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ill Make You a King as a Possessor RAW novel - Chapter (37)
빙의자가 왕으로 만들어 드립니다-37화(37/275)
“형님이 왕성 내부에 자신만의 아카데미를 개교할 생각을 한 건 작년부터야.”
서머셋이 준비된 냅킨으로 입가를 닦으며 말했다.
“당연히 아버님은 그리 좋아하진 않으셨지. 형님이 억지로 밀어붙였어. 형님이 이미 작업을 쳐둔 아이들이 있었기 때문에 형님은 계획을 반드시 실행해야 했지.”
거의 얼룩이 지지 않은 냅킨을 그가 쓰레기통에 휙 집어 던졌다. 바텔바흐 공국에서 가져온 달콤한 홍차와 스턴 왕국의 쓰디쓴 디저트가 테이블 위로 올라왔다.
검은 직사각형의 알 수 없는 디저트를 포크로 휙 뒤집으며 챈들러가 물었다.
“뭐 비밀 조직 같은 거야?”
“정확히 말하면 ‘이젠’ 아니지. 형님은 이번 일정에서 그 애들을 공개할 생각이었거든. 그래서 크리스랑 챈들러, 디찬까지 해서 너희들을 초대한 거고.”
챈들로가 손에 든 포크로 서머셋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럼 3왕자가 우리를 직접 뽑은 거였단 말이야?”
“자신이 직접 만든 아이들이 포레스튼의 학생회를 쓰러뜨리는 그림이 보기 좋잖아?”
서머셋이 웃었다.
“서머셋 선배는 그 계획을 다 알고 계셨던 거고요?”
“당연하지.”
“하아.”
“레이먼, 괜찮아?”
“그래 보입니까?”
레이먼은 마음 같아서 식탁에 대가리를 갖다 박고 싶었다. 뭔가 끔찍한 고통이라도 두개골에 전달되면 굳어버린 전두엽이 작동하지 않을까? 시냅스에 전기 충격이 간다던가.
‘잠깐.’
순간, 레이먼은 정말 머릿속을 무언가 찌릿하고 지나가는 걸 느꼈다. 한쪽 눈썹을 짝짝이로 만든 그가 서머셋 쪽으로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서머셋 선배, 그런데 쓰러뜨린다는 게 혹시 어떤 의미죠?”
“말 그대야.”
“설마 무슨 콘테스트에 돈을 걸고 한다는 게.”
“절대 강자 포레스튼 대 언더독 신진 마법사들. 타이틀부터 재밌지 않아?”
목울대에서 욕이 근질거리는 걸 겨우 참아낸 레이먼이 탁자를 톡톡 쳤다. 그러자 걱정하지 말라는 듯 서머셋이 레이먼을 위로했다.
“하지만 레이먼 너는 크리스 대신 이곳에 온 거니 참여하지 않아도 괜찮아. 네가 이길 수 있겠어?”
따뜻한 차를 한 모금 천천히 들이켠 서머셋이 잔 너머로 레이먼을 응시했다.
레이먼은 쓰레기라도 씹은 듯한 표정을 지으며 되물었다.
“설마 제가 질 것 같아서 참여하지 말라고 부추기는 건 아니시죠?”
“물론 아니지.”
“그런데 이해가 안 가는 부분이 있어.”
챈들러가 팔짱을 풀고 테이블 앞으로 몸을 기울였다.
“그 ‘비밀’스러운 마법 아카데미를 만든 이유는 뭔데?”
레이먼도 그 지점에 의문을 품고 있었다. 대충 예상은 갔다. 챈들러도 이미 눈치는 챈 듯했다. 그는 그저 왕실 측의 확답을 얻고 싶은 모양이었다.
“그거야 다 알잖아. 명문 마법 아카데미 포레스튼이 추구하는 것. 마법을 쓰는 모든 이들은.”
“마법이 전부인 삶을 살 것.”
챈들러가 서머셋의 말을 이었다. 서머셋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하지만 포레스튼은 어떻지? 귀족이 너무 많고 모두가 왕실 마법사로 입성해 작위를 꿈꾸거나 정치에 참여하길 원하지. 포레스튼이 추구했던 게 지켜지지 않고 있잖아.”
형님은 그게 싫은 거야.
그렇게 말한 서머셋은 자리에서 일어나며 손뼉을 짝 쳤다.
“자, 식사 일정은 이제 끝이야. 나는 다음 일정이 있어서 그만 가봐야 해. 너희들은 원할 때 천천히 일어나. 이제 다음 일정은 뭐야?”
“없어요.”
“그래, 잘됐네. 잘 생각해보고. 다시 말하지만 레이먼, 지금 그 자리는 원래 크리스가 올 예정이었어. 너는 빠져도 돼.”
“예예, 그러시겠죠.”
***
식사가 끝난 후 레이먼은 곧장 방으로 향했다. 그는 가방 속 일기장을 꺼내 들었다.
촤락- 촤락-
거칠게 넘어가는 종잇장. 수십 장이 넘도록 큰 수확은 없었다. 사실 여태껏 일기장을 통해 도움을 받은 적은 없다시피 했다. 그럼에도 레이먼은 일기장을 뒤적였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서였다.
촤락. 종이를 넘기던 레이먼의 손가락이 멈췄다. 종이에 베인 손가락에서 나온 핏방울이 종이를 살짝 물들였다.
그리고 딱 한 장. 딱 한 줄, 오늘 날짜와 비슷한 시기에 읽을 수 있는 부분이 있었다.
『 스턴력 460년 X월 X일
…에글린턴과의 교류회는 포레스튼을 완전히 뒤집어 놓았다. 학생회가 그렇게 깨지다니! 아드리안은 교류회가 아니라 다른 프로그램에 참석해서 다행이다. 』
…아. 제기랄.
“도움이 안 돼! 도움이!”
레이먼이 침대에서 발을 거칠게 굴렀다.
마침 읽을 수 있는 부분이 있길래 기뻐했더니. 하지만 이해가 안 가는 것도 아니었다.
애초에 전 레이먼의 실력이면 포레스튼 입학도 겨우 성공했을 테니까. 그런 놈이 학생회에 들어갔을 리도 없고, 이 자리를 양보해줬던 크리스 선배를 알 리도 없었으니 말이다.
즉, 사건의 전말을 일기장에 적을 만큼 교류회에 대해 자세히 알 수 없다는 뜻이다.
‘하지만 일기장에 적힌 이때도 아드리안은 왕성에 갔었잖아?’
아드리안은 쭉 엘리트였다- 이 말인가.
똑똑. 때마침 노크 소리와 함께 아드리안의 목소리가 들렸다.
“형님, 들어가도 되나요?”
호랑이도 부르면 온다더니.
레이먼이 대강 응, 이라고 답하자마자 방문이 열렸다.
그 사이로 아드리안이 빼꼼 얼굴을 내밀었다.
“형님, 뭐 안 좋은 일이라도 있으세요?”
“도련님! 정말, 아주 아주 안 좋은 일이 있으셨답니다.”
이미 레이먼에게 얘기를 전해 들은 니콜이 메아리처럼 답했다. 그는 능숙하게 아드리안과 레이먼이 좋아하는 차를 각각 내주며 말했다.
“레이먼 도련님이 아쭈 찌부러질지도 몰라요. 작은 도련님.”
“형님이요?”
아드리안이 눈을 동그랗게 치떴다.
“그렇게 말하면 애 놀라잖아.”
“무슨 일인데요?”
“이 왕성에 다른 마법 아카데미 학생이 있어.”
“…네?”
“그리고 챈들러 선배랑 디찬 선배가 그놈들이랑 결투를 한다더라.”
“거짓말은 아니죠?”
아드리안도 적잖이 당황한 모양이었다. 당연했다.
유일한 마법 아카데미 포레스튼. 이 당연한 문장이 당연하지 않은 순간이 올 줄은 여기 있는 누구도 예상 못 했을 터였다. 아드리안은 무언가 골몰히 생각하듯 턱에 손가락을 걸었다. 그가 말했다.
“그럼… 형님도요?”
“나는 원하면.”
“어떻게 하시고 싶으세요?”
“나갈 거 같은데?”
“……형님이요”
“왜?”
“아뇨. 지금 그 말은 꽤 생각 없어 보이셔서요.”
“허어.”
너 지금 그 말, 캐붕 아니냐?
‘그래도 나를 형님으로 꽤 아끼는 줄 알았는데.’
이번에는 레이먼이 놀라 눈을 크게 뜨며 말했다.
“내 동생이 이렇게 말을 잘하는 줄은 몰랐는데.”
“중요한 문제니까요. 공작가의 자식은 왕실도 함부로 건드려서는 안 되는 법입니다. 형님이 혹시 다치기라도 하시면 아버님께서 꽤 노하실 텐데요.”
몇 달 전까지만 해도 믿지 않았을 말이었다. 하지만 얼마 전 달라진 공작의 모습을 본 지금은 믿겼다.
“그러게.”
“형님이 질 것 같지는 않습니다.”
뭔, 당연한 소릴 해. 레이먼이 찻잔을 들며 대충 대꾸했다.
“어, 나도.”
“따로 준비하실 건 있으세요?”
“없을걸? 아! 아니네. 있어, 있네. 아드리안, 네 프로그램은 모레면 끝나지? 그날 저녁에 돌아가나?”
“아뇨, 다음 날 오전입니다.”
그 말에 처음으로 아드리안이 슬픈 표정을 지었다. 이것만큼은 아드리안도 어쩔 수 없는 부분이었다. 아무리 슬프다 해도 포레스튼의 학생에게만 주어지는 프로그램에 아드리안이 참여할 순 없었으니까.
레이먼이 찻잔을 탁 내려놓으며 시선을 올렸다.
“그럼 가기 전날 저녁, 내 방에 한 번 더 들려.”
“당연한 소릴 하시네요.”
“그래, 그거면 됐다.”
***
“챈들러 선배님은 강하세요?”
“강하다기보단 똑똑한 거지. 갑자기 왜?”
다음 날 오전, 레이먼은 곧장 챈들러가 있는 정원으로 향했다.
정원에 마련된 해먹에 드러누운 챈들러가 몸을 옆으로 돌렸다. 레이먼은 같잖은 꼴을 한 챈들러를 내려다보았다.
왕성에서 꽃무늬 반팔에 흰 반바지를 입는 놈을 보고 그렇게 생각하지 않기도 힘들었다.
그런데 여기도 이런 하와이안 셔츠가 있나?
…대체 디자이너들은 무슨 생각을 하고 이런 흉악한 걸 만든 거지?
“레이먼?”
“아, 에글린턴과의 교류회 때문에 확인이라도 할 겸 여쭤봤습니다. 괜찮으시다면 저와 마법 결투를 해주실 수 있으실까 해서요. 그리고… 기왕이면 그 옷은 벗었으면 좋겠습니다.”
어찌 됐든, 하와이안 셔츠는 어느 장소에 있건 이상하구나.
레이먼의 말에 챈들러가 하하 웃으며 손가락으로 자신과 레이먼을 번갈아 가리켰다.
“결투? 나랑? 네가? 진심이야?”
“예.”
“질 텐데.”
챈들러가 씨익 웃으며 쓰고 있던 선글라스를 이마 위로 올렸다.
“져도 괜찮아?”
“예, 뭐.”
진다고 뭘 잃는 것도 아니고. 기왕이면 이기고 싶었지만 이기지 못한대도 별 상관은 없었다.
“근데 왜 제가 질 거라고 생각하세요?”
“그거야 난 네 선배니까. 선배는 후배에게 올바른 길을 선사해야 하는 의무가 있지.”
챈들러가 해먹에서 느릿느릿 기어 나오며 레이먼을 내려다보았다. 챈들러도 크리스만큼이나 키가 컸다.
“의무는 사람을 강하게 만들거든.”
“…그런가요. 확실히 전 그런 의무는 없네요.”
“하하하, 썩 동의하는 얼굴은 아니지만 일단 가볼까?”
“그런데 어디로 가야 하나요?
챈들러가 능숙하게 레이먼의 어깨를 붙잡아 몸을 돌렸다.
“당연히 격투장이지.”
왕성에 몇 번이나 들락날락한 챈들러였기에 왕성에 마련된 마검사용 격투장도 알고 있었다. 마검사용 격투장은 스플린 가에 있던 기사들의 격투장과 거의 비슷했다. 원형 경기장엔 짧은 흰 선이 두 개가량 그려져 있었고 두 사람이 그 위에 섰다.
“상대방의 마법 때문에 경기장 바깥으로 나가는 쪽이 지는 거야.”
“네.”
“그럼 시작.”
예상대로 챈들러는 먼저 공격하지 않았다. 아마 자신감이겠지. 레이먼의 마력 양을 그는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레이먼은 그의 기대대로 행동해주기로 했다. 그는 허공에 작은 마법진을 그렸다. 완드가 없었기에 간단한 마법도 마법진을 직접 그려야 했다.
‘바람 마법?’
현명한 판단이다. 챈들러 역시 일부 마법진만으로 레이먼이 어떤 마법을 시동하는지 눈치챘다. 기초 마법은 아니었고, 바람, 큰 규모, 중심, 원형.
챈들러가 낮게 중얼거렸다.
“태풍?”
상대를 경기장에서 밀어내기엔 바람만큼 적합한 게 없었고, 레이먼의 마력 양으로 만들 수 있는 바람 마법 중 ‘태풍 생성 마법’이 그중 가장 강력했기 때문이다. 챈들러는 내린 손의 손가락으로 작게 또 다른 마법진을 그렸다. 파훼 마법진이었다. 파훼 마법진은 크기가 정해져 있지 않고 강력한 만큼 발동 전제 조건이 까다로웠다.
상대방이 어떤 마법을 시동하는지 상대가 시전하는 동시에, 이를 깨달아야 했기 때문이다. 즉, 파훼 마법의 원리를 알고 있어도 쓸 수 있는 마법사는 많지 않다는 뜻이었다.
그리고 챈들러는 그 드문 마법사 중의 한 명이었다.
후욱- 강한 바람이 챈들러를 향해 불어왔다. 예상한 대로의 마법. 챈들러의 손끝에서 일어난 보라색 마법진이 그의 앞에 떠올랐다. 바람이 그 마법진에 닿자 사그라들었다.
챈들러가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레이먼, 현명한 판단이-.”
그러나 이내 이상함을 감지한 챈들러가 입을 다물었다. 몸이 밀리고 있었다. 그런 느낌이 드는 게 아니라, 실제로 원래 서 있던 자리에서 한참이나 뒤로 가 있었다.
‘뭐지?’
파훼 마법은 말 그대로 그 마법을 무효로 만드는 역할을 했다. 그러니 이 마법진 뒤에 선 그가 바람에 밀릴 리가 없단 소리다.
단, 한 가지 경우를 제외하곤.
“예, 선배님. 현명한 판단이죠.”
자신이 예측한 마법이 틀린 경우 말이다.
“제기랄.”
챈들러의 몸이 허공에 붕 떠올라 그대로 추락했다.