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ill Make You a King as a Possessor RAW novel - Chapter (34)
빙의자가 왕으로 만들어 드립니다-34화(34/275)
“포레스튼에서 편지가 왔다고?”
“예, 여기.”
“알았다. 가봐라.”
학교로부터 편지가 왔다는 소식에 스플린 가문의 주인 테리안 반 스플린은 벌써부터 머리가 지끈거렸다.
‘퇴학? 유급? 벌써 유급 얘기를 꺼낼 정도면 당장이라도 집에 데려오는 게 나아.’
돈이 부족한 건 아니었다. 가문의 힘이 부족한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테리안은 제 아들놈이 어디서 망신이라도 당해 얻어터지고 오길 원치 않았고 그로 인해 실추될 가문의 명예도 걱정되었다.
테리안은 편지 봉투를 손에 들고 한참을 고민하다 칼을 꺼내 들었다.
사락.
[ 테리안 반 스플린 님께 ]가벼운 인사치레 뒤에 쓰인 내용은 충격적이었다. 테리안의 손이 덜덜 떨렸다.
[ 귀하의 아드님께서 납치를 당해- ] [ 이는 유타 스테디움 스턴 제5 왕자를 노린 것으로 보고 있으며, 이에 레이먼이 휘말린 것으로 판단되어 현재 조사 중에 있는 사항으로 – ] [ 아드님은 목숨을 걸고 제 친우를 지키는 용기를, 마법을 다루는 납치범들에게 적절히 대처하는 현명함을 갖추고 – ] [ 해당 마법은 1학년 강의에 배우지 않은 것도 포함되어 아마 고학년 교재를 사전 예습하여 마법식을 모두 암기한 것으로 판단… 이는 대단히 훌륭한 학문적 소양을 갖춘 것으로 사료 – ] [ 포레스튼에서는 이에 크게 감명받아 – ] [ 이는 또한, 스플린 가문의 훌륭한 가정 교육을 증명하는 것과 같습니다. ] [ 감사 인사만으로는 부족한 것을 알고 있으나, 그럼에도 이렇게 감사의 인사를 전하며 추후 레이먼의 건강 관리는 포레스튼에서 전적으로 책임지고 담당하겠다는 말씀을 전달드리기 위해 -]“이, 이게 전, 전부 레이먼이-.”
몇 번이나 다시 읽어도 주어가 전부 제 아들놈이 맞았다. 테리안은 당장이라도 거품을 물고 쓰러질 것 같았지만 참았다. 편지를 또 읽기 위해서였다.
밉다, 밉다 했지만 정말 제 자식이 잘못되길 원하는 부모가 세상 어디에 있단 말인가. 테리안은 레이먼이 남들의 반만 되어도 전폭적으로 지지해줄 의지가 있었다. 하지만 지금까지 레이먼은 단 한 번도, 반의 반도 제 기대에 미친 적이 없었다.
노력보단 결과, 결과보다는 성과. 이게 테리안이 지금껏 쌓아온 삶의 철학이었다.
그런데 그 못난 아들자식이 이런 성과를 들고 온 거다. 마법 하나 제대로 다루지 못해 전전긍긍하던 녀석이 말이다. 테리안은 눈물이 차올랐다. 그래서 고개를 높게 쳐들었다.
편지에 눈물이 묻어 잉크가 번져선 안 되기 때문이다. 테리안은 집사를 불러 새로운 액자 장식을 만들었다. 그리고 화려한 금붙이들로 장식된 액자에 포레스튼에서 온 편지를 담아 벽에 걸었다.
‘성적이 무슨 상관이냐. 무슨 상관이야.’
내가 편협한 시선으로 내 아들을 봤구나.
그래, 레이먼이 비록 실전 마법엔 재능이 없어도 똑똑한 놈인 걸 이제라도 알게 됐으니 다행이었다. 왜 여태까지 몰랐을까.
‘레이먼, 너는 쓸모없는 자식이다. 스플린 가의 자식이 마법 하나 쓰지 못하다니!’
‘하지만 아버지, 저는-.’
‘됐다! 듣기 싫다. 네 동생을 봐라. 저 어린 나이에 기초 마법 시동을 벌써 해내지 않았느냐!’
‘……죄송합니다.’
‘너는 할 줄 아는 소리가 그것뿐이냐!’
‘….’
‘됐다. 너는 어디 나갈 생각도 하지 말고 집안에 처박혀 있어라! 욕심도 내지 마! 아무것도 하지 마!’
여태까지 자신이 레이먼에게 했던 폭언이 기억 속에 그대로 떠올랐다.
‘내가 끔찍했구나. 내가 멍청했어.’
그동안 레이먼이 자신의 장점을 설명할 기회를 주지 않은 것은 자신이었다. 만약 레이먼이 논문 하나를 써낸다 해도 아마 그때의 자신이라면 마법도 못 하면서 논문은 무슨 논문이냐며 핍박했겠지.
테리안은 깊게 반성하며 얼른 제 아들이 방학이 되어 돌아오길 기다렸다. 그때쯤의 테리안은 레이먼의 성적이 설령 좋지 않더라도 포레스튼의 학비를 대줄 생각이었다.
“…이, 이게!! 이게 정말 레이먼의 성적표란 말이냐!”
“예? 아, 예… 맞습니다.”
그런 테리안의 예상과 전혀 빗나가는 성적표가 방학 직전, 스플린 가에 도착했다.
[ 레이먼 반 스플린– 총 평균 : 97
– 1서클 마법 개념학 : 100/100
– 1서클 마법식 : 100/100
– 1학년 마법진 : 95/100
– 1서클 마법 실전 : 100/100
– 완드 개발 : 90/100
—총 등수 : 1/50 ]
총 등수 1/50. 전교 1등.
…전교 1등!!
레이먼이 전교 1등을 한 것이다.
“우리 아들이 전교 1등.”
“공작님! 공작님!!”
테리안은 이번에야말로 거품을 물고 쓰러지고 말았다.
***
“공작님, 괜찮으십니까. 반나절을 꼬박 누워계셨습니다.”
“뭐, 뭐라. 지금은 그럼-.”
“하루가 지나 아침입니다.”
“그래, 그래… 그렇구나. 어, 어제 내가 본 성적표를 다시 갖고 오거라.”
꼬박 반나절 동안 기절했던 테리안이 정신을 되찾자마자 찾은 건 다름 아닌 레이먼의 성적표였다. 테리안은 다시 한번 레이먼의 성적이 1학년 전체 학생 중 전교 1등이라는 걸 확인했다.
“집사, 마법 영상구를 준비해주게. 연결은… 그래, 스웨인! 스웨인 가문으로!”
“알겠습니다. 사유는 뭐라고 말씀드릴까요?”
서둘러 침대에서 일어난 테리안이 크게 소리쳤다.
“뭐긴, 당연히 자식 자랑 아니겠어! 크하하하! 그놈이 마리아 얘기만 할 때부터 마음에 안 들었다고! 집사, 당장 준비해!”
“예! 공작님!”
***
“그래, 다 들어주겠다.”
“정말요?”
“스플린 가문은 거짓말을 하지 않아.”
레이먼은 아버지의 바뀐 태도에 적응하기 위해 푸른 눈을 크게 끔뻑였다.
‘…저 눈빛은.’
처음 마주하는 눈빛은 아니었다. 전생의 자신에게 의뢰를 맡겼던 재벌 중의 한 명이 제 자식놈을 그런 식으로 봤었지.
‘다른 게 있다면 이번엔 그 눈빛의 끝에 내가 있다는 점이겠군.’
“왜 그러냐, 레이먼. 혹시 어디 안 좋기라도 한 거냐? 이봐, 집사! 지금 당장 우리 영지에서 가장 유명한 의사를-.”
말투는 여전히 무뚝뚝했지만, 확실히 테리안은 변했다.
레이먼이 고갤 저으며 아버지를 말렸다.
“괜찮습니다, 아버지.”
“혹시… 나 때문에 그런 거라면.”
“괜찮아요, 정말로.”
그렇게 말한 레이먼은 테리안보다 먼저 의자로 가 앉았다. 테리안은 서둘러 책상 너머 의자로 돌아가 앉았다. 큼큼. 몇 번 헛기침을 한 그가 누구보다 불편한 존재에게 말을 꺼냈다.
“아카데미에서는 기대 이상의 성과를 보여줬더구나. 전부 들었다.”
“네. 그럼 이제 학비 문제는-.”
“학비는 물론이고 용돈도… 아니, 아니다. 네가 원하는 만큼 써라. 너는 쓰고, 니콜을 통해 보고만 하면 된다.”
…………웃으면 안 돼.
웃으면 안 된다니까.
콧구멍 멈춰. 입꼬리 내려. 눈은 최대한 슬프게 떠. 슬픈 생각, 슬픈 생각, 슬픈 생각.
‘얼마까지 되는 거지? 땅은 사도 되나? 건물은? 지어도 되나?’
“레이먼, 계속 표정이 좋지 않구나…. 그래, 내가 너에게 사과를 먼저 해야만 했는데 너무 성급했구나.”
“……예에.”
웃는 건지, 우는 건지 모를 기묘한 표정.
부모라면 당연히 해줘야 하는 일에도 저런 표정을 짓게 만들다니. 테리안은 마음 한구석이 타들어 가는 듯했다. 그는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나 레이먼을 향해 걸어갔다.
테리안이 아들의 손을 다시 한번 맞잡았다.
“미안했다…. 널 믿고 포레스튼을 그만두라는 말은 더 이상 하지 않으마.”
“……예에. 그러셔야죠.”
레이먼은 씰룩대는 입꼬리를 애써 끌어내리며 고개를 숙였다. 테리안은 파들파들 떨고 있는 장남을 꽉 끌어안았다.
‘인생은 한 방.’
그렇게 낯선 아버지와의 해후를 마친 레이먼은 양팔을 활짝 펼치며 집무실을 나왔다.
하아. 저택의 공기가 이다지도 달콤했던가. 그가 인생의 달콤함을 느끼는 도중 익숙한 알람이 도착했다.
띠링-
[ 당신은 아버지의 ‘인정’을 얻는 데에 성공했습니다. ] [ 그동안 쌓은 업적에 대한 보상이 지급됩니다. ] [ 이번 보상은 두 가지입니다. ] [ 보상 확인하기 ]‘확인’ 버튼이 눈앞에 반짝였다. 레이먼은 주변을 한 번 둘러본 뒤 확인 버튼을 눌렀다.
[ 이번 보상은 ‘예견’과 ‘메이커 포인트’입니다. ]“메이커 포인트?”
메이커 포인트는 뭔지 모르겠으니 일단 예견부터 봐볼까.
[ 예견 – 아드리안을 왕성에 데리고 가지 않는 편이 좋습니다. ]아드리안을 왕성에 데려갈 일이 있나? 없을 것 같은데.
레이먼은 별 고민 없이 다음 확인을 눌렀다.
[ 메이커 포인트는 킹메이커에게만 주어지는 특권입니다. ] [ 킹메이커로서의 삶 중 정말 중요한 분기점이라고 여겨지는 순간, 그 순간이 세이브 포인트로 자동 저장됩니다. 이는 본인이 직접 정할 수 없으며, 언제로 정해졌는지도 알 수 없습니다. ]‘게임의 세이브 포인트랑 똑같군.’
하지만 내가 정할 수 없고 그게 언제일지 알 수 없다면 그게 무슨 소용이지?
레이먼이 보상에 대해 고민하는 사이, 복도 멀리서 아드리안이 달려오고 있었다.
“형님!”
“…세이브 포인트랑 똑같다면 혹시-.”
“형님!”
“아, 놀라라. 아드리안 발소리 좀 내고 다녀.”
“형님, 저 멀리서부터 달려왔는데요.”
“내가 못 들었으면 못 들은 거야.”
“형님 말이 다 맞습니다. 형님, 혹시 이 책 저를 위해 사 오신 겁니까?”
묘하게 표정이 상기되었다 했더니. 아드리안을 위해 사 온 선물을 니콜이 먼저 그에게 건네준 모양이었다. 대신 전달을 부탁했더니 일 처리도 빠르지.
고갤 끄덕인 레이먼이 책을 곁눈질했다.
“맞아. 네가 좋아하는 교수님 맞지? 그분이 포레스튼에 재직 중이셔서 초판본을 빨리 얻었지. 저택에는 없을 거다.”
“감사합니다.”
어쩐지 책을 바라보는 아드리안의 눈에서 꿀이 떨어지는 것 같았다.
“너는 내가 왜 좋냐?”
“…예?”
“이해가 안 돼서.”
레이먼은 아드리안의 변화를 당최 이해할 수가 없었다. 전 레이먼이라고 아드리안에게 딱히 잘해준 건 없는 것 같고.
“형제잖아요. 제 형이니 당연한 거죠.”
“그게 다야?”
“예. 형님은 아니세요?”
“듣다 보니 맞는 말이네.”
아드리안도 내가 형이 아니었다면 애초에 나랑 친해지려 하지 않았겠지. 레이먼은 납득한 듯 고개를 끄덕이고선 방으로 향했다.
방에는 니콜이 준비한 다과가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레이먼은 눈 내리는 창가를 바라보며 동생과 함께 저택의 평화로운 나날들을 즐길 수 있었다.
일주일 뒤에 아드리안의 폭탄선언을 듣기 전까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