이 들리지 않았다. 그냥 귓등으로만 들었다.
그래, 인정하자. 손가락 두 개만으론 버티기 좀 힘들다. 더군다나, 곱씹는 것만으로도 욕이 나올 정도로 연약한 신체로는 말이다.
“이 개새끼가.”
“멍멍. 그럼 다녀와, 후배.”
네 번째 손가락이 떨어지자마자 레이먼은 그대로 추락했다.
***
짧은 순간, 레이먼은 추락하는 중에 새삼 많은 걸 느꼈다. 그리고 많은 걸 떠올리려 애썼다. 예를 들어, 이런 위기 상황에 대비한 헌터 시절의 노하우라던가.
‘헌터 시절엔 어땠더라.’
그때도 63층 높이에서 떨어진 적이 있었던 것 같다. 어떻게 살아남았지? 자신에게 정보 수집 관련 능력 외에 다른 게 있던 것도 아니었다.
아, 그래.
그땐, 비행 소년 한 명을 고용해 데리고 있었다.
아니, ‘그런 의미의’ 비행 소년 말고. 진짜 하늘을 나는 능력을 가진 소년 말이다. 특히 미성년 헌터는 어른보다 싸게 고용할 수 있었으니 좋았지.
이 순간, 그때의 기억을 떠올린 건 어찌 보면 다행이었다. 그때의 감각은 아직 기억에 남아있었다.
허공에서 떨어지는 내내 다리가 종잇장처럼 후들거렸다. 이 상태에서 마력으로 바닥을 만들어봤자 척추가 두 조각이 날 거다. 구름 다이빙 동아리에서 사망자가 나올 만했다.
‘날개, 날개, 날개.’
레이먼은 두 눈을 질끈 감았다. 그리고 상상했다. 날개, 날개, 날개. 그때 그 비행 소년이 만들었던 새하얗고 거대한, 아름다운 날개!
팔락-
무언가 생겼다. 등 뒤에서 무언가 돋아난 게 느껴졌다. 그리 크진 않았다. 레이먼은 그게 어떻게 생겼는지 확인할 겨를도 없었다. 분명한 건, 레이먼의 무게를 지탱할 만큼 대단한 날개는 아니었다는 점이다.
이 순간에도 레이먼은 계속해서 추락하고 있었다. 제기랄, 제기랄, 제기랄. 멈춰, 멈추라고.
좋다, 인정하자. 날개는 실패다. 그래도 속도는 느려졌다. 바닥은 만들 수 있다. 두 다리가 설 수 있을 정도로.
처음에는 얇게. 하지만 단단하게. 날개의 면적도 함께 늘려야 하고. 좋아, 속도가 느려졌다. 얼른. 얼른 바닥을 완성해야 한다.
탁-.
멈췄다. 20초. 레이먼이 마력으로 바닥을 만드는 데에 성공한 시간이었다.
레이먼이 하늘 위를 올려다보았다. 저 멀리 구름이 보였다. 그리고 자신을 내려다보는 챈들러의 얼굴이 면봉처럼 보였다. 만약 레이먼이 챈들러의 표정을 확인할 수 있었다면, 저 선배가 저렇게까지 눈이 커질 줄은 몰랐다고 말했을 것이다.
‘벌써…?’
챈들러는 레이먼을 죽일 생각은 전혀 없었다. 당연히 구해주기 위한 안전장치를 마련해두었고, 완드도 가져왔다. 그런데 길 줄도 모르던 아기가 걸음마를 배우더니 바로 말도 할 수 있게 되었다.
‘나보다 천재는 없을 줄 알았는데.’
있긴 하네. 챈들러가 저 아래의 레이먼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그리고 딱 3초. 3초 만에 레이먼이 뭔가를 펄럭이며 챈들러의 눈앞에 있었다.
새하얀, 거대한 날개. 깃털은 흩날리지 않았다. 만약 깃털까지 흔들렸다면 주교를 믿는 챈들러는 분명 천사가 나타났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레이먼의 등 뒤에는 눈이 부시게 아름다운 날개가 있었다.
“이런 마법은 처음 보는데.”
챈들러가 살살 눈웃음을 쳤다. 갈색 머리카락 사이로 그의 짙은 눈썹이 처지는 게 보였다. 레이먼은 그 밝은 얼굴에 욕을 처박고 싶었다. 다행히 참을 수 있었다. 후하고 한숨을 크게 내쉰 레이먼이 대꾸했다.
“죽기 전에 개발했나 보죠.”
그러자 챈들러가 더욱 밝게 웃었다.
“그렇다면 내 실험이 성공했나 봐, 후배!”
“어떤 미친놈이 이런 걸로 후배한테 실험을 해요.”
“진정해, 레이먼.”
“흥분한 적 없습니다.”
“나야 당연히 널 죽일 생각은 없었지. 하지만 구해줄 거라고 미리 말하면 훈련이 안 되잖아. 자, 그럼 마력 양을 한 번 확인해봐. 네 몸에 마력 양이 늘어난 게 느껴져?”
마력 양?
그의 말에 한 번 툴툴댄 레이먼이 시스템 창을 몰래 확인했다.
[ 레이먼 반 스플린 (킹메이커)체력 : 1000
마력 : 3000
특성 : 양심이 쓰레기, 이렇게 눈치가 좋은 놈은 싫은데 ]
3,000이라고? 이게… 이렇게 뛸 수가 있는 거야?
어때? 챈들러가 물었다. 그 나긋한 목소리엔 확신이 있었다.
“그게, 마력 양이, 굉장히, 많이 늘었네요.”
당황한 레이먼이 천천히 끊어 답했다.
“허어, 이게 가능하긴 한 거예요?”
“내가 말했잖아. 성공했다고.”
눈이 동그랗게 커진 레이먼을 올려다보던 챈들러가 웃으며 물었다.
“그럼 우리 한 번 더 할까?”
챈들러 이 새끼, 이거. 그냥 개새끼인 줄 알았는데.
“옙. 믿습니다, 선생님.”
제가 개새끼였네요, 선생님. 멍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